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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이 멍청한 년 같으니! 어떻게, 삼안 산업 기술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 블랙 리리스가 이렇게 초보적인 실수를 할 수 있죠? 이 등대로 오면서 어디에나 보이던 철충이 단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심부터 해야 했는데...!


이러고도 최강의 호위 바이오로이드 라며 기세등등하게 입을 놀리고 다녔던 건가요? 이 멍청한 년, 주인님을 찾았다는 사실에 멍청한 스틸라인의 하급 바이오로이드처럼 들뜨기만 해서 기본적인 수칙도 까먹다니...!


리리스는 숨 가쁘게 상황 보고를 하는 레프리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선명한 붉은 피가 입 안으로 새어 들어오며, 평소라면 기분을 고양시킬 비릿한 철 맛이 혀에서 느껴졌지만 지금 리리스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분노 뿐이었다.


모든 재앙의 근원인 철충에 대한 분노. 주인님을 몇십년 동안 기다리다 마침내 주인님을 만나자마자 훼방을 놓는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정에 휘둘려 주변 수색 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주인님만 본 채로 실실대다가 주인님을 위험에 빠지게 한 한심한 자신을 향한 분노.


분노의 이유가 머릿속에서 뻗쳐 나갈 수록, 리리스의 황금 빛 동공은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 듯 흔들렸고 꽉 쥔 주먹은 백옥같이 하얗던 리리스의 피부를 더욱 더 창백하게 했다.


"지금 당장, 주인님을 오르카호 격납고로 모셔오세요." 


리리스는 간신히 입을 열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레프리콘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턱이 없는 포츈은 이런 리리스의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리리스가 복원된 직후 부터 몇 십년을 같이 저항군에 함께 몸 담았던 전우 였지만, 이렇게 분노한 모습은 정말 본 적이 없었고,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못했었던 포츈이었다.


"리, 리리스...? 언니 걱정되거든? 무슨 일 있는거야?"


리리스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황금색 동공으로 포츈을 홱 돌아보다, 포츈이 그녀의 날 선 시선에 움찔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추해보일지 다시 한번 자책했다. 자신의 실책을 남에게 화풀이 하는 것만큼 애송이 같고 멍청해 보이고 한심해 보이는 행동이 뭐가 있겠는가.


눈을 감고, 코로 숨을 짧게 들이 쉰 리리스가 분노가 가라앉은, 그러나 감정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해 굳은 얼굴로 포츈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후... 모두, 제 실책입니다. 포츈 기술장님. 아까 오르카 호를 재가동 시키는데 세 네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셨죠. 더 줄일 수는 없나요?"


"어? 아, 아마 필수적인 시운전 몇개를 제외하면 한... 2시간 15분까지 줄일 수 있을 것 같거든. 근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건지 궁금하거든...?"


"지금, 연결체가 우두머리인 약 200 정도의 철충 무리가 정확히 이 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도달 예상 시간은 한 시간 정도고요. 아마, 제가 인간님을 여기로 데려올 때 뇌파를 인지하고 저항군의 세력이 모이기 전에 주변의 철충을 급하게 모아 기습하는 것이겠죠."


"철충 무리?! 그, 그것도 하, 한시간 안에?! 아, 아무리 나와 그렘린들이 뛰어난 정비공이긴 하지만 한시간은 너무 부족하거든?! 아, 필수 안전 과정까지 모조리 생략하면, 아니야, 하지만 갑자기 침수가 될 수도... 배수 펌프의 정비 주기가 6개월 이니까..."


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며 손을 턱에 대고 혼잣말로 고민하던 포츈이 마침내 난처한 얼굴로 리리스에게 말했다.


"줄일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줄여봐도, 1시간 25분 밑으로는 도저히 줄일 수가 없거든...?"


"...알겠습니다. 포츈님은, 일단 최대한 빨리 오르카호를 가동해서 탈출할 준비를 해주세요. 시간은 어떻게든 제가 벌어보죠."


그렇게 말한 리리스는 빠르게 몸을 돌려 소리없이 중앙 함교를 뛰쳐나갔다.


"하아... 오르카 호 정비팀! 비상이거든?! 지금 1시간 30분 안에 오르카 호를 띄워야 하니까, 1팀은 함교로, 2팀은 주 엔진실로! 안전 절차는 모조리 무시해도 되거든? 일단 물 위에 뜨게만 만들자!"


뛰쳐나가는 리리스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 숨을 쉰 포츈이 무전기를 들고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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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침대에 앉아 아까의 말다툼에서 리리스가 쥐어 주었던 블랙 맘바를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정찰기의 영상이나 전선의 AGS가 보내오는 영상, 그리고 그의 눈으로도 직접 본 적이 있던 블랙 맘바였지만 대개는 이 것을 들고 전장에 피를 흩뿌리는 당사자에게만 신경을 썼기에, 이렇게까지 가까운 곳에서 신경써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아까의 격발로 인해 아직도 약한 화약냄새를 풍기며 진회색으로 빛나는 권총은, 총열이 일반적인 권총보다 좀 더 길고 두껍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말해 '전장의 학살자' 라는 이명이 붙기에는 다소 평범한 생김새였다.


