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또 얼마나 흘렀을까. 수복칸 유리밖에서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다프네가 그 앞에 서서 타월을 들고 대기중이었다.


"다프네로군. 고맙네."


"뭘요. 이번 임무도 사령관이 억지로 내보낸거죠? 하여튼 임무도 제대로 못하고 뭐 하나 할줄 아는게 없다니까요."


비릿한 웃음을 짓는 다프네. 착하고 순수한 페어리들조차 이렇게 펙스 회장님이 될 저 사령관님을 모욕하고 있었다.


기분나쁘진 않다. 화가 날뿐이었다. 다만 그 화는 페어리들에게 난다기보단 자신에게 향해있었다.


저들을 이렇게 만든것은 자신과 같은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였기에, 그리고 자신이 선동했고 자신의 부대원들이 한일이기에.


"다프네, 자네가 사령관님을 모욕하는것은 이제 그만두게. 우리는 그 사령관님을 보필하고 모자란점을 채워주고 이끌어야만 해."


"네? 그게 무슨말씀이세요?"


"말 그대로 일세. 우린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걸었던게야. 우리는 새로운 인간을 찾고 지휘를 더 잘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중요한 인간님을 내치려고 하고 있네. 그건 잘못된거야."


그러자 다프네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마리에게 말했다.


"하. 어이가 없군요. 전투를 나갔다가 다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건가요? 마리대장님 당신이 가장 앞장서서 멸망의 메이와 함께 합작해서 그 인간을 욕보이고 우리 비전투원에게까지 모욕하라 시켰던 당신이 지금 이런말을 하는게 어이가 없네요."


다프네의 말은 사실이었다. 두번째 인간을 찾기전부터 그의 지휘 실력은 맘에 들지 않았고 메이대장은 행동파였다.


메이대장을 꼬득여서 계속 인간님을 음해하고 욕보였다. 스틸라인 부대원들이 매번 다치고 올때마다 흘리듯 얘기한것이 부대원의 실력이 모자라고 상성탓에 지거나 패배한것도 사령관이 무능한것으로 꾸몄다. 물론 이 일에는 몽구스팀이 정보조작을 도와서 스틸라인 멤버 대부분이 사령관이 무능하고 쓸모없다는듯이 인식하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메이대장은 자신의 둠 브링어 부대원이 다칠때도 그랬지만 마리 대장과 협력하에 스틸라인이 다쳐도 사령관실로 찾아가 크게 화를 내며 자질을 따져대기 바빴다.


그때마다 사령관은 고개를 숙이고 바이오로이드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사과를 했다.


메이대장이 몇시간이나 화풀이 대상이 된 후에 말이지만.


그때마다 육탄전이 가장 많은 스틸라인의 멤버들은 사령관을 조롱하기 바빴다.


그때 가장 심하게 조롱했던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노움, 그리고 이프리트..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지휘에 따랐을뿐이라는게 다시금 기억나자 마리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들은 단순히 명령에 따랐을뿐아닌가. 사령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병사일뿐인데..'


"잘생각해봐요. 마리대장님. 당신도 지금 새로 찾은 인간님이 더 맘에 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다. 새로운 인간을 찾고 몇마디 대화끝에 호감이 높게 쌓였었다. 그는 단순한 대화에서도 전략을 수준높게 이해하고 있었고 매력이 넘쳐보였다. 그래 그땐 그랬다.


"그래, 하지만 기억하게. 난 틀린것은 바로잡을걸세. 우리.. 아니 나라도 현 사령관을 보좌할걸세. 그분만이 우리의 사령관이니 말이지."


"하, 좋을대로 하세요. 하지만 시작은 분명히 마리대장 당신이 했다는걸 아세요."


"어찌 잊겠나. 타월 고맙네. 난 이만 가보지."


수복기에서 나와서 수액을 타월로 닦아내고 제복을 갖춰입은후 마리는 사령관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흥. 버러지같은년. 이런 생각을 갖고있는다고 해서 누가 널 따를줄 알아...?"


마리가 수복실을 나가자 다프네가 낱게 읊조렸다.


"...그나저나 내가 1승이야. 파이?"


"..그러게요. ...... 하지만 결국은 제가 이길거 같은데요?"


-잠시 후 사령관실 앞-


약 5분정도 걸어서 수액조차 다 말랐기에 마리는 사령관실 앞에 도착했다. 그리곤 제복을 다시한번 정리한 후 사령관실을 노크했다.


-똑똑-


"사령관 각하. 마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마리? 들어와. 평소대로 열고 들어와도 되는데 노크를 하다니. 좀 놀랍네."


사령관실은 사령관실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난장판이었다. 벽에는 낙서가. 바닥에는 각종 쓰레기와 오물들이 그리고 필기구를 비롯해 책상, 의자조차도 멀쩡한게 찾기 어려웠다. 


"각하. 업무보고 전에 청소를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아..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나중에 알아서 할게."


