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어보면 좋음


느와르 사령관


느와르 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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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잇기 위해 하나를 끊어 내야만 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나아가기 위해 도려내어야 했다.아르망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듯이 그녀가 사령관에게든 지휘관들에게든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으니. 그렇기에 그녀는 제 스스로를 지독한 공리주의자라고 단정지었다. 어찌되엇든 곪은 것을 도려내야만 살 수 있었다. 끊지 못하면 죽는다. 내부에서 썩어버린 종양 덩어리들은 살을 찢어내지 않으면 악취를 퍼트리지 못 하기에. 결국,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르망은 이 업무에 더욱 집착했다. 자신만이 이 일을 행할 수 있다거나 다른 이들은 이런 일에 맞지 않아 라는 이유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자신마저 끼워넣는 극단적인 공리주의 관점에서의 접근이었다. 그저 그녀가 가장 잘하고 행할 수 있는 업무. 어찌보면 그녀는 자신의 ‘보스’인 사령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죄를 짊어지는 부류의 인간. 언제나 그뿐이라며 제 자신을 돌아보는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의 붉은색 수단과 비레타를 곱게 벗어 옷장에 집어넣었다. 어느 부위든 자그마하고 여린 몸에는 생채기가 가득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른 옷장의 문을 열어 검은색 수단을 입고 하얀 면사포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색 장갑까지. 곱게 관리된 듯 부드러운 비단의 촉감과 얼굴을 거의 가리는 새하얀 순백. 아르망에게 있어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의 최면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무감각해져버린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수족이 되어버린 워울프의 노크 전까지 눈을 감고 무릎을 꿇어 기도했다. 마치, 장례식을 주관하는 수녀처럼.


하나의 잡음 없이 또각거리는 에나멜 단화와 가죽 구두의 울림이 섞여 복도를 가득 메웠다. 지나치게 평온한 단화와 조금 격양된 구두의 발 걸음. 그 사이에서 아르망은 워울프가 가져온 보고서를 천천히 흝고 있었다. 분명 그녀가 작성하지 않은 듯한, 지성이 느껴지는 단어들과 명확히 찍혀 있는 사진들. 아르망은 잠시 동안 퀵 카멜과 탈론 페더를 위해 묵념했다. 그러고는 곁눈질로 워울프를 쳐다보았다. 그녀 또한 억지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의 또 다른 상관인 칸과는 다른 분위기의 그녀의 눈을 피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워울프는 그녀가 자신을 수족으로 부리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암묵적인 넘김. 이 정도 흠은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복도의 끝 방에 다다를때 쯔음에, 침착한 단화소리가 제 소리를 잃어갔다. 그 대신, 아르망의 면사포 옆으로 보이는 냉랭한 얼굴과 이글거리는 눈빛은 더더욱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 문 뒤에는 워울프의 보고서대로, 아르망이 해야할 업무 대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같혀 있던 공기에 피내음이 물씬 풍겨 퍼졌다. 하지만 아르망과 워울프, 그녀들은 익숙하다는 듯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걸음소리를 내었다. 따각거리는 에나멜 부츠. 그리고 그 소리는 묶여 있는 바이오로이드들 앞에 멈춰 섰다. 팔과 다리가 묶인 채 입으로는 신음과 피를 내 뱉고 있는, 가녀린 그녀들. 피가 엉겨붙은 초록색 머리와 군데 군데 찢겨나간 메이드 복. 종종 보이는 밤색의 머리카락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아르망은 이들의 눈에서 공포를 읽었다. 이 업무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이들의 장난놀음에 사령관과 오르카가 피해를 봐야 했다.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야만 제 처지를 이해하는 고깃덩어리들과 그 세치 혀에 넘어가는 멍청한 유기물들.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쯤은 참아야 했다. 이런 이들에게도 얻을 것을 있었으므로.


그녀는 워울프가 준비한 의자에 앉아 널부러져 있는 이들을 쭈욱 흝어보았다. 익숙한 얼굴과 최근에야 얼굴을 익힌 이들. 그럼에도 이름은 나열하지는 않았다. 종양덩어리에게 이름을 붙히지는 않을테니.


“워울프.”


“응?”


“배신자랑 스파이. 따로 분류해놓으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아...! 그거! 그러니까... 어짜피 처리해야 할 년들이니까 안했지.”


멋쩍은 웃음 뒤에는 가녀린 이의 손짓이 있었다. 검붉게 피어오른 워울프의 뺨.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런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 씨익 웃어보이기도 했다. 가녀린 손의 주인도 어느 정도 예상 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툭툭 털고 제 무릎 위에 곱게 포개었다.


아르망의 가벼운 손짓이 있었다. 그리고 행해지는 우악스러운 손길. 워울프는 가장 가까히 있는 초록색 머리의 소유자인 바닐라의 머리채를 붙잡아 제 상관 앞으로 질질 끌어 내었다.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두 사람은 익숙하게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1388번 바닐라. 두 달 전, 괌에서 ‘보스’께서 구조한 계체. 그리고... 배신자 혐의를 받고 있네요.”


