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보였던 것은 새파란 하늘과 초록의 숲

그리고... 여자 둘과 강아지.

"응?'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싸던 그 날, 나는 인류 최후의 사령관이 되었다.


******



"지치네..."

오르카호 사령관으로 부임하고 며칠이 지났다.
인류의 멸망 후 발견된 유일한 인간이 나라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내가 살기 위해, 그리고 그녀들을 돕기 위해 나는 오르카 호의 사령관직을 수락했다.

"공부도 은근히 체력을 많이 잡아먹는구나."

하지만 어째서인지 기억이 텅 비어있던 나는 사령관으로서 가져야 할 소양을 쌓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내가 지휘해야 할 부대들의 정보, 싸워야 할 철충들의 정보, 오르카호 행정사무 등등. 쏟아지는 공부거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라..."

숲 한가운데서 눈을 뜬 나는 그녀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오르카 호로 올 수 있었다.
즉, 바이오로이드들은 내게 생명의 은인들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그것에 감사를 표하고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불초한 몸이지만 나라도 도울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달라고 하자 오히려 아연실색한 것은 그녀들이었다. 내가 그걸 보고 당황했었지.
옛날 인간들의 모습하고는 너무 다르다나 뭐라나.

"당장 정밀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회의를 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

영문 모를 말들이었으나, 그녀들의 부탁으로 오르카 호의 사령관이 된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바이오로이드.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니며, 인간들이 도구로 삼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들.
유전자 속에 각인된 인간에 대한 복종을 그녀들은 제 본질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섬김의 대상인 내가 도구인 그녀들에게 당연한 일로 감사를 표하고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게 당연한 거라니...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곧이곧대로 '아 그래요?' 하며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인간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녀들이 그렇게 만들어졌을지 몰라도...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가치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의 차이가 바이오로이드들을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나 고민이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문제는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군사 관련이나 행정 관련 공부는 잘되어가고 있으니까 이건 걱정하지 않도록 하고... 그녀들에겐... 진심으로 대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문을 똑똑 두드리며 날 정신 차리게 만들어 주었다.

"사령관 각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전에는 부관으로 콘스탄챠 씨가 곁에 있어 주었지만, 오후에는 부족한 자원을 탐색하기 위해 그녀도 출격했다.
아무도 없는 사령관실에서 혼자 공부하던 게 심심하던 차에 방문자라니.
내심 기뻤던 나는 직접 문을 열어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자 고동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내 키가 그녀보다 컸기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는 고개를 내렸고, 시선이 마주쳐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

매력적인 눈이었다.

왼쪽 눈은 찰랑거리는 머리칼과 비슷한 짙은 갈색이었지만, 오른쪽 눈은 신비한 회색이 감돌고 있었다.
처음 보는 오드아이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엄청 예쁜 눈이네.

"와..."
"?"

입 밖으로 새어나간 감탄을 들은 그녀의 고개가 살짝 갸우뚱거렸다.
그제야 난 처음 보는 여자를 상대로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게. 그, 미안해요."

그런 내 사과에 그녀는 무표정해 보이는 두 눈을 잠시 끔뻑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괜찮습니다. 혹시, 사령관 각하... 십니까?"
"네, 부족하지만 사령관을 맡게 되었어요."
"어째서 문을 직접..."
"콘스탄챠씨가 탐색을 나가게 되어서요. 아, 어서 들어오세요."

'문을 열어줘 놓고 그 앞에 서서 길막'이라는 웃지 못할 행동을 하고 있었기에, 얼른 내 책상으로 가며 길을 터주었다.
자리에 앉자, 내 앞으로 거리를 두고 선 그녀의 모습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조금 큰 키, 허리까지 오며 찰랑거리는 고동색의 긴 머리카락, 넋 놓고 봤던 신비한 오드아이, 그리고 흰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하지만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무표정이 나를 바라보자 조금 위축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T-8W 발키리 귀환했습니다."
"발키리 씨군요. 반가워요."
"탐색 보고를 해도 되겠습니까?"
"네, 부탁드려요."

그녀가 투입되었던 탐색지는 오르카호가 숨겨져 있던 장소로부터 꽤 거리가 있었다.
임무는 역시라고 해야 할까, 인간 발견이 목표였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연락을 받은 이후 바로 출발했으나, 거리가 거리였던지라 며칠이 지난 지금에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고생하셨어요."
"... 감사합니다."

뭐지? 방금 대답 사이에 약간의 뜸이... 내가 뭐 잘못했나?
이유를 알고 싶어도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음, 정보라. 그녀의 오드아이가 내 책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밖에 모르겠는데... 아?

"아하하... 책상이 조금 어지럽죠? 못난 모습을 보였네요."
"전술 공부를 하고 계셨습니까?"
"네, 사령관이라고는 하지만 많이 부족하니까요. 노력해야죠."
"훌륭하십니다."

칭찬을 해주니 고맙긴 한데 여전히 그녀와의 대화는 어색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보다 발키리 씨가 더 침착하다고 해야 할지, 조용한 느낌이라 말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초면이니까 서로를 아직 잘 모르기도 하고...

"발키리 씨는 소속이 어디죠? 그, 아직 부대들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입니다. 각하."

그렇다면 그녀에 대해 더 잘 알아두면 되겠지.
소속을 물어보자 대답해준 발키리 씨의 부대를 중얼거리며 어질러진 책상 위에서 종이들을 뒤적거렸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시스터즈... 아! 여기 있네요. 어디 보자."

내가 발견되기 전까지 철충과의 전선을 유지한 것은 마리 씨와 라비아타 씨가 고군분투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들었었다.
하지만 인간 사령관이 없는 바이오로이드의 한계로 전선을 유지하는게 고작이었다고...
그래서 그런지 서류에 나와 있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부대원들은 많이 복원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재 오르카호에 있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부대원들은 발키리, 샌드걸, 그렘린 세 모델뿐이네요?"
"그렇습니다. 각하."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멸망전쟁이라 불리는 과거 인류의 전쟁에서 전멸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리 씨가 권한으로 둠 브링어 부대 대장 메이 씨를 복원하는 계획에, 추가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대장 레오나 씨를 복원하려고 했다고 적혀있었다.

"메이 씨는 지금 오르카호에 있고..."

레오나 씨는 왜 복원이 되지 않은 거지?
서류를 읽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구나?"

오르카 저항군은 규모가 큰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원은 부족한 편이고.
그래서 마리 씨가 선택한 방법은 메이 씨를 먼저 복원시키고 자원을 모아서 레오나 씨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발견되는 바람에, 마리 씨는 그 충성스러운 군인정신에 따라 즉시 자신의 모든 권한을 내려놔 레오나 씨의 복원이 밀리게 되었다.

"자원이라...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콘스탄챠씨도 오후에는 탐색을 나갔지."