권총 위에 달려있는 광학 장비도 군용 장비 중에서는 좋은 축에 속하는 장비였지만, '삼안의 기술력이 총 집편된 수준'의 장비는 단연코 아니었다. 단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권총탄으로 쓰기엔 지나치게 굵은 고관통 고장약 50구경 탄환들이 장전되어 있다는 것일까.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동력형 외골격 장비를 끼고 쏘거나, 건장한 남성이 두 손으로 잡고 쏴도 전투 내내 쏘지는 못할 수준의 권총이었지만, 기억 속의 블랙 리리스 개체는 양 손에 저 권총을 한 정씩 들고 놀라울 정도의 정확도로 쏴대고 있었다.


결국 블랙 리리스에게 '학살자' 라는 이명을 붙인 것은 단순한 첨단 장비가 아니라, 리리스 그 자체 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블랙 리리스가, 나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자신을 지휘해달라고 했다. 전장에서 반드시 모가지를 따리라 다짐했던 그 블랙 리리스가 말이다...


블랙 리리스라는 단어와 함께 연합 전쟁의 잊고 싶은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 슬금 슬금 똬리를 틀기 시작하자, 남성은 머리를 저으며 기억의 뚜껑을 닫으려 시도했다.


그래, 다른걸 생각하자. 다른걸. 


하지만 코끼리를 생각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코끼리를 떠올리려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그가 생각의 운전대를 틀어도 결국 연합 전쟁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는 대학생 3학년때 장학금을 받고자 지원했던 ROTC에서 급하게 장교로 임관되어, 조국을 기업의 손아귀에서 지켜낸다는 명분으로 수년간 전장에서 싸워왔다.


그리고 그가 지키고자 싸웠던 국가와 가치는 결국 돈과 돈이 빚은 완벽한 노예들의 손에 무너졌고, 그는 허수아비 정부가 이끄는 '신 대한민국'에서 전우들의 티끌만한 권리를 위해 싸우다 결국 반역죄라는 허울 좋은 죄목으로 구속되어 냉동고에 쳐박혔다.


그렇게 꿈도 있었고, 청춘도 즐길줄 알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1차 연합 전쟁을 통해 전쟁에 닳아버린, 시대착오적 패잔병이 되어버렸다.


젠장. 돈에 미친 삼안, 블랙리버, 펙스 놈들만 없었더라면, 아니, 있었어도 바이오로이드 같은게 없었더라면. 


1차 연합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을테고, 난 평범하게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 가정을 꾸리고 안락하게 노후를 보낸 뒤 웃는 얼굴로 세상을 떠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남성은 운명의 어이없음에 다시한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 운명이라는 개자식은 내가 평범하게 죽는 것 조차 그렇게 까지 아니꼬왔는지 이제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끌라고 등을 떠밀고 있구나.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를 한 숨을 다시 한번 몰아 쉬며, 그는 잠시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복잡한 머릿속이 눈을 감은 것 만으로 한층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잠깐만 쉬자. 잠깐 동안만 머리를 쉬게 해주는게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거야.


그렇게 생각한 남성의 호흡이 점차 편해지며 얼굴의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어도 되겠지...


80년간 잤는데 조금 더 자도 뭐...


설마 죽이겠어...


...


쾅!


거의 평정에 도달했던 그의 의식이 문이 격하게 열리는 소리에 현실로 내동댕이 쳐졌다.


"사령관 각하! 기, 긴급사태입니다! 지금 바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말없이 인상을 잔뜩 구긴채로 자리에 앉은 남성의 눈이 기관총을 한 손으로 든채로 문을 박차고 들어온 레프리콘과 마주쳤다.


레프리콘은 남성의 짜증 가득한 표정을 보고 황급히 경례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령관님께서 수면을 취하고 계실 줄은...!"


레프리콘의 말을 남성이 단호하게 끊었다.


"나 아직 니들 사령관 아니다."


"예...?"


"니들 사령관 된다고 한 적 없다고."


"아, 그... 어..."


남성의 말에 어쩔줄 몰라하는 레프리콘을 보며, 남성은 이제는 거의 반사작용 처럼 한 숨을 쉬며 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하... 됐고, 뭔데. 뭔 비상사태야."


"현재 200에 달하는 철충 무리가 현 위치를 향해 접근 중입니다! 아마 사령ㄱ...인간 님을 감지하고 주변의 병력을 모아 습격하려는 것 같습니다! 예상 도달 시간은 약... 55분 입니다!"


