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소설에는 일부 설정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이 소설은 [키보刀대회] 출품작입니다. 

# 이 소설은 소설 좌우좌를 사랑했던 사령관의 리메이크 입니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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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ten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Набо́ков. (Vladimir Nabokov)

 

 -Lol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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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벽난로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다.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의 안은 아늑했다. 나는 저번 탐색에서 손에 넣은 책을 읽고 있었다. 전부 영어로 써져있었지만, 나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

 

 “권속?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거냐?”

 

 하지만, 좌우좌에게는 큰 문제였던 모양이다. 좌우좌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어깨 너머로 바라보았다. 어허, 좌우좌한테는 아직 일러요. 나는 책을 덮어서 옆에 던져두었다.

 

 “글쎄...... 우리 좌우좌한테는 너무 이른 내용이야.”

 “또! 내 이름은 좌우좌가 아니라 LRL이란 말이야! 정말...... 언제쯤 되야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거야 인간!”

 “권속.”

 

 내 반응을 보고, 좌우좌는 갸웃거렸다. 

 

 “응......? 아, 권속! 언제쯤 되야 이 진조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게냐?!” 

 

 응, 잘 기억하고 있구나. 다행이다. 또 깜빡했으면 다시 가르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우리 좌우좌가 이렇게 귀여운데.”

 “귀,귀엽...... 잠깐! 또 좌우좌라고 불렀지!”

 "그랬던가?"

 “됐어! 나 삐졌어!”

 

 이런, 너무 놀렸나, 좌우좌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옆으로 내려놓은 뒤, 좌우좌에게 다가갔다.

 

 “좌우좌, 화 났어?”

 “......”

 “전에 탐색나갔을 때 우리 좌우좌가 엄청 좋아하는 참치캔이 많~이많이 있는 곳을 발견했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나 참치 별로 안 좋아하거든!"

 

 이런.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그렇게 좋아죽던 참치가 싫다니...... 그래도 이렇게 버릇없이 구는건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다. 잘 타일러줘야지.

 

 “좌우좌.”

 “나 참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자꾸, 억지로 먹이고!! 나한테 왜 그러는거야!! 그리고, 내 이름은, 좌우좌가 아니라, LRL이란 말---” 

 

 나는 좌우좌의 어깨를 붙잡고 좌우좌의 눈과 내 눈을 마주치게 했다.

 

 “좌우좌?”

 “싫어, 그렇게....부르지--”

 "좌우좌?"

 “......”

 "좌우좌?"

 “............잘, 잘 못했어요오......”

 “그래, 잘했어.”

 

 그래 이래야지.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한다. 그게 당연한거다. 예외는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 사랑한다고 감싸돌기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훈육이 잘 된 거 같아서 기쁘다. 야단맞아서 울먹거리는 좌우좌도 귀엽지만 역시 좌우좌는 웃는 얼굴이 가장 귀엽다. 그러니까 이제는 당근을 줄 차례다.

 

 “그러면 같이 LRL이 좋아하는 참치 찾으러 갈까?” 

 “........”

 “대답.”

 “으, 응! 가자! 권속!”

 

 좌우좌는 해맑게 대답했다.

 

 문을 통해 오두막의 밖으로 나간다. 나는 총과 가방을 꺼냈다. 좌우좌는 평소의 소방도끼를 꺼냈다. 나는 문득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조용했고, 조용할 것이다. 수많은 생명을 그 안에 품고 있음에도, 바다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르카 호는 없다.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 남아있는 것은 등대지기 바이오로이드, 내가 사랑하는 좌우좌와, 최후의 인류이자 오르카 호의 사령관, 좌우좌가 사랑하는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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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속이여! 그래서 이 어둠의 진조에게 바칠 공물의 위치는 어디냐?!”

 “뛰지마. 조금 멀긴 하지만, 천천히 걸어가자.”

 

 시작는 언제나와 같이 갑작스럽다.

 

 별 것 아닌 일이었다.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나를 찾아낸 뒤, 나는 최후의 인류가 되었고 오르카 호의 사령관이라는 직위에 올랐다. 그래,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래성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다행인 점이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사령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는 것일까.

 

 “에~ 많이 멀어? 피곤한데...”

 “많이 멀지는 않아. 지금 속도로 걸어가면 1시간 쯤 걸릴꺼야.”

 

 그것이 문제의 시작점이었다. 오르카 호는 점점 순탄대로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멍청하게도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여겼다. 나의 말이라면, 잠수함 내의 모두가 그것에 복종한다. 나의 한마디에, 모두가 나를 위해 일한다. 나의 손짓 한번이면, 아름답기 그지 없는 여성들이 나와 살을 맞닿는다.

