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749724


모음집- https://arca.live/b/lastorigin/33474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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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하필이면..."


"...무슨 일이에요, 니키?"


"그놈 오늘 집에 한번 갔다와봤거든."


"...? 그이 집을요?"


"너만으로는 손이 부족하잖아? 네가 학교에 잠입해 있을때, 잠깐 갔다와봤지. 근데, 그놈 집에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깨질듯이 아픈거야."


"아무 이유도 없이요?"


"응. 어느정도 앞으로 가면, 방향감각도 사라지고, 걸을 수도 없었어."


"...연산방해 장치인가... 쳇... 아무리 생각해봐도 펙스쪽 첩자같단 말이죠. 아들을 사용해서까지 기술이랑 정보를 훔칠려하다니..."


"그렇게 생각해보니 훨씬 악질이네."


"그 윤서현이라는 자식도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미인계는 쓸모가 없을것 같네요."


"왜, 너라면 남자 하나쯤은 쉽게 꼬실 수 있을것 같은데."


"그 자식, 게이였어요."


"푸웁! 에이 진짜 물마시는데..."


"할 수 없죠. 그자한선 더이상 얻을 수있는게 없을테니, 눈을 돌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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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수많은 문양들을 그리고서는 그것들을 유심히 살피던 서현과 에키드나는 그 무엇도 알아내질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중이었다.


"끄아아아... 정신나갈거 같애..."


"이렇게 하면 얻을 수 있는게 하나 없겠어."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요?"


"저기 당사자가 있잖아?"


에키드나는 밖으로 나가자는듯 고개를 까딱였고, 서현은 처음엔 주저했지만, 결국 다른 방법은 없다는 걸 깨닫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원래 서현은 엘리에게 정확한 이름, 집, 좋아하는 것 등을 물어보려 했지만, 이제는 그녀가 어디 소속인지, 무엇이 목표인지를 물어봐야 했다.


예전에 폭탄을 다루고, 의수를 착용한 것을 보고는 그녀가 보통 소녀가 아니라 생각한 서현이었지만, 이정도일지는 몰랐다는듯 벌써부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고는 거실로 돌아왔다.


천진난만하게 놀 나이에 귀족의 아우라를 풍기며 고상하게 앉아있는 그녀를 보며 감탄하던 서현은 화들짝 놀라는 엘리를 진정시키고, 쇼파에 천천히 앉았다. 그의 옆엔 에키드나가 찰싹 붙어 앉았고, 양 옆으로 팬텀과 레이스가 그녀를 응시했다.


"엘리라고 했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딸꾹!"


엘리는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레이스와 팬텀은 아무 감정 섞지 않고 그녀를 바라본 것이었지만, 특히 키가 180인 레이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위압감과 공포가 엘리를 짓눌렀다.


마치 허튼 짓을 하면 양팔을 잡아 뜯을것 같은 분위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딸꾹질 뿐이었다.


"..."


서헌은 이걸 파악하였고, 팬텀과 레이스의 허벅지를 툭 쳤다.


"...?"


"애가 무서워하잖아요. 좀 웃어봐요."


"그, 그건..."


"입술 근육 움직이는게 뭐가 어렵다고, 좀만 해봐요."


"그, 그럼... 이렇게?"


팬텀과 레이스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지만, 엘리에게는 친근한 언니들이 아닌 방금보다 몇배는 무서운 싸이코 암살자가 있는듯 하였다.


"흐, 흐윽... 흐아앙! 잘못했어요!"


엘리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팬텀과 레이스는 말없이 사라졌다. 서현의 눈에는 서로를 껴안고 흐느끼는 두 누나가 보이는듯 했다.


그녀들이 은폐장을 키고 사라지자 안심이 되었는지, 울음을 그치고는 약간의 훌쩍이는 소리만이 거실에 들렸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흐읍... 네..."


"어이구, 콧물 범벅이다. 코 좀 풀어. 누가 너 안잡아가니까."


"...네..."


휴지를 뽑아 코도 고상하게 푼 그녀는 더이상 훌적이지 않았다.


"어제 이름만 알려주고 골아떨어지는거 보고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조, 죄송해요... 긴장이 풀려버려서..."


"아, 아니...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고... 그나저나, 이름이 뭐니. 엘리인거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제 이름은 엘리 더 퀵핸드... 에요."


"흠... 이름이 꽤 특이하네."


"바이오로이드니까 그렇지!"


