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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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별 일은 없었어.”

 

“별 일 없기는.

그 아이가 내게 직책을 바꿔달라 요청했소.

적어도 눈물 자국이라도 지우고 올 것이지, 어찌나 급했으면 그랬겠소?

그 애 성격 상 웬만한 일로는 울지 않을 텐데.

… …

무, 물론 나쁜 의미로 울었던 것 같지는 않았으니 그대에 대해 나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오.

내가 아는 그대라면 나쁜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하하… 그랬구나.”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내게 준비를 끝냈다고 연락을 해온 용과 함께 함선 갑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라비아타는 먼저 갑판 위로 가 다른 위험이 없는 지 확인하겠다고 이야기했으니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레오나는 어디로 간 건지 잘 모르겠다. 몸도 약한 애가 멀리 가면 안 될 텐데. 


 

 

“다른 건 아니고,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애였거든.”

 

“만났다니?

이곳에 있는 동안 그럴 시간은 없었을 것 같은데...”

 

"그랬지.

지금은 말이야."


"무슨 뜻이오?"


"전에 여기서 도망치려고 리리스랑 내가 난동을 부렸을 때 만났지.”

 

"아… …

… 흠흠...”

 

 

 

용은 부끄러운 듯이 연신 헛기침을 뱉었다.

 

 

 

"그… 그 때의 본관은 진심이 아니었소.”

 

"하하, 진심이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어.

어차피 지금의 용이랑 그 때의 용은 완전 딴판인 걸.”

 

"… 흠흠…

그래서 언제 만났던 것이오?”

 

“함선 내부에서 숨어있었을 때 네레이드가 오더라고.

미니건 소리가 어찌나 소름 끼쳤던지 기억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지.

내 기억이 맞으면 아마 그 때 리리스가 다리에 총을 쏴서 애들을 무력화했을 거야.

네레이드가 아직도 다리에 붕대를 감싸고 있는 걸 보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그걸 보고 알았지.

너희도 최근엔 싸울 일이 없었을 텐데 아직도 부상인 애가 있다는 게 이상하잖아.”

 

"… 그랬군.”

 

 

 

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 그 요청을 거절할 것 그랬소.”

 

"요청? 무슨 요청?”

 

“그대의 경호를 맡는 임무인데 허투로 할 수는 없지 않겠소?

무엇보다 그대에 대한 반감이 없는 자들을 뽑아야 했으니 나름의 면접 아닌 면접을 했었소.

그 때 그 아이가 사령관을 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했기에 뽑았던 것이오.

물론 과한 집착이나 증오 같이 부정적인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했으니 뽑았던 것이긴 했지만…

…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은 몰랐군.”

 

“그 애가?”

 

“그렇게 보면 그 아이도 나름 사과를 하고 싶었던 것 같소.

다만 그대를 다시 보니 그런 마음보단 과거의 트라우마가 먼저 떠올랐던 것이었겠지.

눈을 피했다고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시오.”

 

“하하… 난 아직도 그런 이미지구나.”

 

“너무 자책하진 마시오.

이렇게 천천히 장벽을 허물어 가는 것이 최선이니 그대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네.”

 

“나도 아쉽긴 마찬가지요.

그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하루 종일 말해도 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용이 아쉽다는 듯이 입을 내밀었다. 

문득 눈이 조금 가늘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 그나저나 레오나 지휘관과는 사이가 많이 좋아진 것 같소.”

 

"그래?”

 

"… … 많.이. 좋아진 것 같소.”

 

"하하… … 그… 그리 보이면 다행이네...”

 

"많. 이. 말이오.”

 

"... …”

 

 

 

용의 말소리가 점점 강해지더니 얼굴까지 내게 들이밀었다.

 

 

 

"… 내가 모를 줄 알았소?”

 

"뭐… 뭐를?”

 

“그대가 레오나 지휘관과 입까지 맞춘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냔 말이오.”

 

“어… 음… ...”

 

“분명 그 방에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는데, 참 보란 듯이 잘도 하더군.

혀끼리 질척거리는 소리가 카메라 너머까지 아주 잘 들려서 보기에 지루하지 않았소.”

 

"미... 미안...

그 땐 그래야 할 거 같은 분위기였어...”

 

 

 

콧잔등끼리 부딪히기 직전이었기에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다행히도 용은 자신의 이마를 내게 꽁 부딪히고선 다시 원래의 자세를 취했다.