“......”


“할 말 있으신가요?”


“살고 싶어요...”


격한 총성이 들렸다.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된 유기물 덩어리가 비명 대신 그에 걸맞는 무게의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바닥에 고이는 불순물 가득한 핏물은 공기에 섞여 퍼져 나갔다. 움찔거리는 덩어리가 워울프의 발에 밀려 구석으로 굴러 박혔다. 아르망도 익숙한 듯 면사포 뒤에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그 때 묶여 있는 그녀들은 자신의 처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냉정하게 불리는 다음 덩어리는, 온몸을 떨며 처형인에게 말했다.


“다 말하면 살려 주시나요...?”


“말해보시죠.”


“무엇을 말해야 하나요...?”


“전부. 하지만 잘 말하시는게 좋겠죠. 과연 그 정보의 가치가 당신의 목숨과 저울질 할 수 있는지.”


밤빛 머리의 그녀는 입을 떼었다. 자신의 출신과 목적, 그리고 진행 상황까지. 그제서야 아르망은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레모네이드 오메가와 다른 레모네이드들. 그녀들에게 있어 오메가는 상징적인 의미기도 했다. 혹여, 시쳇덩어리로 전락했을지도 모르는 그녀라도 남은 이들은 유용한 상징물로 사용할 수 있었을테니까.


“그래서, 레모네이드들이 저희를 공략하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고 여러분은 그걸 위한 스파이라는 거네요?”


밤빛 머리의 콘스탄챠 계체는 머리를 끄덕였다. 암묵적인 동의. 그리고 침묵. 그 때, 그녀는 자그마한 희망을 보았다.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실낱. 감옥에서 썩는다 하여도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에.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희 쪽 인원들은 어떻게 포섭한거죠?”


“그... 사랑 받지 못한 계체들은 질투심이...”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조용한 총성이었다. 우악스러움이 아닌 우아함. 아르망의 허벅지에 묶여 있던 홀스터에서 뽑힌 22구경 리볼버에서 흘러나온 음악이었다. 여러 발의 화음이 퍼지고 비루한 몸뚱아리가 쓰러질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지독하리만큼 무감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여러번 보좌한 워울프는 자신의 상관이 극도로 화가 나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그녀의 모습 중 하나였다. 지나지게 감정적인 모습. 어쩌면 그녀들의 ‘보스’에게 옮은, 일종의 투영화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워울프는 그녀를 말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느끼고 있는 혐오감을 남이 대신 풀어주고 있기도 하거니와 아르망의 억누른 감정도 때때로는 풀어야 하기에.


“언더 보스.”


“알고 있어요.”


아르망은 하얀색 면사포에 묻은 피를 보며 혀를 찼다. 더러운 오물을 보는 것과 같은 눈길로 피 찌꺼기와 찌꺼기 덩어리들을 흝어 보았다. 기겁한 얼굴들과 체념한 얼굴들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그녀는 이곳을 쓰레기통이라고 칭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고 나가고 싶었다. 조금씩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에. 그것을 알아챈 워울프는 아르망의 피 묻은 면사포를 벗겨내어 제 품 안의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요. 워울프.”


“뭘. 뺨도 맞은 사이인데.”


“그 정도 벌은 당연한거에요.”


“네네. 그러시겠죠. 언더 보스.”


워울프는 그녀를 일으켜 곳곳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이제 사령관을 만나러 가는 아르망에게 보이는 일종의 충성심이었다. 자신의 직속 상관과는 다른 의미의, 마치 친구를 보살피는 듯 한 행동이었다. 아르망도 그것에 대해 아무런 제제를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 마따나 피 묻은 면사포와 역겨운 감정을 가지고 그의 ‘보스’를 만나러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으므로.


“그러면, 내일 계속 이어서 하도록 하죠. 물론... 캐낼 수 있는 것은 전부 캐 내세요. 아마 내일 아침에는 뭐든지 말하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요.”


“그거 예지능력이야?”


“연산이에요.”


그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에도, 묶여있는 덩어리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벌레와도 같은 목숨. 조금이라도 연명하기 위해서는 워울프와 아르망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최후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도 그녀들이었다. 아르망은 덩어리진 종양들을 뒤로 한 채 문을 열었다.


“죽이지는 마세요. 손을 더럽히는 것은 상관인 제가 해야합니다.”


“또, 보스같은 소리하네. 둘이 닮았어 아주. 걱정말고 가. 아. 그리고 샬럿이 우리가 하는 일 의심하는거 같던데. 조심해. 일단 얼버무리긴 했거든?”


“이미 예상했어요. 그래도 조심해보죠.”


그녀는 닫혀가는 문 틈 사이로 나지막히 말했다.


“우리의 정의로운 기사님에겐, 이런 일은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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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추천 받고 구상해놨던 느와르 아르망인데 뭔가 쓰읍...


댓글 문학도 끝났고 개인작도 중반쯤 와서 짬나서 적어봄


다음 캐릭 추천 받아봄 매운 맛도 좀 더 넣어보고


언제나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