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굴뚝에서는 항상 검은 증기가 피어오른다. 매캐한 유황을 가득 머금고서 주변 생태계의 자양분이 될 유황은 이유 모를 압력에 부딪혀야 했다.

 

 이상함을 느낀 열수공은 증기의 형제를 더욱 많이 만들어 압력을 이기려 했고, 형제에게 밀려난 유황은 자연스럽게 굴뚝을 막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은 부조가 새겨진 커다란 벽돌이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없던 구조물이 갑자기 생긴 이유를 생각하던 유황은 곧 몇 시간 전 있었던 지진을 떠올렸다.

 

 그는 잠시 뒤로 물러나 조각을 천천히 감상했다. 바닷속에 만들어진 구조물로 들어가는 거대한 생물을 지켜보는 인간이 새겨진 모습은 어떠한 역사를 전달하려는 듯 싶었다. 밑에 적힌 문자를 읽으려던 그 순간, 임계점에 도달한 압력은 유황을 해수면까지 밀어냈다.

 

 지상에 도착한 유황은 이상함을 느꼈다. 아래에서 본 하늘은 맑았으나, 올라온 순간 날씨가 급격하게 변했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검고 매캐하게 물들인 그는 빙글빙글 돌며 혼란스러워했다.

 

“윽, 계란 썩는 냄새.”

 

 붉은 머리의 소녀가 갑자기 코를 움켜쥔다. 단 한 가지 점만 제외하면 이상적인 미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늑대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있었다.

 

“펜리르 양, 작전 중이니 농담은 삼가하시죠?”

 

 용오름을 향해 손을 뻗고 있던 레아가 펜리르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주변에 전류가 흐르며 온몸의 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평소에 놀려댄 대가로 여러 번 번개를 맞아서인지, 아니면 동물적인 감각인지는 몰라도 펜리르는 꼬리를 세우며 화들짝 놀랐다.

 

“바람 말했던거야!”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레아, 철충들이 후퇴하고 있-. 지금 뭐해?”

 

 대치하고 있던 펜리르와 레아 사이에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화면에 떠오른 사령관을 본 레아가 당황하며 변명하자, 그녀가 지배하고 있던 기상 현상이 풀려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에서 풀려난 유황은 어느새 증기에서 바람으로 탈바꿈했다. 훨씬 더 가벼워진 몸을 느낀 그는 북쪽으로 향했다.

 

 아득한 시간을 달리던 중, 유황은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숲에 도착했다. 나무들은 눈으로 뒤덮여 어지러운 초록색을 뽐내고 있었으나, 포격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본연의 색을 되찾았다. 기름과 피가 섞여 도화지를 수놓는 전장. 그는 어머니 굴뚝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유황은 대화할 상대를 찾아 숲을 해맸다.

 

 나무를 흔들며 숲을 뒤지던 그는 한 바이오로이드를 발견했다. 팔에 부상을 입은 그녀는 입과 남은 손으로 붕대를 감으며 바위 뒤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유황은 발키리와 대화하기 위해 몸을 휘감았으나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머리를 내민 순간 느껴진, 지상과는 다른 심해의 이질적인 열기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발키리는 머리를 관통당했고, 소리에 밀린 유황은 다시금 길을 떠났다.

 

 극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바람의 몸은 무거워졌다. 결국 태어났을 때처럼 다시금 바다에 녹아내린 그는 심해로 향했다.

 

 한참을 침강했을까. 유황은 무언가와 부딪혔다. 처음에는 바위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은 거대한 생물의 비늘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그가 해저 언덕이라고 여겼던 것 자체가 한 생물의 몸이었다.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심장 고동소리는, 어느새 바다를 장악했다. 유황은 본능적으로 이 생물이 부조의 주인공임을, 그리고 그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한낯 생물이 지구의 의지를 대표한다는 불합리함에, 유황은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며 그것의 이름을 읊조리며 사라지고 말았다.

 

 고질라.

