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루 반죽을 넓게 핀다. 그 다음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곱게 접는다. 홍련은 금란에게 배운 방법으로 고운 손을 이용해서 가장 정석적인 송편을 빚었다. 그녀는 자신의 옆으로 빙 둘러싼, 몽구스 팀원들을 흝어 보았다. 전부 손에 반죽 하나씩을 들고 평범하게 접고 있었다. 하지만 맞은 편에 서 있는 장화는 그렇지 못했다. 투덜거리면서 이것저것을 전부 넣어 빚어 터지거나,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모양이 망가져버리거나. 여하튼 그녀는 자신의 동생과도 같은 이에게, 이래저래 망가진 송편들을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럼에도 장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홍련은 그 이유를 방금 금란에게 들었던 설화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국에는 '송편을 이쁘게 빚으면 예쁜 아이를 낳는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몽구스팀에게 말했고, 모두는 그 이야기를 철썩같이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말괄량이 천방지축들이 조용히 않아 송편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여자였다.

그러다가 홍련의 앞으로 손 하나와 송편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설프지만 크고 속이 꽉찬, 새 하얀 송편이었다. 분명 손의 주인은 스틸드라코일 것이 분명했다. 역시나 그녀는 생글거리며 홍련에게 자랑스레 말했다.

"엄마! 이거 봐! 이쁘지?"

"네. 이쁘네요."

"엄마! 나는? 나는?"

이번에 불쑥 들어온 손은 핀토의 고운 손과 썩 잘 만든 송편이었다. 그녀답게 알게 모르게 세심한, 한 입거리로 먹기 좋게 빛어낸 수작이었다. 다채롭게 만들어낸 송편을 한 손에 모두 집지 못해 결국 두 손으로 받쳐 보이는 모양새가 썩 귀여운 모습을 만들어냈다.

"엄마. 이건 어때?"

홍련은 미호의 머리색과 같은 분홍색 반죽과 안에서 조금씩 보이는 갈색에 가까운 소를 보았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미호에게 말했다.

"미호. 혹시 초콜릿인가요?"

"네~ 사령관은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니까. 넣어봤어요. 앗. 설마 안되나?"

"아뇨. 잘 했어요. 대신, 한 겹 더 싸놓으세요. 새어나올 수 있으니까요."

"네네! 아. 불가사리는 뭐 만들어?"

미호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오밀조밀 손을 놀리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몇 개 만들지는 못했지만,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든 송편이 앞에 놓여있었다. 특이점이라면 다른 이들과는 정 반대의 모양이었다. 둥근 모양이었지만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먹음직스러운 송편이었다. 그것을 본 홍련은 연한 웃음을 띄며 말했다.

"어머. 그건 혹시 전가요?"

불가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얗고 둥근 반죽위에 빨간 반죽을 잘라넣고 깨와 콩으로 눈과 눈물점을 새겨놓은 송편이었다. 그녀는 묘한 감동을 느끼며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으로는 스틸 드라코, 핀토, 미호 그리곡 자신을 형상화한 송편이 줄줄이 나열되어있었다. 그러고는 손을 오므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장화야."

그녀의 손에서 거의 완성된, 홍련과 같은 둥근 송편위에 붉은 반죽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을 콩이 아닌 깨를 사선으로 수놓아 화가 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고 정 반대의 눈물점까지 만들어 낸 송편이었다. 그것을 본 장화는 움찔거리며 연신 헛기침을 뱉어내다 말했다.

"왜 나만 화난 표정이야?"

"지금도 화 났잖아."

"아니, 이건 너 떄문이 아니라... 하. 상관없어. 난 내 껏만 잘 빚으면 되니까."

"도와줄까?"

"꺼져!"

ㅡㅡㅡ

이걸 단편으로 돌릴껄 그랬나. 묘사 더 하고 싶은데

슬레이프니르는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바람을 가를 때 느낄 수 있는 느낌을 좋아했다. 자신에게 허락된, 어쩌면 본인만을 위한 감각이라고도 생각했다. 적당히 따뜻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수평선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며 저 너머로 서서히 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멸망 후의 세계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좋았다. 좋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더욱 맘에 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것보다, 노을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욱. 언제나 그녀의 옆에 있거나 뒤에 있는 그. 사령관과의 마무리 비행이었다. 그것은 그녀에게만 허락된 일과중에 하나였다. 하루를 갈무리하며 유일하게 그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어쩌면 그녀는 스스로 여자답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이를 독점하고 싶은 욕망과 욕심. 그리고 질투. 물론 그것이 용납이 되는 곳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이 세상에 홀로 남은 인간이고 자신은 유니크하지만 결과적으론 수많은 여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충실하기로했다. 지금 만큼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각오를 하면서.

