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이드와 철충이 줄 맞춰 걸어온다. 흐트러지지 않고 걸어오는 그들은 불과 2시간 전 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서로를 적대하던 이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은 사령관에게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걸어오는 방향이 문제였다. 그들은 양측의 기지를 향했다.

 

“셀주크 부대는 기지로 다가오는 모든 것을 포격해라!”

 

 사령관은 마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위대한 화합의 장이 열린 곳에 포격하라니. 아무리 마리가 과격파라지만 이건 도를 넘은게 아닌가? 그의 눈에 마리는 증오에 미쳐 양 종족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불사르려 하고 있었다.

 

 총구가 화염을 뿜는다. 그들은 문을 열고 이야기 하자는 듯 참호의 벽을 두드렸다. 인사 한 번에 흙이 튀고, 사람이 쓰러지고, 고함이 난무하며, 상대가 사라진다.

 

“각하, 마음을 다잡으셔야합니다. 저들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제 명령만으로는 적극적 대응이 불가능합니다. 당장 명령을!”

 

 사령관은 자기가 아는 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기괴하고 두려운 광경에 마리와 사령관 모두 정신을 잃었다. 더 위험한 쪽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미친 자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하는 미친 자였다. 정상적인 상태의 사령관이라면 당연히 마리를 만류하며 방법을 찾아냈겠지만, 텅 비어버린 사령관은 자신을 마리로 채워넣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포격 개시!”

 

 포탄이 피리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땅에 떨어진 그들은 화염의 꽃을 피워낸다. 생명이 탄생할 때의 에너지는 폭력적일 정도로 거대하다. 한 번 피어난 꽃은 수십의 생명을 앗아간다. 짧은 생을 마친 탄약은 지상에 상흔을 남기고서 사라진다.

 

 폭발의 열과 소리, 충격파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덮쳐들었다. 귀가 먹고 눈이 멀면서도 그들은 방아쇠를 당겼다. 한쪽은 볼 수 없고, 한쪽은 보지 않는다. 생존에 눈먼 자들과 대화를 열망하는 자들은 서로에게 가장 거대한 것을 바라면서도 내어주지 않으려 했다.

 

“적이... 물러났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리와 사령관은 문득 자신들이 허공에 포탄을 쏘고 있음을 깨달았다. 파손된 부위가 없는 철충도, 피탄 범위 안에 없던 바이오로이드도 모두 쓰러졌다. 드론이 보내준 영상에서는 말단 부위에 삽입되어있던 뿌리와 촉수가 모두 사라졌다.

 

 태풍에 적응하며 살아왔던 해골섬의 생물들은 태풍이 사라지자 모두 죽거나, 아직 태풍이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도망갔다. 사령관은 진상을 알지 못했지만 지금이 후퇴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후퇴! 전군 오르카 호로 후퇴한다! 닥터, 표본 채집은?”

 

“진작에 완료했어 오빠. 복귀하면 보고서 작성할게.”

 

“먼저 돌아가있어. 난 조금 있따가 마리랑 같이 갈게.”

 

“알았어. 조심히 와,”

 

 겨우 상황이 종료되고, 지휘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죄책감은 살아 있는 인원을 수습한 후 느껴도 늦지 않다. 죽은 자들이 느낄 모욕감은 산 자가 처한 위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용 참모총장이 수송선을 보냈다고 합니다. 도착할 때까지 3시간 정도 남았으니 최대한 빠르게 잔존병력을 파악 후 해안에서 대기하는 것이 어떨까요?.”

 

“응, 그렇게 하자. 철충도 섬에서 물러난 것 같으니까. 우리 애들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은 줘야겠지.”

 

 전투의 양상이 급변했고, 뿌리로 몸을 수복하며 걸어오는 특성상 한 명의 침식자를 침묵시키기 위해 꽤 많은 양의 총알과 포탄이 소모되었기 때문에, 희생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 오르카 호는 수많은 시체를 받아들여야 했다. 저항군은 무사히 후퇴하지 못했다.

