전편 모음집 (옴니버스식이라 본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https://arca.live/b/lastorigin/3102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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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말세군.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다니!"


우리 김 선배는 오늘도 세상타령을 쎄게 하신다. 이미 고도화된 사회에서, 무얼 바란다고 저리 말씀하시는걸까?


"씨발! 이런 세상에서 산다는 걸 산다고 할 수 있겠어?"


자그마한 작대기에서는 몽글거리는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에잉- 드러운 세상!"


김기자가 한번 마음먹고 타령을 시작하면, 하루는 거뜬히 상태가 지속된다. 우리는 그런 그를 냅두고 퇴근만 하면 되지. 마침 퇴근시간이기도 하니, 모두가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선배와 동료 기자들에게 오른 손을 흔들고, 우중충한 거리를 나돌아다닌다.


기자로써 볼것 못볼것을 죄다 보면 정신머리가 사나워지고, 퇴근길에는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기분이 더럽다. 산이 식도에 걸리면서 시큼한 것이 느껴지는 그런 느낌 말이다.


길거리 노인들의 친구는 자그마한 신문지 한장, 뿌연 종이는 늙은이들의 밤을 함께 지새워준다.


오늘은 항상 가던 길이 공사로 막혀, 잠시 옆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간성이 사라진 사람들의 거리가 각자 다르길 기대하겠는가?


정신병이 도질 정도로 검은 벽과 검은 길, 검은 표정들. 모든 것이 '모던' 그 자체이다. 모두가 형식적으로 변한 것이야, 사는게 사는것 같지 않지.


그때, 나의 눈 옆으로 들어오는 자그마한 가게, 남들과는 달리, 유난히 누런 나트륨 등을 키고 있는 상점에 나는 이끌리다시피 그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N극에 부딪힌 푸른색 자석처럼, 꿈적도 않고 멍하니 가게를 바라봤다.


따뜻한 느낌, 앞유리에 진열된 알록달록한 유리병들, 뭘 파는걸까? 발견할 사람들이 궁금해 죽을 정도로 정보를 하나도 제공해주지 않는군. 사장은 상술의 고수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상점의 문을 열었다.


"아이고- 어서오세요-"


"..."


푸근한 인상의 뚱뚱한 할아버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반반한 청년일세. 뭘 사러 왔나?"


"구경만 하러 온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손님 잡아야지 성공하는거야."


"...이곳에서는 뭘 팝니까?"


"음...자살기구들."


...내가 잘못 들은건가. 입은 어버버거리다 겨우 정신을 차린듯 하였다.


"뭐요?"


"자살기구들!"


"..."


"아하하, 이 사람, 내 말을 못믿는군."


너털웃음과 함께 할아버지는 내 앞에 있던 묵지익한 밫줄을 내게 들이밀었다.


1800년대, 사람들이 목을 매달았을때 썼던 것처럼 음흉하게 생긴 목줄, 나는 당장 치우라 했다.


"..."


"마음에 안드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제일 잘 팔리는게 뭡니까?"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지."


할아버지는 가게를 돌아다니셨다.


"우리 가게 주 수입원은 중산층 자녀들과 최하층 사람들이라네."


"..."


"그리고,"


할아버지는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게, 최하층민 노숙자들에게 제일 인기많은거라네."


"이걸 판다구요?"


"아니, 이거 자체를 파는게 아니야. '서비스'하는거지."


"...?"


"그친구들은 '타살 서비스'를 신청하면, 나나 내 친구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총을 맞아 죽을 수 있게 해주지. 타살로 위장된 자살이랄까?"


"..."


"그리고, 이건 중산층 자녀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은거지."


할아버지는 또다시 누런 밫줄을 들이밀었다. 죽음이 다가올때 느껴오는 중압감의 출처를 내 앞에 보여줬다.


"...이런걸 팔면서도 죄책감이라는 걸 못느끼는 겁니까?"


할아버지의 숨이 가쁘게 왔다갔다거렸다. 어지간히 내 질문이 재밌었나보다.


"죄책감? 오히려 난 자랑스럽네!"


"네?"


"내 나이가 몇으로 보이나?"


"..."