그 말에, 남성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알고? 그냥 기괴한 AGS 처럼 생겼던데 지휘 체계 같은게 있는건가?


"그래서, 아측 병력은?"


"총 11명 이고, 20분 뒤 2명 합류 예정입니다!"


"...이길 수 있어?"


남성의 질문에, 레프리콘은 주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연결체라는 특이 개체까지 있는 상황이라... 지금처럼 제대로 된 편제의 부대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후퇴 해야지. 퇴출 수단은 뭐가 있는데?"


"지하에 저항군의 이동 거점인 잠수 모함 오르카호가 있습니다. 철충은 물을 무서워 하니, 해상으로 탈출 하면 됩니다!"


물을 무서워 한다니... 그럼, 그냥 심해 연구소나 플랜트 같은데서 방어하면 되는거 아닌가?


남성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한 시를 다투는 급박한 분위기에 일단은 잠자코 있었다.


"1층에서 나머지 인원들과 합류한 뒤, 지하 격납고로 이동하겠습니다!"


여전히 곳곳이 회색으로 물든 환자복을 입고 1층으로 내려가자, 아까 남성의 거친 말투에 눈물지었던 바이오로이드 소녀와 노움 이라 불렸던 포니테일 바이오로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대를 한 바이오로이드 소녀와 남성의 눈이 마주치자, 소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노움의 뒤로 숨어버리는 것을 보고 남성은 가슴 깊은 곳에서 은근한 죄책감을 느꼈다.


젠장, 바이오로이드도 저렇게 애들같이 만든걸 울리니 뭔가 미안해지는군.


"노움 상병님, 준비 되셨습니까?"


"네, 필요한 물건들은 챙겼어요. 어서 내려가죠."


일행이 흡사 가정집과 비슷한 느낌의 등대 거주구역 한 켠에서 이질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강화 철문으로 다가가고 레프리콘이 철문 옆의 센서에 눈을 가져다 대자, 육중한 '철컹' 소리와 함께 두꺼운 철문이 기계음을 내며 안쪽으로 열렸다. 


문 안쪽으로는 노란색 안내등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밝히고 있었고, 저 아래에서는 블랙 리리스가 빠르게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일행과 남성을 마주친 블랙 리리스가 급히 말했다.


"주ㅇ.....인간님, 정말 죄송하지만, 우선 잠수 모함 오르카호에 탑승하셔서 철충의 위협에서 벗어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님은,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준비가 되면 기다리지 마시고 바로 탈출하세요."


리리스의 말에 노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네에?! 하지만... 아직 50분이나 있는걸요...! 같이 탑승한다면..."


노움의 말에 리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르카 호가 출항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1시간 30분은 걸린다고 하네요.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럼 저도 같이...!"


"아니요.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오히려 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는데 방해가 될 테니 여러분은 제일 가까이서 인간님을 지켜주세요."


노움의 말을 끊은 리리스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인간님을,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한 리리스가 등을 돌려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 직전, 남성이 리리스를 불렀다.


"야."


"ㄴ, 네, 주인님?"


갑작스런 부름에 '인간님'이라 부르는 것도 까먹은 채, 리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성을 보았다.


"니 총. 안 가져가냐?"


남성은 자신이 들고 있던 블랙 리리스의 블랙 맘바 한 정을 그녀에게 휙 던졌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블랙 맘바를 가볍게 받아든 리리스가 빙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시 계단을 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참나, 누가 지 주인이라고..."


남성은 혀를 차며 작게 궁시렁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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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어느새 격납고 한 가운데서 위용을 떨치는 오르카 호의 출입구 앞에 도달했다.


남성은 일부러 큰 내색을 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 위용에 감탄과 동시에 경외감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 함선은 고작 '잠수함' 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거대했다. 그가 종종 보았던 해군의 이지스함을 훨씬 넘는 길이에, 단지 검정색 원통 일색이었던 일반적인 해군의 잠수함보다 훨씬 높은 선체와 군용 장비라 칭하기 미안할 정도로 유려한 디자인까지. 


남성은 그가 잠들었던 시간동안 발전한 인류의 기술력에 혀를 내두르고, 한 편으로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야, 이러니까 가동하는데 1시간 30분은 걸린다고 하지."


이미 선내에서 바삐 무언가를 들고 다니거나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고 다니는 그렘린들을 지나 중앙 함교에 도달한 일행을 다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비공 점프수트 차림의 바이오로이드가 반겨주었다.


"이, 인간님! 드디어 뵙는 구나! 정말 반갑거든~! 나는 저항군의 이동 거점 오르카호의 기술/정비팀 리더인 포츈이고, 지나오면서 본 그렘린들은 우리 정비팀 이거든! 일단, 상황이 급하니까 제대로된 소개는 나중에 하는거거든!"