슬레이프니르의 고도와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오르카호에 천천히 발을 내 딛었을 때, 사령관은 이미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슬레이프니르는 그것을 놓치는 여자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그의 품에 파고 들어 양 팔로 그를 꽉 껴 안았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도록. 서로의 체온이 서서히 옮겨갈 때 쯔음, 그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무슨 변명을 하실까요. 전대장님?"

"음... 글쎄? 오늘은 비행을 너무 많이해서 체온이 낮아졌어. 아무튼 그런거야."

"네에. 그러시겠지요. 아무렴요."

사령관은 장난스럽게 내 뱉으며 제 품에 안겨있는 제비의 머리카락과 등을 쓰다듬었다. 애정어린 손길에 체온이 가득 담겨 옮겨졌다. 그녀는 기분 좋은, 마치 고양이가 낼 법한 고로롱소리를 내며 더욱 그에게 달라붙었다. 마치, 더 있고 싶다는 듯이.

"이대로, 좀 더 있으면 안 될까?"

"어쩌면. 슬레이프니르. 불안해?"

"부정 안 할래."

"별 수 없지."

그는 제 품에 안겨있는 슬레이프니르를 조금 들어, 천천히 땅바닥을 향해 누웠다. 차가운 철의 시린 감촉이 그와 그녀의 등을 찌릿하게 타고 흘렀다. 흠칫거리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하늘로 향한 그녀는 하늘에 자신이 만든 비행운을 바라보았다. 하트에 화살이 박힌 모양의 구름이 꾸물거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저런걸 보고 안 넘어가면, 남자가 아니지."

"어.... 언제부터..."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시라도 너를 내 눈에 담지 않을 적이 없었으니까."

사령관은 자신의 가슴 위에 그녀를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붉게 상기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내 눈에 나를 담아줘."

ㅡㅡㅡ

내 손발 오글거려

최근, 레오나는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엘븐 자매가 넘겨준 저지방 다이어트 우유가 사실은 버터 밀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자신의 몸무게 앞자리가 달라진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바지가 안 맞는다던가 평소보다 몸이 무겁다거나. 처음에는 정신승리로 사령관과의 관계로 인한 임신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그럴일은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그녀는 이 사태를 해결해야만 했다.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하던지, 아니면 보급품들을 몰래 바꿔 평소와 같이 행동하던가. 레오나는 당연스럽게 후자를 택했다. 평소 같았다면 전자를 택했겠지만, 며칠 뒤에 있을 사열식에서 선봉을 맡게된 그녀에겐 선택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억지로 우겨넣고 집어넣어야 했다.

그렇게 보급품을 담당하는 안드바리가 있는 창고에 도착하는 순간, 그곳에 적막이 감돌았다. 작은 소녀와 정답게 이야기 하고 있는 발키리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오나를 바라보았다. '왜 대장님이 여기서 나와?'라는 의구심이 잔뜩 담긴 눈빛이었다.

레오나는 움찔거리며 헛기침을 내 뱉었다. 그러고는 특유의 관찰력으로 주변을 흝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린 토끼 문양의 돗자리와 그 위의 과자들. 세 병의 음료수와 아직 채 까지 않는 컵볶이까지. 필시 창고에만 있어야하는 안드바리를 위한 발키리의 배려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나가라는 명분도 사라진 채, 암사자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안드...바리? 보급품을 확인하고 싶은데...?"

"네? 지난번 보고서에 누락된 물품은 없었는데요."

"그냥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서."

"네! 얼마든지요!"

다행스럽게도 순진한 안드바리는 그녀에게 선뜻 보급품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발키리의 두 눈은 그렇지 못했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여자의 눈빛.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보급품의 이곳저곳을 뒤적거린 레오나는 들어서는 안될 말을 들었다.

"대장. 혹시, 살 찌셨습니까?"

청천벽력같은 발키리의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멈춘 손이 증거였다. 그녀는 마른 헛기침을 연달아 내 뱉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슨 소리지? 이 내가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습니다. 그 우유는 확실히 버터 밀크였을텐데요."

순간적으로 뽑힌 권총이 발키리의 머리에 겨눠졌다. 그것을 본 발키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번 떠 봤는데, 정말이군요."

"발키리.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네가 장난질한거니?"

"아뇨. 그럴리가요. 지휘관급에게 제공되는 물품은 제가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옆구리에 삐져나올듯한 살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각하는 그런 살을 애교살이라고 받아주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즉시, 창고에는 정확히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둥그스름한 분봉 위로 드리아드의 낫과 리제의 가위가 넘실거렸다. 한 구역씩 단정하게 잘리는 풀들이 사박거리며 옆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쿠아와 다프네가 갈퀴로 쓰러진 풀들을 갈무리했고 레아와 티타니아는 모은 잔해들을 무덤 밖으로 던져놓았다.

전형적인 벌초하는 여인들이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오전이었지만, 그녀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정성스럽게 베고 뽑고 정리했다.

