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오르카 호에 두 번째 인간이 나타났다. 그는 사령관에 맞먹는 지휘 능력과 뛰어난 업무능력을 가졌다. 그가 어느 정도 적응할 때쯤이 되자 아스널, 레오나, 메이 등 일부 지휘관들은 그의 능력을 사령관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그들은 두 번째 인간이 사령관에 버금가는 권한을 얻기를 원했다. 마리, 무적의 용, 신속의 칸, 리리스는 그 의견에 반대했다. 두 번째 인간은 사령관과 달리 필요한 말만 했고, 바이오로이드들과의 교류도 많지 않았다. 그만큼 속내를 알 수 없었고 그의 까칠한 성격과 더불어 멸망 전의 개체들에는 그가 구 인류와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인간의 능력은 무시할 게 되지 못했고, 그는 예상외로 조용히 지냈다. 처음에 반대했던 지휘관들도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부사령관이 되었다. 나중에는 그가 사령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령관은 결국 부사령관과 그의 파벌에게 밀려 요안나 아일랜드로 보내졌고, 그다음 날 사령관은 경호를 맡던 리리스와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사령관이 된 그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예전과 달리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자주 화를 내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그에게 실망한 무적의 용이 함대를 끌고 떠났다. 며칠 전에는 그가 아우로라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으며, 결국 그녀를 울리는 것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령관이 떠나가고 나서 후회하고 있다.’

 

ㄴ대박.. 진짜임? ㄹㅇ?

    ㄴ아우로라 울리는 건 내가 봄... 보는 내가 안타까울 정도로 진짜 서럽게 울더라...

        ㄴ그래도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는데 중립 기어 박아야 되는거 아니냐?

            ㄴ그런식으로 다들 눈치만 보다가 사령관이 결국 도망갔잖아.

                ㄴ그냥 일하기 싫어서 런한거 아님?

                    ㄴ이전 보다 업무량이 줄었으면 줄었지 늘진 않았을텐데 왜 일하기 싫다고 런함? 너 부사령관 파지?

 

ㄴ경호대장은 왜 따라 없어진거임?

    ㄴ유일하게 사령관이랑 서약했잖아. 사령관 축출되기 전에 같이 도망간 듯

 

ㄴ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무적의 용이 손절치냐.. ㄷㄷ

    ㄴ모르지.. 우린 어떡하냐 도망가지도 못하고...

    ㄴ손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앎?

 

ㄴ여기 이런글 적어도 되냐? 이거 쓴 거 누군지 찾을려면 찾을 수 있을텐데,.. 완장은 안지우고 뭐함?

    ㄴ완장 자는 중 아니냐?ㅋㅋㅋ

    ㄴ이미 찾는 중인거 아님? 그래서 안 지우고 놔둔 거 같은데...

        ㄴㅁㅊ... ㄷㄷ...

 

 

 

 

 

“씨발... 도대체 이거 누가 쓴 거야?”

 

머리가 아프다. 요즘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이젠 오르카 넷에는 이런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글 내용을 보자니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냥 누가 익명으로 찌라시처럼 쓴 거라지만, 원래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법. 이런 건 더 골치 아파지기 전에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

 

“...”

 

회의실에는 무거운 분위기만 감돈다. 지휘관들은 그저 내 눈치 보기만 바쁘다.

 

우선, 저 글에 나온 것처럼 사령관이라는 놈이 사라진 건 맞다. 그냥 걔가 도망친 거다. 요안나 아일랜드로 간 것도 그놈이 원해서 간 거다. 분명 나한테는 잠깐 시찰 간다고 했다. 그래놓고 지 마누라랑 튀었다. 시발롬...

 

그리고 무슨 정치질이나 파벌같은 건 없었다. 심지어 난 지휘관들이랑 친하지도 않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안섞었고, 애초에 이렇게 회의를 열기 시작한 것도 그놈이 도망치고 나서부터다.