 

 인간으로써 그보다 더한 권력은, 욕망의 충족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자리에 오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자신이 원하면 모두를 안고 자신의 명령으로 그녀들을 구하며 감사를 받는다. 인정욕, 성욕, 그리고 권력욕까지. 하나의 인간이 이 정도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내가 점점 오만해져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웠다. 자원을 얻기 위해 출격시켰던 부대가 전멸했던 것이다. 다른 지휘관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독선적으로 부대를 보낸 결과는 무수한 대원들의 시체였다. 

 

 완전한 나의 실책, 잘못이었다. 그녀들이 나를 쫓아내지는 않을까? 나는 두려웠다. 이 자리에서 쫒겨날까봐, 지금까지 누려왔던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봐. 정말이지, 어린 아이같고 이기적인 이유다.

 

 ......하지만 그녀들은 실의에 빠져있는 나를 위로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죽은 대원들도 나를 위해 싸우다 죽었으니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언제까지 슬퍼할꺼냐고......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나를 격려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왜 나를 책망하지 않는거야?'

 

 무서웠다. 그들이 부르는 사령관이라는 말이, 각하라는 말이, 인간이라는 말이, 주인님이라는 말이, 모두가, 전부가 너무나 두려웠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나'는 뭘까. 마지막 남은 인간? 오르카 호의 사령관? 철충들을 없애기 위한 명령권자? 

 

 아니야.

 

 나는, 나는 그냥 '나'란 말이야.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그녀들과 몸을 섞을 때조차도. 이 끔찍한 생각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지기는커녕, 점점 머리 속에 눌러붙어 새까맣게 침착되어만 갔다.

 

 업무의 효율은 점점 떨어지고, 대원들의 부상 또한 늘었다. 지휘관들의 시선 또한 변했다, 아니 변한 것은 나였다. 

 

 오르카 호는 그렇게 가라앉아만 갔다.

 

 “권속! 권속!”

 “......어? 나 불렀어?”

 “아까부터 불렀는데 왜 대답을 안 하는 것이냐! 저 앞에 보이는 파멸의 궁전이 목표인가?"

 “어, 맞아. 저 건물로 들어가면 돼.”

 

 좌우좌는 철골을 드러내고 있는 회색빛의 큰 건물을 가리켰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위태위태한 건물이었다.

 

 놀랐다. 그때와 똑같이 말을 걸 줄이야.

 

 오르카 호에서 정처없이 걷고 있던 나에게, 그녀는 말을 걸었다.

 

 '권속!, 권속!'

 ‘......어? 나를, 부른거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 비틀비틀 걷는 게 무슨 힘든 일이 있는 거 같아서 말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에게 상담을...... 후엣?'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 아이를 껴안고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아아. 그렇구나, 이 아이 앞에서만큼은 사령관도, 인간도 아닌 단지 권속으로 있을 수 있는 거구나.

 

 ’궈, 권속? 갑자기 이게 무슨......‘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끓어오름은 무엇이었을까. 검은색? 아니면 빨간색? 어쩌면 파란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끓어오름, 그 자체였으니까. 

 

 ‘LRL.’

 ‘왜... 왜 그러느냐?’

 ‘나랑 결혼하자.’

 ‘에.’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다. 너무나 멋없는 프러포즈 아닌가. 무드도 뭣도 없는, 그런 프러포즈였다.

 

 “권속. 다 왔다.”

 “그러면 준비를 해야지. 잠깐만 총 좀 꺼내고......”

 

 내가 LRL에게 한 프로포즈는 오르카 호 내부에 소문이 쫙 퍼졌다.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반응은 최악이었다. 업무도 지휘도 내팽겨치고는 전부 지휘관들에게만 맡겨 놓은 사령관이 갑자기 서약이라니, 그것도 상대는 LRL. 나였어도 별별 뒷담화를 쏟아냈을 것이다.

 

 함내에는 별별 소문이 다 퍼졌다. 요 몇 달 동안 동침을 하지 않은 이유가 사실 소아성애자라서 그런 거 아니냐는 소문 정도는 약과였다. 소문은 소아성애자에서 시작되어, 나는 어느새 테마파크 C구역의 단골 손님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키르케는 몇몇 더치걸 개체들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함께 오르카 호를 떠났다. 발할라는 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드바리와 알비스를 숨겼다.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태도가 변한 것은 에이미였다. 나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딱히 상관없었고, 그들을 탓할 생각도 없었다.

