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헬리 문학 모음집


-지금 뭐라고....


드라우그가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다시 되물었다. 여전히 무릎을 꿇은 시그룬이 드라우그에게 호소했다.


"아직 전투모듈을 받지 못했지만 저도 조만간 임무에 투입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투모듈을 받는다고 해도는 저는 이제껏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해본 적 없는 햇병아리. 스펙의 수치로 버티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제대로 된 전투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날 저를 압도적으로 제압한 드라우그님의 실력은 경이로웠습니다! 드라우그님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제발 저를 단련시켜주세요!!"


-나는 누굴 가르칠만한 군상이 못 된다. 나 말고 발할라 팀이나 다른 이에게 부탁해봐라.


"아뇨! 다른 분들의 실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드라우그님에게서 배우고 싶습니다! 이미 다른 부대원들의 훈련도 도와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우직한 시그룬의 자세에 머리가 절로 아파져온다. 그야 물론 드라우그가 오르카호의 훈련교관으로서 부대원들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단 대원들의 일일 단련을 지도하는 것일 뿐, 누구 하나를 집중 지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드라우그는 살면서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도 없고, 교육자로서의 지식도 전무했다. 거절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는 시그룬의 얼굴을 보건데 어떻게든 밀어붙일 작정으로 보였다. 저 소심하고 순수한 아이가 드라우그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 아침에 직접 찾아오기 위해 어떤 각오를 했는지 모른다. 결국 항복하는 쪽은 이미 정해진 셈이었다.


-...미리 말하는데 너만큼이나 나도 선생으로선 초보다. 전문적인 교육은 바라지 마라.


"...!! 받아주시는 건가요?!"


-훈련은 오전 아침 8시부터 11시 반,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한다. 필요에 따라서 야간이나 야외 훈련을 진행할 수도 있고, 훈련 중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상관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 쪽에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철저하게 다뤄주십시오!"


그렇게 막 다루다 다치면 사령관과 레오나에게 혼나는 건 나란 말이다.


투덜거림을 속으로 삼키며 드라우그는 하는 수 없이 시그룬의 전투 훈련을 맡아주기로 했다. 우선은 사령관과 레오나에게 허가를 구하는 것부터 해야했다. 드라우그와 시그룬은 바로 둘을 찾았다. 사령관은 다행히 흔쾌히 수락했다. 시그룬이 뭔가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요구하는 모습을 반기면서, 그 강대한 스펙을 썩히는 것이 아깝다고 여긴 것이었다. 반면 레오나는 다소 난행을 치뤘다.


"왜 벌써 훈련을 하겠다는거니? 너에겐 아직 좀더 휴식이 필요해."


지나치게 시그룬을 싸고 돌으려는 레오나 때문에 훈련이 무산될 뻔했지만, 사령관까지 합세하면서 밀어붙이자 레오나도 차마 더 반대할 수는 없었다.


"언제 오미크론과 철충들과 싸우게 될 지 몰라. 적들은 우리 사정 봐주지 않을 거야. 지금이라도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어."


사령관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레오나는 결국 하는 수 없이 허락했다. 시그룬이 좋아하는 사이 드라우그에게 혹시라도 다쳐서 돌아오면 각오하라는 으름장에 드라우그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병의 신병 교육이 시작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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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속도가 느려진다. 페이스를 늦추지 마라.


바닥에 붙어 푸쉬업을 하는 시그룬을 옆에서 다그치는 드라우그. 훈련복이 땀으로 흥건한 상태에서 벌써 푸쉬업을 몇 백이나 해대면서 시그룬이 숨을 몰아쉬었다. 몸이 내려올 때마다 그녀의 팔 근육이 꿈틀거리며 굴곡을 그렸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푸쉬업 세자리 수에 기겁하겠지만 정작 기겁하고 있는 쪽은 드라우그였다.


'정말 무시무시한 신체로군.'


바닥부터 다져야한다는 생각에 드라우그는 우선 기초 체력 단련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시그룬은 비록 바이오로이드였음에도 야위고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었기에 처음에는 허들을 낮췄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드러나는 시그룬의 진가에 드라우그는 어느새 훈련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푸쉬업도 조깅 몇 바퀴를 전력질주를 한 후에 시키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하는 수 없이 훈련을 담당하기로 했던 드라우그는 어느새 점점 가치를 빛내며 세공되어 가는 원석의 모습에 교관으로서의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원석이 제대로 연마된다면 과연 얼마나 눈부신 보석으로 바뀔까? 그렇게 훈련받는 시그룬만이 아니라 드라우그마저도 교육에 열의를 다져갔다.


"교관님, 기초 체력만 5일 째입니다. 이제 그만 전투 훈련에 들어가도 되지 않나요?"


-두 가지로 이유로 기각하겠다. 첫째, 아직 너의 신체 수준이 어느정도까지 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보아하건데 아직 너나 나 모두 네 신체의 한계를 모른다. 너의 정확한 능력이 파악할 수 있어야 그에 걸맞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그럼 두번째는 무엇인가요?"


-아직 너의 장비 수리가 끝나지 않았다.


시그룬의 본래 장비인 에너지 검과 방패, 그리고 인공척추에 연결되어 활공할 수 있는 철의 날개. 그녀의 장비는 단순히 장비가 아니라 한 몸이나 다를 바 없었다. 지금 땅에서 대인 훈련을 해봤자 철충과 바이오로이드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그다지 불필요한 훈련인 것이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있어 자신의 무기를 쓰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훈련이었따. 


