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령관이 아니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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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어딘가의 적당한 빈 공간. 딱히 쓸 일이 없는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는 창고 같은 곳.

그곳에서 두 바이오로이드가 서로 대치하고 서 있었다.

 

그 중 확연히 눈에 띠는 금발의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를 한 쪽은 머리칼을 손끝으로 무심한 듯 배배 꼬고 있었다.

그 행동이 맞은편의 다른 이의 눈에 그저 무언가에 안달 난 듯 고민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걸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저기, 발키리...”

 

“예, 대장.”

 

우물쭈물 거리며 대장이라고 불린 바이오로이드는 자신이 먼저 불러 놓고는 당당하지 못한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런 그녀와 마주하고 있던 발키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선뜻 대답했다.

그러자 배배꼬던 머리를 더욱 강하게 쥔 금발의 그녀- 레오나는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

 

“그,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을 땐... 어떻게 해?”

 

자신이 말해 놓고도 무언가 불안한 건지 레오나는 그 철혈이라는 이명에 어울리지 않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 발키리는 생각했다. 이 넓디넓은 오르카에 신경 쓰일 사람이라곤 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 레오나는 오르카의 두 번째 인간과 자주 붙어 다녔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발키리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버렸다. 자신의 대장에게도 봄이 온 것이다.

 

“으읏, 웃지만 말고. 너도 사령관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이런 거, 그, ...잘 알거 아냐.”

 

“아, 알고 계셨습니까?”

 

“그야, 봐버렸으니까...”

 

“그, 그건... 부끄럽군요.”

 

자신과 사령관의 관계를 레오나가 알고 있었다는 걸 듣게 된 발키리는 당황했다.

전날 밤의 사령관과의 뜨거웠던 순간을 레오나가 목격했다는데 제아무리 발키리라도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익은 발키리를 앞에 두고 무언가 괘씸하다는 마음이 생겨난 레오나는 무언가의 답답함을 호소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 대장 좀 도와. 이런 말 할 수 있는 거 너 밖에 없다고.”

 

“그렇군요. ,,,그분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몰라, 분수도 모르고 까부는 완전 재수 없는 녀석이었는데, 의외로 나름 책임감 같은 거도 있는 것 같고... 간간히 보면 나쁜 녀석은 아닌데, 왠지 열 받고 말이야. 근데 또 같이 있으면 묘하게 맘이 편해진다고 해야 하나? 맞다, 저번에 나보고 게임 못한다고 개지랄 하는 거 있지?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맞은편의 발키리를 잊기라도 한 것 마냥 열심히 장황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을 미리 깔아놓고 그의 어떤 점들이 좋은지 이야기 하는 것이 아주 물 만난 고기마냥 막힘이 없이 술술 나왔다.

 

발키리는 그저 그녀의 긴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더 들어봤자 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결국-

 

“좋아 하신단 거군요.”

 

“무슨! 아니... 그, 뭐랄까? 그게 말이지...”

 

“후훗.”

 

“...응 그런 거 같아.”

 

레오나는 발작하듯 자연스럽게 부정하였으나 이내 바로 수긍하였다.

방금 전까지는 신랄하게 이야기를 하던 그 입은 연료가 떨어진 것 마냥 오물거릴 뿐이었다.

북방의 암사자라기 보단 사랑하는 소녀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런 레오나를 앞에 두고 발키리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사랑하는 중이니까 한창 사랑으로 고민 중인 발할라의 대장의 마음을 이해 못할 리가 없었으니.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내가 그녀석이랑 좀 어색한 상황이야.”

 

결국 레오나는 이제야 발키리와 만난 목적을 꺼내기 시작했다.

머리끝자락을 배배 꼬던 손가락도 이젠 서로 꼼지락 거릴 뿐이었다.

 

“그, 용기 내어서 억지로 들이밀기는 했는데... 어영부영 끝나버렸어.”

 

말하면서도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레오나의 귀가 점점 붉게 익어간다.

그럼에도 자신을 도울 수 있는 건 발키리 밖에 없다는 걸 제대로 이해했는지 두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아기고양이처럼 바라보았다.

 

“어떡하지?”

 

그 모습, 그 한마디에 발키리는 새삼 자신의 대장이 이렇게 귀여웠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지나갔다.

알비스나 안드바리를 챙겨 줄 때처럼 어떻게든 도와주고픈 맘이 생겨나 그만 대장을 꼬옥 안아주고픈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정도였으니.

그런 마음을 조금 억누르고 발키리는 자신의 앞에 사랑에 빠진 소녀의 두 손을 부드럽게 잡고 말했다.

 

“마음을 전하는 겁니다.”

 

“마음을?”

 

“예,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그분께 말씀드리는 겁니다.”

 

“읏,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이렇게 안 찾아왔겠지.”

 

레오나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마음을 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 역시 발키리가 겪었던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더욱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몰아 붙였다.