짧게 베어진 풀들이 비석에 조금씩 엉겨붙기 시작했다. 가벼운 바람이 불어 떨어트리기는 했지만, 다프네는 그것을 보고 부드러운 손으로 그것을 조금씩 털어내었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두 개의 비석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애잔한 눈으로 흝어 보았다. 시린 비석의 촉감이 온전히 손에 닿았을 때, 다프네는 조금 눈물을 훔쳤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잔풀들을 정리하고 바닥에 돗자리를 깔았고, 비석 앞의 제단에 제사상을 차렸다. 레아는 향에 불을 조금 붙혀 연기를 내어 향로에 꽃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의 냄새가 풀들을 간질일때, 그녀는 자매들과 함께 무덤을 향해 두번 절했다.

레아와 다프네, 그리고 드리아드는 능숙히 두 번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티타니아와 리제는 그렇지 못했고, 아쿠아는 자신의 언니들이 하는 것을 어설프게 따라하며 고개를 조금 들어내었다. 물론 그것을 흠 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그 다음, 레아는 장녀로써 제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잔에 술을 조금 따라 옆으로 천천히 건네었다. 티타니아를 거쳐, 리제, 드리아드, 다프네, 그리고 머뭇거리는 아쿠아의 순서대로 잔이 옮겨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레아에게 돌아온 술잔의 술은 그녀의 손에서 세번에 걸쳐 봉분 주변에 흩뿌려졌다. 

모두 뿌려진 무덤에는 여전히 침묵이 감돌았다. 누군가 말을 꺼내야 해야 했기에, 다시금 레아는 헛기침을 하며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주인님. 자주 오고 싶었지만, 재건된 세계를 가꾸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네요. 그래도 주인님꼐서 만들어주신 세계에서는 모든 자매들이 웃으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이 세상을 보고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녀의 눈에서 조금 눈물이 고였다. 그럼에도 얼른 닦아낸 감정들을 억지로 치워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너희들도 주인님께 한 말씀 올리렴.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들 모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티타니아였다. 그녀는 평소에 보인적 없던, 평온한 얼굴이었다.

"너, 나를 버려두고 간 것을 후회하게 만들꺼야. 보란듯이 살아남았으니까. 너는 하늘에서 여왕을 지켜볼 의무가 있어."

그 다음은 리제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의 말대로 해충들은 모두 없애버렸어요. 거기에서도 칭찬해주세요. 네?"

세번째는 드리아드였지만, 그녀는 터져나온 눈물을 훔치고 있었기에 대신 다프네가 말하기로 했다. 그녀는 울고 있는 드리아드의 어깨를 조금 감싸며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과 함께 했던 모든 기억들을 품에 안고 살아갈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마지막으로는 아쿠아였다. 소녀는 제 울음을 참지 못한 채 쏟아내며 말했다.

"주인님... 보고싶어..."

레아는 모두에게 연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애잔한 표정으로 무덤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그러니 기다려주세요. 저희 모두, 언젠가 주인님을 다시 모실날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ㅡㅡㅡ

뭔가 부족한데... 뭘까...

금란의 눈 앞에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는 팬텀과 두 손을 꼼지락거리는 레이스가 있었다. 둘은 마치 한 떨기 수련과 은망울 꽃이었다. 은색 매화가 수놓아진 남색 치마에 금빛 연꽃이 피어있는 하얀 저고리를 입은 팬텀은 어찌되었든 제 후배인 레이스를 덜 부끄럽게 해보겠다는 의지로 조금씩 움직여 몸의 절반정도를 가렸다.

그녀 또한 조금씩 움찔거렸지만 자신의 선배의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물론 노란 국화가 펼쳐져 있는 하늘색 치마와 소박한 분홍 저고리를 전부 보지 못하는 것은 금란에게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레이스에게 천천히 다가가 손을 잡았다. 흠칫 놀라는 은망울꽃과 그것을 바라보는 수련꽃이 있었지만 난초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레이스 아가씨. 어찌하여 그리 아름다움을 감추시는지요. 겸손은 미덕이요 부끄러움은 소녀의 본질이옵니다만, 아리따움은 내 비출떄 의미가 있는 것이옵니다."

"그... 이건... 익숙치 않다."

"허나, 자신감을 좀 더 가지실 필요가 있어보이십니다. 보십시오. 선배인 팬텀 아가씨는... 오."

금란은 뻣뻣히 서서 굳어버린 팬텀을 흘깃 바라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오직 앞만을 바라보는 그녀는 어찌보면 안타깝다기보다는 귀여운쪽에 가까웠다. 아마 후배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한 발버둥이라고해도 좋았다. 팬텀은 간신히 힘을 내서 레이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후... 후배...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 우리도 이런 옷 입어도 된다. 자신감을... 가져야겠지?"

"그렇사옵니다. 여자의 무기는 외모와 자신감이옵니다. 오드리 아가씨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만국공통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리고 이곳의 저고리를 조금 만지면..."