이것도 급하게 해결해야 할 큰 문제였다.
살짝 지끈거리려는 머리에서 애써 신경을 끄고 발키리 씨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미동도 없이 차분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발키리씨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부대원 중에 누가 제일 먼저 복원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나요?"
"저희 자매 중에 말입니까?"

확인차 한 번 되물어봤을 뿐인건지, 발키리 씨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희 대장님. 레오나 님을 먼저 복원해주십시오. 각하."
"확실히 부대 대장을 먼저 복원하는 게 낫겠죠?"
"저희 부대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만, 레오나 대장님은 아주 유능한 바이오로이드십니다. 분명 각하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음... 알았어요. 참고할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대화가 얼추 마무리되어갈 무렵, 책상을 어지럽힌 서류를 정리하느라 어버버 거리는 나를 보던 발키리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무례한 요청이나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아, 물론이죠."

어떤 질문이길래 무례하다고 하는거지?
오늘 처음 본 사이이긴 했지만 발키리씨는 상당히 예의를 차리는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째서 저에게 존댓말을 하시는 겁니까?"
"뎃?"

예상하지 못한 질문의 내용에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저는 한낱 바이오로이드일 뿐입니다. 각하를 위한 도구. 그런 저에게 존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아... 미안해요. 불편하셨나요? 그, 제가 기억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러더라고요."
"예...? 기억을?"

내 대답을 들은 발키리 씨의 무표정이 깨졌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흠흠."
"...!"

멍때리던 그녀가 내 헛기침 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
음... 하긴, 겨우 발견한 인간이 기억을 잃은 깡통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좀 그렇긴 하겠네.
실망하진 않았겠지...?

정신을 차린 발키리 씨는 당황하더니 이내 90도로 허리를 숙여버렸다.

"죄송합니다. 각하. 말씀하시기 불편한 부분을 언급하게 해드렸습니다.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고개 들어 주세요. 괜찮으니까, 어서요."

완벽한 직각 허리 숙임에 오히려 이쪽이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뭐, 비밀로 할 생각도 없어서 말한건데 이런 반응이라니.
발키리 씨도 약간 마리 씨 같은 느낌이구나. 군인이다 군인.
자기 말대로 진짜 벌이라도 받을 생각인지, 각오한 얼굴의 그녀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하기 불편하지도 않고, 숨길 생각도 없었던 내용이니까 진짜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괜찮대도... 음, 존댓말 말이죠? 저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바이오로이드 여러분은 제 생명의 은인들이니까."
"저희는 감히 각하께 그런 감사를 받을 존재들이 아닙니다."

발키리 씨 역시 지금까지 봐왔던 바이오로이드들의 가치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마운 이야기지만,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문득, 그런 딱딱한 모습을 보여주는 발키리 씨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하하, 안 그래도 다른 분들 역시 존댓말을 삼가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음... 바꾸긴 해야 하나... 한 번 연습해봐도 괜찮을까요?"
"예? 예..."

뭔가 등 떠밀리듯이 대답한 그녀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웃음이 나왔다.
아까 당황한 여파로 그녀의 차분함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나 보다.
어쨌든 발키리 씨의 동의도 얻었겠다.

"그럼 앞으로는 반말해도 되는 거지?"
"예, 각하."
"고마워 발키리 누나."
"누, 누나?"

겨우겨우 침착함을 찾아가던 그녀의 얼굴이 다시 한번 당황에 빠졌다.
쿨한 분위기의 미녀가 얼굴을 붉히고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는 것은 몬가... 몬가였다.
발키리의 오드아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누나라니, 그런 호칭은..."
"아까 서류를 보니까 아마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나도 내가 몇 살인지 모르긴 하지만..."

사실 외견상으로 놓고만 봤을 때, 우리는 비슷한 연령대로 보일 것이다.
기억을 잃어서 내 나이를 모르지만 거울을 보면 20대 정도로 보이고, 그건 발키리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바이오로이드의 수명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게 길다는 것이 차이점이겠지.
그럼 내 호칭이 마냥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뭔가 말랑말랑해진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녀는 몇 번 심호흡하더니 다시 표정을 굳혔다.
이런 장난이 너무 심했나?

"부하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각하."
"그, 그렇네요. 아, 또 존댓말 썼다."
"하아..."

한숨을 쉰 발키리는 이제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께도 개체명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각하."
"응..."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예의 무표정으로 경례를 하고 사령관실에서 나갔다.
나갈 때까지 귀가 빨개져 있었다는 것은 비밀로 하자.



******



발키리와의 첫 만남 이후, 며칠 동안 레오나 대장의 복원을 위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한 가지 문제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어쩌지... 레오나 대장을 복원시킬 자원의 여력이 없네."

대장 개체인 레오나를 복원시키려면 자원이 꽤 많이 소모되어야 했다.
구심점인 나를 발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오르카호는 저항군을 운용하면서 새로운 개체들을 생산하기에 아직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열린 지휘관 회의.

스틸라인 대장 마리
앵거 오브 호드 대장 칸
둠 브링어 대장 메이
배틀메이드장 겸 기타 부대 임시 대장 라비아타
그리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대장 대리 발키리

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눌수록 결국 도출되는 방법은 탐색과 출격의 횟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긴 하였다. 많이 벌어오는 것.

하지만 탐색과 출격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었고, 그렇다고 많은 인력을 차출하자니 소모될 자원이 많아져서 본말전도였다.
아니, 애초에 많은 인력을 차출할 여건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

개인 무력이 강한 대장 개체들을 보내는 것이 효과가 좋을 테지만, 이들은 오르카호에서 빠지기에는 너무 중요한 역할들을 맡고 있었다.
내 고민이 깊어져 가는데, 발키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각하, 저를 보내주십시오."
"응? 발키리, 무슨 소리야?"
"저는 은닉과 저격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철충들의 공격을 회피하기도 쉬우니 임무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같이 갈 소대원들은 생각해 놓은 거야?"
"저 혼자 가겠습니다. 그편이 효율적일 것입니다."
"뭐? 그건 안돼!"

이게 지금 무슨 소리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반대했다.
그 때문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가라앉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몇 분 동안 대치 아닌 대치상태가 이루어졌다.

발키리의 차분한 오드아이는 조용히 날 응시할 뿐이었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미동도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적합하긴 했다.
거기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나는 한숨을 쉬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후우... 아무튼 안돼. 혼자 다니겠다니 너무 위험한 일이야."
"오히려 다른 자매들에 비해 이런 쪽에 특화되어 있으니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 하고 그만둘 일도 아니잖아. 그 많은 자원을 혼자 벌어오겠다는 건 무리야."
"체력에는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교전은 최대한 피하겠습니다."

