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엘에게 있어 유독 두근거리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듬성듬성 떠 있는 하늘 사이 구름들은 산들 바람을 허리에 끼고 느긋하게 움직이며 그늘을 만들어 내었고 그 아래 서 있던 그녀는 곱게 빗어내어 웨이브 진 은발을 한 손으로 조금씩 꼬아내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과 곱고 윤기나는 날개는 양쪽으로 겹쳐 몸을 가렸고 어쩔 때에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흠칫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도 했다. 만약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모습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일은 라미엘에게 조그마한 행복이라도 주고 싶은 코헤이 교단의 작품이었다. 그녀들에게 있어 하나의 빛이자 구원자인 사령관. 그와 함께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아자젤은 자신의 조그마한 권력인 교단의 인원들, 자신을 포함한 이들을 모델을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오드리를 포섭했고 사라카엘은 반쯤 협박이 들어간 설득을 통해 보련을 초빙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엔젤. 그녀는 오르카호의 인원들을 포섭하여 ‘그곳’을 가동시키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오늘이었다. 과거에 사용되었다가 방치된, 한 때 키르케가 관리하고 있던 그 테마파크의 A구역. 그리고 그 곳에서의 데이트.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히 사령관이었다. 그녀는 멀리서부터 그가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의 그를 보고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죄 사함을 받은 그 날과는 다른 두근거림. 불경하다 싶을 정도로 뛰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 채 그녀는 그를 맞이했다.


“머리 이쁘게 잘 됬네. 어울려.”


모든 것이 처음인 라미엘에게 있어, 사령관의 손 짓 하나 말 한마디는 큰 기쁨이었다. 거의 일생을 죄악의 쓰레기통으로 산 그녀에게 있어 자그마한 말 하나만으로도 기쁨의 눈물이 자연스럽게 새어나왔다. 한 쪽으로 흐르는 눈물을 황급히 닦은 그녀는 입을 떼지 못하고 우물거릴 뿐이었다.


“그... 구원자님께서도...”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는 당황스러운 정도로 기쁜 티를 내고 있었다. 어느 새 뒤로 넘어간 날개는 조금씩 움찔거리며 팔락였고 머리를 꼬고 있던 손을 깍지를 낀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사령관은 그런 그녀가 귀엽게 보여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깍지낀 손을 천천히 풀어 손을 잡아 자신의 품 쪽으로 끌어 당기며 테마파크의 입구를 향해 걸어나갔다. 라미엘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움찔거림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쪽 팔을 허우적대었다. 그렇다고 깍지가 껴진 손을 풀고 싶지 않았다. 바랄 수 있다면 평생 이러고 있고 싶을 정도로. 그는 부드럽게 말아올린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그녀와의 데이트를 시작했다.


ㅡㅡㅡ


테마파크의 곳곳에는 오르카호의 인원들이 가득했다. 오직 라미엘 만의 특별한 날을 만들기 위해. 물론 신나서 이곳 저곳을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알비스와 LRL 그리고 안드바리는 모두가 겸허히 넘어가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저 아이들을 풀어 놓지 않으면 분명 사령관에게 달려가 칭얼거릴 것이 뻔했고,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그래서 사령관도 이 암묵적인 침묵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지금 자신이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이에게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멀리서 술을 마시며 손을 흔들고 있는 키르케를 바라보았다. 잔뜩 취해 딸꾹거리던 키르케는 그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고 씨익 웃으며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불안과 기쁨에 떨고 있는 라미엘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저거 한 번 해볼래?”


“구원자님... 저건...”


사령관이 가리킨 것은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하얀색과 검은색의 토끼 귀와 늑대 귀가 달린 머리띠였다. 만지면 보드라울 것 같은 촉감의 솜털들은 자신을 사라며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자격지심이 가득한 그녀에게 저런 악세사리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속으로 되뇌였다. 그렇게 머뭇거리던 손짓과 눈빛은 사령관의 움직일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뜸 토끼 귀 머리띠를 집어 라미엘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밀어넣었다. 그러고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볼을 조금 잡아 늘어뜨렸다. 말랑말랑한 볼살이 서서히 빨개지고 당황한 기색의 눈빛을 보내며 그녀는 알 수 없는 말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 하나를 내 뱉었다.


“어, 어울리나요...?”


“응.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그 말 한 마디는 라미엘의 마음을 뒤 흔들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제 자신도 모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뒤편 풀숲에서 헤벌쭉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탈론페더를 가리키며 사령관에게 말했다.


“그러면 사진 한 장... 찍어요...”


탈론페더는 이때를 노린 듯 피사체가 될 라미엘에게 다가가 눈을 반짝였다. 부담스러운 시선과 들이밀어지는 몸에 움찔거린 라미엘은 어느 순간 사령관의 몸에 바짝 붙게 되었다. 흠칫 놀라 떨어지려는 순간, 그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바짝 안으며 말했다.


“페더. 나보다는 라미엘이 더 이쁘게 찍어줘.”


“후후, 후후후... 사령관님. 당연하죠. 근데, 오늘 밤 기대해도 되는거죠?”


“글쎄? 보면서?”


“사진값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숙한 아가씨와 능수능란한...”


“빨리 찍어...”


