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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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파란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물드는 오후 오르카호의 수많은 바이오로이들은 저 마다의 휴식을 가지고있었다.

그녀들은 카페테리아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오락시설에서 오락을 즐기는 둥 멸망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사령관은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오르카호를 시찰하기로 한다.


"별 일 없지?"


"네. 주인님 오늘도 평화로운 오후에요."


경호실장인 블랙 리리스는 두손을 공손히 모아 자신의 주인을 향해 꾸벅 인사한다.

그러고는 사령관의 두 발자국 뒤에 서서 그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가


"아. 리리스, 안 따라와도 돼. 그냥 산책하는거니깐.'


"안돼요. 경호실장인 제가 빠지면.."


그녀는 조금이라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사령관 또한 물러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리리스, 자꾸 그러면 리제나 다른 팀한테 내 경호를 맡길꺼야."


"...알았습니다. 물러나죠.."


그녀는 두손으로 치맛자락을 들어올려 인사하고 물러난다. 컴패니언 시리즈가 아닌 다른 팀이나 철천지원수인 시저스 리제가 

주인의 경호를 맡는다는건 용납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몰래 따라오지마."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며 사령관이 핀잔을 주자 그녀는 더욱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벗어났다.

블랙 리리스가 사라지자 사령관은 뒷짐을 지고 오르카호를 시찰한다.


"사령관! 이거 먹어봐! 새로운 참치래!"


"사령관님! 초코바 드실래요?"


"각하. 오늘도 평화로운 날입니다."


"그대여, 오늘 밤도 가능한가?"


"이거 봐봐! 네오딤이 알려준 새로운 쾌락이니라!"


"사령관님-!"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그에게 인사하고 먹을 것이나 선물 같은 것을 주고는 즐거워한다.

최후의 인간인 만큼 그는 이 수많은 바이오로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몸이기도하다는 증거인 셈이었다.


'역시...리리스 데리고 올걸..'


그는 양손과 주머니에는 그녀들이 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뒤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사령관님, 꽤나 힘들어 보이는군요."


"나이트 앤젤.... 마침 잘 됐다! 이것 좀 들어줘.."


"하아..알겠습니다."


사령관의 상태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한숨을 쉬며 그의 손에 가득 들린 물건을 들어주었다.


"사령관님은 거절하시는 법을 좀 배워야 할 거 같네요."


"하하..그건 좀 곤란한걸.."


나이트 앤젤과 사령관은 같은 걸음으로 물건을 가득 들고 방으로 가고있었다.


"그리고, 둘만 있을 땐 편하게 불러도 된다니깐."


"하. 하. 하. 괜찮습니다."


그녀는 쓴웃음 짓고는 아무런 말도없이 걷고있었다.

사실 나이트 앤젤은 21스쿼드가 그를 발견하고 오르카호로 안내 받았을 때 제일 처음으로 제조해서 만든 바이오로이드였다.

그 뒤로 그녀는 줄곧 모든 전투에서 사령관에게 승리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그녀가 모든 일에 빠지기 시작했다.

전투도 부관도 전부 다른 바이오로이들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사령관은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그녀는 좀 쉬고싶다고 답했다.


"요새..어때?"


서로 아무 말도 없었던지라 사령관이 제일 먼저 나이트 앤젤에게 물었다.


"메이대장을 보좌해주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렇게 침묵만이 가득했던 동행길은 함장실에서 멈췄다.


"물건 들어줘서..고마워."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입니다."


그녀는 꾸벅 인사하고는 자신의 숙소로 갔다.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령관은 그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사령관에게서 멀어져가는 나이트 앤젤은 사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둘은 오르카호에서 가장 친했었다.


나이트 앤젤이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몇달 전의 일이었다.


"오늘도 사령관이랑 이야기하러 가볼까나~"


"그러게..누가 아니래?"


"맞아맞아.."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문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 납작가슴년말야 자기가 먼저 왔다고 사령관이랑 친구처럼 지내는게 말이 돼?"


"어휴..저번에는 아예 대놓고 팔짱까지 끼고 있었다니깐?"


"하여튼 잡아주는 대장이 없으니깐 부관새끼가 기어오르는거 아냐?"


"사령관님도 참 야속하시지..저딴 납작가슴이나 좋아하고 말이야. 혹시 그런 취향아냐?"


"에이ㅋㅋ설마?"