흡사 고양이가 움찔거리듯이 허리가 활처럼 휜 팬텀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금란에 손길로 미약하게 흝어낸 저고리는 조금씩 줄어들어 밑가슴이 보이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만들어내었다. 레이스는 그것을 보고 기겁했지만 정작 가해자는 그렇지 않았다. 장난 가득한 웃음으로 천천히, 부드럽게 팬텀의 전신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리도 아름다운 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어찌 주인님께서 눈길을 주시겠사옵니까? 그러니 인내하시옵서서. 그리고 레이스 아가씨도 이리 오시옵서서. 친우가 이리 노력하는데 같이 가셔야 할것이 아니옵니까?"

"아니... 난..."

"이리 오시옵서서. 오늘만큼은, 용납할 수 없사옵니다."

그 날 사령관은 금란에게 한데 묶은 두 송이의 꽃을 받았다.

ㅡㅡㅡ

한복 묘사 너무 좋다ㅋㅋ
팬텀추

오늘도 안드바리의 창고는 촌극으로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몰래 숨어들어온 LRL과 그것을 잡아내려는 창고지기. 두 소녀의 용호상박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드바리는 무언가 기시감과 위화감을 느꼈다. 거의 대부분을 몰래 들어오던 LRL가 오늘만큼은 당당히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동격서가 아닌가 의심을 해봤지만 도둑고양이의 절친한 친구인 알비스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을 파해쳐보기 위해 소녀는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주변에 알비스는 없는거죠? 그렇죠?"

"후후후... 재화를 지키는 문지기여. 무슨 소리더냐. 이 몸은 당당하게 인간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도다! 자! 어서 공물을 내놓거라!"

"거짓말하지 마세요! 사령관님이 그런 말을 하셨을리가 없어요! 애초에 직접 가지러 오시는분이 왜 LRL에게 시켜요? 거짓말쟁이!"

"힝... 진짠데... 왜 안 믿어주는것이냐!"

"그 동안 어떤 짓을 했는지 조금씩 말해볼까요?"

"그...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조의 프린세스가 공물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히익 때리지 마!"

잠깐 주먹을 들어 꿀밤을 내려치려한 안드바리는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쩌면 사실일수도 있었다. 그녀가 아는 사령관은 변칙적인 인물이었기에. 그리고 만에 하나, 정말로 불출 의사가 있었다면 따라야하는 것이 관리자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허리춤에서 병아리 스티커가 붙어있는 전화기를 꺼내 사령관에게 말했다.

"사령관님. 정말로 LRL에게 참치를 줘도 되나요?"

"응? 아. 그건가? 지난번에 식당일을 도와준게 기특해서 참치랑 스팸을 좀 주기로 했었어. 부담 없을 정도로 쥐어줘. 말 안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여유분은 충분히 있어요. 누구누구씨들이 자꾸 가져가서 비축분을 쌓아두었거든요. 그러면 불출 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안드바리는 여전히 미심쩍다는 눈치를 보였지만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했다. 그녀는 LRL와 창고에 들어가 참치캔을 몇개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악한 진조의 공주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크흠. 재화의 관리자여. 짐에게 할 말이 없느냐?"

"무슨 말이요?"

"짐을 의심하고 비난한 죄! 그리고 사과를 안 하지 않았느냐!"

"아... 그거라면..."

"하지만! 이 진조의 프린세스는 자비롭도다. 공물에서 참치캔 두개 정도 더 넣는다면 자비롭게 용서해 주겠노라."

"크흠... 알겠어요. 이번엔 제 잘못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실례를 저지른 것을 맞고 사과를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하지만 뒤를 도는 순간 그녀에 눈에 보여선 안될 인물이 보였다. 온 몸이 새하얀, 초코바 한가득 들고 입에 문 소녀. 알비스가 보였다. 알비스는 흠칫 놀라며 먹던 초코바를 떨어트리며 말했다.

"LRL ! 시간을 더 끌었어야지! 우리 계획이... 흡!"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은 알비스와 식겁한 표정의 LRL 그리고 모든 사태를 파악한 안드바리는 조용히 하늘색 머리 소녀의 뒤로 가 허리를 꽉 껴 안았다. 무엇을 행할지 직감한 LRL는 발버둥쳤지만,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짐... 짐이 다 설명하겠다. 잠까아아안!"

안드바리의 허리가 아치형으로 휘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박힌 LRL를 보고 알비스는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저... 저먼 스플렉스!"

ㅡㅡㅡ

이거 맞겠지?

리리스는 지금 이 상황을 어찌 타개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의 주인인 사령관의 명에 따라 각 부대별로 조촐한 명절을 지내보자는 말에 따라 벌려놓은 판이 이렇게까지 망가질줄은 몰랐다는 듯 가벼운 두통이 이는 머리를 싸맸다. 가장 먼저, 일을 가장 잘 하지만 생선과 새우전을 만들자 마자 입에 넣고 있는 페로와 그냥 먹고 있는 포이가 눈에 띄었다.