-지금 정비팀 쪽에서는 메인프레임 분석이 우선순위기에 네 장비를 수리하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때까지는 지루하더라도 체력 단련에 힘쓴다.


"아.알겠어요..."


-편한 소리 하는거보니 아직 살만한가 보군. 다음 PT체조 100회, 몇 회?"


"100회!!"


-100회? 120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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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실. 사령관은 메인프레임 분석을 하던 알파와 리앤, 그리고 아자즈의 호출에 정비실을 방문했다.


"알파, 나 불렀어?"


"어서오세요, 사령관님. 실은 메인프레임을 분석하던 중에 뭔가 심상치 않을 것을 발견해서요."


"심상치 않은 거? 뭔데?"


사령관의 물음에 아자즈가 한달음에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묘하게 흥분한 듯 얼굴이 달아오른 아자즈의 기세가 사령관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알파님이 메인프레임 하나를 분석하던 중에 이런 게 나왔어요."


아자즈가 자신의 옆구리에 낀 종이 뭉치를 사령관에게 펼쳐 보였다. 파란 종이 위로 하얀 선이 일정한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거 혹시 설계도야?"


"네, 자세히 봐보세요 사령관님!"


부담스럼게 청사진을 들이미는 아자즈. 너무 흥분해서 앞뒤 분간도 못하는 것 같았다. 사령관이 아자즈에게서 청사진을 건네 받고는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봤다. 이게 뭐길래 그렇게 좋아서는....어? 한참을 살펴보던 사령관은 문득 청사진의 설계도면이 묘하게 익숙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각진 기둥 끝에 연결된 오각형. 그리고 그 오각형 끝에 기다란 세개의 송곳과 옆으로 튀어나온 굵은 송곳.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


"이거 손이네?"


"네!! 역시 사령관님도 금새 알아보실 줄 알았어요!!"


"자자, 아자즈님 진정하세요."


설계도에 그려진 도면은 분명 손, 정확히는 왼쪽으로 보이는 팔이었다. 손가락이 약지가 없는 4개에 인공 프레임과 장갑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강화복인가 싶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인간의 신체 구조와는 다소 맞지 않는데다 크기도 팔 하나 길이만 2m가 넘게 표시되어 있었다. 


"혹시 AGS 설계도야?"


"저희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인간형 AGS 중에서 이런 설계를 가진 유닛은 아직 없습니다."


"그럼 신규 AGS? 혹시 다른 도면은 더 없어?"


"죄송해요. 저희가 찾은 건 이게 다예요. 다른 메인프레임에도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기밀유지를 위해서 설계도를 따로 보관하고 있었나 봐요."


"아자즈, 이게 신형 AGS라면 전략적 가치는 어느정도일 것 같아?"


"일단 계산상으로 이게 인간형 AGS라면 팔 하나만 2m에 달하니 아무리 작아도 7m는 될 것 같아요. 그 외에 다른 부위는 표시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찾게 되면 손해는 아닐 것에요."


"뭐든 알바트로스보다는 쓸만하겠지. 샌디에고에 가야할 이유가 또 늘었는걸. 수고들 많았어."


확실히 이정도 정보라면 메인프레임을 가져온 값어치는 톡톡히 했다. 한편으로는 걱정거리가 늘기도 했다. 오미크론이 에인헤랴르 제작법을 탈취하는 것도 큰 골칫거리였는데 만약 신규 AGS가 엄청난 성능을 선보인다면 오미크론의 관심도 덩달아 그쪽으로 쏠릴 테니까. 한시라도 바삐 샌디에고의 초인병사 연구소로 향해야 했다.


"아자즈, 메인프레임 분석은 끝났으니 이제 시그룬의 장비 수리를 부탁해. 최근 전투 훈련에 들어가서 슬슬 실전에 나서기 전에 준비해야할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아, 미리 말하는데 쓸데없이 이것저것 막 달 생각 하지 말고 원본 그대로 수리해라."


"잇쿵."


"귀여운 척 해도 어림없어. 원본 그대로 수리해, 나 분명 말해뒀다."


몇번이고 신신당부하는 사령관. 잠깐만 방심해도 멀쩡한 기계에 온갖 마개조를 거치는 아자즈의 전적이 있기에 방심할 수가 없었다. 드라큐리나의 콘서트 장에 시뻘건 피(사실은 토마토)가 뿜어지게 만들어서 관객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다던가, 스카이나이츠의 비행장비가 추가 부스터를 달아서 더 빨리 날다가 감속장치가 맛이 갔다던지 별별 사고가 있었다. 한번은 알바트로스를 더 좋게 개조해주겠다고 해서 사령관이 솔깃했지만 차마 아자즈도 알바트로스를 손 보는 건 무리였기에 그건 무색되고 말았다.


다소 아쉬워하는 아자즈. 사령관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대신 이번 일 잘해주면...."


아자즈에게만 들리는 사령관의 속삭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자즈는 사령관의 말을 들으면서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더니 평소의 마이페이스 적인 모습은 어디로 가고 부끄러워서 사령관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알파도 남사스러운 기분에 발로 땅에 원을 그리며 애써 딴청을 부렸다.


"알았지, 부탁해?"


사령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고, 아자즈는 차마 답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인 채 연신 끄덕이기만 했다. 이후 그녀의 열의에 힘입어 시그룬의 장비는 완전히 새것이 되어 재탄생되었다. 그녀가 그리 바라던 전투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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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즈 야스 씬은 나중에 외전으로 넣을까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