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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의 어느 장소. 그곳이 어느 곳이건 무슨 상관일까. 뭐, 런던이라는 지명을 댄 이상 어느 정도 부연설명은 필요하겠지. 서울 어딘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광경을 예상할까. 지명이란 너무나도 광할한 지역을 일반화하기 마련이었다.

 그곳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런던과 다른 곳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곳을 방문하는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을 것이었다. 여기가 런던이 맞아? 라고. 그정도로 외지고 외지인의 방문을 환영하는 곳이 아니었다.

 2100년대라 말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현재와는 다른 풍경을 떠올리겠지. 하늘에는 정체모를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하늘을 찌르다못해 성층권까지 이어진 초고층 마천루,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그 무언가.

 그런 환상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사이언스 판타지, SF라는 장르였다. SF는 그런 것의 약자가 아니야. 그런 말을 하겠지. 뭐 어떻단 말인가. 대부분의 SF란 장르는 지나치게 발달한 과학은 마법와 구별할 수 없다는 명목으로 실제 미래와는 다른 미래상을 보이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서는 실제 미래와는 동떨어진 미래상을 보여주는 것은 언어도단이겠지. 아니, 나는 대놓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진짜 미래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2100년대에 멀쩡하게 살아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설령 그 시대에 살아간다 해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시대의 발전을 거부하는 존재가 되어있겠지.

 그러니까 이번화의 배경은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사이버펑크 시대의, 바이오펑크 시대의, 아니, 무슨 펑크든 좋다. 조별과제 펑크만 아니라면 무슨 펑크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그 펑크가 무엇이든 그 펑크와는 다른 모습의 배경일 거니까.

 세계 최고층 마천루가 몇층이라 생각하는가. 상관없다. 지금부터 말할 지역의 최고층 건물은 고작 4층에 불과하니까. 런던의 액튼. 그곳이 어떤 곳이냐 물을 것이었다. 런던에 그런 곳도 있는 것이냐 물을 것이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런던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런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다른 매체를 통해 재가공된 런던이었다. 어떡하란 말인가. 런던행 비행기표가 얼만지 아는가? 모른다고? 어차피 상관없었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범위 밖의 돈일 테니까.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런던에 다녀오라고? 제발 그러고 싶다.

 뭐, 그렇든 말든 런던 외곽의 액튼은 언제나 그런 곳이었다. 수도의 외곽이란 언제나 그런 곳이었다. 중심부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밀러냐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는 곳이었지만 수도라는 이름 때문에 높은 집값에 시달려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반면 중심부에서 먼 곳이라는 이유로 주거 수요는 높지 않았고 그에 따라 재개발이 될 일이 적은 곳이었던 것까지 겹쳐져 의외로 빈민가가 형성되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길가마다 갱단원을 볼 수 있었고 지갑을 남들에게 보여준 날에는 다시는 자신의 지갑을 볼 수 없게 되기도 했다.

 낭만적인 거리냐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바닥이란 것에 사실은 지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시대에 비하면 그곳이 인간의 인간다움이 살아있는 곳이냐 물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곳에 낭만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그곳의 월세를 겨우 낼 수 있는 일반인들과 정부와 기업의 시선을 피해 자리를 마련한 갱단이 마련한 보금자리뿐이었다.

 액튼의 어딘가, 그중에서 겨우 2층밖에 안되는 건물의 안, 그 1층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과 계단과 테이블과 의자 4개와 그 의자 4개에 앉을 수 있는 네 사람이 그 건물의 1층을 지키고 있었다.

