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낮은 어둡다.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해구를 밝히는 것은 때때로 솟구치는 마그마와 발광 생물의 빛뿐 이다. 빛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미약한 광량은 이곳 심해이기에 의미가 있다. 어둠은 잔불이라도 갈망하니까. 하지만 오늘의 마리아나 해구는 표층과 비견될 정도로 밝았다.

 

 오랜만에 깨어난 그는 은은한 빛을 발하며 온기를 쐬고 있었다. 어떤 곳이라도 지구는 항상 그가 있는 장소에 온기를 비춰주었지만, 오늘같이 힘을 쓴 날에는 이렇게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을 쬐는게 좋았다.

 

‘시끄러워.’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고립된 곳에 있으면서도 그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쇳덩이들이 지표를 갉아먹으며 제 동족을 늘리는 소리. 고래들이 거대한 무언가를 피하며 다급하게 내뱉은 초음파. 인간들이 지구 밖에 띄운 것이 나를 찾으려 사방으로 쏘아대는 빛. 그리고 마지막 인간이 자신에게 붙여준 이름.

 

 그는-고질라는 많은 시대에서 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레비아탄. 베헤모스. 보크루그. 셀 수도 없을만큼 다양한 이름들이 있었으나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대중적인 이름은 고질라였다. 그를 고질라라고 부르는 자들은 방법의 차이는 있었으나 모두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고질라는 그에게 집을 선사해준 이들과, 그 집을 부순 친구를 기억했다. 보금자리와 추종자를 둘 다 잃은 분노로 그는 싸웠고 승리했다. 그러나 그 일을 잊지 않은 것은 오직 고질라 하나 뿐이었다.

 

 잠에 들면서도 모든 것을 감지했던 고질라에게 지금의 소리는 몹시 불쾌했다. 그를 평안하게 하는 동족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타이탄들이 잠들었다면 숨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세상에는 오직 그와 적만이 남았다.

 

‘나방. 친구여. 살아 있었나?’

 

 불쾌함을 참던 고질라에게 어딘가 익숙한 것이 들려왔다. 발톱과 외골격이 달각대고, 날개가 펄럭이며 인분을 흩뿌렸다. 그는 희망에 차 다시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기분만 상할 뿐이었다.

 

 소리의 진원은 시체였다. 그녀가 윤회를 포기할 때 남은 것이었다. 가루로 바스러져 알로 돌아갔을 시체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주 천천히 썩어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 모스라의 유산은 인간의 노예와 철로 만들어진 것들에게 휘말려 훼손되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다. 복수. 기억하게 해주마.’

 

#

 

“닥터, 시간 없거든?! 곧 있으면 철충이 몰려올 수도 있거든?”

 

“아. 알겠어. 일단 날개부터 샘플 채취 시작할게.”

 

“관절부 해체는 제가 돕죠. 이렇게 거대한 생물이라면 배워갈게 많을거에요.”

 

 괴수의 장대한 위용에 빠져있던 닥터를 깨운 것은 포츈의 기계 팔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위용이 넘치는 날개는 잠든 것처럼 고요히 나풀거렸다.

 

‘이런 것, 이런 장소가 세상에 있었다고? 왜 아무도 몰랐지? 우리는 그렇다 치고 에이다는 알고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해체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닥터는 의아했다. 에이다는 먼저 나서서 정보를 제공해주지는 않지만 요청만 한다면 관련 정보를 빠짐없이 전해준다. 그리고 이 해골섬 부근은 몇 번이나 위성 정찰을 행한데다가, 섬 전체가 천둥 번개를 동반한 거대한 태풍으로 뒤덮여 찾고 싶지 않아도 찾을 수 밖에 없는 장소였다. 하지만 고질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무도 태풍을, 해골섬을, 모스라를 찾지 못했다.

 

 관련된 기록도 첫 조우 이후로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닥터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큰 공포를 느낀 것은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아 공채그로 써먹던 책에 갑자기 내용이 나타났을 때였다. 겁에 질린 닥터는 한동안 사령관의 옆에서 잠들었다.

 

‘전 지구급 인식 저해? AGS와 기록마저 수정할 수 있다고?’

 

 첩보 기관의 일원답게 교묘한 언론 조작과 해킹으로 원하는 정보를 도시전설로 취급받게 하는 것도 가능한 닥터도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스탈린의 기록말살형도 공식적으로 없었던 취급 사람 받을 뿐이었지 모두가 쉬쉬하며 알고 있었다.

 

‘흠, 멸망 전의 인간님이라면 나 같은 바이오로이드나 오빠 같은 강화 인간이 특정 사건 전까지 정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건 간단했겠지. 민간 정보 통제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고.’