 

#

 

 그것은 갑자기 찾아왔다. 1875번 이프리트가 요안나 제도 수비 병력이라는 이름의 예비역으로 보직을 변경한 날이었다. 이프리트는 반납했던 자비를 돌려받으며 자신이 무얼 그렇게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브라우니는 적당히 갈궜고, 레프리콘에게는 업무를 떠넘겼지만 해야할 일 은 했다. 부식을 몇 개 삥땅치기는 했으나 남는 것을 가져온 것 뿐이었다. 무수한 회상속에 이프리트가 내린 결론은 정확했다.

 

‘진짜 씨발 좆되게 꼬였네.’

 

 그날은 철충이 바다를 건넌 날이었다.

 

 1875번 이프리트는 딱 한 번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이제는 월례행사가 되어버린 철의 탑 습격 작전에 지원했을 때였다. 브라우니의 실수로 지뢰가 터져 바닥에 구멍이 났었다. 레프리콘을 불러 적당히 주의를 준 후 조심스럽게 지나가려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백기의 익스큐셔너였다. 간신히 졸도를 피한 이프리트는 당장 오르카 호에 보고했고, 한동안 증인으로서 불려가고, 작전 준비로 불러가기에 바빴다.

 

 모두가 긴장한 한 달이었으나 철충의 준동은 없었다. 그래서 사령부는 그저 결함품을 따로 보관해둔 것이니 판단하고 오르카 호에 일상을 돌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그 익스큐셔너들은 붉은 구멍에서 빠져나와 바다를 건너 요안나 제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을 까맣게 덮은 순백의 처형인들은 하늘을 가로질렀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 병력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안나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동료 바이오로이드의 증언에 따르면 익스큐셔너의 공격은 아프지 않다고 했다.

 

 약속된 평안한 죽음은 그들을 맞이하지 않았다.

 

 모래사장까지 불과 1Km도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굉음과 함께 물보라가 솟구쳤다. 터지듯 나타난 발톱과 아가리는 철충의 육중한 몸체를 순식간에 낚아채 바다로 들어갔다. 익스큐셔너가 응전한 것은 이미 해변에 잔해가 스무 개 정도 떠밀려온 후였다.

 

 익스큐셔너가 돌진하려는 순간, 해변에 산이 나타났다. 산의 형태는 몹시 특이해서, 세 개의 지지대가 중심을 떠받치고 있었는데, 그중 두 개는 조금 더 짧고 평행했다. 세 번째 지지대의 끝부터 꼭대기 바로 아래까지는 암초들이 가득 자라 있었고, 산의 중심부에는 두 개의 거목이 자리 잡았다.

 

 당황에 찬 요안나가 지도를 개정해야겠다는 생각에 빠질 무렵, 그녀는 문득 그것을 무생물로 표현하는데 어색함을 느꼈다.

 

‘살아있어? 저런 것이?’

 

 요안나가 어색함을 느낀 것은 소리였다. 모두가 굳어 잔잔한 파도 소리만 들려오는 해안가에서 산은 울부짖고 있었다. 분 단위로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은 그것이 명실상부한 생물임을 증명했다.

 

 갑자기 그것의 꼬리 끝에서 파란빛이 점멸했다. 천천히 암초 같은 등갑을 따라 퍼져나가던 빛이 이윽고 입에 모여들었을 때, 그것은 포효했다.

 

 푸른 광선이 노을에 물든 하늘을 수놓았다. 수백에 달하는 연결체들이 붉은 철로 변해가고, 바다로 떨어지며 증기를 만들어냈다. 익스큐셔너를 모두 녹여버린 그것은 만족한 듯 콧김을 한번 내뿜고서 바다로 돌아갔다.

 

 두려운 광경이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저것이 언제든 나타나 전초기지를, 오르카 호를 간단히 침몰시킬 수 있었으나 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느낀 감정은 공포도, 적개심도 아니었다.

 

#

 

 컴컴한 방을 비추는 스크린이 파란 색으로 물들고, 어두워지고, 다시 물든다. 모니터 앞에는 플라이어를 머리에 꽂은 소녀가 퀭한 눈으로 커피를 연거푸 들이키고 있었다. 마우스를 딸각거리며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하면 재생할수록 닥터의 수심은 깊어져만 갔다.

 

“오빠?”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커피를 들고서 닥터의 옆에 앉는다. 커피를 받아든 닥터는 냄새만으로 그것이 아우로라 특제 카페인 강화 커피임을 알아차렸다.

