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모음


끼리리리릭. 철컥철컥.




블랙존의 어느 황량한 거리.

아놀드는 쓰레기를 줍던 도중 문득 베키가 건네준 장난감이 떠올러 꺼내서 작동시켜보았다.

조그만 오리가 태엽 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걸어가고, 아놀드는 그것을 보며 싱긋 웃어보인다.



"이런걸 어떻게 찾아왔데..."




아놀드는 장난감이 맘에 든 듯 몇 번이고 그것을 가지고 놀았다.




***




한편, 인적이 드문 광장.

존과 베키가 같이 쪼그려 앉아서 무언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인고하니, 둘이서 오리 장난감으로 시합을 치루고 있던 것이다. 서로 밀쳐서 누가 이기나 내기를 하는 듯하다.



이내 베키의 장난감이 존의 것을 넘어트리고, 베키는 마냥 좋아라 활짝 웃어보인다.



"아싸~! 제가 이겼어요."




"쯧, 내껀 뭔가 상태가 안좋아 보이는데."




"헤헷, 변명인가요?"




"참나, 겨우 테엽감고 장난치는거 가지고 우쭐하기는. 이래놓고 성인이랜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그래,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들어줄테니까."



그러자 베키는 눈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존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그의 품에 포옥 안겼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존은 당황하며 그녀를 때어놓으려 했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게 제 소원이에요. 잠시만 안아줘요."




그렇게 얌전히 존의 품에 안긴 베키.

잠시후, 그녀는 품 속에서 나오며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제 소원 들어줘서. 존의 품은 따뜻하네요."




"...이게 끝이야? 소원이라더니 겨우 안아주는거?"




"별 거 없어보여도,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앖이 소중한 선물이에요."




"......"




존이 멍하니 베키를 쳐다보자 그녀는 눈을 마주치며 속삭였다.




"저, 아무래도 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존, 당신은 어떤가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어."




"이럴 때에는 솔직하게 답하시면 되요. 제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싫지는 않아."




"그럼 좋지도 않다는 건가요?"





"......잘 모르겠어. 좋은건지 아닌지."




"흐응, 애매하네요. 상관없어요. 지금부터라도 당신이 절 좋아하게 만들거니까."




베키는 그렇게 말하며 존을 보며 양팔을 벌렸다.




"뭐야...?"




"한번 더 안아줘요. 당신 품, 따뜻하니까."




"......"




존이 다시 베키를 안아주었고, 베키는 그의 품이 좋다는 듯 미소지으며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편, 둘을 찾아 현장에 나타났던 아놀드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곧바로 방향을 틀어 벽 뒤로 숨었다.




"어이쿠, 실수할 뻔..."




아놀드는 동생 존의 시간을 방해하면 안된다고 여기며 다시 자리를 떠났다.




***




어느 도로 한가운데, 두꺼운 장갑을 덧씌운 수송차량 한 대가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정장차림의 중년 사내와 블랙 리리스가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남성은 탄창에 들어있는 실탄 개수를 파악하고는 그것을 리리스에게 건네주었다.




"실탄 수는 총 200발이야. 이걸로 50마리만 처리하면 된다."




이에 리리스는 싱긋 웃으면서 답했다.




"어머, 실탄이 너무 많네요. 겨우 50마리 상대하는데 이렇게나 많이 필요할까요?"




"대단한 자신감이군. 하지만 어떤 일이든 만약을 대비하는게 좋지. 블랙존의 쓰레기들은 윤리의식이 없다. 그러니 너한테 마냥 당하지만은 않을거야."




"후훗,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그런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사격 말고도 근접전에도 뛰어나니까요."




"회장님께서도 기대하고 계신다. 이걸 받도록."




남성이 작은 기계장치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리리스는 그것을 받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작동시켜봐라."




그의 말을 따라 장치를 작동시키고, 이내 홀로그렘 영상이 나오며 그녀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 음, 잘나오나?




"어머, 주인님!"




주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색이 돋는 리리스. 그녀의 주인 역시 그녀를 봐서 반가운 듯 웃음을 지었다.



- 리리스, 테스트하는 동안 이걸 지니고 다니게. 자네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으니까.




"제 실력을 직접 보고 싶으시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 그래,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어차피 어려운 일도 아니고, 겨우 쓰레기들 치우는 일이니까 긴장할 필요는 없다.




"물론이죠. 착한 리리스는 언제나 주인님의 기대에 부응한답니다."




그렇게 통신이 오가던 중, 차량은 어느새 블랙존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는 리리스.

거리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대낮부터 시체들을 치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시체수집기들이 눈에 띄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차량을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마치 실성한 듯 차량을 향해 몸을 던지는 자들도 있었다.




