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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터스?!"


아주 그냥 산 넘어 산이군.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료 보관실에 기록되어 있는 토터스의 정보에 따르면, 지금 진지에 있는 부대원들의 화력으로는 저 토터스를 제압할 수 없고, 이프리트 개체가 가용할 수 있는 화력으로도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그 말은 여기 죽치고 앉아 있어봐야 떼죽음당할 뿐이라는 뜻이고, 나는 바삐 무선기를 돌렸다.


"맙소사..."


"으아, 저거 어떻게 잡지 말입니까?!!"


"다들 들리나?"


무전 너머는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총소리는 안 들리니 교전 중인건 아닌데, 그저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다들 들리냐고!!"


다시금 무전기에 대고 소리치자, 노움이 대답했다.


"네, 들립니다!"


"전 부대원, 후방 진지로 후퇴해! 노움, 진지 도착하자마자 위쪽으로 수류탄 까서 방호벽 형성하고. 빨리 움직여!"


"잘못들었슴다?"


"그냥 살고 싶음 빨리 뛰어!!"


나는 무전기 너머 얼타는 브라우니 개체에게 고함친 뒤, 이프리트에게만 들리도록 무전을 돌렸다.


"이프리트. 좌표 하나넷, 여섯오 포격하는데 데인저 클로즈니 알아둬라."


"네? 아, 알겠습니다!"


나는 참호 너머로 내 명령을 들은 이프리트 141이 포각을 조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부대원들의 머리에 떨어질 수 있는 포각이니 신중, 또 신중해야겠지. 그 사이 노움은 부대원들이 후방 진지로 이동했다고 보고했다.


"사령관님, 도착했습니다!"


"확인. 조금 있음 포탄 떨어질테니까 절대 진지 밖으로 나오지 말고 그 안에서 대기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노움의 발포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통신은 끉겼고, 나는 이프리트 개체를 향해 돌아보았다.


"이프리트?"


"사격 준비 되었습니다!"


침을 꾹 삼키고,


"고관통탄 장전, 사격 개시!"


"사격 개시!!"


박격포탄이 휘파람을 불며 날아갔다. 쿵. 묵직한 소리가 들렸고 파편이 날아갔기는 했지만 탄이 토터스에게 명중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설령 명중했다고 쳐도, 그 포격이 토터스에게 피해를 줬는지도 모르고. 할 수 없이 나는 노움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노움, 다들 괜찮나?"


"네, 사령관님. 다들 이상 없습니다!"


"그래, 혹시 토터스 현 위치에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나? 위치 파악당하지 않는 선에서 있는지만 확인해도 된다."


"어... 한 번 해보겠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먼지에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침묵해 있다가 이내 다시 소리를 내는 무전기. 


"아, 보입니다! 포격은 맞은 것 같은데, 무력화되었는지는 잘 모르겠..."


순간, 무전기에 노이즈가 팍 하고 튀어 내 귀를 때렸다. 무전기를 귀에서 떼면서도 그 너머로 들리는 다급한 발소리와 땅울리는 소리. 노움이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바닥에서 애처로웠다.


"...령관님? 사령관님!"


"그래, 들린다. 무슨 일이야?!"


"그, 토터스가 저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사격을 가하고선 이리로..."


"뭐라고?! 혹시 다쳤나?"


"전... 괜찮습니다. 그런데 토터스가 오고 있으니..."


노움의 흐려진 말 끝에서 그녀가 하고픈 말이 선명했다. 이대로면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 나도 그걸 알고 있었고 무어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알겠다. 진지 내에서 명령 대기하도록."


나는 애매한 답변을 무전 너머로 남겨놓고 고민에 빠졌다. 말은 살려줄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했지만, 지금 있는 자원으로는 도저히 부대원들을 안전하게 후퇴시킬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드론이라도 무력화되지 않았다면 그걸 근처로 날려보내서 미끼삼아 유인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잠깐, 미끼라고?


나는 이프리트 개체의 통신망만 열어둔 채, 그녀에게 지시했다.


"이프리트, 토터스에게 한 발 더 때려박아."


"ㄴ... 잘못 들었슴다?"


이프리트가 당황해하는 이유는 나도 알고 있었다. 노움의 수류탄으로 만들어진 방벽은 그리 단단하지 않아서, 한 번 더 포격하면 폭발이 만들어낸 충격과 토사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고 방벽이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문제가 걸리는 거겠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부대원들을 사선으로 몰고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후방 진지에 눌러앉아 있어봐야 이미 노움을 발견한 토터스는 다가올 것이고, 그대로 방벽을 무너뜨리고 부대원들을 생매장시킬거다. 당장 추가 병력 지원이 있는 것도 없고, 어짜피 볼 손해라면 가만히 있다가 손해만 볼 수는 없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고관통탄 장전, 좌표 하나여섯, 여섯넷!"


