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庚寅)일. 흐림.

 


이른 아침 스산한 음기(陰氣)에 자리를 떨치고 나와보니 앞 산에 검은 구름과 짙은 안개가 드리어 있었는데, 흉흉한 기세가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 하여 중원(中原)의 오악(五嶽)이 부럽지 않았다. 그 형형색색(形形色色)한 변화가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웅장하여 넋 놓고 구경하는데, 어느덧 태양이 창천(蒼天)에 욱일(旭日)하니 그 스산한 기세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으며, 선하지 못한 자에게는 하늘이 이를 화로써 갚는다 (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고 하셨는데, 아무리 위세가 태산과 같아도 남을 이롭게 하지 않으면 결국은 쇠하니 옛 성현의 말씀은 결코 틀리지 않는 것이다.

 

주객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설 채비를 하였다.

본관은 어려서부터 배움에 힘쓰길 여러 해가 되어 어느덧 약관(弱冠)의 나이에 이르렀는데, 날이 갈수록 새 배움을 깨우치는 속도가 느려지니 비로소 '세상에 나아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는 논어(論語)의 구절처럼 여러 마을을 돌며 견문(見聞)을 넓혀야 할 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방을 붙여 사람들에게 가 볼 만한 마을을 찾아 물으니 곧 여럿이 몰려와 자신이 가본 곳을 떠들어 댔는데, 그 꼴이 마치 저잣거리 사당패와 같이 요란하였다. 삼인행(三人行)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이라, 뭇 사람들도 그동안 나름 배움에 힘썼는지 다녀본 마을이 여럿이었는데, 제일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 바로 라오촌(裸烏村)이었던 것이다.

 

마을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니 드디어 라오촌(裸烏村) 어귀에 이르렀는데, 하늘에서 세 명이 홀연히 내려와 앞길을 막고 추문(推問)하기 시작하였다. 한 처자는 녹로(轆轤)를 들고 있었는데 자태가 고왔으나 말이 느리고 어눌하여 답답하였고, 다른 처자는 용모가 빼어나고 행색이 화려했는데 키가 작고 행동거지가 오만하니 남몰래 뭇사람의 비웃음을 살 상(相)이었다. 다른 한 명은 늘씬하고 장발이었으나 표정이 무념하였고 품이 밋밋한 것이 암수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너, 뭐 하는 녀석이야?" 

 

 

 오만한 처자가 하문하여 이곳에 다다른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했는데, 그녀가 턱짓을 하자 표정이 무념한 자가 검문을 통과했다는 내용의 자그마한 증서를 건네주었다. 

 

 

"실례지만 귀인들은 뉘시온지." 

 

 

처자들이 다시 떠나려 하여 급히 묻자 무념한 자가 대답하길, 그들은 둥부린아(㪳婦潾兒)라 불리는 라오촌(裸烏村)의 군사들이었다. 오만한 자의 이름은 매이(挴裏)로 그들의 지휘관이었는데 라오촌(裸烏村)의 몇 안되는 상장(上將) 중 하나라 하였고, 무념한 자는 부관(副官)이었으며 말이 답답한 자는 참군(參軍)이라 하였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상관께서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용태를 뽐내시니 부관의 노고가 크시겠소!"

 

  

하고 부관에게 농을 건넸는데, 부관이 무념한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트리며 대답하였다.

  

 

"우리 대장의 용태가 빼어난 건 사실이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니 그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무슨 말씀이시오?"


"용모가 빼어나도 그 쓰임을 깨우치지 못하여 음문(陰門)에 거미줄이 친 지가 한평생이 올시다!"

  


이에 매이(挴裏)가 격노하여 부관의 가난한 가슴을 비꼼에 부관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하였는데, 나는 다만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여 몸 둘 바를 모를 뿐이었다. 


공자께서 '군자는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이루게 도와주고 다른 사람이 나쁜 일을 이루지 않게 도와주지만, 소인은 오히려 이와 반대이다(子曰 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 라고 하셨는데, 매이(挴裏)의 언행은 예(禮)가 없고 천박하며 손짓과 발짓으로 아랫것들을 부리니 아랫것들이 업신여기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찰나의 만남이었지만 그 됨됨이를 충분히 알 만 하였다. 


부관 또한 '충심으로 권고하고 잘 이끌어주되(忠告而善道之), 듣지 않으면 그쳐야 하며(不可則止), 모욕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無自辱焉)'는 말씀과 반대로 행동하니, 노력은 가상하되 이루는 것은 적을 것이 뻔하여 다만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