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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낡은 소형 군용 발전기가 웅웅거리며 돌아간다. 이쪽 일은 잘 모르는 여자는 그 기계가 제법 신기했다. 뭘 넣었길래 저렇게 조용히 돌아가면서 전기를 만드는 걸까.

   

“이제 됐슴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여자는 바닥에 내려놓은 간판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잘 보면 옆으로 조금 기울지 않았을까. 예전 모습이 정확하게 이렇지는 않았던 것도 같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한 번 훑은 여자는 한번 더 요청했다.

   

“끝에 ‘ㅁ’자가 아직 덜 펴진 것 같아서, 그거 작업 좀 더 해주세요. 거기 그 쪽! 기둥 갈바 다 쳤어요?”

   

뭐가 그리 급한지 요청만 남겨놓고 코너를 돌아 가버리는 여자를 바라보며 브라우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건 아니겠지, 그냥 바쁜 체를 하고싶은 것이리라.

   

13620번 브라우니, 평상시엔 보통 ‘작업반장’으로 불리는 그녀는 어느 부대에나 한 명 씩은 있는 손재주 좋은 병사였다. 진지공사나 예초, 자잘한 유지보수 등은 물론이고, 통신병이 따로 있음에도 전화선 정비에도 꼭 불려다니곤 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귀찮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따분한 일상업무보다야 이런 과외업무가 시간을 보내기엔 좋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여자가 편의점 보수를 요청했을 때 그녀는 별 생각없이 자신의 일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도 여자가 요청하는 것이 보수보다는 리모델링 공사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정찰조로 도망쳤을 것이다.

   

‘우선 간판 글자 찌그러진 거랑, 도장 벗겨진 부분 좀 봐주시구요, 기둥 쪽 갈바도 한번 다시 해주실 수 있으시죠? 그거 끝나면 외벽도 다시 좀 쳐주세요. 그리고 내부쪽은…….’

   

놀라운 사실은, 공구와 재료가 없다는 핑계로 삼을 셈으로 찾아간 실키 상병이 필요한 자재와 공구를 전부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트럭의 짐칸에서 어디에 처박혀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철판과 용접기, 그라인더를 꺼내오는 실키 상병의 모습에 작업반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양반, 어디가서 집을 세울 계획이라도 있는건가? 뚱그래진 눈으로 바라보는 작업반장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실키 상병은 철충 출몰 위험지대라 혹시라도 급하게 진지를 구축할 일이 있을까 챙겨왔다는 답을 멋쩍은 미소와 함께 내놓았다. 이 쓸데없이 준비성만 좋은 양반같으니. 모르긴몰라도, 이 장비와 자재를 다 쓰면 2층집도 세울 수 있을거다. 가구는 어디서 구해와야만 하겠지만.

   

한숨. 작업반장은 다시 고무망치를 집어들었다. 오늘 내로 일 다 끝내는건 꿈도 못 꿀 일이고, 며칠을 잡아야할는지 모를 일이다. 비용 대신 받기로 한 참치캔은 꼭 에누리 없이 받아낼거다. 그 여자라면 거기서 또 무슨 수작질을 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

   

자, 자, 금방 다 계산해드릴게요! 여자가 박수를 짝짝 쳤다. 10명 남짓한 인원이 매대 앞에 줄서있는 모습이 얼마만일까. 스프링이 망가져 반쯤은 힘으로 열어야만 하는 낡아빠진 캐셔의 비명소리도 오늘만큼은 반가웠다. 아쉬운 것은, 혼란을 우려한 소대장이 참치캔을 화폐로 사는 것을 금지해버린 부분일까. 그래도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며 보루단위로 담배를 사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 정도는 양해해줄만 한 부분이다.

   

“자유인 1미리 미니로 한 보루 주시지 말임다!”

“예 잠시만요, 금방 드릴게요~”

   

용케도 녹물자국 등을 닦아내 반짝이는 비닐에 감싸인 담배상자에 브라우니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반응이지. 여자는 내심 의기양양해했다. 내가 그 비닐 닦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모름지기 상품은 그래야지.

   

“이야, 이거 완전 상등품이지 말임다. 내일 꼭 말씀하신 페인트 잊지않고 찾아오겠슴다.”

“어머, 고마워라. 제가 엄청 고생해서 구해왔거든요. 페인트 잘 부탁해요!”

   

무수한 담배의 요청에 화답하며 여자는 오랜만에 삶이란 무엇인가 실감한 기분이다. 매일 식사때마다 장사를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군인들이 한 1년정도 있다가 가도 괜찮을 법 했다. 그래봤자 오픈빨, 며칠 내로 기세는 줄어들겠지. 그녀는 이번 기회에 잔뜩 팔아치워 매출을 올릴 생각이었다. 머릿속으론 창고에 처박혀있는 통조림들을 잘 끼워주면 내일도 담배를 보루로 팔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을 반복하며, 그녀는 기계적이면서도 친절하게 상품을 팔아나갔다.