 

 

 

"… 나도 알고는 있소.

그대가 앞으로 많은 여인들을 안을 것이고, 

나는 그 곳에 낄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니란 걸 말이오.

다만… ...”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보란 듯이 하면 나도 질투할 수 밖에 없단 말이오…

… …

… 앞으로는 조금 자중해 주면 좋겠소.

대체 어느 누가 입맞춤만 30분을 넘게 한단 말이오!”

 

"하하… 알겠어...

조심할게…”

 

 

 

본의 아닌 호통을 당한 후, 앞장 서 걸어가는 용을 따라 나도 발을 움직였다. 화를 내는 건지 아니면 어떤 건지 나도 혼란스러웠다. 다만 질투라기 보단 부러워하는 눈빛에 가까웠으니 내가 잘 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후우… 이리 긴장됐던 적은 처음이군.”

 

 

 

용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우리는 문을 하나 만났다. 

 

 

 

"왜 그래?”

 

"… 말보다는 직접 들어보시오.”

 

 

 

용은 내 몸을 문 쪽으로 들이 밀었다. 내 귀가 문에 닫자 건너편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시끄럽거나, 웅성거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수의 사람이 있지 않으면 결코 낼 수 없는 엄중함이 귓가를 타고 흘러왔다.

 

 

 

"… 설마?”

 

“다들 도착해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오.

대충 500명 가량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군.”

 

"5… 500?”

 

“물론 공중에 있는 자들은 제외요.

자리에 참석 못해 다른 곳에서 영상으로 보고 있는 자들도 역시 제외고.

다들 준비가 되었다고 하는군.”

 

"그 말은...”

 

“그대가 나가면 그 때부터 시작이란 거지.

이제 10분 정도면 도착이라곤 하지만 이리 빨리 모일 줄은 몰랐소.”

 

"… 워메...”

 

 

 

감탄사 아닌 감탄사를 내뱉었다. 500이라고? 내가 어떤 놈이었는지를 떠나서 그 정도 숫자 앞이라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긴장되기 마련이다. 그나마 그걸 지금 말해주었으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나가자마자 기절했을 것이다. 

 

 

 

"… 어떻게 하겠소?

본관은 먼저 나가보아야 하오.”

 

“… ...”

 

“그대가 말하기로 한 이상, 많은 시간을 줄 수는 없소.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 때 나와도 좋소.

그 때까지는 나도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요.”

 

"… … 무슨 아이돌 콘서트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되버린 건지…

… ...”

 

 

 

생긴 꼴은 그렇지만 차라리 청문회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도 수틀리면 총 맞아 죽을 수 있는 청문회.

 

 

 

"그럼… 먼저 나가보겠소.

그대는 잠시 몸을 숨기고 계시오.”

 

 

 

용이 그 말을 한 다음 문을 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밖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사람들. 공중에 날아다니고 있던 스카이나이츠 대원들과 페어리 아이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던 카메라까지 보였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용이 말 한 한 번의 기준이 이 정도였을 줄 내가 알았겠나? 용이 레오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로 그랬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 후우...”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다. 별의 아이, 그 개자식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마당에 더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나가야 한다. 나가야 한다고.

 

 

 

"… 그래, 나가자.

나가야 오르카 호 애들을 다시 보지.”

 

 

 

나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500이 넘는 눈이 나를 향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다. 이젠 피하고만 있지는 않겠다.

 

 

 

 

 

 

 

 

 

 

 

 

 

 

 

 

 

"… ...”

 

 

 

철컥거리는 소리가 온 사방으로 퍼졌고, 나는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눈을 마주했다.

 

그 중 몇은 몸을 떨었고, 몇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일부는 나에게서 거리를 벌렸고, 다른 일부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여기 있소.”

 

 

 

용이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그러자 새삼 용과의 첫만남이 떠올랐다. 그 때는 이야기를 하자고 했으면서 내게 작은 마이크 하나도 건네지 않았었지.

 

 

 

“(긴장하지 마시오.

이제 그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이는 없소.)”

 

 

 

용이 작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이전에 내 면전에 대고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말한 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새삼 용기가 났다. 그래, 뭐 별 것 있겠나. 그냥 하는 거지.

 

 

 

"… 아아...”

