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도쿄도 미나토구 주일 대한민국 대사관 앞, 마츠시타 쥰은 경비가 보이지 않는 주차장 담벼락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대사관 정문의 경비에게 쓸데없는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마츠시타의 맞은편에서 토모는 덥다는 듯 휴대용 선풍기로 목을 식히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더워~... 왜 여름은 더워야 하는 거야? 여름이 시원해도 되는 거잖아.”

 “정말로 여름이 시원해지만 반길 일이 아닐 거야. 기온이 맛이 갔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마츠시타는 덥지 않다는 듯 뜨거운 담배연기를 삼켰다.

 “게다가 아직 6월이야. 앞으로 더 더워질 거니 각오하는게 좋을 거야.”

 “이거보다 더 더워진다고? 대체 이런 곳에 왜 사는 거야? 시원하고 따듯한 곳에서 살면 안되는 거야? 왜 이 고생을 하면서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 사계절이 뚜렷한 일본이라는 건 다 뻥이었어. 이렇게 더우면 뚜렷한 것도 정신이 나가서 희미해져보인다고.”

 “뚜렷은 그 의미가 아냐.”

 마츠시타는 무어라 뒤에 붙이려 했지만 포기하고는 마지막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슬슬 출발하자. 약속장소에 땀범벅이 되어서 도착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담배를 던지고는 발로 비벼끈 마츠시타는 대사관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뒤에서 따라간 토모는 대사관의 간판을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마츠시타, 여기가 맞아? 저거 분명 한국 깃발 아니었어? 여기는 왜 온 거야? 설마 마츠시타, 북한이랑 남조선 헷갈린 건 아니지?”

 “전혀 헷갈리지 않았어. 헷갈리는 건 토모같은데. 북조선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북조선인을 일본 어디서 만날 수 있겠어. 이 나라에는 북조선의 대사는 커녕 영사도 없어.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그렇다고 조총련을 갈까? 거기도 이번 사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거야. 그래봐야 일본에 사는 북조선계 재일의 모임이니까. 정말로 가장 잘 아는 건 일본에 잠입한 북조선의 간첩일 테지만 그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잡지사가 아니라 내각정보조사실에서 일하고 있었겠지.”

 “내가 정보 조사관?”

 “내각정보조사실. 이 나라의 정보기관이야. 미국의 CIA 같은 거겠지.”

 정문에 도착한 마츠시타는 경비원에게 대사관에서 온 출입증을 보여주었다. 기자의 신분으로 방문했다는 증명서였다. 오시마 사건이 일어난 뒤로 재일 한국 대사관은 방문자수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마츠시타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재일 한국 대사관에 온 건 당사자 다음으로 북조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오기 위해서야. 북조선에 인접한 나라인 한국이지. 그리고 단순히 오시마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것도 아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뒤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야.”

 마츠시타는 정문을 통과한 뒤로도 말을 이어갔다.

 “오시마 사건이 일어난 직후 정부는 자위권의 차원에서 북조선에 보복공격을 가하려 했어.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항자의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북조선 청진을 폭격할 계획이었지.”

 “춍진? 그거 인종차별 아냐?”

 “도시 이름이 청진이야. 한자도 다를테고. 어쨌든, 그 폭격계획은 실제로 실행되진 않았어. 정부의 의지가 약했던 것도 있고 일본의 보복공격을 우려한 나라가 있었던 거야.”

 “한국?”

 “정부에 연락한 나라는 미국이었어. 우리 정부가 한국 정부의 말을 들을 리가 없지. 한국의 의향도 있었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항자가 북조선을 폭격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거야. 한반도는 이미 화약고야. 특히 북조선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북한에 불을 붙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거니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 한국의 의향이 정확히 어떤가 하는 거지. 한국의 입장에서도 오시마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한국에서도 북한에 보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우리를 통해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이 보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알고 싶어 온 거야.”

 마츠시타는 4층 정도 높이의 유리건물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왜 한국이 북조선의 편을 드는지 묻고 싶은 거야?”

 “전혀 아냐. 처음부터 다시 말해줄까?”

 “마츠시타의 말이 너무 길어서 그래. 요즘 JK들은 한줄도 길어서 4글자로 요약하고 그런다고.”

 “요즘 JK는 JK라는 말 안 써. 그리고 4글자로 말하는 건 사자성어고.”

 마츠시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열어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주일 대한민국 대사, 강성구라고 합니다.”

 “월간 치바 사회부의 마츠시타 쥰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눈 뒤, 강성구 대사는 마츠시타의 뒤에 있는 토모를 바라보았다.

 “뒤쪽의 여성분은 누구시죠?”

