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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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소?”

 

 

 

감옥의 벽과 레오나의 어깨를 베개 삼아 쉬고 있을 때, 문 밖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바다 바람이 어울릴 듯한 성숙한 아가씨의 목소리. 다만 날이 조금 서 있었다.

 

 

 

"용이구나.”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5시간 가량 걸릴 것 같소.

바다 상황이 나쁘진 않으니 아마 그쯤이면 도착할 것이오.”

 

 

 

밖에서 띠릭 띠릭 무언가 눌리는 전자음이 들렸고, 이내 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어두운 방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한 순간 눈이 너무 부셔 팔로 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이곳 어둠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가?

 

 

 

“… 휴우...”

 

“왜 그래?”

 

“그대가 멀쩡해 보여 다행이오.

이 볼품 없는 곳에 그대를 두고 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걸렸는지…”

 

“됐어, 그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다른 애들이 너희 몰래 날 죽이려 오지 않을까, 그게 더 걱정이었지.”


"우리그 그렇게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했소?"


"말이 그렇단 거지. 말이."

 

"…

...

... 뭐, 틀린 말은 아니오. 예전이었다면 그랬겠지.

그래도 그대가 이렇게 도와준 덕분에 대원들도 그대에 대한 분노보다 본관의 명령에 더 집중할 수 있었소.

그대가 살아남은 것도 모두 그대의 덕이오.”

 

“너무 내 공로만 높여 주는 거 아니야?

너희 공로가 나보다 컸으면 컸지, 못하진 않을 것 같은데?”

 

 

 

용은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기 공로도 스스로 못 챙길 만큼 우리가 미숙하진 않소.

그저 그대는 그대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으니 이러는 것이오.”

 

"그… 런가...?”

 

“너무 겸손한 것도 병이오.

이런 때는 겸손이 아니라 무지라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하지.

그러니 그대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를 스스로 알아내기 전까지는 우리도 계속 이런 말을 해줄 것이오.

그대는 좀 더 스스로를 높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좋겠소.”

 

"하하… 그래, 그래야지...”

 

 

 

혼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모를 용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그 때문에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자고 있던 레오나가 잠시 움찔거렸지만, 이내 다시 잠에 들었다. 잠깐의 움직임에 의해 레오나가 이불 삼아 덮고 있던 내 겉옷이 흘러 내렸고, 나는 겉옷의 끄트머리를 잡아 레오나의 반대쪽 어깨에 다시 덮어주었다.

 

 

 

"지휘관이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오.”

 

“그랬겠지.

나 때문에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까.”

 

“그랬소?

아무리 이곳이 잠들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지휘관급 개체가 잠자리 투정을 하진 않을 텐데.”

 

“내가 걱정돼서 그랬겠지.

혹시라도 다른 애들이 너희 몰래 날 죽이려 오면 어떻게 하나.

혹시라도 무슨 사고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계속 내 곁에서 밤을 샜어.

날 지켜주려고.”

 

"… 그런 건 우리 쪽에서 처리할 문제인 것을 레오나 지휘관도 모르진 않았을 것인데...

그리 지혜로운 행동은 아니었소.”

 

“아무렴 어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기가 불편해서 못 자겠다는데.”

 

“흠…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레오나 지휘관에게 이런 면모가 있는 줄은 몰랐군.”

 

 

 

용이 뒤로 돌아 손짓을 몇 번 하자 라비아타와 함께 반군의 대원들이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대략 4명 정도 들어왔었을까? 금발이 주가 되는 것을 보니 용 휘하의 호라이즌 대원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나갈 때가 되었으니 모두 사령관을 경호하며 오도록 하시오.

경호에 일말의 틈이라도 있으면 안 될 것이오.

일단 이곳의 장은 통령이 맡아주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용.”

 

 

 

용과 라비아타의 대화가 내뿜는 분위기에 아이들이 몸을 움츠려 들었다. 

그 중에는 조금 더 짙은, 금발이라기 보단 주황빛에 가까운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아이도 있었다. 

네레이드였다.