라미엘은 이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찍어보는 사진에 당황스러워 미소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그녀였지만, 한 장 한 장 찍힐 때 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 탈론페더는 더욱 흥분하며 격하게 셔텨를 눌러 대었다. 사령관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남은 한 손을 살포시 잡아 손가락 두개를 브이자로 펴 겹치게 했다. 그의 큰 브이 아래에 작게 브이를 만든 라미엘의 손이 정확하게 포개어졌을 때, 탈론페더는 마지막 셔터와 함께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좋아요~ 사령관님~ 이쁘게 나왔네요. 바로 드릴까요? 폴라로이드라 조금만 기다리시면 나온답니다?”


“음, 펜도 있어?”


“당연하죠! 자. 여기요.”


사령관은 펜을 받아 들었고 라미엘은 사진을 받아 들었다. 서서히 사진에 그와 그녀가 새겨질 때, 그녀의 입가에도 미소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는 펜의 뚜껑을 따서 사진의 남아있는 부분에 하트를 하나 그려넣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 사령관을 바라보았고 그는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펜을 손에 쥐어주었다.


“적고 싶은 말 있지?”


“구원자님. 제가 감히 그래도 될까요...?”


“안될 거 없지. 나도 적었는걸.”


받아든 펜에서 조금이나마 사령관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의 온기가 사라져가는 펜에 자신의 온기를 채워넣으며 사진의 밑부분에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갔다. 그녀가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 그리고 그녀가 바라는 말이기도 했다.


‘빛이 있으매 행복은 거기 있나니.’


ㅡㅡㅡ


라미엘은 토끼 귀 머리띠가 썩 마음에 들었다. 보들거리는 털이 촉감을 느끼기 위해 만져보기도 하고 버튼을 누르면 쫑긋거리는 것도 좋았다. 그러던 도중, 자신이 계속 사령관과 손을 맞잡고 있다는 사실에 사뭇 놀라기도 했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의 욕망으로 부터 흘러나온 기쁨과 욕심에 대한 응어리인 것도 같았다. 그럼에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죄 사함을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래도 조금은 욕심은 부려도 되지 않을까라는 불경한 마음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된 오늘이었다.


어느덧 밤이 되고 건물들은 이미 화려한 불빛에 파묻혀 강한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고 사령관과 라미엘은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스카이 라운지에 자리 잡아 손을 끼고 앉아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도 맑은 하늘에 별이 가득 했다. 그녀는 오랫만에 쳐다본 순수한 빛을 눈에 가득 담아내었다. 그곳에 같혀 있을 때는 보지 못한,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를 비추는 빛. 원죄의 쓰레기통인 자신에게도 자비로운 사랑을. 그녀는 한 손을 모아 기도드렸다. 그러고는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 없던, 사랑이 담긴 미소를 사령관을 향해 지어보이며 말했다.


“구원자님. 저는 태양의 빛보다 별의 빛이 좋아요. 태양은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눈을 멀게하지만, 별은 누군가의 눈을 트이게 해 길을 안내하거든요.”


“좋은 말이네.”


“네. 교단의 교리에는 ‘빛께서 몸을 떼어내어 작은 빛을 흩뿌리사 그것이 하늘을 메우고 어린 양들을 이끄는 목자가 될지니, 소고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라는 구절이 있어요. 어쩌면 구원자님이 그 빛일 지도 모를 일이네요.”


“난 그렇게 거창한 사람이 아닌데. 그저, 너희들이랑 같이 걸어가는 사람일 뿐이야.”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분이신걸요. 아무리 작은 이라도 누군가에겐 큰 버팀목이 되는 것처럼요. 그러니...”


라미엘은 좀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어쩌면 분위기에 취한 탓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조심히 깍지 낀 손을 풀어 양 손을 사령관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그도 거부할 생각은 없는지 한 손을 그녀의 손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두 사람의 숨이 서서히 가빠지고 다가갔다. 이윽고 숨이 섞이는 순간, 테마파크의 하이라이트를 알리는 불꽃 놀이가 하늘을 메웠다. 잠시 작은 빛이 큰 빛에 가려짐에도 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했다.


불꽃의 화려함이 끝나고 둘의 나눔도 끝이 났다. 그녀는 아쉽다는 듯 머뭇거렸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기 위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움찔거리는 손과 몸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에는 다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빛이시여. 구원자님을 보다 아끼시고 굽어 살피시옵고, 죄 사함을 받은 죄인의 마음을 어루만지시어 주시옵서서.”


그녀는 잡은 그의 손을 살포시 자신의 심장 위에 올려놓았다. 두근거림과 사령관의 체온. 그리고 그녀의 뜨거운 온기. 그는 싱긋 웃었고, 그녀는 눈에 고인 눈물을 흘려내었다.


“받아주세요. 구원자님.”


ㅡㅡㅡ


이걸로 끝났다 라미엘 신 스킨 나온대서 넣어 볼까 했는데 전혀 반대로 나왔구연


미뤄놓은거 다 마무리 했으니까 좀 쉬어야지 댓글 문학 할 체력도 좀 길러놓고 하루에 2개는 너무 아닌거 같긴 했다


읽어줘서 고맙다! 시간 날때마다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