 

 

 

마이크는 잘 작동했다. 나는 내 말을 시작해야 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색한 목소리가 공중을 타고 사방에 퍼졌다. 작게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조차 내 말을 시작으로 전부 사라졌다. 함선이 바다를 가르고 앞으로 나가며 만들어 내는 파도만이 철썩거리며 거대한 침묵을 채웠다. 괜히 존댓말로 시작했나, 후회가 들었다.

 

 

 

“이미 저를 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소개를 하긴 해야겠네요.

저는 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인간입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렇게 말하겠다고 했던 것도 전부 나의 선택이었다. 이 만남도, 이 긴장도, 이 싸늘함도 전부 나의 선택이었다. 

지옥 같은 싸늘함이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사령관입니다.”

 

 

 

그래, 나는 내가 만든 지옥에 갇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살아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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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눈이 있다. 하늘이 아무리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여도 결코 섞이지 않는 순수한 아득함을 담은 그런 눈이 있다. 

대부분 둘 중 하나이다. 초연하거나, 미쳐있거나. 지금 나를 보는 이들의 눈이 그러했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그렇게 되어버리곤 한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작은 인사를 마치곤 파도를 가르는 소리에 이 침묵을 맡겼다. 

그러고 나면 머리 속에서 작은 시침이 톡 톡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건 아마 파도 소리가 익숙해질 때가 되어서야 종을 울릴 것이다. 

그 종이 울리기 전에, 나는 다음 말을 끄집어 내야 한다.

 

 

 

“… 여러분이 얼마나 저를 미워하는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다 뭐다, 그런 말은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판단하시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수 백이 넘는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누군가는 분주하게 내 몸을 살피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라비아타가 내 옆에 서있는 것이 약간의 안심이 되었지만, 이 위압감을 줄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옆에서 용이 안쓰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 표정이 또 제법 볼 만 한 것이었기에 갑판 위에 있던 누군가들은 나 대신 그러한 용의 표정을 관찰하고 놀라워했다. 

 

 

 

"… … 내가 이렇게 있는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러니 여러분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한 가지 보험을 두겠습니다.”

 

"… ??”

 

 

 

대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한 명에겐 작은 소음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모이고 나면 하나의 소리가 된다. 그 복잡한 소리의 패턴이 내 귓가를 어지러이 하고 있을 때에 라비아타가 슬쩍 내 앞을 막아 섰다.

 

 

 

"(… 사령관님.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 … 순간이지만 저희 함선의 오른쪽 세 번째 함선의 관제탑 위에서 반짝이는 것을 봤습니다.)”

 

"(뭐?)”

 

“(저격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막을 수는 있겠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한 손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밖으로 향하지 않게 막으며 라비아타가 작게 속삭였다. 저격이라고? 내가 기억하기에 그런 구식 방식을 쓰는 저격수들은 발키리랑 미호 말고는 없을 텐데? 그런데 둘 다 반군에는 합류하지 않았던 거 아닌가? 저격이 아닌 건가?

 

아니, 합류한 기록이 없더라도 개인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은 있다. 라비아타가 저격이라 했으니 그 외 다른 가능성을 내가 생각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따지게 되면 내가 할 말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어차피 총 맞을 각오는 하고 왔다.

 

 

 

"(괜찮아. 그냥 하자.)”

 

"(하지만… ...)”

 

“(아직 무슨 말도 못 했는데 여기서 끊으면 여론만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어.

그쪽으로 대응할 수 있게 따로 팀만 보내고 이건 계속 하자.)”

 

“(…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라비아타는 자신의 리시버에 입을 대고 무어라 작게 속삭였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또 팀을 만들어 둔 것이겠지. 사령관 경호 팀이라. 컴패니언 말고 그런 팀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하물며 반군에서 생길 줄은 더더욱 몰랐고.

 

부디 나를 보고 있을 그 아이가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며, 나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라비아타가 가리켜준 세 번째 관제탑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이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사람의 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르카의 아이들이 말 한 마디에 얼마나 치를 떨며 두려워 했는지 직접 봤고,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까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마음 편하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 ..."




사람들의 소리가 더욱 울려퍼졌다. 특정할 수 없는 소리들이 모여 거대한 소음이 되어간다.




“그러기 위해, 제가 사령관 권한으로 여러분께 하나만 ‘명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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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오는 그 순간, 하늘의 햇빛을 이길 정도의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라비아타가 내 앞을 막아 섰다. 그 거대한 대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덮었고, 이내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온 갑판을 채웠다. 