 

사령관이 도망간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나도 이 미친 업무량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근데 방식이 한참 잘못됐다. 좀 쉬고 싶다고 얘기라도 했으면 그냥 휴가도 보내주고, 그전에 업무도 미리 분담해 놓았을텐데. 덕분에 나만 한참 바빠졌다.

 

심지어 내가 멸망 전 인류와 비슷한 사람이니 하는 얘기도 떠돈다. 솔직히 억울하다. 바이오로이드들과 교류가 거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낯가림이 좀 있어서 그렇다. 친해지면 재밌게 논다. 그게 지금은 도망간 인간 한 명 뿐이라 다들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사령관이 됐다는 것도 어이가 없다. 지금 사령관이 공석이라 임시로 맡은 거지 아예 사령관이 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건 도망간 그놈이 바라는 것이다. 어림도 없지. 반드시 찾아내서 다시 앉힐 거다.

 

그리고 다들 나처럼 일해보면 알 거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 해도 안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짜증 좀 낼 수도 있지. 그리고 용은 나한테 실망해서 간 게 아니라 내가 사령관 잡아 오라고 보낸 거다.

 

아우로라한테 화내서 울린 건... 맞는데, 변명 좀 하자면 마실 거 아무거나 달라고 했더니 민트 초코 라떼를 줬다. 그리고 괜히 화낸 게 미안해서 어제 따로 찾아가서 사과도 했다... 어느 정도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하여튼 이젠 지휘관들도 내 눈치를 보고 피하려고만 한다. 이젠 얘네도 내가 구 인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날 불편해할까 봐 열심히 피해 다니면서 나름 챙겨줄 거 다 챙겨줬는데.. 시발.. 이래서 잘 해줄 필요가 없다.

 

“아무도 몰라?”

 

“...”

 

역시나 대답이 없다.

 

“혹시 의심되는 애라도 있으면 지금 말해라.” 

 

“...”

 

“너네는 내가 도망친 그 새끼처럼 그냥 이러다 말 거 같지? 오늘 아침에 유미한테 말해서 지금도 누군지 찾고 있거든?”

 

“...”

 

내가 정말로 찾는다고 얘기하니까 다들 동요하는 듯했다. 이 전에 있던 사령관은 사람이 착해서 그냥 주의만 주고 좋게 좋게 넘어가던데, 난 절대 그럴 생각은 없다. 일단 이런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쓴 놈을 잡아야 한다.

 

“지금 나오면 봐준다. 근데 나중에 내가 직접 찾아내면 해당 부대 지휘관은 진짜 각오해라.”

 

“...”

 

지금 나오면 봐준다는 건 정말이다. 근데 나중에 잡아도 지휘관에게 까지 연대 책임을 물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그냥 당사자를 찾아서 사실관계를 바로 잡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냥 아는 거 있으면 빨리 말하라고 겁 좀 줬는데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사령관님...”

 

한참 눈치를 보던 블러디 팬서가 입을 열었다. 겁 주기의 효과는 굉장했다!

 

“저희 부대원 중에 스프리건이라고... 이런 기사 같은 거 쓰는 거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말입니다...”

 

스프리건... 지금 막 기억이 난다. 사령관이랑 같이 일할 때도 잊을만 하면 저런 찌라시가 몇 번 돌았는데 그때도 걔 소행이었다.

 

“그래서 뭐? 걔가 썼다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왠지 이번에도 걔일 거 같아서...”

 

“걔일 거 같아서. 뭐?”

 

“만약 진짜로 스프리건이 그랬다면... 지금 데려오면 정말로 선처해 주시는 겁니까?”

 

“일단 데려와. 나머지는 다 나가.”

 

다 나가라는 말에 지휘관들이 도망치듯이 회의장을 빠져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블러디 팬서가 스프리건을 데려왔다.

 

“사령관님 얘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넌 조용히 해.”

 

“...”

 

변명하다 말고 입을 다물고 날 쳐다보는 블러디 팬서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며 겁먹은 듯 떨고 있는 스프리건을 보니 범인은 스프리건이 확실해 보였다. 얘는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시발...

 

“왜 그랬어.”

 

“미.. 미안...”