 

 타이탄으로 날개를 적당한 크기로 조각내며, 닥터는 지구급으로 이루어진 인식 저해에 대해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

 전투 시작 일주일, 철충과 저항군은 지루함에 몸서리쳤다. 섬을 뒤덮은 폭풍은 양측에게 공평하게 작용했다. 해수를 머금은 비바람은 철충의 적극적인 활동과 추가 병력 투입을 불가능하게 했고, 쉴새 없이 울리는 천둥 번개와 구름은 통신을 방해했다.

 

“이제 이것도 끝이네.”

 

“레아 양이 큰 일을 해주었습니다, 각하.”

 

“요구사항 들어온 건 없었어?”

 

“딸이 필요하지 않냐는 말을 하긴 했는데, 동침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일까요?”

 

“오...”

 

 사령관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진다. 레아의 특이한 성벽-유아 퇴행-은 오직 사령관과 레아 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레아도 유아퇴행 플레이 후에는 상당히 심적으로 부담이 큰지 자제했지만, 펜리르가 합류한 이후부터 점점 빈도가 증가했다.

 

‘펜리르가 놀리는 것도 있겠지만, 레아 스스로의 자격지심도 크겠지.’

 

“며칠 후에 한 일주일 정도 시간 비워야 될거야. 아르망하고 콘스탄챠한테 인수인계 해둘테니까 급한 일 없으면 부르지 마.”

 

“알겠습니다. 아, 시작한 모양이군요.”

 

 미래에 닥쳐올 재앙보단 눈앞에 펼쳐진 전장이 더 중요하다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HMD를 쓴 사령관이 본 것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

 

 100년 전, 카마조츠가 끌고 온 기도라의 폭풍은 해골섬의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했다. 해골섬의 지배자이자 유인원의 왕 콩조차도 그 태풍 안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고, 고질라의 허락 아래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할로우 어스의 생명력은 강인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길은 두가지였다. 피하거나, 저항하거나. 지하로 도망친 것들은 저항하는 것들을 갉아먹었다. 바람에 맞서 마주 선 것들은 덫을 놓아 도망친 것들을 사로잡았다.

 

 극한의 환경과 강인한 생명력이 합쳐진 결과는 전례가 없을 정도의 종 다양성이었다. 어미와 자식이 확연히 구분되는 그들은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극도로 배타적이었다.

 

 바람을 타고 유입뒨 한 쌍의 알바트로스조차도 위협이 될 정도의 얄팍한 생태계. 침입자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태도는 철충과 저항군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뱀. 무슨 소리 안들리십니까? 왠지 땅이 울리는-”

 

“브라우니?”

 

 순식간에 대검을 뽑으며 뒤를 돌아본 이프리트는 경악했다. 지하에서 솟아난 벌레가 브라우니의 사지를 묶어 천천히 지하로 끌고 갔다. 간신히 몸을 버둥거리는 브라우니를 거대한 아가리로 밀어 넣는 모습은 역동적인 에로함이 넘쳤다.

 

“브라우니!”

 

 충격적인 모습에 지배당할 뻔한 이프리트는 간신히 브라우니에게 달려들었다. 자르고, 끊고, 휘감겨오는 촉수를 쳐내고, 역겹게 우물거리는 이빨을 밟아 부러트렸다. 날이 부러지고 나서야 브라우니를 구해낼 수 있었던 이프리트는, 곧 그들의 주위로 수십 개의 진동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

 

 줄기가 뻗어 나간다. 거꾸로 매달린 그녀의 살갗에 파고든다. 탐닉하듯 피를 들이키며 뇌를 향해 나아간다. 침식이 진행될수록 고통에 찬 비명과 몸부림은 늘어만 간다.

 

 척추를 타고 올라가던 가지는 바느질 하듯 목에서 잠시 빠져나와 연수로 꿰어들어갔다. 끄익, 깍. 꾹. 기묘한 울음소리가 체액과 뒤섞여 빠져나온다.

 

 모든 것을 토해낸 레프리콘의 눈은 공허했다. 가지가 뇌를 헤집어도 그저 꿈틀거릴 뿐 극적인 반응은 보여주지 않는다. 늘어나는 촉수가 뇌를 가득 매울 무렵, 그녀는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총을 쥐고 기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아기처럼 따로 놀던 팔다리는 반복되는 걸음 속에서 점차 나아진다. 어느덧 어엿한 군인의 걸음으로 돌아온 레프리콘은 레드후드와 마주쳤다.

 

“병사! 다른 부대원은 어떻게 된 건가? 설마 혼자 도망친 것은 아니겠지?”

 

 레프리콘의 발이 멈춘다. 공허한 눈이 레드후드를 훑는다. 후덥지근한 정글이지만 레드후드의 등고리 오싹해진다.

 

“당장 전장으로 돌아가라. 명령이다. 젠장, 레프리콘!”

 

 총구가 빛을 발했다.



오늘은 조금 분량이 짧습니다.... 죄송합니다...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