"주인님 말씀대로네요... 쓰레기들이 많군요."




"그러니 저것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네가 처리할 것들은 인간이 아닌 쓰레기들이니까."




"네, 알겠어요."




한참을 가다 거리 한가운데서 멈춰서는 차량.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곳곳에서 흉기를 든 건달 무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기 시작하고, 일부는 화염병을 차량에 투척하며 위협을 하기도 했다.




"야, 얼른 기어나와라!"




"거 시발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인사라도 하는게 예의아닌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욕설과 위협. 남성은 꽤나 당황한 듯 식은땀을 흘렸으나, 블랙 리리스는 아무런 동요없이 조용히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다.




"음... 리리스, 생각보다 거칠게 다가오는군. 할 수 있겠나?"




"네, 물론이죠.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예상보다 빨리 끝날 것 같아서 좋네요~."




"그럼... 부탁하지."




그렇게 리리스가 정비를 마치고, 차량의 문이 열린다.


철컹.


문이 열림과 동시에 다소곳하게 바깥으로 나오는 블랙 리리스. 이에 건달들은 어리둥절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차량이 현장을 떠나가고, 리리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자 건달들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참나! 보지 하나 냅두고 도망가는거야?"




"거 웃기는 새끼들이네~!"



그러면서 슬금슬금 리리스에게 접근하며 에워싸는 건달들. 그럼에도 리리스의 표정에는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야, 이 년 몸봐라. 잘빠진게 떡감하난 죽여주겠네."




"어이, 아가씨. 거 나랑 재미 좀 보자, 응?"




"뭐래 씨발. 나부터야 씹새야."




그렇게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던 중, 누군가 한 명이 그녀의 젖가슴에 손을 가져갔고, 그것이 스위치가 되어 리리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탕!




순식간에 벌어진 일.

건달 하나가 머리를 잃은 채 앞으로 고꾸라진다.

순간 현장의 일동이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리리스가 씨익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양손에 권총을 쥔 채 건달들에게 겨누기 시작한다.




"으아아악! 이 새끼, 총 들었어!"




"야 튀어!"




뒤늦게 위기를 감지하고 도망가기 시작하는 건달들.

리리스는 능숙하게 조준한 뒤 차례로 방아쇠를 당겼고, 하나둘 차례로 신체 일부가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널부러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아수라장. 리리스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표적을 찾기 시작했다.





***





골목길에서 홀로 쓰레기들을 줍고있던 아놀드.

그는 오늘도 쓸만한 것들을 모으고, 먹을만한 것들을 수색하며 여느 때와 같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총성이 들리기 전까지는.




탕!




멀리서 들려오는 우렁찬 총성.

순간 아놀드는 움직임을 멈춘 채 귀를 기울였다.

뒤이어 다시 들려오는 수 차례의 총성. 그 거리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총격전인가?"




아놀드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골목에서 나와 주변을 들러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저멀리서 도망쳐오는 사람들과 그 뒤에서 빠르게 달려와 사람들을 하나둘 살해하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분명 인간 여성의 모습이었다. 작은 체구의 아리다운 여성.

하지만 그 움직임을 보는 순간, 생각이 완전히 뒤집힌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날렵하고 강한 움직임, 마치 기계와 같이 정확히 표적을 노리는 권총.

그것들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일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그녀의 뒤로 접근해 흉기를 휘둘러보지만, 그녀는 그것을 팔로 가볍게 막아내고는 상대를 발로 걷어차 날려버렸다.



발길질에 두 동강이 나며 바닥에 널부러지는 시신.

아놀드는 그것을 보고 확신했다.



'바이오로이드다...!'



아놀드는 곧장 현장에서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이고, 눈망울을 굴리며 존과 베키를 찾기 시작했다.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 바이오로이드 하나가 블랙존에서 날뛰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겨우 발견한 존과 베키. 둘이서 타박타박 거리를 거닐고 있던 것을 본 아놀드는 빠르게 둘에게로 달려갔다.




"존, 베키!"




"어, 형? 왜 그래? 그리고 이 총성은 뭐야? 어디서 갱단끼리 총격전이라도 벌이는거야?"




"허억... 허억... 그게 아냐! 바이오로이드야! 바이오로이드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바이오로이드가 여기에 왜 있어? 시티가드 짭새들이 쳐들어온거야?"




"모르겠어... 나도 처음보는 기종이야. 도심에서도 본 적 없는 기종이었어. 아무튼 이럴 때가 아니야. 어서 도망쳐야해! 벌써 이 근처까지 왔어!"




그렇게 아놀드는 둘의 손을 붙잡은 채 달렸다.