 

 닥터에게 커피를 주기 전에 한 모금 맛본 사령관은 혀를 내둘렀다. 고소한 향은 전혀 없고 한약을 담아놓은 듯 역겨운 쓴맛과 신맛만이 올라왔다.

 

“이런걸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네.”

 

“나라고 좋아서 먹는 줄 알아? 애초에 지금 밤새고 있는게 누구 때문인데? 일정대로였으면 지금 즈음 잠이나 자고 있었겠지.”

 

 닥터의 독설이 사령관의 양심을 사정없이 찔렀다. 모두가 바빴던 저번 한 달이었다지만 닥터에게 할당된 업무는 유독 많았다. 펙스와 철충의 정보 감청 및 분석과 공습 방어 작전 실행안 수립 외에도 그녀가 평소에 진행하는 수많은 프로젝트까지. 살인적인 업무량을 모두 소화해낸 그녀는 간신히 일주일 휴가를 받아냈지만 예의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알아낸 건 좀 있어?”

 

“저런건 말도 안된다는 걸 알았지.”

 

“무슨 소리야?”

 

“문제 하나 내볼게. 지구 환경에서 탄소 기반 생물이 커질 수 있는 최대 크기는?”

 

 사령관은 군사면으로는 전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 외의 상식은 기초적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의 생물을 말했다.

 

“음... 대왕 고래 정도?”

 

“맞췄어. 그 이상 커지면 순환계가 감당을 못해. 그럼 두 번째. 만약 저 정도 크기의 생물이 존재한다면 필요 칼로리는 어디서 구할까?”

 

“고래처럼 크릴 새우라도 먹는거 아니야?”

 

“바보, 저 이빨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상어는 고사하고, 고래를 뜯어먹어도 모자랄판에?”

 

“그럼 어떻게 하는데?”

 

“정답은 방사선이었습니다! 내장 기관에서 새로운 종류의 방사선이 검출되었어. 아무래도 지구 내부 에너지를 전신으로 섭취하며 살아가는 모양이야.”

 

 황당한 소리였다. 사령관이 아무리 식견이 짧다고 해도 방사선을 직접적으로 섭취하며 살아가는 대형 생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이를 지적하려 했지만, 곧 명백한 사례가 있음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진짜 저건 다 틀려먹었어! 방사선을 먹고 그걸 고열의 플라즈마로 변환시켜서 공격한다고? 저렇게 큰 생물이 심해의 초중압을 버틸 수 있다고? 페름기 대멸종 이전부터 계속 살아있었다고! 저런게 왜 존재하는데? 저건 신종新宗으로 분류할 수준이 아니야! 그냥 학문을 새로 만들어야지!”

 

 당황한 사령관을 앞에 두고 닥터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대략 석탄기부터 살아온 주제에 파충류의 형상을 하고 있다느니. 저렇게 거대한 주제에 단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다더니. 왜 인간을 제외한 생물은 신경도 안 쓰던 철충이 저걸 적대하는지. 닥터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점을 말하며 화내고 있었지만, 사령관은 아까 닥터가 말한 단어에 집중했다.

 

“신종이라...”

 

“응?”

 

 묵묵히 듣고 있던 사령관이 입을 열자 닥터가 의아한 듯 말을 멈췄다.

 

“아니, 계속 이것이니 저것이니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이름을 정해줘야겠어서.”

 

“괜찮은 생각이 있나보네?”

 

“응. 신종神宗 어때? 신화에 나오는 레비아탄 같잖아.”

 

“윽, 진짜 별로다. 요리 대회 때부터 느꼈지만 오빠는 진짜 이름 못지는다니까. 나같으면 차라리 고질라godzilla 라고 할래.”

 

“괜찮은데? 아예 종명을 티타누스titanus로 짓자. 어차피 기존 생물학에 대입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잖아. 그냥 우리 마음대로 해버리자고.”

 

“티타누스 고질라라... 적어도 이름은 정해졌네.”



지름작 아님. 플롯 다 짜놨음. 휴재는 있어도 연중은 없을듯. 이번에는 꼭 완결 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