나와 발키리의 언쟁이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대장들도 의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발키리 대장 대리. 그대의 의견은 잘 알겠으나 나도 각하의 뜻과 같네. 혼자서 계속 다니는 것은 위험이 너무 커."
"자네의 능력이 이 일에 적합하긴 하지만 나 역시 선뜻 동의하긴 어렵군."
"발키리 양은 옛날에도 혼자 임무를 잘 수행한 적이 있어서 저는 마냥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 본인이 잘할 수 있다는데 해보라 하지 그래? 하다가 힘들면 제풀에 지쳐 그만두지 않겠어?"

마리와 칸은 발키리 차출에 반대하는 뜻을 보였고, 라비아타와 메이는 발키리가 해도 상관없다는 쪽이었다.
내 반대의견까지 더하면 찬반 2:3으로 발키리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분위기였다.

"발키리, 아무래도..."
"저를..."

내가 발키리의 의견을 거부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녀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지?

"저를 걱정해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에게도 그리고 여기에 계신 다른 대장님들도요. 하지만 이 일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대장님인 레오나 님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저희도 레오나 대장님을 뵐 낯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발키리..."
"주제넘게도 현재 오르카호에는 저 이상으로 이 임무에 적합한 인원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각하,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전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오르카를 위해서 제가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한 마디 한 마디에 각오를 담아, 발키리는 나에게 자기 뜻을 전했다.
결의를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더이상 반대를 할 수 없었다.
다시 찾아온 침묵 속에서 내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에휴...

"일단... 회의는 여기까지 하자. 발키리는 잠시 남아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나가도 좋아."

발키리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사실상의 축객령을 내렸다.
다른 대장들은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발키리와 둘만 남게 되자,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찌푸린 미간을 꾹꾹 누르며 표정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슬쩍 보니 발키리는 그녀답게 조용히 내 이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발키리."
"예, 각하."
"정말 괜찮아?"
"예,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각하."

또, 또 이런 식이다. 펴놨던 미간이 다시 한번 찌푸려진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예? 무슨 말씀이신지..."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녀가 무언가 대답하려 했으나 감정이 조금 격해진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은 내 말을 다 들어줘 발키리.

"나도 알고 있어. 배웠으니까.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을 행복으로 느낀다고.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진 않지만 자기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어. 하지만 말이야..."

길게 말했더니 약간 숨이 차네.
갑갑한 마음에 한숨을 한 번 내쉰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평소에 그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전하고 싶었다.

"후우, 바이오로이드 역시 감정이 있는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여. 실제로도 그렇지. 그래서 나는 함부로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
"근데 발키리는 유독 스스로 감정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 나는 그게 '도구'로만 사용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싫어. 내 눈앞에 있는 발키리 너는 살아있잖아?"
"각하..."

말하다 보니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반대로 개운한 느낌도 들었다.

"너희가 나에게 봉사하기 원하는 존재들이라는 건 알겠고,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생명체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생각해. 바이오로이드들의 자유를 인간이 가져갔으니, 그 책임도 인간의 몫일 거야."

발키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게 가슴 아팠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마음과 목소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닐까? 그게 자유를 가져간 것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지는 태도는 아니라고 봐. 너희는 나를 그런 무뢰한으로 만들 셈인 거야?"

물론 그녀들이 날 무뢰한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기에 구인류에 대한 짜증이 몰려오는 것도 있었다.
그녀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면, 나라도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싶었다.
나는, 어설픈 도덕적 우월성을 느끼고 싶은건가?

"몰라 그런 거."
"예?"

아무렴 어떤가. 내가 최후의 인간이라는데.
바이오로이드들을 막 대하던 구인류는 멸망했다. 그건 실패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선조들이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실패한 가치관을 내가 따를 이유는 없다.
인류의 잣대는 나인걸?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까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일이라고 말할 때, 처음으로 발키리의 감정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았어."
"아..."
"부대를 사랑하는 발키리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차마 더 반대하지 못하겠더라."

그녀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뭐지?
발키리가 슬며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어색해하는 걸까?
쩝, 아무래도 구인류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그래도 시선을 피하는 것은 조금 슬프다.
발키리는 눈이 예쁘니까, 더 보고 싶은데.

"그렇... 습니까..."
"응. 그러니까 발키리, 출격은 허락해줄게. 대신 절대 자신의 안전을 우선하기. 알았지? 자, 약속하자."

발키리는 내밀은 내 손을 잠시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어... 약속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나?
책에서 보니까 멸망 전에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고 하던데...

이런 내 걱정이 기우였는지 발키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가락을 얽어왔다.
길고 예쁜 손가락 너머로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내 앞의 발키리가 인형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이.

"약속드리겠습니다. 각하."
"응, 믿을게."

만족스러운 발키리의 대답에 씨익- 웃음이 나왔다.
나는 책상에 내려놨던 모자를 다시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게 있으면 무조건 말해줘. 숨기지 말고."
"네..."

발키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나는 회의실을 나섰다.
지금까지 봐왔던 그녀의 성격상 정말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려고 할 것이다.
부족한 사령관이라 많은 걸 해줄 수는 없겠지만, 출격했다 돌아오면 수고했다고 칭찬이라도 한가득 해주도록 노력하자.



******



"후우... T-8W 발키리, 귀환하겠습니다."
"확인."

귀환 무전을 날린 발키리는 철충의 잔해에서 부품과 전력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오늘만 벌써 3번째 귀환이었다.
그렇게 수거를 하던 중 발키리는 문득 지난번 지휘관 회의가 떠올랐다.

"각하..."

발키리는 자신이 혼자 차출되겠다고 말했을 때, 사령관이 바로 허락해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녀 혼자 나가는 것이 효율이 제일 좋은 편이었으니까.

"저의 마음..."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령관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 나쁜 당황스러움은 아니었다.
따뜻한 아지랑이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만났던 날도 그랬다.

"누나라니..."

사령관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발키리의 마음 속 간격 안으로 훅- 들어왔다.
저격수라는 보직의 특성상 냉정함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발키리는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물론 천성은 무척 다정하였으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안면을 어느 정도 트고 나서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거리감을 좁히며 다가온 사람은 없었다.

"이상하신 분."

하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뻔했습니다..."

지휘관 회의실에서 사령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나간 뒤, 혼자 남은 발키리는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사령관과 약속한다고 얽었던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발키리는 화들짝 놀라며 회의실을 두리번거렸다가 이내 아무도 없다는 걸 떠올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기까지 했었다.

"으으..."

부끄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귀가 빨개졌다.
그때도 붉어진 귀가 진정되기까지 잠깐 동안 회의실을 나서지 못하고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으나 사령관만 보면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은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왔다.
매번 탐색을 끝내고 귀환할 때마다, 사령관은 발키리를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었다.
연모하는 대상이 기뻐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은 그녀에게도 행복이었다.

"각하께서... 기뻐해 주신다면야..."