그리고 마치 그를 추격하기라도 하는 듯 총성이 점점 가까워졌고, 곳곳에서 귀청을 찢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엄마, 엄마!!!"




"살려줘, 제발 살려줘!!!"




안그래도 지옥같은 이 곳에 나타난 악마.

악마가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록 거리에는 시체가 쌓이고, 비명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존과 베키 역시 비명소리를 듣고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아놀드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둘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탕! 탕! 탕!




다시 수 차례 들려오는 총성.

이번에는 옆으로 지나쳐가는 이가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결국 바로 뒤까지 다가온 것이다.



픽!




그 때, 총알 하나가 아놀드의 종아리를 스쳐지나가고, 아놀드는 그대로 넘어지고 만다.




"형!"




"아놀드 씨!"




존과 베키가 그를 부축해서 재빨리 현장을 떠나려 했으나...


결국 마주치고 말았다. 한쌍의 권총을 쥔 악마와.


셋과 리리스와의 거리는 불과 3m 남짓.

존과 베키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의 리리스. 그것은 마치 무기질의 AGS들을 연상케하는 모습이었다.



리리스가 말없이 총구를 셋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때.




"뒤져 이 새꺄!"




멀리서 날아오는 화염병. 리리스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피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총구를 화염병을 던진 이에게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우렁찬 총성과 함께 또 한 명의 사람이 쓰러지고, 뒤이어 건달 중 하나가 쇠파이프를 들고 리리스의 뒤로 바짝 다가갔다.




"죽어 이 괴물년아!"




깡!




단단한 금속음과 함께 리리스가 주춤하며 중심을 잃었고, 이 틈을 타 다른 건달들이 우르르 몰려와 흉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리리스가 구타를 당하는 사이, 존과 베키는 아놀드를 부축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계속되는 무차별적인 구타.

곳곳에서 단단한 흉기가 날아와 리리스의 몸뚱이를 난타했고, 그 과정에서 리리스는 권총을 놓쳐 떨어트리고 만다.



그리고, 건달 중 하나가 쇠파이프를 힘껏 휘둘러 리리스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순간.

리리스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붙잡고는 그대로 밀어내 구부러트렸다.



그녀의 괴력에 건달들아 경악하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하고, 리리스는 쇠파이프를 옆으로 쳐낸 뒤 그대로 건달의 안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그러자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쓰러지는 건달. 이에 경악하던 건달 중 하나는 공포에 이성을 잃고 각목을 휘둘렀고, 리리스는 팔을 휘둘러 각목을 부러트리고는 손가락을 내질러 건달의 목을 관통했다.



순식간에 둘이 쓰러지고, 또다른 건달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쥐고 그녀에게 쐈다.


일말의 지체없이 당긴 방아쇠. 총성과 함께 권총이 불꽃을 토해내고, 납탄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리리스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현장의 일동은 눈앞의 광경을 보더니 경악하며 제자리서 얼어붙어버린다.


분명 머리에 박혀야할 납탄이 어째선지 리리스의 손가락에 붙잡혀있었기 때문에...




"...리리스는 총알 정도로 못죽여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건달들에게 다가가는 블랙 리리스. 건달들은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설마 총알을 손으로 잡을거라고.

리리스는 그런 건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총, 제게 넘겨주세요. 고통없이 죽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건달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

아놀드는 상처가 난 종아리를 보며 혀를 찼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였다.

그는 옷깃을 찢어 상처 부위룰 묶어 지혈하곺조금씩 움직이며 상태를 확인했다. 쓰라리긴 해도 뛸 수는 있는 상태.



"좋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언제 또 뒤쫓아올지 모르니까."




"형,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업무를 대신하는 도구라며? 그런데 방금 그 녀석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고!"




"설마 군용 바이오로이드인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설마... 미쳤다고 군용 바이오로이드를 여기에 풀어놓겠어?"




그런 생각도 잠시. 셋은 곧바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난데없는 무차별 총격에 혼비백산이 되어버린 거리. 지금도 곳곳에서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이들과,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지르는 부상자들로 가득했다.




셋은 골목으로 조심스레 나와 블랙 리리스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재빨리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덧 집과 가까워지고, 셋 다 안심하고 있던 그 때...




"모두 도망쳐! 그 년이 여기로 오고..."




탕!




멀리서 위험을 알리던 이가 총성과 함께 쓰러지고,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셋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녀가, 블랙 리리스가 자신들의 뒤에 있음을.

셋은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뒤도 안돌아보고 살겠다는 집념으로.



그 와중에도 쥐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픽픽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탕!



납탄이 날아와 존의 허벅지를 관통했고, 존은 그대로 풀석 쓰러진다.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무는 존. 그는 아놀드와 베키에게 소리쳤다.




"어서 가! 난 그냥 두고!"