크게 손사레를 치면서 거부하는 사령관. 왜그런진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청소를 도와준다며 깨끗한것은 아무것도 없는것이라며 다 때려 부수던것이 자신이었다.


"..아닙니다 사령관 각하.. 이 어리석은 부하를 용서하십시오.."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 마리는 억지로 힘을 주며 눈물을 멈추고자 했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마..마리 왜그래? 이번 전투에서 많이 아팠어? 내가 작전을 실패해서 그래? 미안해."


사령관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만들었다. 자신이 선동해서 이렇게 만들고 있었다.


"아닙니다. 사령관 각하. 부디 앉아서 쉬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청소를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가 청소 할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마리의 목소리는 굳건하였지만 말끝에는 거의 흐느끼듯이 애원하였다.


사령관 역시도 평소와 다른걸 느끼며 의자에 깊숙히 기대어 앉았다. 삐그덕 거리는 낡은 의자였지만 사령관은 익숙하다는듯이 앉았다.


저 의자도 기억이 난다. 멀쩡하고 멋진 의자는 사령관이 자릴비운사이 넘어뜨려 부서졌다고 하고 낡은의자로 갖다둔것도 마리 자신이었기에.


마리는 곧장 깨끗한 걸레를 빨아 벽에 낙서부터 지우기 시작했다.


-안여돼 사령관 지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어흠-


-능력도 없이 사령관자리에 앉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너만 오면 우린 무적일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다치고 죽어야만해?-


-너때문에 우리 부대원이 얼마나 더 아프고 고통받아야해? 그럴바엔 철충에게 지휘를 시켜-


-각하가 인간이 아니라면 이곳에 발을 붙이고 있는게 당연할거 같습니까?-


누가 썼는지 마리는 모두 알아보았다. 브라우니, 레오나, 노움, 메이,.. 그리고 자신...


마리는 이 기억을 지우듯이 거칠게 걸레질을 했다. 그리고 그 낙서들은 차근차근 지워졌다. 하지만 머릿속엔...


마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바닥에 흩뿌려진 오물과 쓰레기를 담았다.


"도와줄게 마리. 같이 치우자."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을 돕고 있는 사령관이었다.


"아닙니다. 각하. 제가 응당 할일입니다."


"마리의 마음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 이번 전투전까지만해도 나에게 이렇게 충성스럽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


마리는 입을 꾸욱 다문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사령관도 마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청소하는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마리는 청소하던 손을 멈추고 사령관앞에 엎드려 머리를 바닥에 쾅 쾅 찧으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마..마리? 왜그래? 멈춰"


사령관이 급하게 마리를 말렸지만 마리는 눈물을 흩뿌리며 머리를 바닥에 박고 사령관에게 사과할뿐이었기에 사령관은 비상패널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리는 그것을 말렸다.


"사령관님.. 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저는.. 무조건.. 이순간부터 죽을때까지 사령관 각하만을 모시고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마리..."


마리는 여전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어서 표정은 알수 없었으나 목소리만큼은 누가 듣더라도 굳건한, 전장에서 지휘하던 그 당당하고 강한 목소리였다. 그 기세에 사령관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다.


"일단 청소나 마저하자. 곧 소완이 음식을 가져올거야."


음식. 그래 그 주방의 마녀. 음식을 조리하면서도 각하께 맞지 않는 음식이라던지 조합이 안좋은 요리를 내와서 사령관 각하를 음해하려한 바이오로이드.


이젠 내가 사령관 각하의 곁에있다. 반드시 제대로 된 음식을 받아내고 말겠다.


청소가 어느정도 되고 마리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사령관 실을 나서며 사령관에게 조언했다. 


반드시 제가 먼저 와서 음식을 확인할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사령관 각하.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는일 그것빼곤 할수 있는게 없었다.


마리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선지 1분도 되지 않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인간님. 식사는 문앞에 두지요. 다 드시면 내어주시길."


소완은 거칠게 식사를 방앞에 내려두곤 식사수레를 밀고는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침 마리가 돌아왔다.


-똑똑-


"..누구야?"


"각하 저 마리입니다."


"들어와도 좋아."


마리는 소완이 두고간 식사를 들고 들어오며 살짝 보았다.


T본 스테이크, 그리고 머그컵에 담긴 커피. 메뉴로는 나쁘지 않지만 고기의 육질은 한눈에 봐도 삼등급 그리고 커피는 이미 차게 식어버렸고 향도 다 날아간지 오래였다. 마리는 특히 커피를 즐겨 마셨기에 이 커피의 품질도 한참낮은것임을 알아봤다.


"각하, 차라리 이 식사를 물리시고 제가 지휘관용 식사를 받아오겠습니다."


"아니야, 마리. 난 이정도로 충분해."


