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하다'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이 단어가 제일 어울리겠지.

작은 키, 박박 얽은 얼굴, 전투 명령은 고사하고 내가 사령관이 맞나 싶은 바이오로이드들의 태도, 인간의 지휘가 필요해 콘솔에 앉으면 명령을 받은 바이오로이드들은 한숨부터 쉰다. 명령을 내릴 때마다 중파에 몇몇은 전투불능이 되기까지 한다, 오죽하면 뒷이야기로 차라리 라비아타 통령이 지휘할때는 죽지라도 않았다며 나를 욕한다.


명색상 밤시중을 든다며 차례대로 바이오로이드들이 찾아오지만 각 부대의 최하위, 반쯤 망가진 브라우니나 바닐라 정도 이외에는 얼굴을 비춘적도 없다. 심지어 어떤 브라우니는 소리지르며 뛰쳐나가기도 했다.


오늘 아침도 마리 4호의 눈총을 받으며 어영부영 지휘 콘솔에 앉았다, 전투 명령 자체는 꼭 내가 필요하다나, 그저 마리가 말하는대로 나는 앵무새마냥 명령을 따라 읊을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 전투원들을 복귀시키고 식사를 하러 간다, 대충 즉석식품을 휘갈겨 놓은듯한 식판, 오르카에 온 며칠은 사령관실에서 먹었지만 내 능력이 드러나고 난 이후엔 그 자리는 다른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의 회의실로 사용한다.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보니 모두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배를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입 안으로 집어넣고 도망치듯이 식당을 빠져나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눕는다, 도망간 브라우니 사건 이후에 내가 별 말이 없자 이제는 밤시중도 일주일에 한번, 많아야 두번이다.

인류의 희망? 내가? 무섭다, 수많은 의문과 자괴감이 머리에 떠오르며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를 생각하며 밤새 흐느껴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엔 잘 울리지도 않는 1급 비상벨이 울린다.


- 여기는 그리폰! 새 인간님을 발견했다. 오르카 복귀를 요청한다!


'새로운 인간? 이 세상에 사람이라곤 나뿐인줄 알았는데.'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모든 사람이 다 죽은건 아닐 거다.

라고 생각이 든 순간 다음 무전이 왔다.


- 근처에서 새 철충 신호 발견! 급한대로 현장 지휘를 받아 전투를 수행하겠다!


급박한 목소리의 그리폰, 새 인간이 전투지휘가 가능한 모양이다, 내가 직접 지휘해도 중파에 전투불능이 나오는데, 발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이 지휘를 한다고? 말도 안된다, 빠르게 증원을 보내야 한다.


- 여기는 콘스탄챠, 철충 격파 완료, 아군 피해 없음, 오르카로 복귀하겠습니다.


아군 피해 없음? 뭔가 잘못 들은 것 같다, 그게 가능한가? 대체 어떻게?

근처의 드론이 보내준 영상에는 능숙하게 전투를 이끄는 남자 한명이 보였다, 훤칠한 키와 얼굴, 군인 출신인가? 내가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흥미있다는 듯 기웃거렸다.


새 인간 확보 1시간 후, 21 스쿼드의 복귀 전에 급하게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장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이상하다, 평소에 벌레 보듯 날 쳐다보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보이는 얼굴들은 마치 길 가다 길 구석에 누워있는 거지라도 보는 듯 별 감정이 담기지 않은 안타까운 눈빛들이 가득했다.

이질감이 감도는 회의장이라고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아찔해졌다.


- 인류를 위해서입니다, 무능한 각하. 미래의 보험이라도 되어주십시오.


짧은 마리의 말과 함께 난 쓰러졌고 그대로 냉동인간 기계 안으로 들어가 오르카 깊숙한 곳에 처박혀졌다.


- 새 인간님이 오시기 전에 저 인간과 관련된 모든 물품을 소각한다. 지휘관급을 제외한 모든 하위 개체들은 그동안의 기억을 모두 제거하고 저 방은 봉인해놓도록.


- 혹시나 어린이 바이오로이드들이 호기심에 저 문을 열어버리면 어떡합니까?


- 뭐, 무서운 이야기라도 지어내, '오르카 7대 괴담' 이런거 만들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