 

그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다리에 부상이 있었는지, 허벅지 쪽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 기다란 머리카락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땅에 끌릴 정도로 기다란 양 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기에 실제로 보니 신기해서 그랬다. 

그러자 그 아이도 용에게서 눈을 돌려 나를 보았다.

 

 

 

“… ...!”

 

"어… … 안녕...?”

 

"... ..."

 



네레이드의 볼은 잔뜩 빨게졌다. 주황색 머리카락들이 삐죽삐죽 위로 솟는 것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더욱 헷갈리게 했다.

 

그렇게 눈을 마주친 것이 어색해 내가 먼저 손을 흔들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니 팔은 몸 안에 숨긴 채, 손목만 살짝 움직이는 정도였다. 

조금 어색해도 그저 아무 것도 없이 눈을 돌리기에는 조금 멋쩍었기 때문이다. 

네레이드는 용을 보았을 때보다 더욱 긴장한 것처럼 몸을 움츠렸고, 이내 나에게서 눈을 돌렸다. 아직 친해지기에는 힘든 모양이지.

 

 

 

“본관은 먼저 가 준비를 하고 있겠소.

그러니 통령도 지정된 곳으로 사령관을 데리고 가시오.

혹시 모르니 무장한 채 움직이는 것도 잊지 말고.”

 

“물론이죠.”

 

“최근 들어 지금 같이 엄중한 경호가 필요했던 때는 없었으니 반드시 조심해주시오.

대원들에게는 내가 말해두었지만, 혹시 모르니 잘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세요. 용 대장.

사령관님은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후우… … 

그래, 통령만큼 믿음직한 대원은 없으니 믿을 수 밖에…

… 그럼 잠시 사령관과 이야기 하고 오겠소.

대원들은 잘 지도해주고 있길 바라오.”

 

"걱정마세요."


 

 

라비아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를 데리러 온 대원들을 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는 사이에, 용이 대원들 사이로 비집고 방 안에 들어와 앉아 있던 나와 레오나 앞에 섰다. 

 

 

 

"… … 역시 그대를 내려다 보는 건 마음에 안 들군.”

 

 

 

그렇게 말하더니 용은 내 옆에 나와 같은 자세로 자리를 잡아 앉고는,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한쪽 어깨에는 레오나가, 반대쪽에는 용이 부드럽게 기대고 있었으니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지 모르겠다.

 

 

 

“잠시 귀를...”

 

“응?”

 

 

 

용이 내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손을 모아 속삭였다.

 

 

 

“(그대를 격리해놓겠다 했던 섬의 좌표는 오르카 호에도 일러주었소.

아마 우리가 그대를 섬에 놓은 후 몇 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오.)”

 

“(그래, 그게 원래 계획이었잖아.

무슨 문제가 있어?)”

 

“(그건 아니오만…

… 다만 가기 전에 그대가 말했던 대로 시간을 줄 생각이오.)”

 

"(시간? 무슨 시간?)”

 

“(… … 대원들과 말할 시간 말이오.)”

 

"(그게 돼? 어떻게?

한 명 한 명 하면 오르카가 백 번 도착해도 안 끝날 텐데?)”

 

“(그러니 다 같이 해야겠지.)”

 

“(다 같이?)”

 

 

 

용이 밖에 있던 아이들의 눈치를 한 번 슬쩍 본 다음, 한숨을 뱉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 … 일단 이 이야기는 그대가 원한다면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

그대가 배에서 내리기 전에 갑판 위로 대원들을 부를 생각이오.

갑판 위에는 어지간한 인원은 수용할 만한 공간이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을 것이오.

거기서,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오.

이젠 대원들도 그대의 말을 경청할 만큼의 시간을 가졌으니 걱정하지 말고 억울함이 남지 않게 말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오.”

 

"(… 그게 될까...?)”

 

“(말 하는 것 자체를 물어보는 것이라면 안 될 것은 없소.

그대의 얼굴을 볼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 좋은 이유든, 싫은 이유든 다들 안달이 날 터이니.

그리고 경호가 문제라면 그것 역시 걱정할 것 없소.

리리스 경호대장만큼은 아니라도 적당한 방어막을 두를 수도 있고, 무엇보다 통령이 그대를 지킬 것이오.