 

#

 

 섬을 가로지른 고질라는 조용히 아래를 바라보았다. 죽은 친구의 시체를 훼손한 인간들이 놀란 듯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그 무리에 인간은 한 명이었지만, 인간이 개미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고질라도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에게 인간이란 벌레와 마찬가지였다.

 

‘복수.’

 

 그가 토해내는 분노는 항상 꼬리 끝부터 시작했다. 주변의 입자가 진동하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고질라는 등을 타고 올라와 입에 도착한 분노를 터지기 직전까지 응축시켰다. 임계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모이자 그는 여지없이 그것을 방출했다.

 

 불길이 대기를 달구고 모래를 유리로 만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살갗이 증발했다, 바이오로이드의 금속 뼈대는 열에 의해 뒤틀려 해변을 수놓았다. 그것은 지구를 대변하지 않았다. 명백히 감정이 개입된 복수. 고질라의 방식이었다.

 

“이게 무슨-” 

 

 임펫 원사는 한마디 단말마로 생을 마감했다. 거대한 발에 짓밟힌 그녀는 하치코의 미트 파이와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고질라가 발을 들어올리자 파이 반죽으로 변한 임펫의 혈액이 찐득하게 묻어나왔다.

 

 그는 섬세한 살육을 시작했다. 브라우니를 집어 삼키고, 레프리콘을 꼬리로 쳐내고, 필사적으로 자신을 저지하려는 피닉스를 입김으로 바닥으로 떨구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레드후드는 철충이 증발하듯 사라진 이유를 깨달았다. 고질라가 걸어온 방향을 생각하면, 그들은 궤멸당한 것이었다.

 

 마리는 몸서리쳤다. 죽음의 위기보다도 사령관이 없어진 오르카 호의 미래가 더 두려웠다. 오합지졸의 군대를 다시 이끌 수는 없었다. 무한한 철충의 군세를 상대하며 천천히 말라 비틀어지는 것보다 지금 죽는 편이 나았다.

 

 손가락과 발을 움직인다. 호흡이 천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경직된 자세를 유지하니 팔다리가 저렸다. 죽음의 감각이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하던 마리는 이상함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들려야 할 혈류 소리가 없었다. 오직 바람 소리만이 들렸다.

 

 눈을 뜨자 들어온 것은 푸른 빛이었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밝은 빛에는 명백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고질라가 내뿜는 바람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간신히 눈만을 움직인 마리는 사령관도 자신과 똑같은 상태임을 알아차리고서 미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고질라는 몸을 일으켰다. 마리와 사령관만 남은 해변을 내려보던 고질라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듯 포효하며 발을 굴렀다. 간헐적으로 토해내는 방사열선이 공기를 가열하는 소리는 둘을 미치게 하는데 충분했다. 포효 한 번에 하늘이 갈라지고 발버둥 한 번에 지진이 일어났다. 모든 동작이 천재지변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고질라는 절대 사령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넘어질 것 같으면 두꺼운 다리로 지지했고, 방사열선은 항상 사령관을 아슬아슬하게 빗맞추었다. 한 생명이 토해내는 천재지변 속에서, 사령관은 고질라가 자신을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일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재앙은 용이 보낸 수송선이 도착하며 끝났다. 네레이드는 공포에 질려 굳은 마리와 사령관을 들쳐메고 배에 올랐다. 멀어지는 함대를 보며, 고질라는 마지막으로 포효했다.

 

#

 

 사령관은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대원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강인한 연기를 할 필요가 있었던 그는 오르카 호로 복귀하자마자 바로 사후 처리에 돌입했다. 침대 위의 폭군, 좋은 남편, 불패의 지휘자, 만인의 연인. 그가 뒤집어쓴 페르소나는 오르카 호의 대원 수와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연기에 능하다고 해도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는 어쩔 수 없다. 깊은 바다를 바라보면 고질라가 나타났다. 흉흉한 푸른 빛을 등에 두른 채 육중한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헤엄치는 고질라는 어딜 가든 사령관을 따라왔다.

 

“사령관?”