 

순간의 총 소리에 갑판 위에 있던 누구는 비명을 질렀고, 어디선가 철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자신의 리시버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용도 역시나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긴급 상황 발생!!

현 시간 부로 연설은 끝이다!!

대응 팀은 당장 미리 지정되어 있던 곳으로 사령관을 모시오!!!!!”

 

 

 

라비아타가 계속 주변을 바라보았고, 몇 개의 불빛이 이곳 저곳에서 반짝이더니 전에 들렸던 카랑카랑한 금속 소리가 귀청을 찢는 듯이 울렸다. 라비아타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검을 휘둘러 총알을 막은 것이다. 나를 두르고 있던 방어막은 제 역할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질 위기에 쳐했다.

 

 

 

“뭐 하고 있소!!

그대고 어서 피하시오!!!!!”

 

 

 

라비아타가 나를 막는 사이, 용이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곤 나를 집어 들었다. 순간 높아진 내 시야 덕분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흥분한 용의 표정은 그 동안 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지금 무슨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다. 별로 놀라운 것도 아니고.

 

 

 

"… 아냐, 괜찮아.”

 

“괜찮긴 무슨!!!

지금 그대가 죽을 뻔 했다는 걸 모르오!!??”

 

“기다려 봐.”

 

 

 

용의 어깨를 차분히 누르며, 나는 땅에 떨어진 내 마이크를 주웠다.

 

 

 

"… 조용.

 

 

 

내 말이 내 귀에 들리는 순간, 갑판 위에 다시 침묵이 돌아왔다.

속으로 숫자 10을 셌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마이크만 들고 있자 다시 함선 위가 잠잠해졌다.




"(봐봐. 후속 공격이 없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 중요해.)" 


 


숫자가 10에 다다르자,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이런 사건 하나 정도는 터질 거라 각오하고 있던 차였다.

이제야 이 아이들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으리라. 




“… 여러분들이 저를 얼마나 미워하고, 불안해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작은’ 소란이 일어나는 것도 감내하겠습니다.

그런 각오도 없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니까요.”

 

"… ...”

 

 

 

다시 한 번, 이 수백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사령관으로서 명령하겠습니다.

앞으로, 이 시간에 제가 다른 어떤 명령이라도 내린다면,

아니, 내리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 … ...”

 

 

 








파도 소리가 조금 잦아 들었다. 배가 자신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도착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증거다.

 

 

 

“죽이고 싶겠죠.

이 인간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면, 당연히 죽이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그 잘난 명령권이 장벽이 되었겠죠.

그래서 저는 제가 여러분보다 위에 있을 수 있던 단 하나의 방법을 포기할 겁니다.

명령하지 않겠습니다.

내게 총을 쏘고, 칼을 들이밀고, 나를 죽이려고 할지라도 명령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저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 ...”

 

 

 

갑판 위에 있던 모두가 이제는 온전히 나를 쳐다 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저 멀리서 스코프 너머로 나를 보고 있을 아이도 아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소름 끼치는 총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반짝임도 멎었으니 말이다.

 

나를 들춰 맸다가 다시 땅에 내려 놓은 용도, 검을 들고 온 몸의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던 라비아타도 비슷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 그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미친 사람이었던 같소.”

 

“내가 변했다는 걸 보여주기엔 적당한 이벤트잖아?

미치지 않고선 이 짓거리 못하지.”

 

 

 

개새끼가 정상인으로 변했다는 걸 보여주려면 어느 정도 미칠 필요는 있다. 각오가 없던 것도 아니다. 총소리가 들렸을 땐 심장이 덜컥 주저 낮을 뻔 하기도 했지만, 기절은 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 … 하하… 정말이지… ...

어이가 없군…”

 

 

 

용의 어이 없다는 듯한 웃음을 똑같은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나는 다시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아, 그럼 조금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저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내가 알던 그 괴물 새끼가 맞나.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겠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변했다던가, 그런 개념이 아니라 정말 아예 다른 사람이란 뜻입니다.

빙의니, 뭐니, 믿고 싶은 대로 믿으시면 됩니다.

뭐가 되었든 여러분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 ...”

 

 

 

솔직히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아예 포기할까 싶기도 했다. 그런 개새끼를 믿어주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를 보고 울어주는 네레이드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힘이 났다.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구나, 그래도 내가 잘못된 길을 갔던 건 아니구나. 