"페로. 포이. 그만 먹고 어서 전이나 부치렴. 주인님께 드릴 것도 안 남겠는걸."

"하지만 언니... 이건 유전자적으로 각인된 본능이라..."

"냐하~ 어짜피 지금 먹나 나중에 먹나 같이 않나용?"

"맞는 말이란다. 쳐 맞는말. 전이라도 부치면 뭐라고 안할 것 같은데."

가벼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린 리리스는 또 한번 가벼운 한 숨을 내 쉬었다. 하치코가 어디서 구해온지도 모를 민트 잎과 추출물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전에 올려 굽고 있었다.

"하치코. 전에는 민트가 들어가지 않는단다. 당장 빼렴."

"하지만 하치코는 민트가 좋은걸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나라던가, 주인님이라던가."

"에엥. 쭈인님은 민트 좋아해요. 하치코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이 깻잎이란것도 냄새나는 풀이니까 민트도 괜찮지 않나요?"

"언니 돌아버리는 꼴 보고 싶니?"

침울한 강아지는 결국 민트를 저 멀리 치워버리고 다시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물론, 형태는 이미 일그러져 있었지만 손이라도 움직이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자그마한 희망은 있었다. 가장 정상적으로, 전에 가장 부합하는 모양으로 손을 움직이는 스노우페더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리리스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멋쩍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페더. 우리 스노우페더. 이 언니는 너무나도 감동이란다."

"감사해요. 언니. 열심히 해볼게요."

"그래. 착하기도 하지. 그런데... 왜 계란 물을 안 입히니...?"

"아. 그건 생리적으로 무리여서요. 일단은 저도 조류의 유전자가..."

리리스는 격한 두통을 느꼈다. 머리를 망치로 강하게 내려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라고 여겼다. 그녀는 절망감을 느끼고 한 숨을 쉬던 그때, 가장 의외의 인물이 눈에 띄였다. 능숙하게 계란물을 입히고 타지도 않았으며 가장 이쁜 형태를 유지한 전들이 쌓여가는 모습을. 심지어 주워먹지도 않아 양도 풍성했다. 펜리르의 손짓 하나하나가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했다. 격한 감동과 조그만 눈물이 고인 책임자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펜리르! 내 동생. 주인님과 언니를 위해 힘써주는구나. 이 언니는 감동이야."

"응? 그런거 아냐. 쭈인님이랑 같이 먹고 싶은건 맞아."

"그게... 무슨 소리니?"

"꼬기가 없잖아. 다 맛 없는 것들이야. 언니. 그 육전이란건 없어? 금란이 원래 육전이 가장 맛있다고 하던데?"

리리스는 그만 생각을 포기하기로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짧게 빌드업이 안된다 단편으로 돌려도됨?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차례를 지내던 도중, 사령관의 군수지원간 발키리도 왔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발언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는 그의 정실을 자처하는 레오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두 사람 모두 열을 낼 일은 아니었다. 사령관은 그저 고생하는 군수 인원들도 같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지만, 레오나에게는 왜 오늘 같은 날 발키리를 내보냈느냐, 라는 뉘앙스로 전달받았던 탓이었다. 오해가 서로 겹쳐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그와 그녀는 각방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서로에 대한 앙금을 가득 품은 채 방문을 닫아 걸고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것이 불편한 이들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으로는 메이와 세이렌이었다. 메이는 어찌되었든 사령관의 최측근으로 이 분위기를 수습해야만 했다. 곧 있을 작전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고 짜증나는 부류였기에. 반대로 세이렌은 두 사람의 사이를 응원하는 부류였다. 사령관과 레오나 사이의 어른의 사랑을 동경했고 바랬다. 마치, 과거의 드라마에서 나오는 연인들을 보는 것처럼. 그렇기에 메이와 세이렌은 서로 합의 하에 각자 한 명씩 설득하기로 결정했다.

메이는 레오나를 찾아갔다. 그녀의 방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암사자를 찾아보기 위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부스스한 머리를 갈기처럼 휘날리며 인형에 얼굴을 파 묻은, 딱 보기에도 엄청나게 퉁퉁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메이는 황당해 헛웃음 쳤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사령관을 몰아붙히던 이는 어디가고 가련한 소녀만이 남았는가에 대해서 짧게 고민했다. 물론 의미없었지만.

그녀는 발로 침대를 툭툭 차 침대 구석에 박혀있는 암사자를 깨워보기로 했다. 진동에 흠칫 놀란 레오나는 눈 만을 빼꼼히 내 놓은채 말했다.

"왜 왔어...?"

"궁상떨지말고 일어나. 정실이라는 여자가 뭐하는거야?"

"하지만... 달링이... 발키리만 챙기니까..."

