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어둠속에 피는 장미-
배양관에서 눈을 떴을때, 처음 본 것은 어둠이었다.
너무 어두운 나머지 내가 눈을 뜨고 있는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던 이 곳에선 겹겹이 쌓인 먼지와 불쾌한 냄새가 전부였다.
어딘지도 모를 이 낮선 공간에 두려움을 느낀 나는 주변에 널부러져있는 천을 주워 본능적으로 몸을 감쌌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변을 더듬거리며 빛이 세어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문을 막고 있던 돌더미를 간신히 밀어낸 뒤 밖으로 나가자, 여기가 내가 있던 곳이랑 같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잘 정돈된 흰 복도와 함께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선 왠지 낮익은 여성이 자신을 어머니라 칭하며 날 반겨주고 있었다.
"환영한다, 내 딸아. 일어난지 얼마 안되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 시설은 널 위해 지어진 곳이란다. 복도에 설치된 화살표를 따라가면 너의 재활을 도울 시설들이 준비되어있단다"
화면 속 여성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안내를 이어나갔고, 그녀의 말대로 긴 복도를 따라 도착한 곳엔 기록실이란 이름의 방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이 곳은 네가 잃어버렸을 기억들을 기록해놓은 곳이란다. 방금 막 깨어난 네가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건 이전에 있었던 사고때문이란다. 다행스럽게도 이 엄마는 사랑스런 내 딸 장화의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기록을 해놨어서 이 기록으로 널 도울 수 있게 되었단다"
굳게 닫혀있던 기록실의 문이 열리고, 안에는 대형 스크린과 푹신한 의자, 테이블에는 깡통에 담긴 뭔지 모를 것들이 쌓여있었다.
의자에 쌓인 먼지를 거둬낸 뒤, 편한 자세로 몸을 취하자 영상이 시작되었고, 내 어린시절로 보이는 모습과 엄마라고 칭하는 여성의 단란한 한때, 그리고 중간중간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상들이 뒤섞여나왔다.
영상의 길이가 상당했던건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휴식과 식사를 권하는 메세지가 스크린을 통해 송출 되었고, 이 메세지에 따라 테이블에 놓인 깡통을 집은 뒤 뚜껑을 땄다.
뚜껑을 열자, 먹어선 안될것같은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이걸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을것 같단 생각에 나머지 깡통들도 하나씩 까본 뒤 그 중에서 냄새가 덜나는 것을 골라 취식했다.
물이 잔뜩 담긴 통조림 안 속 노란색 물체는 새콤하면서도 달달했고, 계속 긴장상태였던 몸을 조금은 풀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걸로 배가 체워지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빈속인 것보단 나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영상을 시청하자, 어느덧 유년기,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내 모습이 보였다.
파티장으로 보이는 어느 장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연회를 즐기는 모습이 비춰지고 모두가 즐거워하는 그 순간,
영상의 조명이 꺼짐과 동시에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무신경하게 사람들을 방패로 내리찍는 여성, 그리고 사람들을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뭐가 그리도 신났는지 한명씩 사살해가는 분홍머리 여성,
마지막으로......자신과 쏙 닮은 붉은머리의 여성이 어머니와 날 짓밟은 뒤 석궁으로 몸을 쏘기 시작했다.
마치,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었던것처럼 팔, 다리, 몸쪽에 수십발을 쏜 뒤 딸만큼은 살려달라고 하는 어머니를 보며 그녀는 그럴일은 절대없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의 양쪽 눈에 석궁을 발사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절규하며 도망치는 날 향해 날아오는 화살들, 이것을 끝으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방금전 본 영상들로 인해 머릿속이 뒤집힐것만 같았던 나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서 먹었던 것들을 쏟아냈고, 잠시 뒤
스크린엔 어머니의 모습이 등장했다.
"지금 네가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거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너 하나만큼은 어떻게든 살리려 이 시설을 준비해놨단다. 부디.....잘 회복하고 행복하게 살아주렴.
사랑한다, 내 딸"
어머니의 마지막 말과 함께 다시 영상이 꺼지고, 나를 안내해주려는 듯 다음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렸다.
긴 복도를 통해 이어진 벽면에는 전신거울이 설치되어있었고, 이 곳을 따라 걸어가며 난 내 몸에 생긴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청소년기로 되돌아간 몸과 온몸에 세겨진 장미문신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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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사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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