 지킨다. 그 말에는 어폐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의 한 군부대를 보자. 그 부대의 초소는 항상 두 사람이 ‘지키고’있었다. 그 ‘지킨다’라는 말을 사전에 적힌 그대로를 믿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요. 간부님. 당신이 복무하고 있는 부대의 병사들은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을뿐더러 근무수칙에 따라 선임은 잠에 빠져 들었고 신참은 억지로 모든 일을 떠맞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 건물의 1층을 지키고 있는 네명의 갱단원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의무란 무엇인가. 2층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갱단원들을 위해 1층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지킨다’라는 개념은 군인과 다른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킨다라는 것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쓸데 없는 사람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것, 그리고 경찰이 건물에 눈치 없이 방문했을 때 2층의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게 경고하고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의 ‘지킨다’라는 것이 자리에 앉아 문에서 눈을 떼고 자신들이 들고 있는 카드를 보며 카드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뭐, 뭐든 상관 있을까. 그들이 할 것없이 지내는 것은 갱단의 일을 막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월급을 누가 줄 것이란 말인가. 지역 사회? 정부? 물론 원칙상은 그랬다. 그러나 경찰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정부가 아니었다. 그 지역의 권력을 쥔 것은 정부도, 국민도 아니었다. 바로 갱단이었다. 권력은 무엇이 만들어낸단 말인가. 바로 돈이었다. 돈이 많은 곳은 기업이었다. 그러나 기업은 자신들을 위해 돈을 쓸 뿐이었다. 세상에는 낙수효과란 없었고 돈이 많은 놈들은 그 돈을 쓰기보다는 돈을 더 불리는 곳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 다음이 누군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갱단. 그들이야말로 지역을 휘어잡고 있는 존재였다.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니라 명성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갱단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그들의 이미지 덕분이었다 그들이 지키라는 문은 지키지 않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카드게임을 하더라도 그들의 자리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오랜 세월 만들어진 그들에 대한 이미지 덕분이었다는 말이었다.

 “어제 말야. 동생놈이 말하더라고. 자기는 동정 뗐으니 이제는 어린 애 취급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래서 걜 추궁했어. 어떤 미친년이 니놈과 빠구릴 뜨냐고 말야. 그랬더니 걔가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사이먼 가라사대. 그의 이름은 사이먼이었다. 그는 덩치가 큰 남자였고 그의 얼굴의 대부분은 수염과 숱이 많은 머리칼이 가리고 있었다. 그는 다름 사람보다 몸무게는 배가 나갔고 그는 그 무게는 그가 가진 근육 때문이라 말하곤했다. 뭐, 근육의 양이 상당한 그였지만 근육 때문에 그가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강간? 너나 니 동생이나 똑같은 성경험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게 말한 그는 톰이었다. 토마스? 톰슨과 같은 이름의 애칭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톰이었다. 다른 이름의 축약어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톰이었다. 톰이란 이름의 애칭을 뭐라 부를까. 그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톰이었다. T라고 심지어 한 음절의 이름조차 줄여 부를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난 그년을 강간한 적이 없어! 상호동의간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그년이 뭐라고 했건 나는 분명 동의하에 한 섹스였다고.”

 사이먼이 말했다.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한 건 그의 맞은편에 앉은 콜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 앉은 유일한 흑인이었다. 그의 목소리 톤은 낮아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가 바닥을 긁고 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손에 든 카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동생이 한 건 강간이라는 것에 대한 반박은 안하는군.”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방 안에 흘러갔다. 일부러 햇볕이 들어오지 않도록 모든 창문을 나무 판자로 가린 방은 사람 목소리가 가득메우기 좋은 곳이었다.

 “그야 그놈의 첫경험은 핏주머니 년이었으니까 그놈이 동의를 받고 핏주머니와 관계를 맺겠어? 동의는커녕 돈주고 했다고 해도 나는 장하다 생각할 거야. 그 새끼라면 길가던 핏주머니 따먹어도 이상한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 새끼가 길가던 핏주머니를 강간했단 거야?”

 콜은 사이먼의 말을 듣고는 놀라며 말했다. 그리고는 그는 남은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맨 위의 한장을 뒤집어 그 옆에 놓았다. 스페이드 3이었다.

 “아니, 좀 사람 말을 듣고 말하면 안되는 거야? 그래, 내 동생새끼는 개자식이고 그런 짓을 해도 이상한 놈은 아니야. 그렇다고 말해서 진짜로 그런 일을 벌인 건 아니라고. 혹시 몰라.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을 벌였을지도 모르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야. 핏주머니에게 박은 걸 동정 탈출 취급으로 쳐야 하냐는 거야.”