나이트 앤젤은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고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콤플렉스는 둘재치고 사령관과 아직 합류하지 못한 자신의 대장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자신이 울고있는 것을 보이지않기 위해 더 빠르게 달렸다.

방으로 오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럽게 울었다. 지니야, 실피드, 벤시, 레이스가 그녀를 걱정했지만 그녀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뒤였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사령관에게 달갑게 대하지도 않았으며, 부관도 아르망 추기경에게 넘겼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사령관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쉬고싶다는 말만 했다.

돔 브링어 대원들에게도 이유를 물었지만 다들 침묵으로 답했다. 


그렇게 그 상태로 몇달이나 지난 것이다.

사령관도 더 이상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나이트 앤젤도 더 이상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대령, 같이 술이나 마실래?"


"술도 못 하시는 분이..."


"그냥, 적적해서 같이 마시자고."


"알겠습니다. 안주 좀 가져올께요."


오르카호에 늦게 합류한 멸망의 메이가 같이 술자리를 권했다, 내일 출격도 없었던지라 그녀는 술잔과 마른 오징어, 땅콩을 들고왔다.


"따라드릴까요?"


"됐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도수가 낮은 자신의 잔을 따르고는 나이트앤젤에게 술병을 돌렸다.


"저 혼자서도.."


"상관이 주는 술을 거부할 생각이야?"


"아닙니다.."


나이트 앤젤은 두손 모아 술을 받고는 뒤돌아 마신다.

사령관이랑 친했을 때 배웠던 것이었다.


"그거 들었어? 사령관이 서약한다는 소문말야."


"서약 말입니까?"


"그래, 이제 드디어 결심이 섰나봐."


"그렇군요.."


사령관은 이제껏 그 누구와도 서약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사령관이 서약을 한다니 그녀는 축하해주고싶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무언가가 자신을 후벼파는 기분이 들었다.


"관심없어? 대령, 사령관이 서약한다는데."


"전...관심 없습니다..잘 됐네요..대장님이랑 하시면 좋을텐데."


메이는 와인잔을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너, 사령관이랑 친했다면서?"


나이트 앤젤은 순간 전류가 흐른거 마냥 깜짝 놀랐다. 


"대장님이..어떻게..?"


그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메이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에게 답했다.


"오늘 오후에 레이스랑 같이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사령관이랑 너랑 걷는 걸 봤어. 레이스가 말하더군. 사실 둘이 엄청 친했다고 서로 아주 좋아죽던 사이라고, 그런데 어느날 이렇게 되버렸다고. 어떤 일이 있었던거지, 대령?"


메이가 압박해오자 나이트 앤젤은 하는 수 없이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메이는 그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와인을 비워나갔다.


"완전 바보아냐?!"


메이가 호통을 치자 나이트 앤젤을 자기도 모르게 차렷자세로 섰다.


"남들이 그런 이야기했다고 기죽어서 사령관이랑 일부러 떨어져? 그런 년들이 이야기하는건 그냥 흘려들어!"


메이가 전과는 다르게 강경하게 나오자 나이트 앤젤은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대령, 내가 먼저 사령관이랑 서약하기 전까지는 서약 안 한다고 했다며?"


"네..? 그치만..."


"했어?! 안했어?!"


"해...했습니다..!"


"그런거 신경 안 쓸테니깐 빨리 사령관한테 가서 니 마음을 전해!"


"네...?! 그치만..."


"그치만은 이제 금지다! 셋 세는 동안 안 가면 오르카호 20바퀴다! 하나!"


"네..넵!"

 

나이트 앤젤은 그제서야 달려나갔다.


"하아..하아...야, 레이스.. 나 멋있엇냐...?"


"멋있었습니다. 메이 대장님."


나이트 앤젤은 맨발로 함장실을 향해 달려나갔다. 넘어지고 구르고했지만 계속 달렸다.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신경쓰지않았다.


사령관은 아르망 추기경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서류로 보고 받고있었다.


"..!"


"왜 그래? 아르망?"


"아닙니다. 폐하, 전 이만 자리를 비켜줘야할 거 같습니다."


아르망은 사령관에게 꾸벅 인사하고 물러났다.

사령관은 의아해하면서 서류들을 정리하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함장실 문을 쎄게 두드리고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함장실 문을 열어주니 땀투성이에 발에는 피가 흐르고있는 나이트 앤젤이 서있었다.


"나이트 앤젤?! 이게 무슨.."


"사령관님...아니...사령관... 나 말이야...끄읍..허억....사령관을 좋아해.."