무언가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은 메이는 순간적으로 나이트 앤젤이 자신에게 얼마나 관대한 여자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지난 주에 사령관과의 동침이 없었다면 평생 이 천불을 끌어안고 살았어야 했다니. 메이는 다시금 속으로 그녀를 칭찬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암사자는 그렇지 못했다. 가진 것에 불안해하며 사는 것이 참 같잖았다. 그렇기에 메이는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자. 생각해봐. 지금 반지를 받은 사람이 누구지? 너 밖에 없잖아. 발키리가 반지를 받기라도 했어 아니면 다른 이들이 받기라도 했어? 자. 정신차리고 어서 사령관실로 뛰어가.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는 입장이야?"

레오나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더니 얼기설기 흩어진 머리를 다듬고 화장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메이는 그것을 보며 가벼운 한 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대령이랑 술이나 한 잔 해야지..."

반대로 세이렌은 사령관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는 쌓아두었던 모든 것을 쏟아낸 듯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렇기에 작은 소녀는 이미 포기해버린 사령관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애교도 부려보고 설득도 해봤지만, 아무런 움직이 없는 그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자신의 맘을 알아주지 않는 사령관이 야속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반응이라도 해줘야하는 거아니냐며 울망거렸다. 그것을 본 그는 움찔거리며 재빨리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 울지말고... 세이렌. 그 뭐시냐... 남자와 여자사이에 그 자존심이라는게 있는데..."

"그게 뭔데요! 저는 그런거 몰라요!"

사령관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강해보이고 어른스러워 보인다해도 아직 어린아이였다. 소녀의 마음을 무참이 찢어버린 행동들을 반성했다. 그는 여전히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세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화가 좀 많이 나서 그랬어. 그러니까 눈물 닦고, 콧물도 좀 지우고 응?"

"그러면 화해 하시는거에요?"

"어...? 그... 게..."

"하실거죠?"

그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째릿한 눈과 강한 압박을 견딜수도 없었거니와, 이렇게까지 한다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사령관은 가볍게 한 숨을 쉬며 세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게. 할테니까. 그만 울자. 알겠지?"

"네!"

그는 어디선가 속은 느낌도 들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세이렌은 천천히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 그 때, 여전히 붓기가 가시지 않은 눈을 한 레오나가 들어왔다. 사령관은 헛기침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뒤따라 오던 메이와 사령관실 안의 세이렌은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ㅡㅡㅡ

미안함 일 있어서 좀 늦음

붉고 푸른 빛을 내며 장작을 집어삼키며 은은하게 연기를 흩뿌리는 모닥불이 잔잔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사령관과 LRL이 간이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아우로라가 준비해 둔 간식거리들이 있었다. LRL은 그것을 조금씩 집어먹거나 마시며 힐끗힐끗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멍하니 불을 바라보던 눈은 한 번 하늘을 쭉 흝고는 LRL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눈빛은 무언가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사령관은 그것을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LRL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LRL. 심심해?"

"후후... 이 프린세스에게는 참으로 인고의 시간이었지만, 인간을 위해 참아냈노라."

"그래?"

간식이 가득 담긴 그릇이 달그락거렸다. 뒤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봉지에 싸여진 카라멜이 사령관의 손에 잡혔다. 그는 자연스럽게 포장을 까 내용물을 LRL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소녀는 우물거리며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물거림이 천천히 멈출때 즈음, 입이 열렸다.

"인간. 나는 어떠하느냐?"

"어떤 의미로?"

"여자로써?"

사령관은 재밌는 농담을 들은 듯 호탕하게 웃었다. 분명 LRL가 생각한 질문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아마 소녀를 놀리기 위한, 불특정 다수의 이들의 장난이었을것이다. 하지만 이 순진한 아이는 그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성이 아닌 실제로 '여성'스러움이거나 더 나아가서 자신이 정한 배역인 '프린세스'에 걸맞는 인물인지. 그런 귀여운 발상임이 분명했다. 그는 장난끼 가득한 손으로 여전히 부드러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여자라고 묻는다면... 아니지?"

LRL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울상을 지었다. 톡하면 터져버릴 것 같은 눈물보따리를 터트려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은 사령관은 소녀를 달래기 위해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공주님이라면 어울릴거같은데?"

그제서야 얼굴이 가득 핀 소녀는 제 키보다 큰 간이 의자를 힘겹게 내려와 사령관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그는 LRL를 번쩍 들어 안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무게감이 조금 느껴지는 푹신한 인형 같은 소녀는 아예 그의 몸에 벌러덩 누워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후후후... 권속이여... 이제야 이 진조의 프린세스의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그... 그.. 경... 힝... 뭐더라? 뽀끄루 대마왕님이 알려줬는데..."

"경배하라?"

"맞다! 크흠. 경배하라 인간이여! 감히 이 몸의 침대가 되는 것을 허락하마. 아 그리고 나 이번엔 초콜릿으로."

"네네. 공주님. 그렇게 하도록하죠."