어지간한 저격총은 소총처럼 쏘아대도 문제 없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오.)”

 

 

 

… 저격총이라... 설령 리리스라고 해도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철충을 쏴 죽이는 저격총인데 약하진 않지 않겠나.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비아타가 그렇다고 하니 못 믿을 것도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눈 앞에서 블랙 맘바의 탄알을 몇 번이나 막는 묘기를 보여줬었으니까.

 

 

 

“(그러니 남은 건 그대의 의지요.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대원들을 직접 마주할 것인지,

아니면 대원들의 분노가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원하는 대로 하시오.)”

 

 

 

용은 두 번째 선택지를 말할 때 목에 더욱 힘을 주어 말했다. 물론 이전에 내가 이곳 대원들과 함께 말을 할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한 건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두 번째를 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아무리 라비아타가 나를 지켜준다고 해도, 결국 반군 수백 명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이다. 암살 당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란 뜻이다.

 

다만 게임과 달리 이곳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꼬여있는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 그렇게 여유롭게 있을 수는 없다. 하다 못해 오르카 호로 별의 아이가 직접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다. 네스트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이곳의 화력이다. 내게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증거가 있다면 최대한 안전한 선택지를 고르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다. 

 

 

 

 

"… ...”

 

"(어찌하겠소?)”

 

"… 만나야지.

지금 아니면 언제 만나겠어.”

 

"… 후우… ...

...

... 그래, 그대라면 그러겠지.”

 

 

 

용이 눈을 감으며 귓가로부터 고개를 떨궜다. 이제는 말소리를 줄이지 않아도 된다 생각한 모양이다.

 

 

 

“… …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겠소.

부디 이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 되길 바라겠소.

아니, 그건 본관이 그리 만들어야 할 일이지.

안전은 걱정하지 마시오. 그건 내가 다 책임지겠소.”

 

 

 

그렇게 말하면서 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치마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허리춤에 매고 있던 칼을 짤랑짤랑 움직였다. 한 동안 쭈그려 앉아 있어 그랬던 것인가, 일어나는 용의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갈 거야?”

 

“… 혹시 모르니 가서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그대도 어서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 그래. 그래야지.”

 

 

 

나는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대원들의 얼굴을 보았다.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 … 있잖아, 용.”

 

“왜 그러오?”

 

“저기 있는 주황머리 아이 있잖아.

네레이드 말이야.”

 

“… 이름을 알고 있었소?”

 

“그 아이만 잠시 부르고 다른 애들은 나가 있게 할 수 있을까?”

 

“위험하지 않겠소?”

 

“뾰족한 거나 그런 것만 없으면 상관없어.

그냥 잠깐 이야기나 해보려고.”

 

“왜 하필 저 아이요?”

 

"그냥… 

...

...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고 생각해.”

 

 

 

의문스러운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 용이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문 쪽으로 걸어가 다른 대원들에게 뭐라 뭐라 설명을 하더니, 이내 네레이드만 내가 있는 감옥 안으로 들어오고, 다른 아이들은 방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다시 닫혔고, 방 안엔 어둠이 스멀스멀 제자리를 찾았다.

 

 

 

 









 

 

 

 

"안녕?”

 

"… … ...”

 

"조금 당황스럽지?

저 인간이 왜 나만 따로 부른 건지 말이야."


"그... 런 건...

...

..."


"너무 걱정하지마.

레오나가 자고 있는 마당에 내가 따로 움직이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이번에도 자다가 다시 깨면 그 땐 진짜 죽음이거든."


"... ..."




어색한 농담에 네레이드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눈은 회색 바닥을 향해 있었지만, 그래도 그 말괄량이의 얼굴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 기뻤다.




"그리고."


"... 예?"


"내가 왜 불렀는지 알고 있지 않니?"


"... ..."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지?”

 

"... ...”

 

“리리스가 나를 엎고 함선 밖으로 도망치려 했을 때.

그 때 봤던 주황머리가 너였구나.”