"잠깐. 포츈... 이라 했지. 이 배, 1시간 30분안에 띄울 수 있는거 맞아?"


갑작스런 남성의 질문에 포츈이 잠시 곤란한 표정으로 생각하다 말했다.


"으음.... 지금 1시간 10분정도 더 필요한데, 이것도 안전 절차를 모조리 건너 뛴 수준이라 여기서 더 줄이는건 절대 불가능하거든..."


"철충... 인가 뭔가, 적 세력 도달 예상 시간은 몇 분이라 했지?"


남성은 레프리콘을 돌아보며 물었고, 레프리콘은 깜짝놀라 당황하며 대답했다.


"넷...? 아, 그러니까... 현재, 45분 뒤 도달 예정입니다!"


"상대하는 아군 전력은?"


"현재로서는... 블랙 리리스님 한분 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남성의 이마에 깊은 골이 생겼다.


"저거 하나...?! 하... 그래, 어쨌든 대충 30분의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솔직하게 답해. 저 블랙 리리스 1기가 적 세력을 상대로 30분동안 버틸 수 있어?"


"어, 음... 블랙 리리스님은 엄청 강합니다만... 적 철충이 200정도인데... 거기에 연결체 까지 있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웅얼거리던 레프리콘을 보다 못한 노움이 대신 입을 열었다.


"운이 좋다면, 30분은 버티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절대 적 세력을 이기실 수는 없으실 거에요. 특히나 직접 연결체까지 상대하신다면..."


"즉, 만약 우리가 탈출할지 아닐지는 순전히 쟤한테 달렸고, 탈출한다 해도 쟤는 버려지겠군. 그리고 죽겠고."


"...맞습니다."


"주변에 저항군 지원 전력은 일체 없어? 너희들이 다야?"


"주변 지역에 저항군들이 흩어져 있지만, 저희로서는 통신이 불가능 해요."


노움의 말에 남성이 기가 차다는 듯 중앙 함교를 손짓 하며 말했다.


"뭐? 아니, 이... 존나게 거대한 잠수 모함을 두고서 장거리 통신도 못한다고? 이건 뭐, 깡통이야?"


남성의 어이없다는 말에 포츈이 끼어들었다.


"전략 원자력 추진 오르쿠스급 잠수모함에는 초단파 통신기부터 위성 통신망까지 최첨단 통신 설비가 모두 갖춰 있지만, 명령권자인 인간님의 뇌파 인증이 있어야만 하거든? 우리 바이오로이드 만으로는 오로지 저속으로 항해만 가능하게 해주는 비상 항해 프로토콜 밖에 쓸 수 가 없어서 사실 지금까지는 거의 반 깡통이나 마찬가지 였거든..."

 

"하... 그, 명령권자 뇌파 인증인가 뭔가 하면 되는거야?" 


남성이 이마를 손으로 짚은채 인상을 쓰며 말하자, 포츈과 레프리콘, 노움이 서로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간님, 그 말씀은... 저희 명령권자, 즉 사령관이 되신다는 말인가요?"


"지금 급하니까 임시로 하는거야. 알겠어? 이상한 기대 가지지 말라고."


남성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누나 감동했거든...! 역시, 리리스가 알아본 인간님이거든...!"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꼭, 자매들과 함께 목숨을 다해 사령관님을 지키겠습니다!"


주변 바이오로이드의 감동 가득 실린 말에 남성은 인상을 쓰며 손을 휘휘 저어댔다.


"하... 진짜! 됐고. 빨리 그거 뇌파 인증이나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봐. 저거... 블랙 리리스 하나한테 내 목숨을 맡기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게 말한 남성은, 함교 정 가운데의 '사령관' 이라는 금속 명판이 붙어있는 의자에 먼지를 털어내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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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쿠스급 전략 원자력 추진 잠수모함

전장: 184m

전폭: 31m

높이: 34m

수상 배수량: 49,250t

수중 배수량: 54,895t

동력원: 포세이돈 SM89 핵융합로 4기, 하이랜드 스팀 터빈 4기

속도: 최대 55노트

무장: 533mm 어뢰관 8개, 뱅가드-III 급 전략 탄도탄 발사 가능 대형 VLS 6개 (바이오로이드 출격 포드로 개조 가능), MK.85 중형 VLS 28개, L.A.S.T-2090 레이저 요격 시스템 8기, V-103급 수직 이착륙기 4기 및 개폐형 이착륙 갑판 2개.

승무원: 280명. 비상시 CCC(Combat Command Center) 인원 10명, 정비 인원 10명으로 운용 가능. 상륙 병력 포함시 최대 850명 탑승 가능.


장편 쓰는거 진짜 생각보다 힘드네;;; 자주 못써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데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