다시금 그릇이 바스락거렸다. 그 사이에서 튀어나온 초콜릿 봉지가 능숙히 벗겨졌다. LRL의 입에 들어간 초콜릿은 부드럽게 녹으며 소녀의 혀를 달콤하게 했다. 단 맛에 부들거리는 머리카락에 어느새 사령관에 손에 의해 빗겨졌다. 소녀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흥얼거리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초콜릿이 다 녹아 사라질 때, LRL는 눈을 살짝 사령관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사령관. 우리 이러니까 가족같다. 그치?"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멈칫거리지도 않았고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빗질하던 손을 멈추지도 않고 말했다.

"이미 우린 가족이야. LRL."

우아한 재즈가 울리는 오르카호의 바에는 사령관과 티타니아가 있었다. 이미 지나치게 마신 듯 얼굴이 붉어진 여자와 몸이 달궈져 넥타이를 부드럽게 풀어헤친 남자. 둘은 그저 말 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안주를 집었다. 붉은 와인이 백옥같은 티타이나의 목으로 넘어갔다. 새하얀 스파클링 와인이 사령관의 목을 간질였다. 그들은 그렇게 말 없이 잔을 비웠다.

그럼에도 전혀 어색함이나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둘은 이런 느낌이 좋았다. 술잔에 술을 채워넣어 그 안에 상대방을 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두 눈에 담아, 건배하는 것이 꽤 낭만적이라고 느꼈다. 여전히 자연스레 꼰 다리로 사령관의 다리를 툭툭 치는 티타니아는 무언가 흥미거리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반응해줘야만 했다. 이대로도 좋았지만, 관계의 진전을 위한 술자리였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을 리드하는 것은 남자의 쪽이 조금 더 편했다. 마지막 스파클링 와인이 잔에 채워지고 비워졌다. 찰랑거림이 없어진, 남아있는 향만이 가득한 와인잔이 식탁위에 놓여졌다.

"음...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레아? 아니면 페어리? 아니면..."

사령관은 씨익 웃으며 다른 술병 하나를 가져왔다. 겉보기에도 달콤할 것 같은 술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병마개를 따 자신의 잔에 채워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까닥거리며 자기주장을 하는 술잔에도 채워넣었다. 예전과는 다른 평온하고 우아한, 과거의 날이 서 있는 그녀와는 상반된 이미지였다. 사령관은 티타니아의 술잔에 가벼운 소리가 나게 건배하며 말했다.

"네 이야기를 좀 할까?"

"어떤 이야기. 여왕은 할 이야기 없어."

"글쎄? 취중진담이란 말이 있듯이,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이나 그런게 있지. 나도 한 두개쯔음 있고."

"먼저 해. 그럼 들어줄게."

"내 이야기는 좀 비싼데. 게다가 선불아니면 안 받는 주의라서."

티타니아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술잔의 술을 입안 가득 머금고 일어났다. 그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천천히 자신에게 걸어오는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와 입을 맞췄다. 천천히 넘어가는 달콤한 술이 혀와 혀 사이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달큰하게, 부드럽게, 하지만 촉촉하게 엮이는 감정과 혀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천천히 떨어지는 숨과 타액의 선이 서로를 연결하다 뚝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싶었다. 적어도 이 두근거림이 내가 먼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학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굴복할 것 같았으니까.

"선불이야. 이제, 여왕을 즐겁게 해봐."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갑자기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는 티타니아는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에 앉았다. 숨이 겹칠듯한 정도의 거리. 거친 숨이 몰아쉬어지고 천천히 입술이 가까기 다가갔다. 그 날, 더 이상 술잔이 채워지는 일은 없었다.

ㅡㅡㅡ

이거 맞나?

안드바리는 생각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들키지만 않는다면, 능숙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우선 위에서 하나. 그리고 뒤에서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석에 가져다 놓는다면 그녀의 뜻대로 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여운 보급관은 여러가지를 간과했다. 우선, 지금 보급품의 운반을 돕고 있는 것이 스틸라인이 아니라 발할라였다는 점. 그리고 가장 일을 하지 않는 알비스의 눈에 들어왔다는 점.

눈밭의 토끼는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특히, 자신의 죄를 알고 있는 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자신을 몫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었다. 알비스는 안드바리가 뒤에서 두 개의 상자를 꺼낼 때 그녀의 가려린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야?"

"뭐에요? 놔요!"

"내 보급품. 앞에서 하나. 뒤에서 두개. 내가 LRL로보여?"

"증거 있어요?"

"증거? 증거 있지! 자. 가장 윗칸에 총알이 들어있겠지? 그리고 그 아래. 이거 초콜릿아녀? 이거봐! 지금 내 몫을 빼돌리려는 거잖아! 내가 아무리 많이 먹었다지만 이건 아니야!"

"추측하지마요!"

알비스는 눈물까지 찔끔 나올정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가소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드바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자신 있다는 듯 여전히 알비스를 째려보았다.