발키리는 임무를 나서는 게 너무나도 즐거웠다.
몇몇 자매들은 발키리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임무 스케쥴을 소화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발키리에게는 '임무 수행 = 각하에게 칭찬'이라는 인식이 잡혀있어 힘든 줄도 몰랐다.

"아 끝났군요."

어느덧 철충의 분해를 다 끝냈다.
무서운 속도로 출격과 탐색을 하고 귀환하는 나날들이 반복되자 발키리의 철충 분해 실력도 날마다 늘어났다.

"후훗. 덕분에 닥터가 공순이 다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었죠."

발키리가 자원만 모으는 것은 아니었다.
폐건물을 탐색하거나 철충들과 교전을 하다 보면 방랑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 자매들을 마주칠 때가 종종 있었다.
발키리는 그런 바이오로이드들을 오르카 호에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닥터도 탐색을 하다 마주쳐 얼마 전에 오르카 호에 편입되었던 바이오로이드였다.
닥터의 합류 덕분에 오르카 호의 기술 발전 속도는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제 레오나 대장님을 복원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부대도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틱... 티틱...

그렇게 기쁜 일들을 생각하느라 발키리가 잠시 방심한 사이, 그녀의 등 뒤에서 쓰러진 철충 하나가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

미처 그것을 확인하지 못한 발키리가 가방을 챙기러 뒤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콰아아앙!

철충의 잔해가 폭발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발키리는 그대로 폭발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다.

"크윽?!"

폭발의 충격으로 날아온 철판이 몸을 강타하자, 발키리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폭발음이 진탕 헤집어놓은 귓가에 삐이이이이- 하는 이명이 들리던 것을 마지막으로, 발키리의 의식은 암전했다.



******



삑. 삑. 거리는 기계음만이 방 안에 울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나,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발키리.
회복을 위한 수액은 오전에 제거했고, 지금은 맥박을 측정하기 위한 패치만이 그녀의 팔에 달려있었다. 아마 내일쯤에는 일어나지 않을까.

"하아... 정말."

출격한 발키리에게 사고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곧바로 구조대를 편성해서 의식을 잃은 그녀를 구출하도록 명령했다.
이성의 끈을 놓고 직접 살펴보러 가려고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지휘할 수 있었다.

드르륵

앉아있던 의자를 조금 더 침대 쪽으로 끌었다.
남의 속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잘도 자는 발키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했던 부상은 다행히 크지 않았다.
먼저 발키리를 덮쳤던 커다란 철판이 오히려 방패 역할을 해줘서 파편들을 막아줬다나 뭐라나.

"튼튼한 바이오로이드니까 철판 맞고도 별문제 없지. 인간이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즉사야 즉사."

뭔가 얄미워서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오우야. 말랑하고 부드럽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가락을 스윽 옮기니 발키리의 입술에 닿았다.
붉은 입술은 앵두같이 윤기나고 촉촉해보였다.

"헛!"

정신차려보니 발키리의 입술을 엄지로 쓰다듬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이 무슨 마성의 입술이란 말인가.

"나도 참, 뭐 하는 건지. 흐아암..."

맥이 빠진 나는 조금 졸린 것을 느꼈다.
어제저녁에 발키리가 실려 와서 오늘은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일과시간이 다 끝난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잠깐 눈이라도 붙일까..."

책상에 엎드리는 것처럼 침대의 빈 공간에 엎드렸다.
이불에서는 발키리의 향기가 났다.
뭐라 표현해야 할까?

음... 눈나 냄새...?



******



무언가가 날 건드리고 있었다.
내 볼을 콕콕 찌르던 그것은 내 콧잔등을 건드리거나 앞머리를 스륵스륵 스치면서 수면을 방해했다.

"우... 뭐야..."
"가, 각하?"

걸리적거려 눈을 뜨자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 목소리는...

"발키리...? 아! 일어났구나!"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주무시는 각하를 깨웠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어슴푸레한 수복실의 조명 아래 발키리가 앉아있었다.
내가 일어나서 당황했는지 그녀의 오드아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흠... 방금전 날 건드리던 무언가는 발키리의 손가락인가 보네.

"깨운건 괜찮아. 그것보다."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마 발키리의 눈에는 쌍심지를 켠 내 모습이 보이겠지.
그녀를 바라보자 자기도 지은 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발키리. 내가 분~명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라고 했을 텐데?"
"예... 각하. 면목 없습니다..."
"세상에. 내가 보고를 듣고 얼마나 놀란 지 알아?"
"죄송합니다... 군인으로서 실격입니다..."

나는 몇 분 동안 계속 발키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발키리는 고개를 숙이고 연신 사과했다.
풀죽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지만 어쩌랴, 자신의 부주의였던 것을.

그래도 나 역시 한도 끝도 없이 잔소리를 할 수는 없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을 보였다.

"그러니까 발키리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약속을 한 것 아니야. 걱정하잖아 에휴..."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그래... 쩝, 나도 미안해. 아픈 사람 붙잡고 잔소리를 이렇게 해대었으니..."
"아닙니다. 제 잘못으로 각하에게 우려를 드린 점 정말 죄송합니다."

서로의 사과가 끝나자, 수복실에는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어... 하하, 뭔가 어색하네."
"죄송합니다. 제가 재미없는 여자라..."

발키리는 이상한 자책을 하면서 가뜩이나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쭈구리였던 것이 더 풀 죽어버렸다. 난 그렇게 생각한 적 한 번도 없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를 다 하네. 난 발키리랑 있으면 즐거워."
"그렇... 습니까...?"
"당연하지. 발키리 같은 미인이랑 있으면 뭐든 안 즐거울까."
"미, 미인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내 칭찬에 얼굴을 붉힌 발키리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부끄러워하기는.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차분해 보여서 장난을 쳤었지만, 같이 지내다 보니 발키리가 겉보기와는 다르게 상냥하고 다정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의외의 면이 장난을 부른달까...

"크크크, 발키리가 은근히 반응이 좋다니까. 역시 놀리는 맛이 있어."
"읏! ...놀리지 말아 주십시오. 각하."
"하하, 미안 미안. 그래도 발키리가 미인이라는 건 농담이 아니니까."
"또... 놀리시려고... 속지 않습니다..."

이제는 내 말에 반응을 보여주기 싫다는 듯, 발키리는 이불이 덮힌 무릎을 세워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 이걸 안 믿네.
얼굴은 가렸어도 붉어진 귀를 숨길 수는 없었기에 나는 슬그머니 거기로 다가가 속삭였다.

"진짜 예쁘다니까? 발키리 누나, 나 못 믿어?"
"!@#$%^"

발키리는 앓는 소리도 아니고, 웃는 소리도 아닌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반응이 격하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이걸 안 믿네. 어쨌든 많이 안 다쳤다니까 정말 다행이야."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그래도 대답은 해주는게 역시 성실한 발키리답다.

