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한 많은 것이 남아있으니,


예전처럼 천지를 뒤흔들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다.


영웅의 용맹함이라는 단 하나의 기개를 가지고,

세월과 운명 앞에 쇠약해졌다 해도


우리들의 의지만은 강대하나니,


싸우고, 찾고, 발견하며

결코 굴복하지 않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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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웅


 어두운 바다 저 너머에서, 묵직한 폭발음이 오르카를 휩쓸고 지나갔다.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제1, 이어서 제2 더미 파괴되었습니다. 별의 아이 부상 중.”


 아르망이 담담하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낭랑하고 또렷한 그 목소리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내 지시를 바란다며 채근하는 말 따위도 없었다. 하지만 아르망의 목소리는 분명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상냥하게, 단호하게. 그리고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담아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상황 보고해.”


 겨우 씹어 뱉은 말로 정신을 다잡았다. 정신 차리자. 이럴 때를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지 않던가. 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됐다.


 물러서는 일 따윈 없어야 했다.


 “더미 접촉으로 인한 전투 데이터, 제1차 해석 나왔습니다. 메인 스크린에 띄우겠습니다.”

 “전투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모든 대원들에게 공유해 줘. 드라큐리나, 별의 아이는 어쩌고 있어?”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어! 앞으로 조우까지 13분!”


 드라큐리나가 등도 돌리지 않고 외쳤다. 소나(Sona, 음탐기)에 귀를 떼지 않고 있는 그녀의 몸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괴물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으니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겠지. 하지만 난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이 일에 그녀만큼 뛰어난 인재는 없었으니까.


 “가시거리에 포착됐습니다. 남쪽 방향에서 접근 중.”

 “거리 유지하면서 해변가로 유인하자. 아자즈는 언제든 속력 올릴 수 있게 준비해줘.”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자즈에게 눈을 떼고 다시 메인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크린엔 그 끔찍한 흉물의 위치와, 간신히 입수한 전투 데이터의 절망적인 수치밖에 나타나 있지 않았다. 


 별의 아이.


 패배라는 생각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압도적인 괴물. 언젠가 마주해야만 하는 공포. 하지만 저것은 네스트와 싸워서 힘이 다 빠졌던 그 개체와는 달랐다. 더 강하고, 더 컸다.


 오르카를 정교하게 모방한 더미를 두 개나 희생한 것치곤 수확은 크지 않았다. 첫 번째 더미는 단 두 번의 공격으로 터져 나갔고 두 번째 더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미가 더 있었더라면 단 0.1%라도 승률이 있는 곳으로 그놈을 유도했겠지만 현재 우리들의 상황으로는 그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그마저도 최근에 합류한 마키나나 메리, 아자즈의 협력이 없었다면 아예 작전 입안조차 불가능했을 터였다.


 “마리, 준비는?”

 “지상 병력 배치 모두 완료했습니다, 각하. 언제든 싸울 수 있습니다.”

 “…스틸라인의 책임이 매우 막중해. 부탁할게, 마리.”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각하.”


 이전이라면 입버릇처럼 ‘목숨을 걸고’라는 미사여구를 붙였겠지만 이제 마리는 더 이상 그 말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니까. 


 “다른 쪽들은 어때?”

 [알바트로스, 이상 무.]

 [발할라의 자매들, 모두 각자 위치에서 대기 중이야.]

 [원호는 맡겨라, 사령관. 신이 왜 최강의 포병대 쪽에 서는 법인지 저 흉물에게 똑똑히 알려주지.]

 [하늘은 맡겨 둬. 지옥을 떨어트려 줄 테니까.]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각 지휘관들의 통신이 우르르 들어왔다. 캐노니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둠 브링어……. 규모나 지휘 때문에 그쪽으로 편입시킨 부대들도 있었지만 모든 인원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하나하나 다 답해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곤, 내 옆에 있던 용을 바라봤다.


 “용, 함대는 준비됐어?”

 “전 함대 이상 무. 언제든 출격 가능하오.”


 용 역시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내게 대답했다. 작전상 스틸라인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게 용의 함대였다. 나는 다시 계획을 검토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망치와 모루 전술.