 

 나에게는 LRL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이들의 평가따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LRL)만 있어주면 된다.

 

 시간이 흐르고, 서약식을 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서약식을 하기로 한 갑판에서는 나와 LRL을 제외한 아무도 없었다. 상관없었다. 내가 LRL에게 서약 반지를 끼워주자 LRL은 웃었다.

 

 ‘저기, 에이미한테 들었어. 이 반지의 의미.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정말, 정말 고마워.'

 

 그녀가 웃자, 나도 웃었다.

 

 역시 너는 웃을 때가 가장 아름다워.

 

 “우하하! 이 진조의 공주의 파멸의 사안의 힘을 봐라! ......권속~?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야 돼?”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면 돼. 그리고 불빛은 조금 줄이자.”

 “에에...... 알았어.”

 

 LRL과 지낸 일주일간의 신혼생활은 정말 즐거웠다. 지금까지 오르카 호에서 있었던 그 어떠한 일들보다 즐거웠다.

 

 신혼 생활을 즐기라는 명목으로 지휘관들은 나와 LRL을 오르카 호의 가장 깊숙한 구석에 있는 방에 유폐했다. 어떤 취향이더라도 이해해줄 수 있다면서, 행복한 신혼 생활을 즐기라고 우리를 가둔 것이다.

 

 상관없었다. LRL이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이었으니까.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었다. 아마도 정신적인 사랑이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연극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서로를 씻겨주고, 옆에 누워서 같이 잠을 잔다. 별볼일 없는, 하찮기 그지 없는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며 나와 LRL의 신혼은 점점 흘러만 갔다.

 

 “좌우좌. 저기, 저 앞에 보이지?”

 “으...응. 보여.”

 “그러면 저길 향해 쏴.”

 “알았어...... 흡! 사안의 빛!”

 

-탕!

 

 “좋아. 이제 앞으로 가자.”

 “으으...... 빨리 나가자...... 여기 무서워.......”

 

 그때, 좌우좌도 이렇게 무서웠을까?

 

 좌우좌와의 행복한 신혼 생활 도중, 좌우좌는 자원 확보를 위한 임무에 차출되었다. 지휘관들이 좌우좌가 전략상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서는, 나에게 형식적으로 사과하면서 좌우좌를 부대로 데려갔다. 거짓말쟁이들.

 

 ‘좌우좌...... 괜찮겠어? 위험할지도 몰라’

 ‘후후. 누구를 걱정하는 거냐? 이 몸은 파멸의 진조, 사이클롭스 프린세스! 권속의 걱정은 필요없다!’

 ‘그래도...... 만약 너한테 무슨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괜찮아.’

 ‘어?’

 ‘괜찮아. 반드시 돌아올게. 그러니까, 사령관은 나를 믿고 기다려줘.’

 ‘좌우좌.........’

 ‘그러면 다녀올게...... 정말이지, 좌우좌가 뭐야, 좌우좌가. 다른 좋은 이름들도 많을텐데...... 그러면, 기다리고 있어. 권속.’

 

 어째서 그녀를 붙잡지 않았을까. 그때, 그녀를 말리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큰 후회이다.

 

 “권속! 여기 봐. 여기. 참치캔이 잔뜩 있어.”

 “내가 말한 곳이 여기야. 이제 잔뜩 챙겨가자.”

 “후아~ 이제야 가는구나.”

 

 지휘관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철충들의 급습으로 인해 좌우좌가 있던 10명 남짓의 부대가 분단, 통신도 끊어져 소식 또한 알 수 없었다. 사람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으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머리가 뒤집혔다. 바로 구조부대를 보냈다. 좌우좌를 구하기 위해. 

 

 다른 바이오로이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너만,

 

 너만 살아있어주면 돼.

 

 ............너만 살아있어주면 됐는데.

 

 “좌우좌. 이제 나가자. 챙길만큼 챙겼어.”

 “그래? 그러면 빨리 나가자~~! 이런 어두컴컴한 장소는 싫어~! 밖이 보고 싶어~.”

 “그래그래. 나도 밖이 보고싶네......”

 

 좌우좌는 왔던 길로 돌아가 달리기 시작했다. 양갈래로 묶인 하늘색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그때도, 저렇게 흩날렸을까?

 

 ‘어떻게든 하란 말이야! 천재라면서! 뭐든지 맡겨만 달라면서어!!!! 어떻게든 하란 말이야!!!!’

 ‘...... 오빠...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한계는 있어.’

 ‘그러니까 그걸 좀 어떻게---!!’

