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36185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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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arca.live/b/lastorigin/29837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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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지옥?"


"...함정 겸 실험실이었군. 그것도 엄청나게 큰."


모두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을때, 칸이 가장 먼저 정신줄을 부여잡고서는 메이를 겨눈 총을 다시 꽉잡았다.


"방금 마키나...라고 했나? 그 자가 이 짓을 벌인건가? 당신도 그 편은 아니겠지?"


"망상이 너무 심한거 아냐? 나도 3개월전에 이곳에 갇혔다고."


"당신 혼자? 핵무기도 다루는 당신이, 그것도 혼자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내가 미끼가 될 수밖에 없었지."


"임무?"


"...'최대한 많은 인원을 이곳에서 탈출시키는 작전'."


"...여기선 얼마나 지낸거지?"


"대략 3개월."


"다른 정보는?"


"무지하게 많지."


"심판의 옥좌는?"


"마키나가 압수해갔어. 난 그때 탈출해서 여기 지하에 숨어있는 거고."


"..."


칸은 더이상의 의심은 필요없다는듯 총을 내렸고, 남은 호드 대원들 또한 그녀를 따랐다.


"...나 궁금한거 있는데."


워울프가 동료들과 메이를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고, 메이도 물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어?"


"...모르겠어."


"여기 3개월 동안 있었다며, 그런 방법도 없는거야?"


"말 조심해. 넌 여기 20년 있어도 지형파악조차 불가능할테니까."


"지형파악? 그래, 그건 이미 했나봐?"


워울프는 메이가 깔보는 것 때문에 약간 발끈하며 되물었지만, 메이는 냉정했다.


"당연하지. 따라와."


메이는 검은 복도 깊숙히로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맥스 일행도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지않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지하세계는 꽤나 시설이 좋았다. 간단한 의식주가 가능했고, 당연히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시설이 꽤 좋군."


"진짜 건물들 중에서 운이 좋게도 지하에 샤워실이랑 식당이 있었거든. 그리고... 여깄네. 지도."


맥스 일행은 처음 지도를 봤고, 당연히 이를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지도라고?"


"그럼. 믿기지는 않겠지만."


"거짓말! 우리가 왔을때는 교량도 있었고, 곡선도로도 있었다고!"


직선과 사각형으로 쭉쭉 이어진, 마치 계획도시같은 실험실에 퀵 카멜이 믿을 수 없다는듯 강사게 지도를 두들기며 반문하였다. 이번에도 메이의 대답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거길 직접 봤어? 손으로 만져보고 느껴봤냐고."


"..."


"정신차려. 여긴 홀로그램을 사용하는 실험실이라고. 여기 오기 전에 절전상태로 오류난 도시의 모습도 확인하지 않았나?"


"..."


"그래, 여기선 믿을게 메이밖에 없어."


맥스의 상황정리가 끝나자, 칸의 질문이 이어젔다.


"그럼, T자가 새겨진 블럭은 진짜 건물들이 있는 블럭, F자가 새겨진 블럭은 홀로그램이라는 건가?"


"그렇지."


"그럼 저 파란색 사각형은? 그리고 빨간색 원은?"


"빨간색은 현재 우리 위치, 그리고 파란색은... 저기가 바로 우리가 탈출할 수 있는 핵심이야. 메인서버지."


"메인서버?"


저곳에서는 모은 지형 데이터와 마키나가 설정한 프로그램을 혼합해 원하는 지형과 건물을 홀로그램으로 띄울 수 있게 3D 프로젝터로 정보와 명령어를 보내."


"흐음... 그럼 저 메인서버를 부순 후에는, 마키나를 찾아가 이 실험실의 출입문을 열라고 하면 되는거지?"


"원숭이보다 머리는 좋네, 인간?"


"그럼 당장 나가자구요. 서버 해체는 제게 맡겨주세요."


"나도 단독행동은 힘들어서 지금까지 여기에 갇힐 사람들을 기다렸는데, 마침 꽤나 좋은 전투 인력이 들어와서 마음에 드네."


"...그럼, 지금 당장 부수러 갈까?"


.

.

.


