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흐응~ 이게 인간? 생각보다 평범한 얼굴이네."


그와의 첫 만남은 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도 그를 대하는 내 자신은 한없이 솔직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물렀다.




"그리폰! 이거 받아."


"이게 뭐야?"


"초콜릿이야. 매일같이 초계 작전 하느라 힘들지? 몰래 하나씩 먹어."


그의 바보같은 미소.  그는 항상 한결같이, 그는 내가 출격할때면 초콜릿을 준다.

하지만 그의 그런 소탈한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뭐야? 내가 이런거로 좋아할까봐?"


내심 기대했던 그의 선물,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감사하지 못한다.

그의 호의는 항상 일방통행처럼 전해졌다.


"항상 힘들지? 미안해."


"흐, 흥! 미안하면 미안할 일을 하지마! 그럼 다녀온다!"


그의 따뜻한 격려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나는 또다시 오늘을 살아간다.

힘내라며 웃어주는 그의 얼굴, 따뜻하게 품어주는 그의 넓직한 가슴.

부드럽게 가슴속에 울리는 그의 달콤한 목소리. 


그것들을 양분으로 삼아 내 가슴속에 피어난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간다.

그를 위해서 날아가고, 그를 위해서 싸운다.


하늘의 기사는 지켜야 할 사람을 만났다.




"모두 비켜주세요! 긴급 이송입니다!"


"닥터! 닥터와 다프네를 불러주세요! 최대한 빨리!"


정신없이 이끌리는 침대. 혼미한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시야가 어두워진다.

내 주변에 가득 모여 나를 걱정하는 대원들,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일어나야 하는데... 그 바보가 걱정할텐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간혈적으로 다친 복부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여기 지혈좀 해봐!"


"네!"


다급하게 움직이는 동료들, 그녀들의 표정은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장... 너무 울지마... 바보같아..."


슬레이프니르 편대장의 얼굴은 더욱 가관이다. 

그녀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붙잡고 따라오고 있었다. 


'아... 사령관이 보고싶다... 아직 못해준 말들이 많은데...'


걱정하는 동료들에겐 미안하지만 더이상 의식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흐려지는 시선, 더이상 들리지 않는 주변의 시끄러운 외침들.


하지만 사령관의 얼굴은 계속 떠올랐다. 마치 놓치고 싶지 않은 보물을 끌어안은 것 처럼.

이것이 마지막 이라면 그의 얼굴을 한번만 더 보고 싶다.


'사령관.... 미안....'


이것으로 한계가 찾아왔다. 깊은 어둠속에 내 의식이 잠겨간다.

마지막으로 욕심이 있다면 그의 손을 잡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겠지.


그가 슬퍼할텐데. 그가 많이 외로울건데. 바보같이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바보는 내가 아니면 안되는데. 그 바보는 마음이 여리니까 많이 힘들텐데.




"아...."


눈을 뜨자 흰 바탕의 천장이 보였다. 난 죽은건가? 온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듯

기이한 부유감이 느껴진다. 팔다리를 움직이려 하자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불이 움직였다.


"이불....?"


그제야 주변 배경이 시선에 들어왔다. 익숙한 소독약 냄새, 부산스러운

밖의 움직임.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몸이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테니.


"으윽..! 아아... 안아픈곳이 없네..."


몸을 일으키자 복부에서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그 통증에 본능적으로

환부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댔다.


"으으... 어휴... 아파 죽겠네."


"어? 그리폰! 정신이 들은거야?"


"아.. 사령관.."


사령관이 접시에 죽과 물을 담아 내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접시를 조심스래

내려놓고 내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어때? 좀 괜찮아? 어디 이상하지는 않고?"


그의 다정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으...! 괘, 괜찮아, 몸상태도 생각보다 좋고..."


방금전까지 느껴지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저 내 눈 앞에서

걱정스럽다는 듯 이것저것 말을 걸어오는 그의 얼굴에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


"그, 그보다 여긴 왜 온거야? 흥! 비웃으려면 비웃던가."


창피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쏘아붙이자 사령관이

마주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 하마터면 널 잃을뻔했어. 이게 모두 내 잘못이야.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거 같아..."


"....에? 왜... 인간이 미안해 하는거야?"


그의 두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인것 마냥.

그는 심하게 동요하고 미안해 하고 있었다.


"미안.. 내가 무능해서 널 이렇게 만들었어."


그가 슬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구나 그의 슬픔이

내가 다쳤기 때문이라니. 그 사실이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내 걱정을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과할거면 선물이 있어야지. 안그래 인간?"


나는 그 말과 함께 부드럽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다음에 선물로

은근슬쩍 그에게 죽을 먹여달라고 해야지.


"서, 선물? 아, 그래. 선물..."


"응, 선물. 난 저거....."


"이, 이거 받아줘!"


사령관이 내 말을 끊고 두 눈을 질끈 감은채 서약의 반지를 내밀었다.


"에...?"


"하, 항상 너에게 이걸 주고싶었어! 내 진심이야!"


모를리 없잖아. 이 바보야. 너 항상 나와 이야기 할때면 얼굴이 붉어졌는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 좋아했어!"


나도 널 처음 봤을때, 그 순간부터 사랑했어.


"나, 나와 서약해줘! 내 첫 서약은 누가 뭐라고 해도 너에게 주고 싶었어!"


나도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은 너라고 정했어.


".....바보."


"응?"


작게 중얼거린 내 말에 그가 두 눈을 꿈뻑거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렇게 바보 같아서야. 늘 내가 곁에서 보살펴주지 않으면 안되겠네.


"뭐야 인간? 이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야? 하하하핫!

이거 서약의 반지 맞지? 아아~ 이렇게 까지 하는데 거절하면.....

인간이 너무 불쌍하니까... 트, 특별히 받아줄께! 특별히!"


"고마워! 사랑해 그리폰!"


"꺄악! 아, 아파~! 아으으~"


갑자기 그가 꽉 끌어안아 다친 몸에서 또 통증이 터져나왔다.

그가 당황하며 내게서 확 떨어지다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아으으.... 괜찮아? 미안해 그리폰, 헤헤헤."


"푸훗..! 하하핫!"


그와 내가 서로 마주보고 미소지었다. 


'사령관. 사령관은 앞으로도 변하면 안돼. 사람은 초심이 중요한거야.

물론 사령관이 가장 잘 알겠지만.... 그 마음, 내가 곁에서 지켜줄께.'


그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는 내 삶의 이유가 되었다.


일생을 서로 지켜주고,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되어

하늘의 기사는 그의 곁에서 일생을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