"사, 사령관님?!"


자신의 부대원이 있을 좌표를 들은 이프리트의 목소리는 심하게 흔들렸지만, 박격포를 방열하는 손은 착실했다.


"사격 개시!"


"사, 사격 개시!"


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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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거대한 포격음이 진지를 뜷고 들렸습니다. 새로운 사령관님이 추가 포격 지원을 한 모양입니다. 방벽 너머로 흙들이 흔들려내려왔고, 그걸 본 브라우니가 질겁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으와앗! 이거 무너지는거 아니지 말입니까?"


"호들갑 떨지마. 이 정도로 무너질 장벽이면 군사용으로 쓸 수 없을 걸?"


마이티 R께서 저 대신 브라우니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저 역시 그녀의 결연한 모습에 조금은 흔들렸던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진지에서 대기할 때, 새로운 사령관님과 친분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새 사령관님을 그만큼 믿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콰아아아앙!!!


한 번 더, 포격 소리가 들렸습니다. 진지가 무섭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보다 더 가까이에 포격하신것 같습니다. 저를 본 토터스가 저를 쫒아 다가오고 있을테니 그러실 수 밖에 없으실겁니다. 제가 들키지만 않았어도, 제 맞은편 브라우니가 떠는 모습은 안 지켜봐도 되었을텐데...


콰아아아아아앙!!!!!


한기가 몸을 감쌉니다. 포격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아직도 토터스는 쓰러지지 않았...

순간, 머리 위로 흙더미가 떨어졌습니다. 흙을 쓸어내려 손 안에 담은 그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진지와 방벽 사이로 들어오던 입구가, 무너지는 흙더미에 가려진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프레스기기가 누르듯 장벽이 굉음을 내며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천장이 우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는지 알아챈 저는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장벽은 마치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쪼개지며 입을 벌렸고, 저와 브라우니는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아..."


"에이 씨, 난 몰라!!"


그 때, 마이티 R씨가 무너지려는 장벽을 받치고 섰습니다. 장벽 너머 흙더미가 새어나왔습니다. 장벽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장벽 자체가 쪼개져서 토사와 함께 우리를 덮칠 것이라는 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마이티 R 씨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거지로 천장과 힘을 겨루고 있었습니다.


"끄으으..."


마이티 R이 받치고 있는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금 사이로 흙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천장 자체가 무너져서, 그대로 깔리고 말것입니다. 모두들 꼼짝없이 죽어나갈겁니다. 저는 흙의 비를 맞아가며 무전기를 붙잡았습니다.


"사령관님! 들리십니까! 여기는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


저희는 이렇게 급박한 상황인데도, 새 사령관님은 명령은 커녕 통신음조차 없었습니다.


"안 돼..."


마침내 천장이 무너졌습니다. 마이티 R 씨와 브라우니가 흙과 제 방벽 조각 너머로 사라지고, 곧 이어 중량감과 함께 눈 앞이 캄캄해지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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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테스트는 끝났다. 시뮬레이션 기기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꺼졌고, 금방이라도 저승문을 밟고 있었을 병사들은 액체로 범벅이 되어 어기적거리며 기기 안에서 걸어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혼이 빠져나간 듯 한 얼굴로, 시뮬레이션 기기 밖으로 나오는 제임스 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테스트실을 나왔다.

제임스 씨는 그 시선들을 감내하며 테스트실을 나와, 나와 지휘관을 마주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제임스 씨." 


솔직히 말해서, 철충의 진격을 막아낼 화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부족한 부분을 매꿔줄 병력 지원도, 중장갑 목표에 대항할 직사화기도, 진격을 늦출 대전차지뢰도, 하다 못 해 폭발물을 급조할 수 있는 재료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제임스 씨는 어떻게든 눈 앞에 있는 철충들을 제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부대원들을 희생시키는 전술을 사용한 것이 문제지.


나는 슬쩍 마리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할 말이 많아보였다. 다른 지휘관들도 똑같겠지.


"일단 오늘은 들어가 쉬고, 테스트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사흘 뒤에 하도록 하죠. 그 동안 이번 테스트에 대한 의견은 묻어두고, 그 때 회의가 소집되면 이야기하도록 해요."


하지만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입을 열도록 했다간 무슨 말이 나올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파국을 불러일으킬지 뻔했기 때문에, 나는 제임스 씨를 마주하기 전, 지휘관들에게 함구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나나 제임스 씨, 그리고 지휘관들에게 더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기에.


"그럼,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