다시 처음 그들이 만났던 곳, 지하에서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밟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 맥스 일행들은 시동을 걸었고, 우렁찬 배기음은 그들의 자신감을 드높였다. 메이와 페더, 이터니티와 드라큐리나는 혹시라도 몰라 본진에서 남아 무전을 통해 그들을 지휘하기로 하였다.


"메인 서버는 여기서 800미터 직진, 우회전하고서 200미터를 직진하면 보이는 가로세로높이 10미터 크기의 큐브야. 그걸 파괴하면, 홀로그램 장치들이 전부 먹통이 될테니, 빨리 나가고 싶으면 큐브를 얼른 작살내버려."


"우리가 누구야, 세계에서 가장 빠른 부대라고!"


"워울프, 너무 자만하는 것도 큰 문제니까 이번엔 내 말만 잘 따라와."


"쳇, 당신같은 땅꼬마 말은 누가 들어?"


"뭐, 마음대로해. 난 세계 3차대전을 막은 몸인데, 안따라오면 너만 힘들어진다고?"


"알았어 알았어. 나 참..."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맥스를 앞세워 기차처럼 차량들을 한줄로 묶고서는 그들은 메이의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드르륵!'


맥스를 비롯한 모두의 기어봉이 바쁘게 움직이고, 그들은 마침내 콘크리트 더미를 밟고서 또다시 도심 내부로 들어갔다.


"이번 작전의 총 명령권은 내가, 긴급 현장명령권은 각각 브라우니, 칸이 나누어 가진다. 페더, 무인드론."


"알겠습니다!"


페더의 무인드론까지 빠르게 지상으로 빠져나왔고, 디스플레이에선 그들의 위치가 탑시점에서 나타났다. 역시나 디스플레이 오른쪽엔 검은 외벽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큐브가 보였으며, 퀵카멜이 서버를 폭파시키기 위해 자신의 포를 그곳으로 조준했다. 역시나 그곳을 지키기 위하여 AGS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고, 모두들 퀵 카멜을 지키기 위하여 줄을 길게 늘여서는 호드의 픽업트럭을 감싸 그녀들을 보호했다.


'타타타타타탕!'


차량 전체가 방탄이긴 했지만, 워락 벽면으로 부딪혀오는 총알이 워낙 성가신 그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대형을 흐뜨리지는 않았고, 덕분에 퀵 카멜은 천천히 자신의 포를 큐브에 노렸다.


"발사!"


'투웅!'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빠른 속도로 포탄이 허공을 갈랐고, 그녀가 쏜 포탄은 큐브 한 면의 정중앙을 완벽하게 맞췄다.


"...? 뭐야?"


하지만, 포탄을 맞춘 후에 퀵 카멜을 포함한 모두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홀로그램 세계의 하늘이 더 푸르러진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서 발생한 의문은 전파를 타고 이를 지켜보던 메이 쪽에게까지 이어졌다.


"...? 뭐죠? 홀로그램이 사라지지 않는데요?"


"......!"


순간, 화면 구석에서 뭔가 변화를 확인한 메이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화면 돌려."


맥스 일행을 보여주던 드론이 이제 도시 반대쪽을 바라봤고, 그곳에는 


3개의 또 다른 큐브가 위치하고 있었다.


"...함정이다. 저 셋이 진짜 서버야!"


"뭐라고? 그럼 지금 당장-"


'쿠웅-!'


순간, 그들이 밟고 있던 땅이 흔들리는 것이 맥스 일행에게 느껴졌고, 아무도 엑셀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였지만, 큐브에게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블럭들이 뒤죽박죽 섞여갔다. 그들이 아닌, 도시 전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도시 뿐만 아니라 건물의 형태도 변하며 모두를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단 한명만 빼고 말이다.


"우욱!"


"맥스! 나랑 자리 바꿔, 당장!"


"칸?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거야?"


"바꾸라면 얼른 바꿔! 여기서 죽는것보다는 나을거 아냐!"


칸은 빠르게 변화하는 지형에도 불구하고 맥스의 차량에게 성큼거리며 달려나갔다.