 “아, 토모입니다. 제 보조죠.”

 “네, 토모에요.”

 토모는 강성구에게 악수를 청했고 강성구는 그 악수를 받아주었다.

 “바쁘실텐데 제 인터뷰 요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긴요. 저를 찾는 곳이라고는 대한민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 뿐인데요. 인터뷰를 요청한 언론사 기자는 마츠시타 쥰씨, 당신 뿐입니다.”

 강성구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는 접대용 테이블로 둘을 안내했다. 테이블에는 이미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토모는 얼른 물을 집어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이번 오시마 사건으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을 줄로 알았는데요.”

 “언론사들이요? 설마요. 저같은 한국인보다는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을 선호하는게 언론사들이죠. 한국에는 발 한번 내딛은 적 없는 피만 한국인이고 머리는 일본인인 사람들이요. 우리나 일본이나 진실보다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더 원하지 않던가요.”

 마츠시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그런 부류의 사람일지도 몰랐으니까. 그저 다른 사람들과는 주장일 다를 뿐인.

 “초면에 실례했네요. 오전에 외무성에 불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더니 정신이 사나워진 모양입니다. 또 한일관계라는 것이 한국이나 일본이나 굉장히 민감한 문제기도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조차도 인터뷰가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말 잘못하면 일본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문제가 되면 이 자리에 있기도 힘드니까요.”

 강성구는 마츠시타와 토모의 맞은 편에 앉은뒤 말했다.

 “그래서 인터뷰 내용이 뭐였더라요. 오시마 사건에 관한 것이었죠? 이 시기에 굉장히 민감한 내용이네요.”

 “네. 정확히는 오시마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의 입장입니다.”

 마츠시타의 말에 강성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주제네요. 잠시 오프 더 레코드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아직 녹음기는 켜지 않았습니다.”

 마침 마츠시타는 아직 인터뷰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약간의 잡담 격으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었다.

 “좋습니다. 공개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오시마 사건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 굳어진 한일관계에 대한 반동이죠. 일본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왜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한국이 바라지 않는 것이지?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해요.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북한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아군으로 받아들인다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마츠시타의 입장에서는 씁쓸한 이야기였다. 자신들이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가해자였고 100년도 넘은 일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일관계가 어려운 이유가 이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공통의 적을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가 적이었던 시절의 앙금을 씻어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어려운 이야기죠. 제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더욱 더요. 그래서 녹음 준비가 되었는데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해도 될까요?”

 마츠시타는 휴대전화를 녹음모드로 전환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럼요. 질문하셔도 됩니다.”

 강성구의 말에 마츠시타는 녹음버튼을 눌렀다.

 “그러면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네. 주일 대한민국 대사, 강성구 대사입니다. 41년 1월 처음 주 고베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주일 공관에서 일했고 59년 10월 대사로 발령받아 현재 대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그러면 첫 질문입니다. 북조선 인민군의 오시마 진흥국 오시마의 무력 점거, 그리고 오시마 탈환작전중 일어난 북조선의 핵공격, 뒤이어 이어진 화산 폭발로 인한 대규모 쓰나미와 낙진 피해, 통칭 오시마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됩니까?”

 통상적인 질문이었다. 마츠시타도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사의 입으로 그 답을 듣는 것은 기사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조금 전의 자기소개와 같은 것이었다.

 “이미 대한민국 외교부와 청와대의 공식 발표를 통해 상세한 입장이 전해졌죠.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표명을 했습니다.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이 잘못에 대해 일본 정부에 사과를 해야 하고 규탄받아 마땅한 집단입니다.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또한 일본만이 아닌 한국의 피해도 있고 일본에 있는 교민과 관광객들 중에서도 사망자와 부상자도 발생했습니다. 이 사태는 일본만의 것이 아닌 한국 역시 공유하는 고통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평화라는 공통된 가치를 추구하며 더 나은 동북아시아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긴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아는 이야기였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마츠시타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한국정부는 단순히 오시마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전반적인 한일관계의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인 일본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이 대사관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었다는 것으로 모든 설명이 될 것이었다.

 “다음 질문입니다. 현재 일본내에서는 북조선에 대한 보복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시마 사건으로 북조선은 일본의 방위를 위협하는 존재를 넘어 실제로 해를 가한 집단임이 증명이 되었고 북조선을 공격하는 행위는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아직 보복공격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어떻게 되나요?”

 마츠시타의 질문에 강성구는 어렵다는 얼굴을 지었다. 그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는 듯, 인터뷰 치고는 조금 긴 고민을 시작했다. 그가 입을 연 것은 물을 두번 정도 마신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