"당연한건데 뭐. 으쌰, 그럼 발키리가 일어난 것도 확인했으니 난 가볼게. 편히 쉬어."

그렇게 말하고 수복실을 떠나기 위해서 일어났다.
내일은 오랜만의 휴일이니까 나도 푹 쉴까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몸을 돌리는데 무언가 저항이 느껴졌다.

"응?"

고개를 돌려보니 발키리가 내 옷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뭐지?

"왜 그래 발키리?"
"엇, 그, 그게..."

이유를 물어보자 후다닥 옷자락을 붙잡은 손을 뗀다.
아무래도 뭔가 할 말이 있나본데...
나가려던 몸을 돌려 다시 발키리를 마주보았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것은 여전하지만 발키리는 고개를 살짝 올려 눈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귀엽네.

"각하, 그... 물론 이번에 부주의 하긴 했습니다만, 저... 그동안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아, 물론 알지."

당연히 알고 있다. 모르면 그건 철충이 심어놓은 첩자일 것이다.
오? 좋은데?
다음 번에 철첩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면 이걸 질문으로 써보도록 할까.

그나저나 발키리는 평소에 조용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음... 모르겠다.

"발키리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있어. 그러니까 몸 좀 잘 챙겨. 걱정하니까."

웃으며 대답하자 우물쭈물하던 발키리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상을, 받고 싶습니다."
"응?"

상이라... 이렇게 말할 정도면 휴가나 참치캔은 아니라는 거겠지.
일반적인 휴가나 참치캔 지급은 오르카 호에 근무하고 있으면 당연한 대가로 받고 있는 것들이니까.
아마 다른 원하는 것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발키리에게는 특별공로상 같은 것이 있다면 그걸 수여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맞아. 발키리는 상을 충분히 받고도 남지. 내가 더 잘 챙겨줬어야 하는데. 미안해."
"앗, 아닙니다. 각하."
"아니기는... 그래서 어떤 상을 원해? 생각해둔게 있어?"
"그게..."
"발키리는 어떤걸 요구하더라도 받을 자격이 있지."
"뭐든지... 말입니까?"
"뭐든지...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 한정해서겠지?"

아직 오르카 호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그런 현실을 떠올리자 쓴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대답에 발키리는 더듬더듬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해나갔다.

"가, 각하께서 들어주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그래? 그럼 당연히 들어줘야지. 뭘 원해?"
"각하께서는... 전투를 하고 난 뒤의 신체변화가 어떤지 아십니까?"

발키리의 질문에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전투? 흠...

"전투훈련은 나도 받아본 적 있는데... 아무래도 힘들다는 거...?"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격한 실전은 조금 다릅니다. 실전을 치루고 나면 아무래도...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응?"

뭐가 뭐라구요?
잘못 들은 것인지 반문하는 내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발키리는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엇."

중심을 잃은 나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손에 닿는 것을 쥐며 기댈 수 밖에 없었다.

뭉클-

"흣."
"어?"

발키리가 내 손목을 잡아당겨 이끈 곳으로 손이 빨려들어간다.
나에겐 없는 부드러운 곡선의 융기가 푹신한 쿠션처럼 모양을 바꾸며 나를 받쳐주었다.

가슴.
내 손에 닿은 이것은 가슴이지만 흉부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
유방.
다른 말로는 젖.
그래, 이건... 찌찌다.

"어... 어어어어?!"
"하아... 그러니 상으로, 각하께서 가라앉혀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잠깐만."

갑작스런 전개에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당황하며 발키리의 찌ㅉ... 유방에서 손을 떼놓으려 했다.
하지만 인간인 내가 발키리의 근력을 이기는 것은 무리였다.
진짜다.
이리저리 비틀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삑. 삑. 삑. 삑. 삑.

조용해진 방 안에 발키리의 심박수를 알리는 기계음만 빠르게 울렸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손목을 붙잡은 발키리의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움과 땀이 그녀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발키리? 놓아주면 안될까? 그... 닿고 있는데... 가슴이."
"......"

조심스럽게 부탁했지만 발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을 더욱 가슴에 밀착시키는 것이 아주 죽을 맛이었다.
손을 쫙 피며 버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담 이었... 니까..."
"뭐, 뭐라고?"

고개를 숙인 발키리가 무언가 중얼거렸다.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귀를 가까이 가져가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인이라고 하셨으면서... 역시나... 농담일 뿐이었습니까..."
"뭣."

아까 놀린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건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그것보다...

"발키리... 울어...?"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확인차 물어보는 내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내가, 발키리를 울렸다고...?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든 발키리는 눈물을 또르르륵 흘리고 있었다.

"우아악! 미안해! 미안해 발키리! 울지 마, 응? 내가 잘못했어!"
"훌쩍."

눈물 젖은 눈으로 찌릿 째려보는 그 시선이 너무나 아프다.
이걸 어떻게 달래줘야 하지...

"억지 같은 이유를... 대면서까지... 훌쩍... 용기 낸건데... 흑..."

아... 그런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건 최후의 인간이고 뭐고 나가 죽어도 할 말이 없다.

"그.... 으... 죄송합니다..."
"각하께서는... 피하기만 하시고... 미인이라고 하셨으면서..."
"앗... 아아..."
"그런 말 들으면... 농담인걸 알면서도... 흑... 기대하는 제가 한심해서..."

발키리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손은 자유로워졌지만, 나는 수복실을 나갈 수 없었다.
눈 앞의 발키리를 두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처음 그녀랑 만났을 때 느껴졌던 빙벽과 같은 모습은 어디가고, 감정을 드러내는 어깨가 애처롭게 들썩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아니, 나란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나 하는 건가?
어째서?

"아."

깨달았다.
그녀가 감정을 보여줄 때마다 귀엽다고 생각했던 이유.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장난쳤던 이유.
이건 마치...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일부러 괴롭히는 모양새가 아닌가.

부끄럽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자 스스로의 행동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발키리..."

쪽팔려하기도 잠시,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는 발키리가 눈에 밟힌다.
그래, 앞으로도 후회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조용히 발키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흑... 저리 가주십시오 각하..."
"미안해..."

발키리가 내 품 안에서 훌쩍였다.
이렇게 안으니 그녀가 이 정도로 가녀렸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몸으로 나를 위해, 오르카 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준 발키리에 대한 고마움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런 감사를 담아 발키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또...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주시면... 착각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게 발키리의 착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데."
"네?"

깜짝 놀란 발키리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눈물 범벅이었지만 그것마저 그녀의 미모를 가릴 수는 없었다.
동그랗게 커진 발키리의 오드아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엄지로 눈물을 정리해주고 다시 그녀를 꼭 껴안았다.

"좋아해 발키리."
"...!!"