작게나마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총 한 번 본 적 없이 자랐습니다.

이곳에 비하면 아주 평화로운 곳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겪은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얼마나 비정상적인 것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누가 무어라 하든, 여기 있는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로 보이니까요.”

 

"사… 람… ...?”

 

 

 

그 동안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설명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지만, 여기서까지 숨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 애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그럴 듯 하게 들리겠나. 그 중에 조금 더 추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겠지.


청중이 조금 내게로 다가왔다. 내 말을 듣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여러분들이 누구인지 압니다.

어떤 부대가 있고, 어떤 대원들이 있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성격은 어떤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보고서를 읽고, 알 수 없던 것들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죠.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입니다.”

 

"… ...”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이해하려고…

… 어...?”

 











 

 

저 멀리 시야를 높이고 있을 때에, 낑낑 대며 인파를 비집고 내 앞으로 나오는 한 소녀를 보았다.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양 갈래 머리의 소녀. LRL이었다.

 

 

 

"… ...”

 

“… ...”

 

"… … 사령관… … 님...?”

 

 

 

낮고, 우중충한 목소리. 목에 잔뜩 가래가 낀 것처럼 갈라지는 목소리가 언뜻 들었을 때는 성인의 것 같았다. 

무엇보다 LRL의 입에서는 나올 것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호칭. 이 딱딱한 호칭에 걸맞게 LRL의 하나 남은 눈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 아이가 입을 열었을 때, 나를 보고 있던 눈빛들이 그 아이에게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누구도 이 많은 사람들을 대표해 이토록 작은 아이가 올 것이라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 당신은… 누구야...?”

 

"… 나는… …

…”

 

 

 

이 아이가 정말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나를 보고 먼저 사령관님이라 부른 것은 이 아이니까.

 

 

 

"… … 왜 온 거야...?”

 

"… ...”

 

“사람… 사람만 없으면 다 된다고 그랬어…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전부 사람만 없으면 괜찮은 거라고 그랬어…

근데… 근데 왜 또 온 거야...?

또 나를 괴롭히려고 온 거야?”

 

 

 

좌우좌가 고사리처럼 작은 그 손으로 자신의 안대를 벗겼다. 어둔 밤을 밝게 비춰야 할 등대의 불빛이 있을 자리에는 어두컴컴한 공터만이 존재했다.

 

 

 

"… 아팠어. 사령관 때문에 엄청 아팠다고…

그래도… 그래도 죽기 싫어서… 그래서 계속 버티고 버텼는데…

… 왜 왔어…?”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이 무색하게, 그 텅 빈 공터가 너무나도 크게 보였다.

단 하나의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하나에는 다른 모두를 대변하듯 수백의 원망이, 슬픔이 담겨 있었다. 고작 하나뿐인 눈이다. 

모두가 2개를 가지고 태어나는 세계에서 고작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 하나의 순수함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온 것이냐고.

 

 

 

"… … 미안해.”

 

 

 

그 하나 때문에 나는 내 무릎을 꿇었다. 그것을 감히 내려다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나 혼자… 나 혼자 등대에서 엄청 오래 기다렸어.

엄청 쌘 폭풍 때문에 등대 유리창이 전부 다 깨졌을 때도… 나… 혼자서 있었어.

읽고 있던 책이 찢겨도 안 울고 기다리고 있었고…

외로워서 울고 계속 울다가 눈에서 피가 날 때까지 기다렸어…

… …”

 

"… ...”

 

“얌전하게… 착하게 기다리면 좋은 사람이 온다고… 흰 달력이 노랗게 되고 뜯길 때까지 기다렸어.

하루가 지날 때마다 벽에다 빨간색 동그라미도 쳤는데… …

… 벽이 온통 빨갛게 될 때까지 기다렸어.

… … 근데… 근데... 그렇게 해서 온 게 사령관이야.”

 

 

 

LRL은 남은 힘을 짜내서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그 눈물 하나를 모으기 위해 말라버린 눈물샘을 어디까지 끌어 당겼을까. 

하나 남은 눈에, 하나 남은 눈물을 나를 위해 쏟았다.

 

 

 

"… 근데… 나… 등대에 있던 그 때가 더 좋았던 거 같아.”

 

“… ...”