 사이먼은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에 손에 쥐고 있던 카드 하나를 내려놓았다.

 “개소리 하지마. 핏주머니와 박은게 동정 졸업이라 한다면 내 첫경험은 내 왼손이었어. 오른손은 마우스를 붙잡느라 바빴으니까. 그리고 그 손으로 난 카드를 내려놓을 거야.”

 콜은 그렇게 말하면서 왼손으로 카드를 한장 내려놓았다.

 “그게 내가 말하고 싶던 거야. 바이오로이드는 노카운트라니까? 그런데 그 새끼는 자기도 섹스해봤다면서 자기는 이제 총각이 아니란 거야. 가소로운 소리지. 다들 고등학교 시절에 총각딱지는 떼고 시작하는 거잖아.”

 콜의 옆에 앉은 사이먼의 말에 테이블에 앉은 모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참고로 내 첫 경험은 비비였어. 걘 진짜 쩔었어.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여자보다도 좋은 여자였지.”

 “맞아. 비비는 개쩔었어.”

 톰이 말하자 사이먼은 동의한다는 듯 말했고 남은 둘은 말 대신에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신하려 했다. 그 순간 넷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깐, 여기에 앉은 전부 비비로 동정 뗀 거야? 이 동네에서 비비랑 떡치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한 거야?”

 그 사실을 먼저 언급한 것은 콜이었다. 그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씨발.”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이 거리의 사람들한테 물으면 자신들이 한 경험 중에 비비랑 했던게 제일 쩔 거라고 말할 거야.”

 “그래. 그정도로 개쩔긴 했지. 그런데 대체 비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랑 한 거야? 나는 100번째 안에 드는 건 맞지?”

 “정말 그럴 거라 생각해? 일단 이 동네 남자들 수부터 계산해볼까?”

 “씨발.”

 사이먼과 콜의 대화는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는 정적이 흐르고야 말았다. 소리를 낸 것은 다음의 차례가 돌아온 P가 카드더미에서 카드를 한장 가져가며 낸 소리였다. P. 그의 이름의 이니셜이 무엇을 딴 것일까, 폴? 피터? 그런 것은 의미없었다. 사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쓰는 사람이라고는 그가 자신을 P라 소개한 것을 들은지 20초가 지나지 않은 사람들 뿐이었다.

  “그래서 말야. 핏주머니라는말, 그게 왜 사람들이 비하어라고 쓰지 말라고들 하는거야.”

 “이제껏 조용히 있다가 한다는 말이 그런 거냐.”

 사이먼은 자신이 들고 있던 카드를 한장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르는 거야? 세상에는 그냥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간섭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야.”

 콜은 무심한 듯 말하며 카드를 세 장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조금의 경계심을 가졌다.

 “그런데 말야, 피주머니는 정도가 심한 거지 않아? 핏주머니는 피와 주머니의 합성어잖아. 피와 주머니야. 그게 왜 비하어가 될 수 있단 거야?”

 “뭔가 이유라도 있는 건가 보지. 씨발, 개년이라는 말도 비하어라고 쓰지 말라고 하잖아.”

 이번 차례는 톰이었다. 그가 내려놓은 카드는 한장이었다.

 “그래, 그 말은 비속어로 시작한 거잖아. 핏주머니라는 말은 다른 곳에서도 쓰인다고. 내 사촌 알아? 레베카라고 하는데, 여기가 아니라 에든버러에 있는 병원에서 일해. 연휴때마다 집에 와서 스코틀랜드인들과 일하기 힘들다고 불평불만을 해대느라 귀찮긴 한데 뭐 그런 이야기는 여기서 할 법한 건 아니겠지만.”

 이미 세사람 앞에서 수도 없이 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말야, 내 사촌이 에든버러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는데 말야,”

 “잠깐, P. 네 사촌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 조무사 아니야?”