 

“때로는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어도 확실한 한마디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결정타가 필요한 것이다.

어렴풋이 서로의 호의의 감정을 느꼈다 하더라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보다 못한 것이다.

 

“그, 그치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왠지 부끄럽단 말이야.”

 

“예?”

 

발키리는 레오나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르카에서도 유명한 그 멸망의 메이의 그것처럼 한심한 대답을 한 레오나를 보자 상황이 잘못 꼬이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발키리의 걱정과 격려를 다 터트려 죽여 버린 것이다.

 

“안되겠습니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부디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지, 지금? 잠깐, 지금은 쫌... 발키리?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기다리라는 자신의 대장을 무시한 채 발키리는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고 성큼 성큼 발을 내딛었다.

그런 발키리의 머릿속엔 한가지 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이 오르카에 멸망은 하나로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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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절찬리에 고민 중이다.

아스널도 탐색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버린 지금 어찌해야 밝은 오르카 라이프를 위해 레오나와 접촉할 지를 말이다.

 

뭐가 문제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은근 소심한 부분이 매력인 나는 어색한 상대에게 선뜻 나서질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아스널이라도 있었으면 아스널을 통해서 먼저 만나서 뭐라도 했을 지도 모른다.

 

아스널을 등에 업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남자 2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남자를 떠나서 인간이 둘 밖에 없어서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2위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레오나와 만났다고 해도 어찌 말을 터야 할지도 생각해 놓아야 한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버버하다간 정말로 대가리와 총알이 찐득한 딥키스를 할지도 모르니까.

 

“어렵다. 어려워.”

 

대가리를 굴려도 내 작은 뇌는 일할 생각이 없는지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랜절은 어렵고 철판 깔고서 그날에 대해 말하며 사과하기엔 그릇도 깡도 부족했다.

 

내 행위에 잘못이 있으니 빨리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하는데...

차라리 알몸 도게자를 박고서 진심으로 사죄하면 될까-

 

똑- 똑-

 

역시 알몸 도게자로 할려면 옷은 각을 살려서 깔끔하게 잘 접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맑은 노크소리가 나를 제정신으로 돌려주었다.

 

세상에, 알몸 도게자라니 야겜도 아니고 내가 미쳤었구나.

빨리 이상한 색각을 접고서 재빨리 문 앞에 섰다.

 

“누구세요?”

 

“접니다.”

 

발키리 목소리였다.

 

응. 확실히 발키리였다. 그녀가 나에게 무슨 볼일로 찾아 왔을까 싶어서 나는 정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러니까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자, 잠깐 발키리! 밀지 마!”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만나고 싶진 않았던 여자였다.

그녀 역시 나를 찾아오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았는지 문틀을 잡고서 들어가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작 발키리는 끝끝내 자기 대장인 레오나를 내 방에 오겨 넣듯이 밀어 내고선 상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두 분이서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 말하곤 그대로 문을 닫고는 날라버렸다.

응. 정말 순식간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

 

“...”

 

상쾌하게 떠난 발키리와 달리 방안에 남겨진 나와 그녀는 말이 없었다.

어찌하면 존나 당연한 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나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그저 나는 내 눈앞의 여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꽤나 자주 보았던 금발, 뭔가 아니꼬운 게 있는 것 같은 눈매.

말해 뭐하겠느냐,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레오나다.

 

그녀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인지 힐끔 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아, 눈 마주 쳤다.

 

눈이 마주치자 레오나는 빠르게 고갤 숙였다.

그리곤 그녀 역시 이 상황이 어색하고 부끄러운 지 양쪽 귀가 점점 벌겋게 변해 갔다.

다행히 아직까진 내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놓을 생각은 없나보다.

 

“...”

 

“...”

 

어색하다. 응. 이 공기를 어찌 해야 할까.

차라리 내가 먼저 질러 봐?

그러다간 놀란 레오나한테 귀방맹이를 세게 후려 맞지 아닐까?

 

“...야.”

 

“어, 어어.”

 

에이, 병신 같이 어어가 뭐냐.

생각하지 못한 레오나의 선공에 그만 이상한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레오나는 여전히 고갤 숙이고 있었다.

 

“...그, 잘 잤어?”

 

“...응.”

 

사실은 그리 잘 잤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기선 일단 무조건 그렇다고 하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뒤는 나나 레오나나 말이 없었다.

 

“후으...”

 

레오나는 갑자기 뭔가 흐릿한 한숨을 쉬었다. 힘 빠지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그에 따라 나도 자연스럽게 레오나를 바라보곤 놀랐다.

엄청 붉었다. 정말 토마토에 비유해도 될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터질 듯이 붉게 변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데 뒤 이어서 들려온 레오나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좋아해.”

 

“...예?”

 

“...몇 번 말하게 하는거야... 좋아한다고.”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레오나의 두 눈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니, 그 레오나가 나보고 좋아한다니!

세상에! 나는 이 오르카에 와서야 인생 최고의 인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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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