사실 칸은 이런 상황이 매우 익숙했다. 먼 옛날, 작전을 위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이동하다 보면 방향감각을 상실할 정도가 되는데, 그때부터 특정방향으로 이동하게 되어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를 '코리올리 효과'라고 한다.


한때 케시크였던 칸은 이런 코리올리 효과로 인해 많은 골머리를 앓았고, 그때문에 피나는 노력으로 결국엔 사하라 사막을 지도와 나침반 없이 계속 직진하여 횡단하는 괴력을 선보이고, 덕분에 칸이라는 명칭은 얻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칸에게 이번 난이도는 그때보다는 훨씬 쉬웠다. 특정 랜드마크를 기억할 수 있게 건물들이 즐비했고, 정확히 자신들이 빠져나왔던 건물을 암기한 칸은 곧장 차량들의 우두머리에 앉고서는 맥스가 호드쪽 트럭에 오르자마자 바퀴를 굴려 빠르게 복귀하기 시작했다.


건물 블럭이 치이면 죽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들 사이를 지나갔고, 뒷쪽에서는 일그러진 세계에서 느껴지는 멀미로 고통받는 구역질 소리가 즐비했지만, 그것은 칸에게 방해조차 되질 못했다.


회전하고 변화하는 길 속에서 칸의 초점은 흐려지지 않았고, 핸들을 마구 꺾으며 결과적으로는 직진에 성공했으며, 원래 있던 건물 입구 앞까지 도착할 순 있었지만, 그 후는 좋지가 않았다.


차량은 기차처럼 쭈욱 늘어져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차량의 길이가 훨씬 더 길다는 뜻이고, 칸은 급한 마음에 무작정 달리다 이를 까먹어버렸고, 결국에는 변화하는 블럭의 건문 하나가 맨 마지막 차량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그들은 빙빙 돌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콰앙!'


'끼이이이익!'


""으아아아악!""


건물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다행히 지하로 들어오긴 했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듯 얼굴을 빙빙 돌리며 정신을 못차리는 맥스 일행이었다.


마치 장난감 기차가 옆으로 누운듯한 처참한 모습에서 하나둘씩 윗쪽 차문을 열고 기어나오는 것을 본 메이는 잠시 멘붕상태가 왔다.


"마, 말도 안돼... 내, 내가 함정에 빠졌다고?"


"대장님! 대장님, 괜찮으세요?!"


"ㄴ, 난 괜찮으니까 다른 사람들 상태부터 확인해봐라, 페더!"


페더와 칸이 차량 밖으로 함께 나와, 뒷편의 나머지 사람들을 확인해봤다.


다들 괜찮은듯 몸을 훌훌 털며 빠져나왔지만, 칸은 아직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파악했고, 그게 맥스와 자신의 부대원들이라는 걸 알아챌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았다.


칸은 자신이 처음 타고 있었던 차량에 문을 활짝 열었다.


"아우... 대가리 깨질 뻔했네."


"워울프, 괜찮은가?"


"이야... 그 전설의 투팍(2PAC)도 안전벨트를 매는 이유가 있었네. 난 괜찮아."


"다른 애들은?"


"다들 괜찮-"


워울프는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자신의 손에는 붉은 피가 묻어있었고, 그 출처를 따라가자 빨간 손바닥 자국이 이마를 가득 매꾼 맥스가 잠든 표정을 볼 수 있었고, 그 손자국 한 가운데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맥스!""


.

.

.


"가볍게 찢어진 거에요. 치료는 다 했고, 단순한 어지럼증 때문에 기절하신 것이니, 조금 있으면 깨어나실 거에요."


의무병 다프네의 치료와 처방내역을 다 듣고서야 모두들 이마에서 땀을 쓸어내렸다. 맥스를 평평한 곳에 눕혀놓고, 모두 그를 지켜보는 사이, 워울프는 트럭에서 맥주를 꺼내고선 한쪽에 웅크려서 앉아있는 메이에게 다가갔다.


"내가 함정에 빠졌어... 내가, 내가 함정에 빠졌어..."


"..."


메이의 자기비판을 계속해서 듣는 워울프는 미간이 잠시 일그러지더니, 코웃음을 쳤다.