 

 

 

미니건. 다른 건 몰라도 함대끼리의 싸움에서 미니건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비행기가 그대로 들이 박아도 자국만 좀 남을 뿐인 두꺼운 함선을 미니건 따위가 뚫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함선 위의 대원들을 공격할 수는 있겠지만, 혼란스러운 함대전에서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러나 리리스가 나와 함께 도망치려 했을 때, 리리스의 로자 아줄을 갈아버리려고 했던 그 총은 분명 미니건이었다. 5명이 리리스를 막으려고 했었고, 나는 그 때 정신이 아찔해서 밝은 주황빛의 머리카락만 겨우 볼 수 있었다.

 

 

 

“허벅지의 그 상처.

군용 바이오로이드가 그런 상처를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

그런데 아직까지 붕대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을 보면 꽤 큰 상처였나 봐?”

 

"… ...”

 

“리리스의 맘바가 꼭 그 정도의 상처를 냈는데 말이야.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 ...”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만나서 반가워.

그 때는 차마 인사할 겨를이 없었지.”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있던 나는 내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 있던 네레이드에게 손을 건넸다.

 

 

 

“… ...”

 

“왜 그래?”

 

“… … 왜...”

 

"왜?”

 

“… 왜… 왜 부르신… 거죠...?”

 

 

 

네레이드가 나의 눈을 피했던 것은 단지 어색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했던 몸부림이었다.

 

 

 

“인사나 좀 하고 싶어서.”

 

"... ..."


"네레이드는 내가 아직도 총 맞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니?"


"..."


"미니건 돌아가는 소리를 다시 듣긴 나도 싫거든."


"...

...

… 요… 용 대장님이 사령관님이 나쁜 분은… 아니라 하셨지만… ...”

 

 

 

네레이드가 몸을 미친 듯이 떨었다. 땅에 닿은 머리카락도 그에 따라 떨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마냥 활달한 모습만 보았던 나로서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 그래, 힘들겠지.

말로 들은 거랑, 이렇게 보는 거랑은 다르니까.”

 

"… 죄… 죄송하…ㅂ니다… ...”

 

"아냐, 아냐. 나라고 해도 그렇게 힘들었을 거야.

앞에 있는 인간이 언제 어떤 명령을 내릴 지도 모르는데,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자기를 놀리려는 건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떨지 않는 게 이상한 거지.”

 

“… ...”




내가 아무리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한다 한들, 그 이상의 안정을 줄 수는 없었다. 네레이드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내 눈을 피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를 죽이려 했던 장본인이었으니 그러는 것이겠지. 


네레이드가 믿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자신을 왜 부른 것인지.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는 내가 왜 멈춰 세운 것이었는지를. 그냥 내가 오라 했기에 왔고, 서있으라 해서 서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네레이드.

아니, 네리네리?"


"... ?"


"내가 아는 네리네리라면 자기를 분명 그렇게 부르라고 했을 거야.

내가 틀렸니?"


"... 그... 그건..."




기대치 않았던 하나의 애칭. 갑작스러운 말을 들은 네레이드가 처음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마.

나는 너를 해치려고 부른 게 아니거든."


"..."


"물론 말로만 하면 믿을 수 없겠지?

인간이 너희를 괴롭힌 제일의 방법이 말이었으니까."


"... 죄... 죄송ㅎ..."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그 대신 이걸 믿으렴."


"... ...  뭐를 말이...죠...?"


"다른 건 아니야.

잠시 손을 좀 빌려주겠니?”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나는 네레이드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다행히도 네레이드는 떨고 있는 몸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내게 자신의 양 손을 건넸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내 입에 가져다 대었다.

 

 

 

“네가 내 입을 막으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나를 믿지 말고, 내 입을 막는 너를 믿으렴."


"하... 하지만 그런 걸... ..."


"그리고 이렇게 하는 나를 믿으렴.”

 

 

 

네레이드의 왼손이 내 입 위를 덮었고, 오른손이 왼손에 겹쳐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사… 사령관님… ...”

 

"...”

 

 

 

나는 말없이 웃어 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네가 편해질 때까지 계속 이렇게 있겠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온 힘을 다했다.


 

 

"… ...”