 ‘오빠...... 미안, 포기하는게 좋아............’

 ‘닥터야 제발, 제발 LRL을, 좌우좌를 살려줘......... 제발...... 제발...............’

 

 좌우좌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문자 그대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갈아 넣어서, 나는 좌우좌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 있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모습의 좌우좌가 아니었다.

 

 왼팔과 오른쪽 다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었다. 남아있던 오른팔도, 몸통도 너덜너덜했다. 가장 큰 부상은 왼쪽 눈을 중심으로 검게 타들어간 머리였다. 

 

 살아남은 대원들이 말해줬다. 자신들을 대피시키려고 좌우좌가 왼쪽 눈에 내장되어 있는 등대를 한계까지 가동했다고. 거짓말쟁이들. 그 결과가 검게 타 버린 얼굴이었다. 눈도, 코도, 왼쪽 귀도. 전부 검게 타 있었다. 왼쪽 눈과의 거리가 먼 오른쪽 볼과 오른쪽 귀만이 유일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부위였다.

 

 가장 웃긴 것은 좌우좌의 오른손이었다. 엄지도, 검지도, 중지도, 약지도, 새끼 손가락까지도, 전부 떨어져 나간 오른손의 손바닥에는 내가 준 서약반지가 파고 들어서 박혀있었다. 손가락 없이도 이렇게 깊이 박혀있다니, 얼마나 강하게 쥔 것일까. 

 

 그 모습을 본 순간 좌우좌의 말이 떠올랐다.

 

 ‘저기, 에이미한테 들었어. 이 반지의 의미.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정말, 정말 고마워.'

 

 바보. 나는 너만 살아있으면 다른 건 전부 필요 없었어. 

 

 그 반지도.

 

 다른 대원들도.

 

 이 오르카 호도.

 

 전부, 

 

 전부 필요없었는데.

 

 왜 나머지는 다 있고, 너만 없는거야?

 

 ‘LRL을 구출하느라 이미 너무 많은 자원을 사용했어.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건 안돼. 확률이 너무 낮아.’

 ‘넌 닥터잖아. 이럴 때를 위해서 있는 거잖아! 제발, 제발......’

 ‘차라리 새롭게 제조하는 게 더 자원이 적게 들거야, ......뭐, 그것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 그러면......... 새롭게 만들어진 좌우좌는--’

 ‘아무것도 모르는, 오빠를 모르는, 오빠와의 어떠한 추억도 없는. 그냥, 평범한 LRL이 되겠지.’

 ‘그러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몇 번을 설명해야 알아들어!! 이미 기억 모듈은 다 타서 없어졌어! 지금 이 시체나 다름없는 LRL을!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억의 자원을 쏟아부어서 깨운다고 해도! 어차피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아무런 추억도! 기억도 없다고!!! 하아.... 하아......... 그러면... 새롭게 만들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잖아. 응? 오빠. 제발......’

 ‘........................기적, 기적적인 확률로, 기억 모듈이 무사할 확률은, 응, 닥터? 무사할 수도 있지 않아? 어? 대답해, 대답해, 대답하라고!!! 닥터!’

 ‘이거 놔!’

 ‘...............’

 ‘.....물론, 기억 모듈이 무사할 확률은 0은 아니야.’

 ‘그렇다면---!’

 ‘하지만 0에 수렴하지. 나는, 오르카 호의 기술고문이야. 지금 오르카 호의 자원 사정을 알아? 오빠가 LRL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품을, 전력을, 병력을 소모했는지 알고 있냐고. 그런 희미한 가능성을 위해, 이 이상의 자원을 소모할 수는 없어. 더 이상의 낭비는 안 돼. 오르카 호의 기술고문으로써의 충고야.’

 

 낭비라니. 좌우좌를 깨우는 일이 낭비일 리가 없잖아.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다, 닥터.... 제발.....‘

 ’오빠...... 솔직하게 말하면, LRL을 다시 만드는 것도 지금의 오르카 호에서는 힘들단 말이야......’

 ‘나는, 나는, 그냥...... 둘이서. 같이......’

 ‘어차피, 어떤 걸 골라도 결과물은 똑같을 거야... 그렇다면 더 싼 걸 고르자. 응?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시, 처음부터 추억을 쌓아나가면 되잖아. 그걸로 만족해줘...... 제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오빠.........’

 ‘내가, 미안해......’

 

 “참치가 이렇게 많이 있으면 밥 걱정은 안해도 되겠지?”