뜬금없는 고백에 사령관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나이트 앤젤은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사령관..좋아해..근데..다른 애들의 말을 듣고 도망쳤어..사령관이 나 때문에 모욕 당하는게 싫었어...근데...이제..."


그녀가 숨 넘어갈 듯이 말을 계속하자 사령관은 그녀에게 다가가 살포시 안아주었다.


"나..말야..나...끄으으윽...흐아아앙..사령관이랑 떨어져 지내는거 싫었어...끄윽..근데 나 때문에..대장이나 사령관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그녀가 말을 하자 사령관은 아무 말없이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나이트 앤젤..힘들었구나.."


"응..히끅..히끅.."


돔 브링어의 부관이라는 자가 이렇게 안겨서 우는 걸 누군가가 보았다면 아마 평생 안줏거리가 되었겠지만 

아르망이 함장실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준 덕분에 이 일은 나이트 앤젤과 사령관 둘만의 비밀이 되었다.


"근데..사령관 서약한다며..?"


어느정도 진정이 된 그녀가 사령관 품에 안겨 질문했다.


"뭐야..소문이 벌써 퍼진거야?"


"그런거 같애, 그래서말야..누구랑 서약하기로 했어..? 분명 앨리스나 포이 같은 몸매가 좋은 바이오로이드겠지..?"


그녀가 점점 침울해져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자 사령관은 웃음 지으며 그녀의 왼손을 잡았다.


"끝까지 비밀로 갈려고했는데.."


"응?"


사령관은 그녀의 왼손 약지에 무언가를 끼웠다. 은색 링에 하얀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였다.


"이...이거..."


"니가 좋든 싫든 난 너랑 서약할려고 했어, 나이트 앤젤..근데 오늘 니가 나한테 찾아와서 고백해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눈에는 닭똥같은 눈물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싫어...? 나랑 서약하는게.."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좋아..!"


그녀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고는 사령관은 그녀의 턱을 살포시 잡고 덮쳤다.

그 날 오르카호에는 또 다른 미스터리가 생겼다고 한다.


서약식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이트 앤젤의 웨딩 드레스 주문에 오드리는 흥분에 광분을 하면서 드레스를 만들었다.


"나이트 앤젤양과 같은 인재에게 드레스를?! 오늘 완전 행복한 날이에요~!"


사령관은 그런 오드리를 보면서 오르카호 갑판에 준비되어가는 서약식장을 바라보았다.


"꽤나 신나보이는 걸 사령관?"


그의 뒤로 메이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메이...정말 고마워."


"흥, 고마우면 다음 서약은 나한테 해주지 그래?"


"하하.. 그래그래."


사령관이 웃으면서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이..! 감히 날 어린 애 취급했겠다?!"


"자자..대장님 진정하시고요..아이스크림 드시러 갈까요?"


"이잇! 너도 날 애 취급이야?....난 엄마는 외계인.."


"네네, 제가 시드릴께요~"


스트라토 앤젤이 메이의 손을 잡고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제 동생 잘 부탁드려요~"


"그래."


꾸벅 인사하고 그 둘은 사라졌다. 사령관은 사이좋은 모녀 같다고 생각했다.


몇시간 후 오드리의 부름을 받은 그는 정장을 입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녹색야광으로 표시된 층수가 점점 갑판과 가까워 질 수록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갑판입니다. 오늘 날씨는 맑음. 구름은 조금 있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안내하는 음성이 끝나자 문이 열렸다.

순식간에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신 사령관은 한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가린 손 밑으로 순백색의 카펫이 깔려있었다. 그는 손을 내리고 저 멀리 있는 자신의 아내를 보았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사령관을 바라보며 웃었다. 

순백색의 드레스에 면사포는 장미모양의 레이스를 달고 있어 멀리서보면 장미를 두른것처럼 보였다.


"오셨나요..? 당신...?"


새로운 호칭에 당황한 그녀였지만 사령관은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면서 살포시 입술을 포갰다.

입술을 포개는 순간 수많은 폭죽이 터지고 환호소리가 들렸다.


"축하해요~!"


"둘이 좀 더 해봐!"


"나도 언젠간 사령관이랑 키스할꺼니깐!"


사령관과 나이트 앤젤에게는 그런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서로의 품에 안겨 서로의 심장소리밖에 안 들렸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것있엇을까?


서약식이 끝나고 다음날 오후까지 함장실 주변은 접근금지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