내 고백을 들은 그녀가 흠칫! 놀라는게 느껴졌다.
발키리는 내 품 안에 있으니까, 아마 쿵쾅쿵쾅 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듣고 있겠지.
이렇게 말로 고백하는 것도 긴장되고 떨리는데, 도대체 아까 그 대담한 스킨십은 어떻게 한 걸까?
그녀가 용기를 얼마나 쥐어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장난... 또... 각하의 장난... 인 것입니까...?"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발키리가 물어봤다.
확답을 받고 싶은 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이건 순도 100%의 진심이니까.

"내 심장소리 들려? 이건 진심이야."
"흑...!"
"좋아해. 아니, 사랑해 발키리."
"흑... 흐윽....!"

그렇게 발키리는 한참 동안 나에게 안겨 울었다.
도중에 나도 안아줄래? 라고 물어보니 우는 와중에도 두 팔을 감아오는게 무척이나 귀여웠다.
세상에 오르카 사람들 이거 좀 보세요,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어흑 마이 깟.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며 그녀가 진정하는 것을 기다리길 잠시, 슬슬 눈물은 그쳐가는 듯 보였다.

"발키리...? 이제 진정이 좀 되었어?"

끄덕끄덕.

"그럼 팔 좀 풀어줄래?"

도리도리.

우는 얼굴은 이미 다 봤는데.
진정되고 나니 새삼 부끄러워졌는지 발키리는 얼굴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걸 어쩐다.

"우리 발키리 예쁜 얼굴 좀 보고 싶어서 그래."
"... 분명 예쁘지 않을 겁니다."

울음 때문에 살짝 잠긴 목소리는 또 새로웠다.
이야...
이거 나도 중증이네.

"그럴 리가 없잖아. 발키리는 예쁘지 않았던 적이 없다고."
"...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나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발키리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올렸다.
드디어 그녀와 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개를 든 발키리는 두 손으로 나를 천천히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어... 엉...? 발키리...?"
"전... 아직 각하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뭐...?"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고백을 너무 늦게 해서? 그 전에 했던 놀림이 너무 심해서...?
내가 어찌할 줄 모르고 손을 떨고 있을 때, 발키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 증명해주십시오 각하."



******



툭, 툭 소리를 내며 풀어지는 상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슴푸레한 수복실의 침대에서 발키리는 마지막 단추를 풀었다.

톡.

그녀의 몸을 가리기 위한 마지막 빗장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발키리의 목에서부터 배꼽까지의 맨살이 드러났다.
옷자락에 가슴이 가려진 채였지만, 그럼에도 백옥같은 발키리의 피부를 숨길 수는 없었다.

"이, 이상하진 않습니까?"

첫 단추를 자신있게 풀어헤칠 때는 언제고, 발키리는 조심스럽게 나의 눈치를 살폈다.

"너무 아름다워 발키리..."

서늘한 수복실의 공기가 무색하게도, 드러난 발키리의 피부는 약간 땀에 젖어있었다.
오르카 호 수복실은 환자복 말고는 입혀놓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목에서 흘러내린 땀방울 하나가 브래지어가 없는 가슴팍을 지나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미끄럼틀을 타듯 내려가던 땀방울은 이윽고 쏙 들어간 배꼽으로 사라졌다.

꿀꺽

태양을 삼킨 것 같이 갈증이 인다.
그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발키리는 방금보다 조금 더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그녀는 과감하게 상의를 뒤로 젖히며 벗기 시작했다.

"허..."

감탄만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선명한 쇄골, 조각같이 매끈한 어깨와 팔이 드러난다.
그러나 시선을 잡아끄는 부분은 역시 가슴이었다.
젖내음을 함뿍 머금은 것 같이 뽀얀 유방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지만, 끝에 매달린 분홍빛 유실이 미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다.

"아까 전에 감히 내가 저걸 만졌다고..."
"우으..."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중얼거림에 발키리는 조금 움츠러드나 싶었지만, 그래도 다시금 어깨를 폈다.
그 움직임에 신성한 그녀의 유방이 흔들렸다.
덕분에 발키리가 상의만 벗었을 뿐인데, 내 바지춤은 이미 불룩해져 있었다.
그녀도 내 고간을 봤는지,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발키리가 상의를 벗으며 심박수를 체크하는 패치도 떼어냈기 때문에, 지금 수복실 안에는 우리의 숨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후우... 발키리... 바지도 벗어줄 수 있을까...?"
"읏... 네, 각하..."

발키리는 내 부탁에 바지에 손을 올렸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은 그녀도 이 다음을 원하기 때문이겠지.
명령 따위가 아닌, 연인의 부탁이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 용기를 내어주고 있는 것.
그 사실이 너무나 기쁘게 다가왔다.

스르륵.

길게 쭉 뻗었지만 그렇다고 빼빼 마른 것이 아닌, 아름다운 흰 허벅지와 종아리가 드러났다.
발키리가 다리를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비밀스런 장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옅게 나있는 가지런한 수풀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
내 시선은 발키리의 아랫배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너무 빤히 보시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걸..."

발키리의 몸은 남자의 정욕을 불태우는 장작이었다.
나는 상의만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수복실의 침대는 두 명의 무게도 너끈히 견뎌내며 조용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다.
훌륭하구만.

"발키리 사랑해.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었어."
"저도... 처음 만난 그 날부터 각하를 사랑했습니다."

발키리의 옆에 앉아, 드디어 온전하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다.
그녀의 오드아이에 내 얼굴이 비쳤다. 아마 내 눈동자도 그녀만 비추고 있겠지.
신비한 오드아이를 지나 단정한 코를 넘어가면,
그녀가 누워있을 때도 내 손가락을 유혹하던 앵두같은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키스하고 싶어."
"저도 그렇습니다 각하..."

서로의 숨결이 가까워졌다.
말랑한 입술은 드디어 다른 사람의 온기를 찾았다.
우리는 그렇게 담백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나는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갈증을 더이상 참지 않아도 되는걸.

츄웁... 우음...

꼴짝꼴짝 혀를 얽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설육을 탐하며 빠져들고 있었다.
타액이 뒤섞이고 상대방의 맛을 느끼는 감각 속에 시간이 주욱 늘어나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아... 각하... 하아..."

물론 실제로 주욱 늘어지는 것은 겹치던 입이 떨어지자 보이는 은빛의 실이었다.
얼마나 키스하고 있었을까, 혀가 아팠다.
하지만 발키리의 가쁜 숨이 나를 즐겁게 해주며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에 나는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마, 눈, 코, 볼, 귀, 목... 점점 내려가는 나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발키리는 신음을 내뱉었다.

"응, 읏... 각하아..."

귀로는 그녀의 신음을 들으며, 나는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히 차오르는 발키리의 달콤한 젖내음이 채워주는 원초적인 욕망이 넘실거렸다.

쯉... 쯉...

"흐응... 각하... 그렇게 아기처럼..."