"안드바리. 거짓말하면 발키리 언니한테 혼나는 거 안 배웠어?"

"잠깐만요. 그렇게까지 자신 있어요?"

"왜. 무서워? 베라 언니로 낮춰줄까?"

순간적으로 젖혀진 첫 번째 상자에서 당연스럽게 총알들이 뭉쳐있었다. 알비스는 당연히 이겼다는, 승자의 표정을 지으며 안드바리를 살살 약올렸다. 그럼에도 안드바리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러고는 충격적인 제안을 내 뱉었다.

"좋아요. 이 아래 상자가 초코바가 아니다에, 3개월 초코바 일시불로 지급할게요. 쫄리시면 아시죠?"

"안드바리. 어디서 거짓말이야. 혼나고 싶어?"

"후달리시네요?"

"후달려? 내가? 안되겠다. 내가 지면 3개월 모든 간식 반납할게. 발키리 언니 불러!"

얼떨결에 불려온 발키리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알비스가 말한 서로의 팔 하나씩을 잡아달라는 부탁이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줬다. 알비스는 흥얼거리며 두 번째 상자를 조금씩 까지 시작했다.

"자. 확인 들어갈게! 짜라라란. 짜라란. 짜라란. 쿵짝짝 쿵짝짝."

하지만 알비스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상자 안을 가득 채운것은 초콜릿이 아닌 참치캔들이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안드바리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가여운 토끼는 깨달았다. 자신은 속아 넘어간 것을.

"아냐. 알비스가 봤어. 안드바리가 빼돌리는거 봤다니까?"

"언니.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마요. 발키리 언니. 알비스 언니 사령관실에 대려가주실래요? 거짓말이랑 보급품을 빼돌렸거든요."

발키리는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알비스의 손목을 꽉 부여잡고 질질 끌리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여운 짐승같았다.

여기까지 컷

살과 살이 부딫혀 찌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끈적한 애액이 길게 늘여지고 줄어들었다.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두 개의 허리와 연한 조명 아래로 보이는 척추의 라인. 사령관이 한 번 찌를 때 마다 터져나오는 오렐리아의 나긋나긋한 교성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는 지치지 않는 허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찌를 때 마다 경련하는 아랫도리의 쾌감. 더욱 격렬해진 움직힘에 그녀의 교성은 서서히 커져갔다. 버티지 못해 서서히 내려가는 가슴과 얼굴은 쾌락에 이기지 못하고 배게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것이 맘에 들지 않은 사령관은 손가락으로 오렐리아의 척추 라인을 쭉 흝었다. 찌릿한 전기신호와 함께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허리가 휘어 베게에 묻어둔 얼굴이 다시금 튀어나왔을 때,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더욱 강하게 박아 넣었다. 

깊게 박혀 뿌리까지 들어간 물건은 그녀의 자의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 강하고 빠르게 박혀오는, 말뚝 같은 강도를 가진 물건이 그녀의 안을 휘저었다. 온 몸이 뜨거워지다 못해 화끈거리게 된 오렐리아는 마지막 반항으로 아랫도리를 더욱 강하게 조였다. 사령관은 순간 당황해서 페이스를 잃어버렸다. 그는 결국 순식간에 찾아온 쾌락을 받아들였다. 방금 보다 더욱 빨라진 허리가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오렐리아도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듯 더욱 조이며 애액을 뱉어냈다. 이제 두 사람의 사이에는 쾌락과 신음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찌르고 있는 물건이 울컥거리는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사령관도 자신의 모든 것은 그녀의 안에 쏟아내려 했다.  정복감과 쾌락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응어리들. 오렐리아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살집이 가득한, 풍만한 종아리로 그의 엉덩이를 밀어 넣으며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 또한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쏟아내었다. 하얀색 액체와 애액이 섞였을 때, 그와 그녀는 머리가 새하야질 정도로 불태웠다.

모든 울컥거림이 끝나며 오렐리아의 다리가 서서히 풀렸다. 그도 천천히 여운을 즐기며 물건을 빼며 그녀의 옆으로 털썩하고 쓰러졌다. 땀에 절은 시트와 몸이 끈적거렸지만, 서로의 아랫도리는 애액과 정액이 섞여 더욱 끈적거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두 사이에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사령관은 그것을 깨보려했지만,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오렐리아에게 선뜻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화는 풀어야 했기에,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오렐리아... 내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그 겸사겸사 그런거니까...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해서..."

"그렇죠. 신사분. 아무리 저희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하더라도, 게임 속 캐릭터와 현실을 구분 못하시면 안되죠. 특히나 망해버린 게임이라니. 끔찍하지 않나요?"

"그... 그렇지.. 미안해... 그래서 내가 이렇게 봉사하잖아."

"그래도 신사분은 젠틀해서 다행이네요. 다른 이들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테지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런 못된 행동이나 말은 삼가하셨으면해요."

사령관은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ㅡㅡㅡ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