"76이라네. 76년을 사는 동안 세상이 점점 미쳐가는 속도가 빨라졌어! 난 20살에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네. 그리고 실패했지. 밫줄이 끊어졌고, 또다시 현실이라는 아수라에 떨어졌지."


"..."


"그리고 나는 생각했네. 죽는것도 선택받는 것이며, 그것은 구원이라는 것이지. 나는 그래서 그때부터 결심했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


"그리고, 내가 죽이는게 아니야. 그 사람들이 죽길 원해서 내게 와서 죽여달라는 것이지."


"..."


"생각 해보게나. 노숙자는 살아가고 있는게 기적일 정도로 힘들게 생존중이야. 국가는 그 자식들이 죽으면 수사하기는 커녕, 잘했다고 포상금이나 뿌리고, 일은 하지도 못해.


인조 인간과 고철 덩어리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그들에게 가야할 자본과 행복한 살림살이가 기업과 자본가들에게 넘어갔다고.


중산층은 어떨까? 자본이 조금 있는 것이 자본이 하나도 없는것보다 더 비참해! 언제 뺏길지 몰라, 죽을 때까지 경쟁에 치여 한 평생 편하게 살 수가 없어! 결국엔 어떡할까?


계속 자기발전을 계속하겠지. 쉬지도 못하고! 매일을 책상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책에 코를 쳐박는거야! 그렇게 되서, 그들의 노력이 돌아올까? 절대 아니지! 그렇게 한 평생 노력해봤자 돌아오는건 변함없는 삶뿐이야. ...직업이 뭔가?"


"...기잡니다."


"누구덕에?"


"..."


나의 직업은 기자, 아버지는 방송국장이다. 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기자짓거리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니야. 자네는 자본의 도움을 받았어. 물려받은 자본은 자네를 더 위로 올리겠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쪽 세계에서는 당신같이 말끔하게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


"..."


"그정도로 옷에 쓸 여력이 있으면 이곳에 들른 이유가 별로 없겠지. 어디 가는 길이 막혀 돌아가는 것이거나."


"...!"


"자네는 위선적이야. 자본을 쥔 자에게만 연민이 생기는 법, 돈을 가지고 있으니 남을 불쌍하게 보는 법. 그렇다고 자네를 욕하진 않겠어. 세상은 원래 이렇게 돌아가니깐."


눈을 돌렸다. 누런 나트륨 등이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죽음이란 그들에게는 따뜻한 것일까? 현실은 칙칙하다. 이곳을 떠나면 이런 나트륨 등의 느낌을 받을까?


정녕 이것이 구원인가 생각했다.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그 가구들 위에 놓인 이름모를 독약들, 그들에게 이것은 죽을 수 있는고마운 존재들인가.


"...물어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뭐지?"


"왜 총알과 밫줄이 인기상품이죠?"


"...좋은 질문이야."


노인은 다시 총을 들었다.


"총은 일반인들에게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해. 권총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죽을 수 있지만, 그만큼 준비자세에서 그 고통과 비례하는 두려움이 있지. 그래서 우린 그 자신이 모르게 몰래 죽이는거야.


그리고, '타살'이란 것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좋은 것이지. 노숙자들이 죽을때 원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니까, 죽을 때라도 자신에 대한 족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지. 노숙자들에게 제일 슬픈 일은 홀로 어딘가에서 쓸쓸히 죽는거야.


이 밫줄, 이게 왜 중산층에게 인기가 있냐, 자신의 자살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거든. 부모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 자녀를 갈아넣지. 하루종일 공부를 하고. 하지만, 돌아오는건 변함없는 수입, 변함없는 여전함. 자녀들은 피눈물이 흐를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돌아오는건 부모의 싸늘한 시선이야.


밫줄에 목이 걸려 삐걱거리는 자녀를 본 부모는 무엇을 느낄까? 그래, 아이들은 그놈들이 죄책감과 슬픔을 느끼길 원하는 것이야. 발끝이 추마냥 삐걱거리는 것은 부모의 마음에 흠을 내기 충분하지."


"..."


그때, 종이 울리며, 누군가가 들어온다. 헝클어진 머리와 창백한 눈, 엄마와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모자가 가게로 들어온다. 물건은 보지도 않고 곧장 노인에게 달려든다.


"여기... 말씀하신 30만원이요..."