 아주 오래된 전법이지만 그만큼 단순하고 또 확실한 전법이었다. 오르카가 미끼가 되어 별의 아이를 유인하고, 스틸라인과 지상 부대가 모루가 되어 별의 아이를 막는다. 그리고 용의 함대가 망치가 되어 별의 아이를 뒤에서부터 포위 섬멸한다. 그 외 자잘한 사항도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스틸라인과 호라이즌이었다. 모루가 약하면 망치로 두드리기도 전에 모루가 깨질 것이고, 망치가 약하면 모루가 버티질 못할 테니까. 


 “별의 아이, 속도를 올렸어! 앞으로 3분이면 따라잡힐 거야!”

 “아자즈!”


 부우우우웅


 거의 비명과도 같은 드라큐리나의 보고를 받자마자 나는 아자즈의 이름을 외쳤다. 정말 내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모양인지, 채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오르카가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결전의 시간이었다.



***



 “제3차 시뮬레이션 종료. 전투 데이터 업로드 완료까지 77.34% 남았습니다. 관리자님, 수고하셨습니다.”

 “…….”


 또 실팬가.


 “관리자님?”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고 있던 므네모시네가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얼른 일 얘기를 꺼냈다.


 아니, 꺼냈다기보단 쥐어짜냈다.


 “…아, 어. 데이터 업로드 끝나면 정리해서 줄래?”

 “관리자님의 요청 확인. 알겠습니다.”


 므네모시네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빠른 속도로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걸 잠시 바라보던 난 VR기기를 벗어버리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같이 시뮬레이션에 참여했던 인원들은 대부분 다 깬 상태였다. 그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제길, 하필 내가 늦게 깨버리다니. 일찍 깨어나서 자리라도 비켜주려 했던 내 보잘 것 없는 계획은 산산이 부서진 지 오래였다. 각 군의 지휘관들과 간부급 인원들은 전부 다 참여해서 그런지 꽤 넓은 지휘용 라운지가 좁아 보일 정도였다.


 그녀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향해 있었다. 개중엔 낙담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는 인원도 있었고 담담하게 결과를 승복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원들도 있었다. 나는 그녀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표정이, 어떨지 몰랐다.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기분도 아니었다. 방금 전의 모습들이 자꾸 떠올랐다. 애써 만들어낸 계획들이 자꾸 틀어지고, 무기력하게 저항하다 결국 전멸해버리고 마는…….


 나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각…….”

 “모두들 너무 수고 많았어. 날도 더운데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하고, 또 고맙네. 아자즈, 오버홀 끝날 때까진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누군가의 말을 자르고 못 들은 척 재빨리 말했다. 아마 마리겠지. 아니면 용이거나. 차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떨지 나도 짐작할 수 없었다.


 “앞으로 사흘 정도면 전부 끝날 거예요. 중요 기관들 수리를 마치는 대로 냉방 시설부터 가동할게요.”

 “하하……. 그래, 꼭 좀 부탁할게.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나도 잠깐 방에 가서 눈 좀 붙일 테니까. 모두들 고생 많았어! 저녁에 보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각하. 편히 쉬십시오.”


 날 배려해주기라도 한 걸까, 마리가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날 배웅해줬다. 다른 인원들이 별 말도 못 붙이게끔 말이다.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씩 웃어 보이고 나왔지만……. 제길, 토모도 코웃음 칠 내 저열한 연기력이 과연 어디까지 먹혔을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아 맞다, 아르망도 시뮬레이션에 참여했지.


 전언 철회. 완전 망했다. 다들 불편하지 않게 해주려 했는데 더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빌어먹을.”


 쿵


 결국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위안 삼아 애꿎은 벽에 주먹을 날리고야 말았다. 부끄러움과 내 옹졸함에 대한 자괴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실패였다.


 “하…….”


 막간을 이용한 별의 아이와의 모의 전쟁은, 완전히 이쪽의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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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부터 써보고 싶었던 거

물론 메인 히로인은 용입니다

뭐 용이 없다구요?

좀 이따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