"아, 그렇지..."


어제와 다른 것 없는 반복에 지친 에키드나가 서현을 밀치고 엘리에게 몸을 들이밀었다.


"대놓고 말할게. UOU가 어떤 곳이야? 진짜 학교 아니지? 전에 폭탄도 다루던데, 정체가 뭐야?"


"그, 그게..."


에키드나에 취조가 심해지자, 다시 울먹이는 엘리였고, 서현은 급히 에키드나를 뜯어말렸다.


"애 또 울려 하잖아요!"


"그럼 우리가 너가 직접 물어보던가, 어제도 이름 물어봤으면서."


"...후우, 알겠어요."


굳은 결심을 한 듯한 서현이 곧장 엘리의 의수를 어루만졌다.


"우리 나쁜 사람 아니야. 난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고, 저 누나도 이 집에서 지금은 그냥 백수야. 아빠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 그렇지,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랑 다를게 없어. 그래도 이제 한동안 같이 지낼 사이인데, 서로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네..."


"그럼, 뭔가를 알려주겠니?"


엘리는 더이상 몸을 떨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였고,입을 차근차근 열어갔다. 에키드나의 능력으로 복종 모듈이 고장난 것도 한 몫을 했다.


"저는 엘리 더 퀵핸드, 080기관이 제작한 바이오로이드이며, 고위층 자녀들의 교육과 함께 테러용 폭탄 해체를 위해 제작되었어요."


"그래서 폭탄을 만지고 있었구나."


"그리고... 저희가 만난 그때도 저는 누가 테러를 위해 설치한 폭탄을 해체하고 있었어요. 안전장치와 함께 말이죠."


"...? 안전장치가 있었어?"


"네, 폭탄이 폭발할시, 폭발물이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안쪽을 막죠."


"...그렇- 잠깐만... 그럼 폭탄을 헤체하지 못하면, 안에 있는 넌 어떻게 되는거야?"


"...죽는거...죠?"


"..."


서현은 띵한 머리를 붙잡고는 다시 물어봤다.


"다시 물어볼게. 정말, 아무 장치도 없는거야?"


"네."


"진짜?"


"네."


"...무섭지는 않아?"


"무섭지만... 그래도 시민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귀족의 의무잖아요. 설령 터진다 한들, 제 희생으로 남을 살리는 것이니, 오히려 자부심이 들것 같아요."


"..."


서현은 믿기지 않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고, 눈시울은 이미 붉어졌다. 그는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입에서 험한 말을 내뱉었다.


"씨, 씨발..."


어색한 욕의 악센트는 이상한 곳에 집중되어 있었고, 에키드나도 처음 듣는 그의 욕설에 일이 심각함을 인지했다. 저녁어 뭘 먹을지에 관한 생각은 싹 가시었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그래... 너라도 살아있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


"하나 물어볼게 있어. 우리 학교에 시라유리라는 애가 전학왔거든? 걔도 UOU 학원에서 왔대."


"...!"


"너도 걔랑 연관있지?"


"...네..."


"...내일 학교가서 내가 가만 안둔다 진짜-"


"아, 아니에요! 시라유리 언니는 좋은 사람이세요!"


"진짜?"


"...네... 다만, 기관 특성답게 사망처리된 바이오로이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지만요..."


"그럼, 너도 사망처리된 애야?"


"네, 폭탄이 터지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처리되요."


"...그럼, 안돌아가도 되는거지?"


"...네."


서현은 그제서야 그녀를 와락 안았고, 눈물을 흐느끼기 시작했다.


"더 이상... 더 이상 그런 곳에 가지마... 여기서 우리랑 행복하게 지내자..."


"..."


엘리는 그런 서현의 권유에 대답없는 수락을 하였고, 서현은 한동안 그녀를 떼어낼 수 없었다.


그날 밤, 수많은 배달 오토바이가 서현의 집을 거쳐갔고, 엘리는 난생 처음 먹어보는 진수성찬들을 맛보았다고 한다.


.

.

.


"...누나, 저 갔다올게요."


"...서현아."


"...?"


"절대 모습 변하지 말고, 전에 그랬던 것처럼 행동해. 갑작스래 행동이 변하면 걔네들도 눈치챌거야."


"...알았어요. 갔다올게요."


"그래, 여긴 걱정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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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일주일간은 또 '로드 투 이스트'가 연재될거야! 다다음주를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