 

“앞은 안 보였어도 눈이 두 개였을 때가 더 좋았어.”

 

"...”

 

“차라리 혼자서… 외로워서… 울 때가 더 좋았어.”

 

"… ...”

 

“그래서… 난 사령관이 싫어.”

 

"… … 미안해…”

 

 

 

다른 사람이 아팠던 것은 많이 봤을 지도 모른다. 다 큰 어른이 아픈 것은 이제 익숙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가 무슨 일을 겪고 여기까지 왔을지, 수천 수만 시간 봐왔을 바다 위로 오게 된 것일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짜디 짤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얼마나 짤 지를 생각하며 그 깊이를 떠올릴 뿐이었다.

 

아이의 슬픔은 더 깊은 심연 속에 있다. LRL의 텅 빈 반대편 눈에서 한 세월을 잠들어 있던 슬픔이 공터를 타고 세상 빛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밝아야 할 등대는 자신의 뒤편이 가장 어둡다는 걸 알고 있을까?

 

 

 

 

 

 

 

 

 

 

 

 

 

 

 

 

 

긴 침묵 끝에, LRL이 입을 열었다.

 

 

 

"… 근데...”

 

 

 

LRL은 내게 낡은 참치 통조림 하나를 건넸다. 어찌나 오래 되었던지, 노란 포장이 거의 다 지워져 참치 그림만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아이처럼 입을 벌린 채, 나는 그 통조림을 내 손으로 쥐었다.

 

 

 

"… … 당신은 안 싫어.”

 

"… 뭐...?”

 

“그래서 모르겠어.

당신이… 누군지.”

 

“… ...”

 

"… … … TV로 봤어.

감옥에 있던 거. 나도 봤어…

… 왜 그렇게 가만히 있었어?”

 

"… ...”

 

“명령하면 우리는 거부 못 하는 거, 나도 알고 있어.

그거 때문에 나랑 똑같이 생긴 애들이 전부 죽었어.

… … 근데 왜 안 그랬던 거야?”

 

 

 

LRL은 땅바닥에 널브러지듯 무릎 꿇고 있던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하나, 둘, 다른 눈들이 나를 쳐다 보았다. 

이 작은 아이가 이토록 커다란 무리를 아무렇지 않게 대표하고 있었다. 

그만큼 커다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또 그만큼 거대한 인내를 보였기 때문이리라.

 

 

 

"… 보여주고 싶었어.”

 

"...”

 

“내가 그 놈과는 다른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

너희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보여주고 싶었어.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다시는 너희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란 걸 증명하고 싶었거든.”

 

"… …”

 

 

 

하나가 나를 보았다. 수백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에 공터가 있었다. 그것도 나를 보았다.

그건 빛이었던 것이다. 

어둠이다. 텅 빈 공터다. 사라진 이 아이의 눈이다.

 

 

 

"… 당신 명령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어.

우리 배끼리 서로 쏘고, 엄청 출렁거렸어.

나도 그거 때문에 다쳤어.

몸이 약해서 도망치지 못했거든.”

 



무릎에 작은 반창고가 하나 붙어있었다.




"… …”

 

“… … 나도 알아. 싸우는 게 그런 거라 했어.

싸우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거라 했어.

이런 걸로 미워하는 건 역시 어린 애 투정이겠지.”

 

"… LRL...”

 

"… 근데 있잖아…

… … 난 아직도 어린 애잖아…

… 아니야…?”

 

 

 

오르카 호를 지키기 위해,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나는 내가 했던 선택을 후회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정당화시켜줄 수 없음을 목격했다.

 

누군가는 결국 나를 미워할 것이다. 그걸 피할 수는 없다. 나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 작은 아이에겐 나보다 자신의 언니들이 더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 때문에 죽은 사람들엔 그 언니들이 껴있을 수도 있다.

 

그래, 내가 뿌린 씨앗이니, 내가 거둬야겠지.

 

 

 

"… 미안해.”

 

“...”

 

“내가 조금만 더 이성적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 거야…

… … 내가 너무 성급했어.

다른 말은… … 못하겠지.

… … 미안하다...”

 

 

 

계속 덮고 가다간 결국 터질 일이다. 난 게임 속 주인공이 아니다. 

한 명도 죽게 두지 않은 주인공과 달리 감정 조절 하나 하지 못해 이 애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니 최소한, 사과하는 것만큼은 미뤄선 안 된다. 