돈에는 피가 약간 묻어있었다. 그 엄마의 옷에는 갈색으로 굳은 핏덩이가 가득 묻어있었다. 노인은 현금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거는 약을 하나밖에 못사셔요."


"...그럼... 저는 어떻게..."


노인은 여인을 안쓰럽게 보고서는, 카운터로 들어갔다. 마치 뭔가가 있는듯 카운터 밑을 뒤적거리는 그는, 검은 뭔가를 꺼내올렸다. 검은 비닐봉지와 고무줄.


"세상이 발전해서, 봉지가 공기도 통과 안시킵니다. 이거면 가능할 거요."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인은 계속해서 고개만을 숙였다. 노인은 너털웃음을 표했다.


"같은 처지끼리 서로 도와야죠. 먼저 가세요."


여인은 정말로 고맙다는 듯 알약 하나와 비닐 봉투를 챙기고는 가게 밖을 빠져나왔다.


"..."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나, 조용히 서있었다. 나간 이들의 결말이 예상되는 것인가, 쉽게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


"...뭐, 필요한 거라도?"


"아닙니다. 생각할 시간이..."


"음, 처음 온 이들에게는 대부분 반응이 이렇지."


나트륨 등은 은은히 우리를 비춰줬다. 마치, 이곳에서 나가기 싫게 만드는 것처럼, 세상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따뜻함, 그것은 죽음의 입구에서 느껴졌다.


멍하니 있다보면 무거운 초침이 시계를 몇바퀴나 돌고 있었고, 곧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것이 느껴진 나는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서는 곧장 가게를 뛰쳐나왔다. 누런 나트륨 등이 아닌 또다시 축축하고 칙칙한 백열등의 죽은 도시로, 현실로 돌아왔다. 노숙자들이 계속 가게를 돌아다녔다. 


마치, 돈을 모으고 꼭 가게에 들어가겠다고 결심을 한듯, 우러러보는 그들의 눈에는 누런 빛이 반사되었다.


죽음이 그들에게 얻을 수 있는 최후의 행복일까, 누가누가 멋지고 자랑스럽게 죽나 대결이라도 하는 것일까, 죽을 때 필요한 것 중, 용기는 사라졌다. 오직 자본만이 죽음에 필요한 것이다.


결국 노인도 자본을 쫓는 것이라는 생각에 입안에선 침이 잔뜩 고였고, 난 그것을 가게 앞에 배출하고는, 그곳을 떠났다.


길을 떠나, 우중충하고 우울한 담배냄세 가득한 길거리를 걷다. 우당탕거리는 소리고 옆길에서 들렸다.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고, 내 눈에 보인 것은 방금 봤던 모자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약을 먹였는지, 입에 거품을 물고는 미동도 없었다.


아이에게는 평온한 죽음을 선물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일까, 엄마는 고통스러운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은 봉투를 머리에 쓰고서는, 팽창했다 줄어드는 내부의 기압, 그럼에도 그녀는 고정시킨 고무줄에는 절대 손을 가져다대질 않았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음침한 거리에서 그렇게 두 영혼이 하늘로 올라왔다.


죽음이란 것은 그들에게 구원이란 것일까, 동경하는 것이 꿈이 아닌 죽음인가, 이곳은 현실인가, 지옥인가. 현실탈출인가, 지옥탈출인가, 도망치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머리 모든 곳이 지끈거렸다. 서둘러 코트를 고쳐입고, 길거리를 빠져나왔다.


그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관심없다. 모든 것이 기분나빴다. 이런 곳에 사는 나조차까지. 그렇게 끔찍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기자인 나에게 이런 것은 특종감이다. 사람을 죽이는 가게라니! 하지만 나는 그것을 기사로 쓸 수가 없었다.


다시 그런 기억을 꺼내기가 싫었다. 다시는 그때 봤던 나트륨 등의 따뜻한, 죽음이라는 구원의 따뜻함을 느끼기 싫었다.


그때 봤던 따뜻한 느낌은 내가 느낀 최고의 따뜻함, 이리로 오라는 듯한 빛의 속삭임.













죽음이란 식어버리고 딱딱하게 굳은 역겨운 것을 포장한 따뜻한 느낌, 그걸 다시 느끼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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