 

 고개를 돌리자 무적의 용이 사령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니 몇 번이고 사령관을 부른 듯 하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령관은 살짝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미안, 닥터가 보낸 보고서에 흥미로운 점이 있었거든.”

 

 용은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모스라의 인분을 통한 광학적 최면 가능성. 저자 닥터’. 사령관은 용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왜?”

 

“괜찮으신거 맞소?”

 

“당연하지. 지금도 고질라를 이용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들이 막 떠오르는걸?”

 

“이상하오.”

 

“뭐가?”

 

“그대에게서 패배한 장수가 가지는 분노가 느껴지지 않소. 어떻게 된거요?”

 

 사령관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의자를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무적의 용을 향해 고질라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애써 치밀어오르는 공포를 억누르며 말했다.

 

“용, 만약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덮쳐 함대가 전멸했다고 생각해봐. 너는 어떻게 할거야?”

 

“원인을 파악한 후에 대책을 세우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소.”

 

“거기에 분노가 있어? 너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바람과 바다에 대해 화낼 수 있어?”

 

“그건... 불가능하오.”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한 느낌이야.”

 

“고질라가 산이나 바다, 하늘과 동류의 것이라는 말이오?”

 

 사령관은 옆을 보지 않고 술병과 잔을 집어들었다. 용은 말리려 했지만 사령관의 손목은 부드럽게 용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호박색 액체가 차오른 잔을 턱 밑에서 빙빙 돌리며 향을 즐기던 사령관은 입술을 조금 적셨다.

 

“있지, 용. 난 고질라가 불쌍해.”

 

“무슨 말씀이오?”

 

“그 녀석, 날 살려둔게 아니야. 살릴 수 밖에 없었던거지.”

 

 창 밖의 고질라가 입을 벌린다. 거대한 혀, 이빨, 목구멍이 차례로 그의 곁을 지난다. 상상 속의 고질라는 그대로 오르카 호를 통과했다.

 

“산이 자기 몸 위에 있는 나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뽑아버릴 수는 없지. 산사태가 일어나면 몇 그루는 뽑혀나갈지언정 더 큰 피해를 입는 건 산이야. 난 고질라에게서 산을 보았어.

 

 놈을 증오하지마. 지구가 선택한 왕이자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휘두르지만 가장 무거운 족쇄에 묶여있는 존재야.”

 

#

 

 고질라는 분노로 달아오른 몸을 바다에 맡겼다. 스쳐 지나가는 해류가 그의 머리를 식혔다.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을 모조리 멸절시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인간 한 쌍을 죽였다가는 종족에 미래는 없었다. 철로 만들어진 것들의 위협만으로도 위태로운 그들에게 미래를 박탈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고질라의 잘못은 없었다. 그는 타이탄의 왕이었고, 마땅히 균형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동족들의 잔향은 고질라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물속에서 퍼져나간 충격파로 근처의 물고기들이 기절했다. 여기서 더 난동을 부렸다가는 근처 생태계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고질라는 이 상황에서도 균형을 걱정하는 스스로에게 더욱 분노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라고 이 짐을 짊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떠넘긴 것이다! 만약 그날, 그날 너희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이여, 너는 우리에게 잘못을 돌리는가. 정녕 그날 우리가 내린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그래! 만약 유인원들의 왕이, 여왕이, 불의 악마가 죽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죽지 않았다. 누구보다 네가 잘 알지 않는가?

 

‘닥쳐라! 내가 아는 너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유인원의 왕은 인간을 보호하다 죽었고, 불의 악마는 자신을 불사르면서까지 적을 섬멸했다. 여왕은 그들의 귀환을 막기 위해 윤회를 포기하고 기억을 지웠다. 너희는 그저 그들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뿐이다!’

 

 잔향은 입을 닫았다. 고질라는 그 사실에 만족하려 했으나 강력한 전파가 그의 신경계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최대한 버티려고 해도 눈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눈을 뜬 고질라는 심해에 있지 않았다.



전 편이 5000자가 안넘어서 이번화는 꽉꽉 눌러담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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