 “우우…… 참치말고 다른 것도 먹으면 안되느냐? 진조는 다른 공물도 먹고 싶다! 참치만 먹는 건 이제 질려---”

 “......뭐라고?”

 “아니, 좋아! 참치 좋아! ......그래도, 가끔은, 다른 걸 먹고 싶달까......”

 “그러면, 초코바는 어때?”

 “초코바?! 좋아!! 어디있어?!”

 “저쪽에 있을거야. 밖을 보는 건 조금 늦어지겠지만, 같이 갈까?”

 “으음.......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으음... 초코바......”

 “좌우좌?”

 “으음....! 갈래! 가자!”

 “....그래, 가자. 저쪽이야.”

 

 ‘사령관? 제정신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혼자서 밖으로 나가면 어떡해. 당신이 그 아이 일로 힘들어하는건 알아. 하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의 지위라는게 있잖아.’

 ‘왓슨...... 그래도, 우리한테 말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왓슨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도 조금 생각해 줘.’

 ‘각하. 저희 오르카 호의 사정이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만, 각하가 직접 나가서 자원을 가져와야 할 정도는...... 네? 아...... 그렇군요, 분명히 그 아이도 기뻐하겠지요.’

 ‘사령관 미쳤어!? 왜 함부로 밖에 나가는 거야! 이런 시국에 사령관한테도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자원은 우리가 벌어올테니까 사령관은 그 아이를 지키고 있어. 뭐? 고맙다고?...... 으,으으...... 나앤~~~!’

 ‘사령관. 분명히 그대의 마음에는 그녀도 기뻐할거요. 하지만 그것이 그대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밖에 나갈 이유는 아니라고 소관은 생각하오. 당신이 죽는 것을 소관도 우리 부대원도, 그녀도 바라지 않을테니까......’

 ‘구원자님, 분명히 구원자님의 마음은, 그녀의 마음에 닿을거에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면 저희는 구원자님이 우선이에요. 그것만은 명심해 주세요.’

 ‘저희를 소중히 생각해주는 주인님이 사령관님이라서 저희는 기뻐요.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위험했다고요. 다행히 혼자 낙오되어 있었고, 사령관님이 처리해서 다행이지. 만약 그게 무리지어 있었다면......’

 

 그리고 시작과 마찬가지로, 끝 또한 갑작스러웠다. 철충. 인류의 적이자 가공할만한 힘을 지닌 외계생명체, 우리의 주적. 그 철충이 오르카 호 안에 나타났다.

 

 어떻게 해서 오르카 호 안으로 철충이 침입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알아낼 시간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철충들이 오르카 호에 침입했다는 사실. 그뿐이었다. 아직 생체회로 설치가 되지 않은 AGS들은 우리에게 총구를 돌렸다. 철충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도시가 이랬을까. 아비규환의 지옥도였다.

 

 누군가가 꾸민 계략처럼 철충들은 연료통, 통제실, 기관부 등등 중요한 곳에서 나타나 오르카 호를 유린했다. 대원들이 철충들의 공세에 스러져갔다. 인류를 재건하겠다는 희망의 배는 혼란을 끌어안은 절망의 배가 되어 침몰해갔다.

 

 나는 그 난리통 속에서 좌우좌를 끌어안고 도망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말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인류라고.

 

 그렇다.

 

 나는 마지막 남은 인류니까. 나만 살아남는다면 죽어도 끝이 아니다. 나는 좌우좌를 끌어안고, 탈출포드에 앉은 뒤 포드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탈출포드가 오르카 호를 뒤로하고 부상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탈출포드의 벽에 나있는 작은 창문으로 바깥의 상황이 보였다. 항로를 벗어난 오르카 호는 점점 가라앉더니---

 

- @$&%(*)(&_&^!)!!!!!!!!!!!!!! 

 

 지하 저 깊은 곳에서 나타난 촉수에 붙잡혀 멀어져만 갔다.

 

 ‘별의 아이……’

 

 가라앉은 오르카 호와 달리, 탈출 포드는 부상해서 땅에 닿았다. 좌우좌를 데리고 같이 탐색한 결과, 이곳이 꽤나 넓은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무를 베서 오두막을 만들고, 섬을 탐색하면서 여러 가지 물품들을 얻었다. 다행히도 옛날에 사람들이 살았던 섬인지, 도시가 있어 물건들을 구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없었다. 철충들도 있었지만, 섬이라 그런지 몇 마리 없었고, 그 정도라면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나 혼자서로도 충분히 이길수 있다.

 

 좌우좌가 깨어난 뒤로는 필요한 물자가 늘어나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치 그때의 신혼생활의 연장 같았다.