 

“아니. 사과하라는 게 아니고 왜 그랬냐고 묻잖아 지금.”

 

“... 오르카 호 대원들에겐 알 권리가-”

 

또 그놈의 알 권리 타령이다. 그놈의 알 권리가 중요해서 알려줄 거면 제대로 알려줘야지.

 

“됐어. 더 들을 필요도 없겠다. 함장실로 따라와. 블러디 팬서는 복귀하고.”

 

“...”

 

“대답.”

 

“... 알겠습니다...”

 

블러디 팬서는 그렇게 스프리건을 뒤로 하고 멀어져갔다.

 

“사.. 사령관.. 내가 잘못했어... 다신 기사고 뭐고 안 쓸게! 제... 제발 한 번만 살려줘...”

 

나와 단 둘이 남게 되자 스프리건은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아니 그만 좀 해. 누가 보면 오해하잖아.”

 

“...”

 

“일단 따라와.”

 

나는 스프리건을 함장실로 데려와서 문제의 글에 있는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을 알려줬다. 스프리건은 처음에 겁먹고 빌던 모습은 어디 가고 무슨 특종 감을 찾은 기자 마냥 흥미로운 듯이 내 얘기를 들었다.

 

“이제 알겠어?”

 

“으.. 응.”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일단 문제가 된 글은 내릴게...”

 

“그리고?”

 

“그리고... 다시는 기사 같은 거 안 쓸게...”

 

그럼 나야 땡큐! 지만... 스프리건이 너무 풀 죽어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악의적인 소문은 막는 게 맞지만, 쟤 취미가 소문 같은 거 캐고 뿌리고 다니는 거랬는데 아예 못하게 막는 건 좀 너무하겠지?

 

“아니. 써도 돼.”

 

“정말? 정말로 또 써도 돼?”

 

방금 풀 죽은 듯 있었던 애가 맞는지. 지금은 또 신났다...

 

“대신. 앞으로  올리기 전에 나한테 검사 맡아. 알겠어?”

 

“응.”

 

“그리고 오늘 올린 건 잘못 올린 거라고 또 올리고. 알겠어?”

 

“응!”

 

“그럼 가봐.”

 

그렇게 스프리건도 함장실을 떠나고 나 혼자 남았다. 그렇게 내가 사령관을 쫓아냈다느니 내가 구 인류와 비슷하다느니 하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해결되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오늘 오전에 올렸던 기사는 잘못된 기사입니다. 문제의 기사는 현재 사령관님의 요청에 의해 삭제했습니다. 앞으로는 사령관님의 검수를 받은 더 정확한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ㄴ실화냐? 진짜 찾아냈나 보네 ㄷㄷ...

    ㄴ오늘 오전에 스프리건이 함장실에 불려갔대.

        ㄴ이거 ㄹㅇ임 오늘 회의실 앞에서 스프리건이 사령관 바짓가랑이 잡고 살려달라고 비는 거 봄. 결국은 끌려가더라.

            ㄴㄷㄷ...

 

ㄴ이제 다들 글 조심해서 써라.

    ㄴㄹㅇ... 이젠 마음 놓고 글도 못쓰겠네...

 

ㄴ그래도 잡혔는데 글은 멀쩡히 잘만 쓰는데?

    ㄴ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냥 놔줬을 수도 있지.

       ㄴ보면 모르냐? 오히려 살려 놓고 지 원하는 기사만 쓰게 하려는 거임.

          ㄴ이젠 살고 싶으면 부사령관 말에 따라야지... 

 

 ㄴ중립 박으라던 년들 다 어디 갔냐? 분명 단순 찌라시였으면 냅뒀을텐데. 뭐 있으니까 찾아내서 내린거임.

     ㄴ이거 ㄹㅇ임.

     ㄴ이젠 너도 위험한 거 아니냐?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나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더 씹창난 것 같다... 이젠 아까 보였던 중립기어고 뭐고 없는 거 같다. 개씨발... 찌라시든 뭐든 괜히 신경쓰지 말고 그냥 놔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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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두 번째 인간이 후회하는 후회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