능력도 없으면서 추하게 살아남고 싶지는 않다. 그래야 나도 이 애들을 볼 최소한의 낯이 있다.

 

 

 

"… ...”

 

"… ...”

 

"… 사령관.”

 

 

 

수백을 대표하는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고개 들어도 돼.”

 

"… 어…?”

 

“… 고작 어린 애 투정에 그렇게 고개 숙이지 마.

고작 투정일 뿐이잖아.”

 

"… ...”

 

“그 사령관 아래에선 아무리 화가 나도, 억울해도 참아야 했어.

안 그러면 분쇄기에 갈려 전부 죽어버렸으니까.”

 

"… 미안해… 미안해… ...”

 

 

 

LRL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소리 하지 않아도 돼.

사령관은 그런 사람 아니란 거 알았으니까.”

 

“… ..”

 

“사령관 앞에서는 안 참아도 되잖아.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 해도 되잖아.

그도 그럴 게, 이런 투정도 전부 받아주고 있잖아.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건데.”

 

“…”

 

“더 보여줄 게 있으면 보여줘도 괜찮아.

더 증명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

...

근데, 안 그래도 될 거 같아.”

 

 

 

LRL이 내게 다가왔다. 무릎을 꿇어야 겨우 닿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아이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자글자글 주름진 옷은 이곳 저곳이 끊어져 있었다. 내가 차마 손 대기 힘들 만큼 헤어진 옷이 너무나도 가녀렸다.

 

 

 

“미워하다 지치고, 미워하다 지치고,

몇 번을 반복했는지 이젠 기억도 안 나.

아무리 화를 내고 소리를 쳐도 이 작은 몸이 감당을 못하더라고.

화 내고, 참는 법만 배우다 보니 어느 새 이 몸이 너무 작아 보였어.

난 속만 커버린 걸까?”

 

"… ...”

 

"그런데, 그 덕분에 사령관이 누군지 보이는 거 같아.

사령관은 감옥에 있을 때도, 총을 쐈을 때도 참았잖아.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 많이 보여줬어. 수고했어.”

 

“… … 미안해…”

 

"아냐, 괜찮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의 모습을 봤으니까.

머리만 훌쩍 커버린 나보다 더 순수한 사람을 봤으니까.”

 

 


 

왜 몰랐을까? 내가 아무리 말을 잘 해도, 무엇을 보여줘도 결국 선택은 이 아이들의 몫이란 것을. 별의 아이가 쳐들어 온다고 해도, 네스트가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해도 결국 이 세계의 흐름이란 걸.

 

내가 뭐가 잘나서 이 아이들을 회유하려고 한 걸까? 그걸 선택하는 건 내가 아니라 이 아이들인데. 그리고 왜 나는 그것을 괜찮다는 LRL의 말을 들어서야 깨달은 걸까?

 

 

 

"... … 고마워… 고마…워...”

 

“드디어 미안해가 아니라 다른 말을 하는구나.

고마워 사령관.

여기에 와줘서.”

 

 

 

 

-----툭----------

---툭---툭툭----

--툭--툭툭---툭-

 

LRL의 손을 시작으로, 다른 손들이 하나 둘, 내 어깨 위로 얹혀졌다. 작고, 얇은 손도 있었고, 부드럽고 가녀린 손도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어 그 손의 주인들을 볼 수가 없었다. 그걸 봤다간 정말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았으니까.

 

네레이드가 내 앞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난 LRL의 앞에서 쓰러질 수 밖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아이들이 나를 받아주어 긴장이 풀렸던 것일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울 일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등 위로 얹혀지는 손이 점점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계속 눈물이 쏟아졌다.

 

내게 총을 쏜 것을 알았을 때, 만약 그 때 이전처럼 반응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있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내가 서로 쏘라 말하지만 않았다면 조금 더 빨리 이 온기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라비아타의 대검이 총을 막았을 때, 굉음이 갑판 위를 덮었을 때 마이크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는 뜻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일로 조금은 사령관다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 감싸여, 그런 별 볼 일 없는 생각을 했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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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4천자 라인에서 한 번 끊을 생각이었는데, 안 끊었슴

대체 왜 다른 소설들은 3천자만 넘겨도 적당하다 하면서 나한테만 짧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스...


이 소설이 뭐라고 64화까지 왔을까.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