 

 “찾았다. 좌우좌? 초코바는 몇 개 챙길래?”

 “많---- 으음..... 적당히......”

 “적당히면 몇 개? 3개면 되지?”

 “....으응..... 3개면......”

 

 처음 깨어난 좌우좌는 많이 혼란스러워했다, 당연할 것이다. 자신이 지내던 오르카 호가 아닌, 처음 보는 오두막 안에서 깨어났으니까. 얼마나 혼란스러웠으면 나를 보면서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구인지를 계속 물어봤다. 많이 혼란스러웠겠지.......

 

 다행히도, 기적적으로, 좌우좌의 기억 모듈은 무사했다. 좌우좌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 빼고 다른 대원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좌우좌는 나에게 있어 전부고, 나는 좌우좌에게 있어 전부다.

 

 그런 거짓말쟁이들은 필요가 없다. 오르카 호에서의 좌우좌와 무엇 하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알던 좌우좌 그대로였다.

 

 ......조금, 아주 조금. 기억의 혼란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내가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교육’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지금의 좌우좌는 오르카 호에서 있었던 좌우좌와 별 다를바 없는 좌우좌가 되었다. ......아주 가끔, 아까와 같이 말을 안 들을 때만 빼면 말이다.

 

 “아 권속! 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 죽어가는 좌우좌가 오르카 호에 왔을 때, 나는 내심 기뻤다. 좌우좌가 형편없는 몰골이 됐음에도, 얼굴도, 몸도, 내가 알던 좌우좌가 아니게 되었을 때도, 나는 좌우좌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좌우좌의 얼굴을, 육체를, 외모를, 물질적인 무언가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좌우좌라는 하나의 객체를, 그 자체로 사랑했던 것이다. 그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참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

 

 “권속~ 빨리 와~”

 “알았어. 금방 갈게!”

 

 우리의 보금자리가 보였다. 해는 어느새 완만하게 누워 바다를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집에 들어서자, 나무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우리의 코를 반겼다. 나쁜 냄새는 아니었다. 어디선가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좌우좌는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빨리 밥 먹자!”

 “좌우좌.”

 “......어흠, 배가 고프구나! 권속, 오늘의 공물은 무어냐!”

 “참치 많이 주워왔으니까, 참치로 찌개나 끓여먹자. 그냥 먹는 것도 맛있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특별한...... 날?”

 

 까먹은 건가. 그럴 리가. 또 장난치는 거구나. 까먹을 리가 없잖아.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왜 그래? 알면서. 장난치는거야?”

 “.....어? 오늘, 무슨.....날, 이었지......”

 

 좌우좌는 머리를 잡고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려야 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설마.”

 “............”

 “진짜로 잊어버린거야?”

 “.........”

 

 반응을 보면 진짜로 깜빡한 것 같다. 그럴수가. 설마 오늘을 잊어버리다니. 그럴 리가...... 좌우좌가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깜빡할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또 기억에 혼란이 있는 모양이다.

 

 어쩔수 없지. 또 ‘교육’을 하는 수 밖에.

 

 “좌우좌.”

 

 나는 좌우좌를 향해 양손을 뻗었----

 

 “아! 아! 기, 기억났어요, 결혼! 결혼한 날. 맞죠?! 저, 기억났어요! 그러니까.....”

 “......다행이다. 기억했구나......”

 

 나는 좌우좌를 향해 뻗던 손 그대로 좌우좌를 안았다. 좌우좌는 히익?! 소리를 내며 잠시 몸을 굳혔다. 놀란걸까. 나는 좌우좌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더욱더 강하게 안아주었다.

 

 그러고보니, 옛날에도 이렇게 안아줬었지. 외로움을 잘 타는 좌우좌는, 사람의 온기를 좋아했으니까...... 

 

 “나는 또, 너가 기억이 오락가락한 줄 알고...... 또 너한테 알려줘야하나 해서.....”

 “피, 필요 없어요. 기억했으니까, 그. 교육은, 필요 없어요......”

 “그래, 나도 알아. 다행이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네, 네...전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 버, 버리지, 말아주세요......”

 “내가 좌우좌를 버릴 리가 없잖아...... 무서웠지, 자. 계속 안아줄게......”

 “...히끅.... 흐읏.......”