 P가 카드를 내려놓자 사이먼이 말했다. 참고로 간호 조무사에 대한 비하적 발언이 아니었다. 다름에 대한 표현이었다.

 “뭐?”

 “맞아. 네 사촌 레베카.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 조무사잖아.”

 사이먼의 말에 동조한 것은 다음 차례인 톰이었다.

 “잠깐, 잠깐. 대체 너희들은 왜 내 사촌이 뭘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건데.”

 “첫번째, 그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수도 없이 했고 레베카가 보지 하나는 기깔나게 조이거든.”

 “뭐?”

 P는 톰의 말에 당황하며 말했다. 앞 이야기는 그도 알고 있었지만 뒷 이야기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맞아. 레베카 보지놀림 하나는 개쩔었지.”

 콜의 말이었다. 그는 기분좋게 카드 한장을 가져갔다.

 “간호사라고했지만 레베카는 자길 간호 조무사라 말했어. 본인이 더 정확한 법이지.”

 “그리고 진짜 명기였지.”

 사이먼의 말에 P는 정색했다.

 “잠깐,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다들 레베카랑 떡쳐본 거야?”

 “그리고 개쩔었지.”

 “쩔었어.”

 “최고였지.”

 셋의 말을 들은 P는 카드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 에든버러에서 일하고 사는 내 사촌 레베카를 여기에 있는 모두가 떡쳐본 경험이 있는거야? 우연히 에든버러에 놀러갔다가 한 사람을 공통으로 만났을 리가 없는데 그러면 연휴에 한번 오는 레베카를 무슨 수로... 오 시발. 레베카 이년 연휴때 놀러와서 남자들 꼬셔서 떡치고 다녔던 거야? 오오, 레베카. 다음 연휴때 런던 오면 죽을 줄 알아라.”

 “P, 왜. 혼자 레베카 보지 맛볼 수 없어서 화난 거야? 그래서 걔 죽을 때까지 떡치려고?”

 콜의 말에 P는 화내며 말했다.

 “아니,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깊이 파고 드는 거야! 레베카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렇게 다른 길로 빠지는 거냐고.”

 “간호 조무사.”

 “그래 씨발, 간호 조무사.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이번에는 사이먼의 말에 P가 언성을 높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그게 아냐. 내 사촌이 에든버러에서 간호사로,”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

 콜의 말에 사이먼과 톰이 동시에 덧붙였다. 신나게 P를 놀리고 있던 세 사람이었다.

 “그래, 간호 조무사. 씨발 조무사. 레베카가 병원에서 간호ㅅ... 조무사로 일하고 있는데 말야, 환자들이 피를 흘리면 피를 넣어주잖아. 그걸 뭐라고 하지? 피 주입은 아니고 흡혈도 아닌데 갑자기 단어가 기억이 안나는데.”

 “수혈?”

 콜은 카드 두장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수혈. 수혈을 위해서는 핏주머니가 필요하잖아. 그러면 말야. 레베카가 병원에서 일하면서 다른 간호사들에게,”

 “그 간호사들 알고 보니 조무사들 아니야?”

 “하. 하.”

 사이먼의 말에 P는 웃는 척하며 답했다.

 “다른 누군가든간에 ‘핏주머니 좀 가져다줘.’ 라고 하면 그게 비하어가 되는 거 아냐?”

 핏주머니를 달라고 하는 의료종사자가 어디에 있어? 라고 할지 모른다. 누가 그러겠는가. 핏주머니라니, 그런 소리를 하는 하는 한국 사람이 있단 말인가? 영국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핏주머니, 영어로는 Bloodbag였다. 핏주머니든, 혈액팩이든 영어로는 같은 단어였다. 번역의 한계.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바이오로이드를 비하하면서 수혈팩이라 말하면 그것만큼 웃긴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건 상황이 다르지. 바이오로이드를 핏주머니라 부르는 건 비하어라고 할 수 있지만 병원에서 혈액팩을 핏주머니라 하는 건 비하어가 아닌 거야.”

 “그건 이중적인 거 아냐?”