그녀의 품에 묻혀 첨단의 열매를 탐하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굴리고, 빨아 당기고, 살짝 이로 물고...
발키리에게 달려 있는 이 모성의 상징에게 나를 받아들여 달라고 응석부렸다.

"누나... 발키리 누나..."
"아읏, 각하... 또 그렇게 부르시다니..."

쯉......

"으으응...♡"

헛!

가슴에 너무 정신팔려 있었다.
이것은 마치 남성을 묶어놓아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는 봉우리...
그야말로 젖무덤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마성의 유혹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두어번 더 유방에 입맞춘 뒤, 나는 더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발키리의 허벅지는 이미 살짝 벌어져 있었다.
보드라운 음모에 코를 한차례 부비며 인사하고, 드디어 나는 발키리의 음문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와... 어떻게 여기까지 이렇게 예쁠 수가 있는거지...?"
"윽, 무슨 부끄러운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진짜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걸."

정말이었다.
맑은 이슬이 흘러나오는 발키리의 분홍빛 음순은 투명해보일 정도로 깨끗해서 예술작품 같았다.

"이게 발키리의 향기구나..."

비너스의 언덕 깊은 곳, 수줍게 핀 비밀스런 꽃잎에서는 새콤달콤한 여인의 향기가 피어오르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흐윽?! 각하! 그렇게까지 안해주셔도...! 앙!"

나는 발키리의 둔덕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물고 빨기 시작했다.
발키리는 당황했지만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환희를 감출 수는 없었다.
좋아해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아까 임무에 대한 '상'을 원했었지?
원하는대로 잔뜩 해줄게 발키리.

"하앙, 각하아... 아으응...!"
"츄릅... 상은 마음에 들어 발키리? 츄읍... "
"각하... 찌릿찌릿한게, 멈추지 않... 아으흑!"

발키리의 옅은 수풀에 내 콧김이 산들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내 혀가 좌우로 움직일 때 마다, 발키리의 고개도 좌우로 젖혀졌다.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가슴이 몸에 산소를 불어넣으려고 오르락내리락 애쓰는 모습은 확인할 수 있었다.

"꺅! 거기는...!"

귀여운 비명이네.
나는 침착한 발키리가 육체의 열기에 울부짖는 것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꽃잎 위에 수줍게 숨어있다가 고개를 빼꼼 내민 콩알을 괴롭혀 주어야 하겠지.

"여기?"
"각하... 제발... 그 곳은 너무 예민해서...!"
"부드럽게 해줄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 문제가...! 햐아앙!"

덮고 있던 이불을 혀로 조심스럽게 젖혀내자 도망칠 곳 없는 보석이 반들거리며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이게 여자가, 발키리가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반가움에 입술을 비비며 콩알에 뽀뽀를 하자 발키리의 허리가 붕 뜨기 시작했다.

"히아앗! 각하...! 그렇게 괴롭히시면, 아아!"

발키리의 의지대로 허리가 움직이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나는 발키리가 벗어나지 못하게 한 손으로 허벅지를 붙잡고 빨딱 선 클리토리스를 쯉쯉 빨았다.
나머지 손은 질구 근처를 살살 비벼주자 분홍빛이었던 발키리의 아랫입은 이제 벌겋게 달아오른 쾌락 스위치가 되었다.

"손가락은 안 됩니다! 입도... 안됩니다아!"

계속되는 자극에 발키리는 저 높은 곳으로 다다르기 직전처럼 보였다.
입과 손에 흐르는 액체의 양이 늘어나며 더욱 편하게 발키리의 보지를 괴롭힐 수 있었다.
그 덕분일까.
이윽고 그녀의 온 몸이 쫙 펴지고 팽팽히 당겨진 근육이 드러났다.
절정이었다.

"우우웃! 각하! 각하아! 앗, 앗, 아아! 간다간다간다간다!!"

발키리는 터져나오는 신음을 참을 수 없는지 침대시트만 꼭 붙잡고 열락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었다.
떨리는 허벅지가 진정되나 싶더니 다음은 아랫배가 부들부들 거리며 질구에서 애액이 왈칵- 하고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흑."

털썩.

성대하게 오르가즘을 느껴버린 발키리는 온 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와우..."

풀려버린 발키리의 얼굴이 그녀가 겪은 파도의 크기를 짐작케 해줄 뿐이었다.
평상 시에 담담한 발키리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느슨하고 음란한 모습에 내 아래가 더 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발키리..."
"아아... 각하..."
"노력해봤는데, 좋아해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웃... 네... 기분, 좋았습니다..."

나는 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이제야 갑갑함에서 해방되었다는듯 양물이 껄떡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발키리가 허덕이는걸 보는 것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괴롭긴 했었지.

"아... 각하의..."

발키리가 멍하니 내 물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안으로 밀어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까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발키리의 모습에 다른 부탁을 하기로 했다.

"발키리, 혹시 입으로 해줄 수 있을까?"
"아... 후훗... 배려해주시는 겁니까?"
"뭐... 아직 힘들어보이니까. 그리고 입으로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네, 각하. 읏. 부디 이쪽으로."

내 고간에 발키리의 얼굴이 다가왔다.
후끈후끈한 물건에, 발키리의 더 뜨거운 한숨이 닿아 흥분을 고양시켰다.

"아, 발키리..."
"하음... 움..."

발키리의 작은 입술이 벌어지며 자지를 삼키키 시작했다.
미끌거리고 따뜻한 그녀의 입 속은 너무나 기분 좋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키리는 눈을 감고 내 물건을 음미하듯이 빨고 있었다.

츄붑.... 쮸릅...

발키리의 따뜻하고 촉촉한 혀가 부드럽게 귀두 아래를 긁었다.
몸서리치기도 전에 이번에는 혀가 귀두 전체를 돌려가며 자극해주기까지.

"으..."

나는 허리를 숙이며 버티는게 고작이었다.
발키리라는 이름의 유래가 이것 때문일까?
전장의 여신은 본능적으로 육창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창 끝부터 막대까지 고루 스치면 주먹이 꽉 쥐어졌다.
뿌리 부분과 주머니까지 손으로 자극해주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큭, 왜 이렇게 잘 하는거야..."
"츄읍... 츕... 푸하... 비밀입니다. 각하."

잠시 입 밖으로 나온 자지를 핥으며, 발키리는 팽팽한 포피소대를 단단히 세운 혀끝으로 꾹꾹 눌러주었다.
자지를 훑어주는 발키리의 손과 입에는 끈적한 실이 여러갈래로 늘어지며 이어져 있었다.
몹시도 음란한 모양새였다.

탁 탁 탁 탁 탁

발키리의 대딸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손을 멈췄다.
무슨 일이지?