하지만 아놀드는 일말의 지체없이 그를 부축하고 베키와 같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모퉁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소매를 찢어 존의 허벅지에 꽉 묶어 지혈을 해주었다.




"이런 씨발... 왜 이런 짓을 하는거야. 저 녀석이 우리가 여기 들어온걸 봤다고!"




"존, 난 널 죽게 놔두지 않아. 세상 그 어디에도 자기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존은 그 말을 들으며 말문이 막혔다. 가족에게 바려진 사람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날 두고갔으면 둘 다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왜..."




"존, 넌 내 동생이야. 하나뿐인 동생. 내가 지금껏 어떻게 버티며 살아왔는지 알아? 난 네가 건강하게 살아있는걸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 다른건 다 필요없고 오직 그거 하나만으로 지금껏 살아온거야. 그런데 이제와서 널 버리고 가라고?"




"형, 지금은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최소한 멀쩡한 사람이 살아야 어떻게든 버틸거 아냐!"




"닥치고 내가 시키는대로 해, 이 새꺄!"




그 순간, 존은 말문이 턱 막혔다. 처음이었다. 형인 아놀드가 자신에게 욕을 한 것은.



"내가 저 녀석을 유인하는 동안 계속 숨어있어. 고마웠고, 미안했어, 존..."




그 말만을 남긴 채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아놀드.

존은 뒤늦게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베키가 그를 제지하며 끌어당겼다.



"이거 놔! 형, 형! 어딜 가는거야! 가지마, 형!!!"




"존, 가면 안돼요! 그 녀석이 여기로 올지도 모른다고요!"




"이 씨발... 씨발!"




베키는 존을 데리고 황급히 커다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쓰레기더미 속에 몸을 숨겼다.



이후 수 차례의 총성이 가까이서 울려퍼지고, 뜀박질 소리가 멀어져갔다. 그 후로도 멀리서 총성이 수 차례 울렸고,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이 흘러, 주변이 조용해지자 그제서야 쓰레기통에서 나오는 존과 베키. 존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나오나마자 그를 반기던 것은 곳곳에 널린 시체들과 악취, 기물이 파손되어 엉망이 된 거리의 아수라장이었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존은 비틀거리며 필사적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형, 아놀드를 찾기 위해서. 베키가 빠르게 쫓아와 그를 부축하며 같이 아놀드를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제법 멀리 왔음에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

존은 초조해져 갔다.



그 때, 베키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경악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존... 저기...!"




베키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존. 존은 그곳을 보자마자 두눈이 커지면서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벽에 기댄 채 앉아있는 시체가 있었다. 한 쪽 소매가 찢어진 옷차림. 그것은 분명 아놀드의 것이었다. 하지만, 존은 결국 그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


존은 머리 잃은 몸뚱이 주위로 흩어진 선혈과 육편을 보고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아, 아아...."




어릴 적부터 평생을 바쳐 동생을 지켜주었던 형이 곁을 떠나버린 것이다.




- 쓰레기 발견. 깨끗한 거리를 위해 무단투기를 자제합시다.




눈물 흘릴 시간도 주지않고 다가온 시체수집기. 그것이 아놀드의 시신을 집어들려고 하자 존은 주변의 벽돌을 주워 시체수집기에게 달려들었다.




"당장 내려놔!"




존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다는 것도 잊은 듯 이성을 잃고 시체수집기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그것 위에 올라타 벽돌로 수 차례 내리치며 소리쳤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우리 형을 데려가!!!! 네가 뭔데!!"




존이 슬픔과 분노, 증오가 한데 섞인 표정으로 시체수집기의 동체를 내리치기 시작하고, 베키는 그 광경을 보며 벽에 기댄채 소리없이 오열했다.




- 위험! 위험! 본 기체 위에 탑승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합니다. 어서 내려오십시오.




"이 개새끼야!!! 당장 우리 형 내려놔!!!"




존이 벽돌로 무자비하게 시체수집기를 내리치자 결국 시체수집기는 기계팔로 그를 붙잡아 내던진다.



존은 그러는 와중에도 기계팔에 붙잡힌 아놀드를 붙잡아 필사적으로 당겼고, 그러다 주머니에 있었던 작은 오리 장난감이 툭 떨어진다.



결국 기계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존은 바닥에 내던져지고, 시체수집기는 매정하게 자리를 떠났다.


존은 허망하게 멀어져가는 시체수집기를 바라보다 이내 바닥에 나뒹구는 오리 장난감을 보더니 그것을 집어들고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



그는 목청이 쉬어라 형을 애타게 불러보지만, 돌아오는건 싸늘한 적막 뿐이었다.



***



본 내용은 공식설정과 전혀 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