"흥, 그 자신감은 어디 간거야?"


"..."


"옆에 앉아도 돼지? 읏차~"


자리에 주저앉은 워울프는 옆에 있던 콘크리트 더미에 가볍게 맥주병 입구부분을 쳤고, 뚜껑이 시원한 소리와 함께 떨어져나갔다.


'퐁!'


"...크으... 좀 시원하네. 한입 먹을래?"


메이의 고개가 소리없이 양 옆으로 흔들렸다.


"..."


워울프는 나팔을 불듯 맥주병을 높이 올려 한번더 꼴딱이며 누런 탄산주를 들이켰다.


"끄으윽~ ...그깟 실수한번 했다고 뭘 그리 다운되있어?" 


"...넌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구나?"


"뭘 할수 있는데?"


"...내가 버튼 한번 누르면 세상이 전부 석기시대로 돌아갈걸?"


"...석기시대엔 맥주랑 담배 있어?"


"...없어."


"그럼 하지마. 키킥!"


"...방금 모든 걸 잃을 뻔했어. 탈출할 기회도, 힘들게 얻은 전투 인력도, 모든 걸."


"뭐... 아직 안잃었잖아?"


"넌 그걸 말이라고-"


"그래서 잃었냐고."


"..."


"대장이 그랬어. 방법이 남아있는데 시도조차 안하는 자가 진정한 쓰레기이며, 패배자라고."


"...너, 날 쓰레기 취급하는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


"지금 꼬마 넌 쓰레기 달성률 99퍼센트야. 1퍼센트만 더 채우면 쓰레기가 될 수 있어."


"..."


"계속 그렇게 나자빠져서 우울감에 찌들어 병신마냥 자책이나 하다 여기 썩으면, 그때 진짜 쓰레기가 되는거야. 그러니까..."


"..."


"그러니까 나랑 술이나 한번 마시고 잊은 뒤에 개지리는 작전 하나 줘봐."


"...한 모금만."


워울프는 은근히 웃으며 등에 숨긴 맥주 한병을 꺼내 똑같이 뚜껑을 따고는 그걸 메이에게 건냈다.


"원샷 때려."


"알아서 할 거야."


메이는 그렇게 꼴딱거리며 한병을 전부 마셔버리고는 시원하게 유리병은 깼다.


'쨍그랑!'


"시원~하네!"


"..."


"그나저나 우리 대장 방금 지리지 않았냐? 남들 다 정신 못차릴때 갑자기달려나가더니... 후우! 진짜 내가 대장을 존경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다니까."


"..."


"우리도 그정도는 아니지만, 꽤 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죽을 수 있는 작전, 모두가 뒤질 수도 있는 짜릿한 작전이라도 하나 가져와봐."


"다죽어서 여기 나가면 무슨 상관이야."


"키키킥! 땅꼬마, 너 내 말 이해 못했구나?"


"..."


"우리 호드야. 쉽게 뒤질거 같아?"


"...!"


"백날천날 우리 죽일려고 작정해도 대장, 아니 내 밑도 못따라올걸? 우리가 대가리가 안좋지, 몸이 안좋냐고. 넌 머리가 좋잖아? 넌 머리로 개지리는 작전을, 우린 몸으로 개지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무서울게 뭐가 있냐고!"


"...!"


"그러니까, 선택해, 땅꼬마.


칼도 있으면서도 여기에서 썩을지, 당당하게 저년들을 찌르고 여길 나갈지. 쓰레기가 될지, '멸망'의 메이가 될지."


"...흥, 좋아. 3일 안으로 네 머리로는 따라오지 못하는 작전을 세워주지. 그러니까 너도 대답해. 할수 있어 없어?


노력해보겠다는 둥, 최선을 다하겠다는 둥, 대답같지도 않은 대답 내뱉으면 넌 그 작전에서 빠질 줄 알아."


"...ㅋ 당연히 해야지. 스릴느끼라고 인생 사는데 네 작전이 뭐가 무섭다고."


그날, 메이와 워울프는 서로의 손을 맡잡았고, 그 손은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가깝게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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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활약은 다음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