   

마지막 브라우니를 내보낸 여자는 장부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지도 오래인 세상이라 포스기를 켤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급하다고 대충 끼적여둔 글자를 다시 쓰고, 혹시 틀린 부분이 있나 재고와 비교해본다. 크게 틀린 부분은 없다. 공란이 대부분이긴 했어도 오랜 세월 장부를 작성해온 그녀기에 문제가 생길 일은 아니니까.

   

냉정하게 말해서, 기껏해야 소대 하나 상대해서 그렇게까지 매출이 나오지는 않을거다. 그래도 이대로 버티고 있다보면 더 큰 부대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때까지는 이 엉망진창인 가게를 보수해서 멀쩡하게 만들어놓아야만 제대로된 장사를 할 수 있겠다. 여자는 연필로 입술을 톡톡 두들기며 눈앞에 숙영중인 군인들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다시 고민했다. 보수공사 대충 끝나고나면, 군용 발전기를 어떻게 잘 연결할 방법이 없나 알아볼까.

   

“영업 끝나셨습니까?”

   

누군가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소대장이다. 아직 앙금이 조금 남아있던 여자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내가 주인이 아닌데 영업을 어떻게 끝내고 말고 하겠어요?

   

“아뇨, 명색이 편의점인데 아직 마감 안 했죠. 소대장님은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아, 별건 아니고, 혹시 저희 소대원들이 실례라도 저지른 건 없나 확인차 왔습니다. 다 착한 애들이고 우리 가족들인데, 가끔 흥분하면 사고를 치곤 하더군요.”

   

너무 그렇게 경계하진 마시고, 한 마디를 덧붙이며 소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쪽만 아니었으면 완벽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소대원 분들이 다 좋으신 분들이라 괜찮았죠, 뭐. 참치를 못 팔게된건 좀 아쉽네요.”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어쩔 수가 없군요. 아시겠지만 저희들이 하필이면 그 물건을 돈처럼 쓰다보니.”

“그럴 수도 있죠 뭐. 그래도 오늘 많이 도와주셨으니깐.”

   

물론 내일도, 모레도 도와주시겠죠? 말 없이 이어진 뒤의 질문에 소대장은 딴청을 피운다. 꽤나 복잡한 기분이었다. 보수에 필요한 자재는 죄 그녀의 소대 물자를 소모하고 있는데다, 작업으로 빠지는 인원으로 인해 근무일정도 꽤나 빡빡해졌다. 그렇다고 그녀를 모른체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탐색소대의 임무에는 유휴 바이오로이드의 탐색 및 회수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휴 민수용 바이오로이드는 꽤나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상명하복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군용 바이오로이드와 달리 민수용 바이오로이드들은 명령권 이전의 과정이 제법 복잡했기 때문이다. 많은 개체들이 전 주인의 명령에 묶여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상황을 잘 몰라서, 혹은 인정하고싶지 않아서 자신의 위치를 떠나기를 거부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개중에는 테마파크에 갇혀있던 키르케 모델처럼 자신이 원하더라도 움직일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이 바로 앞에 서서 명령을 한다면 금방 끝날 일이긴 했다. 하지만 유일한 인간인 사령관이 유휴 바이오로이드 회수를 위해 일일이 위험한 현장으로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탐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초기에는 복잡한 상황이 많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된 뒤, 상부에서는 하나의 명령을 내렸다.

   

‘탐색 중 유휴 민수용 바이오로이드 발견시 우선 상부에 보고 후 임무 속행. 별도의 임무가 없을 경우, 현상 유지하며 해당 개체와 교류하여 심리적 거부감을 우선 제거할 것.’

   

소대장은 이 임무가 싫었다. 희망의 끈을 차마 놓지 못했던 그녀들에게 현실을 가르쳐주는 일도, 끝끝내 과거라는 감옥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일도, 모두 지긋지긋했다. 운명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자신 또한 그녀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란걸 알기에 더 그랬다.

   

차라리 그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는 것이 구원이 되지 않을까. 소대장은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생각이 많았지만 지나간 시간은 찰나였다. 입가에 미소를 그려버린 여자를 바라보며, 소대장은 약속했다. 물론 저희가 갈 때까진 쭉 도와드릴 겁니다.

   

당신이 그걸 받아들이는가는 다른 이야기겠지만요. 소대장은 마음 속으로 마지막 한 줄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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