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소재는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주인공을 위해 대신 죽음을 맞이하는 희생적인 전개도 가능하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 상남자스러운 전개는 물론


전쟁터에 끌려와서 피터지게 싸우다가

아군이 던진 수류탄에 팀킬 당해서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의무병이 올 때까지 발버둥치면서 버티다가 쇼크사로 죽어버리는, 전역을 한 달 정도 남긴 상태에서 당한 개죽음스러운 전개도 가능함


왜냐하면 죽음은 한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고, 그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라도 떳떳하고 아름답게 맞이하고 싶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주위 환경에 의해 마지막 순간을 허무하게 맞이하는 걍우도 있기 때문임

그래서 안락사나 같은게 존재하는 거고


근데 이 죽음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려면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가 캐릭터다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퇴장하는 형식이어야 하는데

이건 캐릭터 본연의 서사가 있어야 할 뿐 만 아니라 그 캐릭터의 죽음이 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 지, 그 캐릭터가 죽음으로써 이야기 전체의 영향이 얼마나 크게 미치는지 까지 계산을 해야함

이런 케이스에 가장 부합하는 캐릭터는 귀멸의 칼날의 염주나 MCU의 욘두 우돈타라고 생각함


만약 '캐릭터'의 죽음이 아니라 캐릭터의 '죽음'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가 본연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도록 캐릭터의 서사를 주변 환경이 짓뭉갤 정도는 되야함

이 경우에는 당연히, 캐릭터의 서사보다 주변 환경의 서사가 더욱 강할 수 밖에 없음

영화에서 전투씬 펼쳐지면 주인공은 말짱한데 병사들은 픽픽 쓰러지잖음? 그건 병사 개개인이 가지는 서사보다 전쟁이라는 서사가 병사들 개개인의 서사보다 위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임 병사들이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결국은 전쟁에 휘말려서 끌려온 사람들이니까


다만 캐릭터의 서사를 짓밣을 정도로 주위 환경의 서사가 강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강하면 안 됌

무슨 년생 지영이처럼 실제로 그런 일들이 있었고 그런 차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왜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 가에 대한 고찰은 필수적임

그러지 못하면 캐릭터가 환경에 짓뭉개지는 장면이 나올 때 보는 사람은

'아 안타깝다' 내지 '아 이런건 옳지 않아' 생각이 들지 않고

'ㅅㅂ ㅈ같네?' 또는 '어...왜?' 이런 생각 밖에 들지 않음

캐릭터의 서사가 환경에 비해 약하다고 해도 일단은 서사가 존재하고 사람들은 그 캐릭터 서사를 따라가면서 작품에 몰입을 하는 법이라서 환경의 서사가 캐릭터보다 튼튼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환경의 서사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튕겨져 나가버림

쉽게 말해, 캐릭터보다 환경이 이해가 안 되서 몰입이 깨져버림


돌아와서, 캐릭터의 죽음이라는 소재는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추느냐 '죽음'에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고 유용한 소재임

근데 그만큼 다루는 난이도가 높아서

잘못 다루면 그만큼 ㅈ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생각함


대학교 다닐 때 얘들 글 쓴 거 보면서 든 오랜 생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