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철망으로 둘러쌓인 옥타곤이 있던 아레나의 중앙에는 거대한 성이 놓여있었다. 벽돌로 높이 쌓여진 성은 마치 중세의 유럽식 성을 일본의 한가운데에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제대로 만들어진 유럽식 성은 아닐 것이었다. 성의 외형도, 크기도 당대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만일 성을 제대로 만들었다면 이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아레나를 둘러싸고 성이 세워졌겠지.

 더욱이 진짜 성벽을 쌓는 돌도 아닐 것이었다. 아무리 이 세트를 만드는 것이 바이오로이드라 하더라도 저정도 높이의 성을 쌓는다면 바닥이 주저앉고 말았을 테니까. 그것은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세트장이었다.

 성형요새를 재현한다는 듯 별 모양으로 만들어진 성은 다윗의 별을 만들며 6개의 방향으로 날카롭게 뻗어 관객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물론 당연하지만 이것은 고증에 어긋나는 모습이었다. 당대에는 이러한 형태의 성형요새가 있지도 않았고 성형요새는 이러한 모습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할까. 이것은 실제 역사를 재현하려는 현장이 아닌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려는 것이었고 그 영화 역시 실제 역사를 재현한 영화가 아니었다. 덴세츠 사이언스의 영화나 드라마에는 고증이란 것은 없었다. 고증을 뺀 자리에 남은 것은 재미와 가학이었다. 닌자가 하늘을 날아다니건, 중세 기사가 화려한 LED로 장식된 갑옷을 입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성벽의 위에는 빼곡하게 중세식 판금 갑옷을 입은 군인들이 늘어서있었다. 그들은 손에 장창을 들기도 했고 누군가는 활을, 누군가는 칼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도 모두 같아보였지만 그들의 옷에는 조금씩의 차이가 있었다. 전혀 고증에 맞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모습이 다른 것에 소품에도 신경썼다고 좋아했다.

 성문에 위치한 나무로 된 도개교가 내려가자 말을 탄 기사가 나아왔다.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피부가 검은 기사의 이름은 요안나였다. 조금 전 말한 화려한 LED로 장식된 갑옷을 입은 그녀는 말을 몰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왔다.

 성문의 반대편에서는 한무리의 군인들이 걸어왔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군인들의 손에는 자신들의 소속을 알리려는 듯, 칼날이 휘어진 형태를 한 시미터를 쥐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말을 타고 다가오는 프레스터 요안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위협을 했지만 위엄있는 기사는 그들의 위협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바라보며 외쳤다.

 “아부 알 푸투!”

 요안나의 외침에 소리지르던 중동의 군인들은 그녀의 위압감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부 알 푸투. 그 유명한 바이바르스의 별명이었다. 정복의 아버지. 그러나 그 정복의 아버지는 요안나가 지키는 성 앞에서 그 별명을 잃으려 하고 있었다.

 “아부 알 푸투! 기사들의 성채는 그대들 앞에서 항복할 일은 절대로 없을 거요! 나 프레스터 요안나와 구호기사단의 모든 기사는 이 크라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만일 우리가 오늘 죽는 날이라면 우리가 죽을 곳은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일 거요!”

 관객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그 환호성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든 듯, 바이바르스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군인들을 위엄있게 가르며 나타났다. 손에 한 문서를 든 그는 프레스터 요안나에게 나아오며 외쳤다.

 “이것이 보이오? 안티오키아 공작의 명령서요. 아니, 안티오키아 공작이었던 보에몽 백작의 명령서요. 내 마지막 제안이 당신들이 이 성채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이 자리에는 당신들의 신의 영광따윈 없소. 나는 수많은 전쟁터를 다녔고 수많은 죽은 자들을 보아왔소. 그곳에는 당신들이 말하는 신은 없었소. 내게 대항한 모든 성과 모든 기사, 모든 귀족들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져 죽을 뿐이오!”

 바이바르스는 양손을 들어 자신의 신, 알라를 찬양한다는 듯 외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의 말에 환호성을 보내는 것은 자신의 군대 뿐이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가 사는 것은 신을 위해서고 우리가 죽는 것 역시 신을 위해서요! 지금 이 자리에 신이 내려와 우리에게 퇴각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누구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을 것이외다! 죽음은 우리에게 영광이고 그 영광은 오직 신의 것이니, 우리에게 남은 길은 그대들을 막기 위해 죽던가 그대들을 물리치고 살아남던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오! 무엇이 되었건 우리의 이 싸움은 위대한 영광이 되어 대대손손 노래와 연극과 영화가 되어 모두의 기억속에 남을 것이오!”

 관객들이 다시 외치자 키리시마 이치카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위스키를 한모금 마셨다. 그녀가 서있는 곳은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관람석 맨 꼭대기에 마련된 VIP실이었다. VIP실이라는 이름 답게 키리시마가 있는 곳은 외부와 벽과 유리창으로 막혀있었고 유리창은 짙은 코팅이 되어있어 밖에서는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이곳에 VIP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관객들이 태반이겠지.