 

 

 

내 입을 자신의 양 손으로 꽉 막은 네레이드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말없이 거친 숨만 몰아 쉬던 네레이드는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드러운 호흡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땅바닥에는 위로부터 떨어진 물방울이 부딪혀 산산이 부숴진 자국이 하나 둘씩 새겨졌다.

 

 

 

 

 

 

 

 

 

 

 

 

 

"… … 죄송해요… 죄송해요… 사령관님...”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울고 있는 네레이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 사… 사령관님… ...”

 

 

 

그리고는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부디 이 아이가 나를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 죄송… 죄송해요…

…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았다면… ...”

 

 


---툭.

 

네레이드가 자신의 팔에 힘을 천천히 풀었다. 그 가녀린 오른손이 왼손과 떨어지며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그 아이가 내 눈을 보았다.

 

남아 있던 왼손도 내 입 위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다. 그 자유를, 네레이드는 내 얼굴을 더듬거리는데 사용했다.

 

 

 

"… … 뭐라… 말해야 하는 건지 자… 잘 모르겠어요…

… … 이… 이런 걸 잘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

… … ...”

 

"괜찮아.

다들 그랬는 걸.

이제는 나도 익숙해져야지.”

 

"사… 사령관님… ...”

 

"왜 그래?”

 

"사령관님은… …

… 저희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거죠… ...?”

 

"물론이지.”

 

“그 사람처럼… … 막 죽이고 그러지도 않는 거죠...?”

 

“당연하지.”

 

"막… 막… 잡아 먹고… 굶겨 죽이고…

그… 그러지도 않는 사람이죠…?”

 

“내가 먹는 것도 나눠주고 싶은 심정인데 왜 그러겠어.”

 

“… …

… 

… 아… 아아… 내가… 내가… ...”

 

 

 

우는 모습이라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아이가 내 앞에서 무너졌다. 내 다리를 붙잡고는, 하늘이 꺼져라 눈물을 쏟았다.

어두운 감옥 안에서도 주황색 머리카락은 선명했다.

 

 

 

"내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

… …

… 흑… … 흐으… … 흐아아아아...!!!!!!”

 

"괜찮아. 괜찮아. 나는 다 용서했으니까.

울어줘서 고마워. 네레이드.”

 

“… .... 흐아아아아아앙… …!!!”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들리지 않을까, 나는 무너져 내린 네레이드의 머리 위를 내 몸으로 천천히 감싸 안았다. 그러면 이 울음 소리가 저 멀리 퍼져나가진 않아도 되리라. 그리고 그 울음은 온전히 내가 받아줄 수 있으리라. 그 생각을 하니 안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네레이드가 우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안도감? 자신이 분노해야 할 상대가 사라진 아쉬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 과거에 대한 고통? 그것이 무엇이었든 네레이드는 나를 받아주었다. 적어도 내가 그것을 함께 감당해줄 자격은 있다는 것이다. 

 

땅 위에 짙은 눈물 자국이 계속 생겨났고, 이내 땅은 원래의 색을 잊어버렸다. 회색빛의 땅에 물자국이 세겨지며 더욱 진하게 변했다. 그것은 땅이 물을 머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그 눈물의 색이 이리도 짙은 회색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울어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흐으… 흐윽… … 사령관님…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내가 몰랐어요…

… …

…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요… … 흐으윽… 흑… 흑흑...”

 

 

 

난 이 아이의 동료를 죽였다. 서로 쏘아 죽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내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무엇이 미안한지조차 말할 수 없을 만큼 감정에 북받쳐서 입을 여는 것조차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듯 했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길래 이렇게까지 무너져 내리는 것일까? 나를 싫어하고, 그토록 증오했던 아이들에게 나는 분노할 명분을 쥐어주었다. 그러나 지금, 이 아이는 그것마저 내버려 두고 나에게 안겼다. 그 절박함에는 이성이나 합리 따위가 끼어들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란 이런 존재이다. 그건 분명 사람과 다르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그것이 중요치 않았다. 이질적이란 느낌도, 이 아이들이 사람이 아니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런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해주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것이 나는 기뻤고, 또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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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점검 시간에 창작물 떡밥이 돌기를 바라며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