"각하, 더 기분 좋아지실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뭐, 뭔데...?"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발키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알았지만 그 신비로웠던 오드아이에는 정욕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랑 눈을 마주친 상태로 발키리는 천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발키리...?"

발키리는 말없이 입만 벌렸다.
살짝 빼낸 혀만 살랑살랑 유혹하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세상에..."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 처럼 벌어진 발키리의 입에 자지를 가져다 대었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마치 내가 원하는대로 움지이라는 것 마냥...

흥분감에 몸이 떨려왔다.

아까보다 더... 더... 깊이...
기분 좋은 따뜻한 구멍속으로, 그래.
발키리는 목 안으로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옥... 오옥..."
"으윽."

쮸억... 쮸억... 쮸억...

원래라면 사람 목에서 나올 수 없는 음란한 소리가 발키리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내 자지는 뿌리 끝까지 그녀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탈출했다를 반복했다.

이건... 미쳤다.
그녀도, 나도 미친게 아닐까?

구불구불 움직이는 발키리의 입이 전달해주는 쾌락에 나의 한계가 임박해왔다.
물건은 더욱 커져 발키리를 압박했다.

"욱..."
"나온다... 나올 것 같다고 발키리...!"

나의 여유없는 목소리에 발키리는 겨우 눈을 치켜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흘러나오는 눈물과 타액으로 그녀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니 역시나.
싱긋 웃어주는 발키리는 지독하게 예뻤다.

"우이어아이으애오(부디 원하시는대로)"
"그런 표정을 지으면...!"

그것이 방아쇠였다.
발키리의 머리를 붙잡은 나는 거친 숨소리를 참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이며 라스트 스퍼트를 끌어올렸다.
발키리는 나의 욕망 어린 움직임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읍! 오읍...!"
"발키리... 발키리...!"

븃! 뷰룻! 울컥!

내 자지는 발키리의 목을 자궁으로 착각한 것 마냥 껄떡이며 진한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인류 멸망 후 뿌려지는 첫 번째 씨앗은 덧없이 발키리의 위장으로 주이되고 있었다.

"후읍... 후읍..."

발키리는 내 고간에 얼굴이 처박힌 채, 목구멍이 자극당한 반사 때문인지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들이마시는 산소마저 정액 냄새로 가득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자지를 놓칠 생각이 없어보였다.

"헉, 허억."

겨우겨우 발키리의 입에서 양물을 빼냈다.
발키리는 못다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얼른 침대 옆 탁자에서 티슈를 뽑아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베에에-
침과 정액의 혼합물이 발키리의 입가에서 조금씩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내 자지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발키리... 괜찮아?"
"네... 각하... 괜찮습니다."
"세상에..."
"각하... 기분 좋으셨습니까?"
"응. 기분 좋았어..."
"그럼..."

내 대답에 살짝 미소지은 발키리는 여전히 껄떡거리는 내 자지를 한 번 쓰다듬었다.

"각하의 여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래."
"저도, 아직입니다..."

내 자지를 쓰다듬는 발키리를 따라, 나도 천천히 발키리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질펀한 애무를 즐기긴 했지만, 명백한 첫경험을 위해서는 아직 한걸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찔걱-

축축한 그녀의 질구에 드디어 내 귀두가 맞닿았다.
살짝만 들어갔을 뿐인데 벌써부터 오물거리는 질구의 감촉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저 안쪽은, 얼마나 기분 좋을까?

"발키리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각하... 이제 제게 가장 소중한건 각하와의 추억입니다. 앞으로도 저에게 그런 추억들을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날 첫 눈에 반하게 했던 아름다운 오드아이를
사령관실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아래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그때와 다른 것은 같이 쌓은 추억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었다는 것.

"물론이야. 맹세할게."
"...각하라면... 열 번 이상도... 괜찮습니다."
"정말...! 귀여운 말만 골라서 하고는...!"
"하아앙!"

밀어넣은 자지가 발키리의 질벽을 헤치고 나아갔다.
눅진눅진하고 뜨거운 발키리의 보지가 처음 만난 자지임에도 환영해주었다.

"아프진 않아?"
"아까 각하께서... 사랑해주셔서 그런지,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발키리는 두 다리로 내 허리를 감싸왔다.

"열 번은... 채워주셔야... 상을 받은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진짜... 어디서 배운건가?
크르르르... 못 참겠다!

팡! 팡! 팡!

발키리의 엉덩이와 부딪히면서 땀방울과 애액이 비산했다.
이 기분좋은 구멍은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듯이 꼬옥꼬옥 조여오고 있었다.

"윽! 윽! 하으으응!"

점막끼리 체온을 교환하는 일이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
발키리의 보지 주름을 귀두로 문지를 때마다 눈 앞이 번쩍번쩍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각하아아♡ 아앙! 흐아아앙! 각하아!!"

더욱이 바로 옆에서 뇌가 녹아버린듯이 교성을 지르는 발키리 덕분에 흥분감은 쌓이고 쌓여 우리의 몸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발키리! 너무 조이는거 아니야?"
"그렇지만...! 오읏♡ 각하의 자지가... 너무으으읏!!"

발키리는 이제 서스럼없이 자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산발적으로 폭죽을 터트리듯 신경을 유린하는 쾌락에 고동색의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그녀의 모든 것을 나누고 싶다.
그런 욕심에 자궁을 둥둥 두드리면서 발키리와 설육을 섞었다.

"흐아아...! 각하... 거기는...! 자궁..."
"헉... 헉... 내가... 씨를 줄게. 어때?"
"...♡ 그럼... 흐으윽! 제 임무는... 정해졌... 우웃!!"

서로의 호흡, 산소마저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하지 않는다.
온 몸이 녹아 하나로 합쳐지는 고양감을 느끼며 나는 끓어오르는 사정감을 참지 않았다.

"발키리...! 발키리이!"
"안에... 부디, 흣! 각하의 아이... 낳고 싶습니다...!"

쯉쯉 귀두를 빨아들이는 발키리의 자궁에 자지를 밀착하고 나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씨앗을 뿌린다.

뷰우룩! 븃!

"아, 아! 각하! 각하! 으으으응!!"

발키리도 강한 절정을 맞았는지 나를 꽉 껴안은 몸이 달달 떨고 있었다.
뽑혀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발키리의 보지가 보여주는 반응은 격했다.
이게 명기인가 하는 그건가...

"후우... 발키리...?"
"각하아아..."

한 바탕 정사가 끝난 후
땀에 젖은 발키리의 머리를 쓸어주며, 나는 발키리의 귀에 속삭였다.

"발키리, 좋았어?"
"네... 각하..."
"그럼... 이제 열 번 까지 아홉 번 남았네?"
"네? 아, 아...?"

다시 움직이는 나의 허리에 발키리는 쉰 목으로 교성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러어언...♡"


오르카 호에 '밤마다 들리는 비명' 괴담이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게된건 그 후로 꽤나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