 

 좌우좌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슬픈 걸까? 좌우좌는 가끔 이상한 소리를 했다. 버리지 말아달라는 둥, 그런 뉘앙스가 담긴 소리를 했다. 내가 좌우좌를 버릴 리가 없으니까, 아마도 이건 그때, 죽을 뻔했던 탐색 때의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그래, 그럴 것이다. 아마도 다른 대원들이 좌우좌를 버리고 도망 간 것이겠지. 아니, 그 전에, 지휘관들이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작은 아이에게, 그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을까. 전부 죽어버리기를 잘했다.

 

 그러니까.

 

 괜찮아, 좌우좌.

 

 이제 너와 나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은,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더욱더 강하게 좌우좌를 끌어안았다.

 

 “......이제 그만 놔 줘......”

 “알았어. 이제 밥먹자.” 

 “......응.”

 

 좌우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라고는 해도, 이 오두막에는 가스도 전기도 통하지 않는다. 열원이라고는, 벽에 있는 모닥불이 유일한 열원이다. 나는 참치 통조림을 따고, 백화점에서 주워온 냄비에 넣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양념과 향신료, 야채를 넣는다. 오르카 호에 있었을 때의 좌우좌는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잘먹는다. 편식이 고쳐진걸까? 다행이다. 편식은 건강에 안 좋으니까.

 

 벽난로에서 불씨를 꺼내, 장작에 넣는다. 잠시후, 장작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냄비를 걸쳐 놓는다.

 

 보글보글.

 

 부글부글.

 

 냄비 속에 재료들이 팔팔 끓어오른다. 좋은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그렇게 계속 끓이다가, 나는 냄비를 들어올렸다.

 

 “요리 다 됐어!”

 “우와! 맛있겠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머--”

 “아 뜨거워!!! 스읍.....하..... 혀,데어서.....”

 

 팔팔 끓던 찌개를 바로 입에 넣으니까 그렇지. 좌우좌는 혀를 내밀고는 숨을 쉬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귀엽네.

 

 “자, 물.”

 “으으......”

 

 내가 컵에 물을 받아서 건네주자, 좌우좌는 내밀고 있던 혀를 그대로 컵에 넣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으으..... 아흐아.....”

 “혀 괜찮아?”

 “아니이..... 아지도 아흐아......”

 

 좌우좌는 혀를 내밀고 새액새액거렸다가, 다시 컵에 담겨있는 물 속으로 혀를 내밀었다. 방금 전까지 불 위에서 펄펄 끓던 찌개를 식히지도 않고 바로 입에 넣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얼음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 곳에서 얼음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 결과, 나는 컵에 혀를 담그고 있는 좌우좌를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후으......”

 “이제는 괜찮아?” 

 “으응..... 이제는, 조금 나아졌어......” 

 

 내 혀 좀 봐 줘, 새빨개졌지? 라고 말하는 좌우좌를 보자 나는 그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원래도 새빨간 혀인데, 뭐가 빨개졌냐는 걸까. 

 

 “우씨... 왜 웃어?”

 “아니, 좌우좌가 너무 귀여워서.”

 

 사실이니까. 혀를 베에--하고 내밀고 있는 좌우좌는 실제로 귀여웠다. 아니, 혀를 내밀지 않아도 귀엽지만. 좌우좌는 그냥 존재 자체로 귀엽다.

 

 “먹자. 자, 이번에는 잘 식혀서 먹어야 해?”

 “나도 알거든! 씨잉...... 자꾸 놀리고.....” 

 “미안미안.....”

 “후우.....후우..... 하암.”

 “......”

 “으음...... 응, 음......”

 “맛있어?”

 “응, 맛있어.....”

 “다행이네.”

 

 맛있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좌우좌를 보자, 나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나도 찌개를 떠서 먹었다. 맵고, 진하고, 짜고, 달고, 칼칼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늘었지, 이 섬에 막 도착했을 때의 요리는 먹기 힘든 수준이었다. 지금의 요리는 좌우좌에게 이런 요리를 먹일 수는 없다는 나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좌우좌는 쉬고 있어.”

 “하아암~~ 응, 알았어......”

 

 밥을 다 먹자, 좌우좌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졸린 모양이다. 해는 어느새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 새까만 장막을 펼쳤다. 

 

 내가 밖에 나가서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자, 좌우좌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꾸벅거리고 있었다. 이 섬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는 낮에 잠을 자길래, 뭔가 병이 생긴게 아닌가 했는데. 지금은 다행히도 정상적인 생활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도 ‘교육’ 덕분이다. 

 

 “졸려?“

 ”으으...아니이.....안졸려어..... 진조는...... 밤의.... 프리세스......이니라.....“

 ”졸리잖아. 자, 침대에서 자자.“

 ”? 저 박스는 뭐야?“

 

 아차. 들켰다. 이렇게 된거......