 톰의 말에 P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톰은 한숨을 쉬며 카드를 내려놓더니 말을 이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고. 내가 만일 콜을 니그로라 부르면,”

 “어이.”

 톰의 말에 콜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흑인을 니그로라 부르는 것은 대부분의 서양 국가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예를 들어보자는 거지. 이건 예야. 그렇다고 내가 사이먼을 니그로라 부를 수 없잖아.”

 “워, 워. 말 조심해.”

 사이먼은 양손을 들며 진정하라는 제스쳐로 말했다. 물론 카드를 든 왼손의 패가 보이지 않도록 말이었다.

 “어쨌든 니그로라는 말은 비하어지만 여기 앉은 이 검은 새끼가 아니라 진짜 니그로를 니그로라 부르면...”

 “그냥 예시를 잘못 들었다는 걸 인정해.”

 “그래, 시발. 나도 내가 뭔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콜의 말에 톰은 두손두발 다 들며 말했다.

 “그럼 누가 적당한 예시를 들어볼래.”

 “이건 어때.”

 사이먼의 말이었다.

 “내가 니들을 똥구멍 새끼들이라 하면 비하어 맞잖아. 하지만 비뇨기과 의사가 같은 단어를 쓴다면 그건 진단하면서 똥구멍을 똥구멍이라 한다면 비하어라 할 순 없는 거겠지.”

 사이먼의 말을 들은 콜은 고개를 저었다.

 “그 예시도 틀렸어. 비뇨기과 의사라면 똥구멍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항문이라는 제대로 된 명칭을 쓰겠지. 이 똥구멍아.”

 “니가 그럼 제대로 된 예시를 들어봐. 우리 예시보고 뭐라 하지 말고.”

 콜은 대답대신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는 그 손가락과 엄지로 카드 한장을 가져갔다.

 “그럼 내 말이 맞는 거지? 결국 핏주머니는 비하어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거고 너희들은 전부 똥구멍같은 새끼들이란 거야. 어떻게 네 명이 모여놓고는 홀덤 하나 할 줄 몰라서 원카드같은 게임이나 하고 있냐는 거야. 참고로 이 말은 내가 카드를 내려놓은 다음에 한 말이야. 이제와서 원카드라 말한다고 해도 이미 늦은 거란 거지. 알겠어? 똥구멍 핏주머니들아? 니들이 헛소리 하는 동안 나는 이 게임에서 이겼다는 거야.”

 P는 긴 일장 연설을 한 뒤, 손에 든 마지막 카드를 카드 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영국 한복판에서 왠 원카드냐고? 어쩌다보니 전세계적 유행을 타게 된 게임이라는 것으로 적당히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에 관한 깊은 설정을 짠 것을 보여준다면 김지석과 애덤 존스의 첫 만남까지 올라가게 되니까.

 “시발?”

 다음 차례인 톰은 어이없다는 듯 카드판을 내려다보았다.

 “잘 있어라 병신들아. 승자는 담배나 한대 피고 올테니까. 패자들은 남은 찌꺼기를 어떻게 나눌지나 고민하라고.”

 P는 테이블에 놓인 판돈의 대부분을 집어가며 말했다. 그가 들고가고 남은 판돈은 처리하기 귀찮았던 그들이 올려놓은 동전들 뿐이었다.

 “논리로 이길 생각을 하지 말고 카드 게임을 이길 생각을 했어야지. 병신 패자들아!”

 돈을 주머니에 넣은 P는 웃으며 양손으로 중지를 올렸다. 그에 다른 사람들 역시 중지로 화답했다.

 “레베카 앞에서 좆이나 까라!”

 “비비한테 똥구멍이나 박혀라!”

 “시발 니거 새끼가.”

 그와 함께 적절한 욕설이자 사람에 따라서는 칭찬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날리던 순간이었다.

 쿵쿵.

 둔탁한 소리가 철제문을 통해 울려퍼졌다.

 “누가 온 거야?”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던가?”

 일반적인 소리와는 달랐지만 분명 그 소리는 노크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문은 다시 쿵쿵. 하는 둔탁한 소리를 냈다.