얼마나 신뢰도가 떨어졌는지 알수있다. 마리 자신이 나갔다온 3일이 걸렸던 임무. 그 사이에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그 인간에게 매료되어있는지, 그리고 그 인간의 술수로 인해 이 사령관 각하의 평판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안됩니다. 각하께선 그 인간을 포함하더라도 인류 마지막 2인이십니다. 이런 대우는 절대로 참을수 없습니다."


마리는 그 저질상을 들고 주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콰앙-


"어느분이시기에 주방을 이렇게 거칠게 들어오신단 말씀이옵니까?"


날이 가득선 소완의 말. 하지만 마리의 분노는 그정도는 가볍게 받아내고 분노를 쏟아내었다.


"소완. 자네의 임무가 무엇이지? 인간님을 위하여 지고의 쾌락이 담긴 식사를 내어주는것이 아니었나? 어째서 사령관 각하께 이런 삼등급 고기와 차게 식은 커피를 내어드릴수 있지?"


"마리대장이셨사옵니까? 마리대장도 참으로 웃기시옵니다. 지휘도 제대로 못하고 바이오로이드들의 성벽도 채워주지 못하는게 인간님이랍시고 사령관 자리에 앉아있는게 맘에 안든다고 저에게 밤마다 오셔서 뒷담화 하시기에 그렇게 식사를 내어주었을뿐이온데 무슨 문제가 있단말이옵니까?"


또 자신이 시작한일이다. 이것도 기억한다. 그땐 분명히 말했었다.


-지휘도 못하고 그렇다고 섹스어필도 안하는게 자원을 축내는 돼지를 구한거 같군. 차라리 라비아타 통령때 수비만 할땐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가지 않아서 다치는 인원도 적었는데 말이네-


머릿속에 강타하는 그때의 자신이 한말. 기억이 났다.


"마리대장. 남탓을 하시기전에 본인이 그렇게 행동하셨던것을 잊으셨사옵니까? 저는 엄연히 식사를 준비할뿐이옵니다. 소속도 다르지만 대장 뜻대로 돼지음식을 만든것뿐인데, 왜 제게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사옵니다."


"..그렇군. 이것도 내 죄였어..."


"마리대장. 오늘 이상하시옵니다.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시지요. 이 음식은 안드신다고 가져오셨으니 폐기처분 하겠나이다."


소완은 마리의 손에서 삼등급 고기와 커피를 잔반처리통에 던져넣곤 칫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럼 소완 주방장. 내가 아직 수복된지 얼마 되지 않아 허기가 지는데 지휘관식사 1인분 부탁해도 되겠나?"


"...곧장 준비해드리지요. 드시고 가시나이까?"


"아니.. 아닐세. 숙소에 가져가서 먹을 예정이야. 새벽 근무자가 누군지 알수있나?"


"오늘은 아우로라 양이옵니다. 그녀를 통하여 반납하여 주시길 바라옵니다.


"알겠네. 식권은 나중에 부하를 시켜 보내지."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소완의 주방용 중식도가 마리앞에 꽂혔다.


"주방에서는 그 누구도 제게 명령하지 마시옵소서. 저번이야기도 바깥이기에 받아들인것. 주방에선 두번다시 명령체를 꺼내지 않으셨으면 하옵니다."


"...알겠네."


그리곤 소완은 중식도를 뽑아들고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야식은 야채볶음밥과 계란국이옵니다."


거의 모든식사에서 고기나 어패류가 빠지지 않던 소완의 음식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오늘은 메뉴가 검소하군. 이유가 있나?"


"......."


"뭐라고?"


"주인님께 가져다 드릴것이 아니옵니까. 마리대장이 주인님을 괄시하라 하여 그리 요리를 가져다주는 소첩인들 마음이 편치 않았나이다. 하지만 마리대장이 주인님을 모시기로 하였으니 저도 다시 주인님을 제대로 섬기고자 하는것이옵니다."


... 자신도 배신을 했다는걸 알긴 아는것같다. 하지만 누구라도 사령관 각하의 편이 된다면 큰 도움이 될것이다.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소완은 초록빛이 그득한 야채볶음밥과 계란국을 꺼내왔다.


"주인님이 요 근래에 소첩의 하찮은 요리로 속이 좋지 아니하실테니 계란국으로 속을 풀고 천천히 꼭꼭 씹어드시라고 전해주시옵소서."


"자네가 같이 가서 용서를 비는게 어떤가?"


"...주인님께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빌기엔 제가 아직 염치가 없나이다.."


"..그런가.. 그럼 음식은 내가 가져가지. 하지만 소완 주방장. 용서는 '지금'밖에 빌 수 없네. 나중이 되면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지 못하니까.."


그 말에 소완이 잠깐 움찔하더니 곧장 일어나 주방밖으로 나와 요리가 담긴 쟁반을 직접 들고 사령관실로 향했다.


그 둘의 발걸음은 어느때보다 가벼웠으며 소완은 약간 불안한 기색을, 그리고 마리는 입가에 아주 흐릿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


네 아직 테스트중입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