 

 ”자, 선물.“

 ”선물? 뭐야 뭔데!?“

 

 나는 좌우좌에게 박스를 내밀었다. 좌우좌는 신나서 산자를 뜯어나갔다. 잠은 이미 다 깬 모양이다.

 

 ”옷?“

 ”그래,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님을 위한 멋진 드레스. 마음에 들지?“ 

 ”......으응,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든다니까 다행이네.“

 

 정말로 놀라웠다. 좌우좌가 테마파크에 놀러갔을 때 입은 고딕드레스가 전시되어있을 줄이야.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좌우좌의 결혼 1주년에 어울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서프라이즈 선물은 성공한 모양이다 좌우좌는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저렇게 구멍이 뚫릴 것 같이 보고 있을까? 내가 다 기뻤다.

 

 ”뚫어지겠다. 이제 자자.“

 ”으으.....? 인... 권속? 저 책은 무어냐? 설마...... 암흑의 비전서?“

 ”그런거 아니야. 그냥 소설. 저번에 나갔을 때 주워온거야.“

 ”오, 오오...... 환상의 금서란 말인가...... 권속! 특별히 이 어둠의 진조,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에게 그 책을 읽게해줄 영예를 주겠노라! .....하암~~~ 음.“

 ”아직 좌우좌한테는 이르다니까...... 알았어. 읽어줄게.“

 

 나는 아까 내팽겨두고 간 책을 펼쳤다. 아까의 영어가 보였다. 나는 그냥 읽을 수 있지만, 좌우좌에게 영어로 읽어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테니까, 번역을 해줘야겠지.

 

 나는 좌우좌의 옆모습을 슬쩍 훔쳐보았다. 좌우좌는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책을 보고 읽기 시작했다. 

 

 번역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흠흠......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 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꽤나 유려한 문장이었다. 나는 번역에 더욱 신경을 쏟았다.

 

 “[롤. 리. 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봐바, 역시 졸렸잖아.“

 ”으음........“

 

 책의 첫 장을 읽고 옆을 돌아보자, 좌우좌는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역시 졸렸구나. 나는 좌우좌를 들쳐 안고 침대로 걸어갔다.

 

 ”으음...... 인간.....“

 ”잠꼬대가 심하네......“

 

 침대에 도착하자, 나는 좌우좌를 내려놓았다. 직접 만든 침대라 실제 침대처럼 푹신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는 편안한 침대다.

 

 침대에 누워서 칭얼거리는 좌우좌, 나는 좌우좌의 왼손 약지를 만졌다.

 

 ”사실, 진짜 선물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지......“

 

 나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LRL이 끝까지 지켜냈던, 나와 LRL의 사랑의 증거. 무얼 숨기랴. 서약반지다. 

 

 나는 반지를 꺼냈다. 벽난로에서 타닥이는 주황빛 불꽃이 반지를 비추었다. 반지에는 얼룩이 있었다. 당연했다. 이 반지는, 그 날 이후로 시간이 멈춰있다. 이 반지는 그때의 좌우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이 반지를 주면서 다시 한번 LRL에게 청혼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기억이 다 안 돌아왔으니까...... 그때까지는 기다려 줘야지.“

 

 내 청혼을 받으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쁨의 눈물? 미소? 환희?

 

 아아, 그 날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LRL. 나의 작고 귀여운 요정. 누구보다 늠름한 진조의 공주이자 누구보다 연약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나의 작은 등대지기.

 

 언젠가 올 그 날이 되면.

 

 그래.

 

 언젠가 오게 될. 그 날을 위해.

 

 나는.

 

 나는, 계속 사랑을 할 것이다.

 

///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 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 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나보코프(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민음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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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1+6507=12028

13350+12028=25378


리메이크입니다. 저번에는 뭔가 너무 꽁꽁 숨긴 것 같아서, 이번에는 화끈하게 감정 표현이나 직설적인 표현들을 넣어보았습니다. 여러모로 이야기 전개의 당위성도 부여했고요.

롤리타를 읽고 읽으면 재미가 2....배? 일겁니다. 아마도요. 그걸 노리고 썼으니까요.

어느새 라오챈에서 싸지른 글이 20만자를 넘었습니다. 

이게 다 라붕이들의 무지성, 유지성 개추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없었다면 찍 싸다 말았겠죠.

항상 감사합니다.


땡큐!!


(재업) 한밤 중에 올려서 그런지 수정하기 전에 글을 올려버렸네요 ㅎㅎ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