 “P, 니가 나가봐.”

 콜은 마침 문 근처에 서있던 P를 향해 말했다.

 “내가 왜. 나는 승자라고.”

 “그러니까 제일 할 게 없는 사람이잖아. 마침 제일 가깝고.”

 “알았어. 패자놈들아.”

 P는 뒤로 중지를 날리며 문으로 걸어갔다.

 “누구쇼!”

 “벨아이아! 문 열어!”

 P는 문에 나있는 작은 창을 열어 바깥을 보았다. 문앞에는 거의 벗다시피한 여성이 서있었다. 어떻게 피부의 대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가 최대한의 천을 써서 고민한 흔적이 전신에 걸쳐서 걸쳐진 옷을 본 P는 그녀를 보자마자 침을 삼켰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른 의문을 가졌다.

 “벨아이아? 그게 이름이야?”

 “그래, 벨아이아. 이름이지. 문을 열어. 그렇지 않으면 후회될 일이 일어날테니.”

 “그런 이름도 있어? 누구 지인이나 가족이라도 있는 거야? 어이, 너희들 아는 사람중에 벨아이아란 사람 있어?”

 P는 여전히 테이블에서 카드게임을 계속하고 있는 세 사람에게 물었다.

 “벨아이아? 그게 이름이야?”

 “그런가봐. 있어?”

 “없는데?”

 대답을 들은 P는 문 밖의 여성에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몸팔러 온 핏주머니야? 집 잘못 찾아왔어. 우리랑 떡치고 돈 안받아간다면 환영이지만.”

 P는 슬쩍 그 여성의 가슴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이오로이드라 해도 믿을 법한 가슴 크기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빗치였다면 뒤에 빗치를 데리고 오지 않았겠지. 이건 위협 맞아. 그러니까 문을 열...”

 여성의 뒤에서 그녀의 말에 맞추어 두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그것들은 키마저 커서 그것들의 얼굴이 문에 난 창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잠깐, 혹시 우리 보스 지인이야? 잠깐만 연락해보고 올테니 기다려봐.”

 P는 문에 난 창을 닫고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본 사이먼은 짜증난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해? 뭐하는 놈인데!”

 “모르겠어! 보스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전화나 해보려고.”

 “그냥 꺼지라고해! 보스 지인이었으면 우리가 알거나 우리한테 연락을 했겠지. 분명 그런 놈들이야. 보험장사하러 온 보험꾼이라 교단에서 보낸 전도사 같은 거 있잖아. 쓸데없는 이야기 하면서 우리 돈이나 뜯어갈 생각이겠지. 벨아이아? 이름부터 수상하잖아! 딱봐도 교단 놈들이네. 아이. 시발! 뭐 제대로 돌아가는게 없어!”

 사이먼은 말을 마치고 나서는 짜증을 내며 몇장의 카드를 가져갔다.

 “알았어!”

 P는 그의 말을 듣고는 문에 난 창을 다시 열고는 밖의 여자에게 외쳤다.

 “어이, 벨아이아씨. 여기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개인 사유지라고. 우린 코헤이에 아무 관심도 없으니까 갱단을 갱생하려는 생각은 일체 하지 말고 돌아가!”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안돌아가는 놈들이네. 숫자는 셀줄 알아? 몇까지 셀 수 있어? 아니, 숫자가 무슨 뜻인지 알아?”

 “누굴 무시하나! 숫자를 모르는 바보가 어딨어! 하나, 둘, 셋.... 그러니까 한 203까지는 셀 수 있어!”

 “셋은 셀 줄 안다는 거네. 셋 셀테니 그 안에 문을 열어. 안그러면 여기서 문을 열고 들어갈 거야.”

 “뭐야, 열쇠 가지고 있던 거야?”

 “아니?”

 여자는 P의 말에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문을 어떻게 연다는 거야. 게다가 이 문은 밖에서 열 수 없게 열쇠 구멍도 없어. 열쇠가 있다 해도 이 문은 못 열 거야.”

 “셋.”

 여자는 문에서 물러나 옆으로 빠지며 말했다

 “마술사야?”

 “둘.”

 여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만은 들려왔다.

 “교단 장난은...”

 “하나.”

 “보고 싶...”

 폭음이 울려퍼졌다. 문의 반대편에 부착한 폭탄이 폭발하며 문은 순식간에 튀어 날아갔고 두꺼운 철제 문은 그 바로 뒤에 서있던 P를 쓸고 지나가 바닥에는 피만 남아있었다.

 “뭐야!”

 사이먼과 톰, 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두기의 양복을 입은 노움이 들이닥쳤다. 폭발로 일어난 연기를 가르고 나타난 둘의 손에는 기관총이 들려있었다. 그 기관총은 불을 뿜었고 순식간에 세사람은 총알에 벌집이 되었다.

 “으 시끄러워. 대체 영국의 인심은 어디에 갔다는 거야. 방문자에게 문을 열어주는게 그렇게나 힘들었던 거야?”

 그녀는 바닥에 난 핏자국을 하이힐 끝으로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용건을 정확하게 말씀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벨아이아님의 말을 알아듣기에는 지능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던 모양입니다.”

 “뭐, 저치들이 지능이 딸리는 거지, 내가 잘못한 건 없는 거잖아? 더욱이 원하는 것은 얻었고.”

 한 노움의 말에 벨아이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계단의 맨 아래의 나무판이 총알에 맞아 나무파편을 튀겼다.

 “2층. 제압해놔. 죽이진 말고.”

 벨아이아의 명령에 노움 중 하나가 허리에 찬 벨트에서 수류탄 하나를 꺼내었다. 그것은 각도를 계산한 뒤 수류탄을 던졌다. 계단 옆 벽에 한번 튕긴 수류탄은 2층으로 날아 올라가더니 그곳에서 폭음을 울렸다.

 폭탄이라기에는 작은 소리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노움의 기본 장비 중 하나인 발포 콘크리트 수류탄이었다. 나무로 된 천장과 계단 옆으로는 아직 굳지 않은 콘크리트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인 제압용으로 경도가 조절된 수류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 폭발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죠.”

 그렇게 말한 뒤 노움들은 2층으로 돌입했다. 콘크리트가 부숴지는 소리가 몇번 나더니 노움의 말이 들려왔다.

 “제압 완료했습니다. 벨아이아님. 이제 올라오셔도 됩니다.”

 2분도 걸리지 않았다. 블랙리버의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는 언제나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 잠깐만, 지금 뭐하는 거야!”

 벨아이아가 2층에 올라가자 한 남자가 의자에 묶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 여기저기에 회색 콘크리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아 그는 발포 콘크리트에 휘말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를 콘크리트에서 빼낸 노움들에 의해 구속이 된 것이겠지.

 “너희들 누구야!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틀림없이 보복을 당할 거야!”

 “보복이라. 아니아니, 그런 건 바라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말이야. 당신이 한 사람을 불러주는 거야.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을 테니까.”

 벨아이아는 의자를 하나 끌고와 그 남자의 건너편에 앉으며 말했다. 그녀가 손짓을 하자 노움이 그녀에게 권총을 쥐어주었다.

 “뭐? 누굴 불러달라는 거야. 겨우 사람 하나 부르겠다고 이 사단을 치는 거야?”

 “그 남자라면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 비니 맥칼리스터. 그 남자를 불러. 안그러면.”

 벨아이아는 권총으로 남자를 겨누며 말했다.

 “난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너도 알고 싶지 않겠지? 걱정마. 나는 기회를 여러번 주는 사람이야. 거절을 몇번 해도 좋아.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 거절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벨아이아는 남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남자의 다리에 구멍이 뚫리며 피가 튀었다.

 “으아아악!”

 “나는 몇번 거절하길 바라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지?”

 벨아이아는 이번에는 다른 곳을 겨누며 말했다. 그런 벨아이아를 보는 남자의 눈은 공포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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