 유리창에서 가까운 곳에는 앉아서도 바깥의 전경을 볼 수 있도록 푹신한 소파가 놓여있었고 그것으로도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소파의 팔걸이에는 오페라 글래스가 놓여있었다. 저것만 있으면 키리시마가 있는 맨 꼭대기의 구석에 있는 곳에서도 무대를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키리시마가 오페라 글래스를 들지 않은 것은 그녀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덴세츠 사이언스의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영상물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즐긴다는 것과 거리를 둔 삶을 살았으니까. 키리시마 이치카가 VIP실에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는 각 방마다 놓인 위스키병 뿐이었다.

 그마저도 웰컴 드링크 수준의 평범한 위스키였다. 키리시마의 입맛에는 하등 부족한 위스키였지만 이런 곳에서 무료로 마련한 위스키에 좋은 퀄리티를 바라기도 힘들 것이었다. 오히려 싸구려 위스키를 형식적으로 가져다 놓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얼음이 담겨있는 위스키잔을 든 키리시마는 유리창에 기대고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기사는 성안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기사들의 용기를 북돋게 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자신보다 저 바이오로이드를 국회에 앉히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생각할 정도로 훌륭한 웅변실력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잔을 한바퀴 돌려 위스키에 얼음이 녹은 물이 섞이게 한 키리시마는 맛이 조금은 변한 위스키를 한모금 마셨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벌써 열두번도 넘는 승리를 거두었고 오늘도 승리를 거둘 것이다! 비록 이 땅에 기독교도들의 나라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 기독교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늘의 승리는 내일의 평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이 땅에는 저 이교도들이 우리를 위협할 것이고 우리는 내일도 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자신할 수 있다! 내일에는 평화가 없을 지언정, 우리에게 승리가 없지 않을 것을 말이다!”

 기사들과 관객들은 환호했지만 키리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경기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어차피 저 바이오로이드들은 모두 죽을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검은 방패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결말이었다. 이 공연을 기획한 것이 덴세츠 사이언스라는 것을 안 이상 정해진 결말이었다.

 “저 성채는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이교도의 성이다! 이 전투가 끝나게 된다면 우리는 이 지하드를 승리로 이끌어낸 영광스러운 전사가 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싸워라! 만일 그대들이 목숨을 잃는다면 알라께서 그대들을 돌보실 것이고 만일 이 전투의 승리를 보게 되는 영광을 얻는다면 알라께서 그대들의 평생을 함께 하실 것이다! 전사들이여! 오늘이 우리가 맛보게 되는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다!”

 나팔소리가 울리자 바이바르스와 그의 군대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군대는 요안나의 성채를 포위하고 있었고 성채의 기사들은 사방에서 오는 적에게 맞서 싸워야 했다. 기사들은 활을 쏘며 저항했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로 막아냈다. 안타깝게도 화살에 맞고 쓰러진 병사들을 위로해주는 것은 피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의 외침 뿐이었다.

 하지만 화살로는 군대의 돌격을 막을 수 없었고 수많은 사다리들이 성벽을 향해 올라갔다.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고 있었지만 강력한 저항 앞에 뒤로 자빠진 사다리도 있었고 그 바람에 몇기의 병사들은 사다리에 깔려죽고 말았다.

 벽에 걸쳐진 사다리중 하나를 바이바르스는 달려가는 것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그는 성벽에 오르자마자 수기의 기사를 시미터로 베어 죽였고 기사들은 졸지에 성벽 일부에서 물러나야 했다. 성벽의 방어에 생긴 빈틈을 통해 수많은 이슬람 군사들이 밀어닥쳤고 기사들은 군사를 재정비해 이번에는 성벽에서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다.

 수많은 피가 무대위에 뿌려졌고 천장에 닿을 정도로 팔다리, 목등 신체의 일부가 날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반기며 좋아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사다리를 창으로 부수어라! 저 사다리를 부순다면 이교도들은 이 성에 오를 수 없을 것이오!”

 요안나의 외침에 기사들은 창을 들어 사다리를 향해 던졌다. 그들은 바이오로이드다운 정확한 조준을 했지만 사다리는 쉽게 부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성벽 위에서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창을 던지려다 죽어 성벽 아래로 떨어진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번 창에 맞은 사다리가 폭발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 사다리는 이 타이밍에 부러지게 되어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 임팩트를 주기 위해 폭발했을 뿐이었고.

 폭발과 함께 사다리를 오르던 병사들은 내장을 흩뿌리며 날아갔고 성벽 위에서 저항하던 이슬람 군사들은 하나둘 밀려나가기 시작해 이윽고 바이바르스 혼자 남고 말았다. 그는 기사 몇을 베어 넘기며 높이 뛰어올라 성문 위에 만들어진 첨탑 위로 올라갔고 요안나는 그를 따라 똑같이 뛰어 첨탑 위에 올라갔다.

 “이교도의 여왕이여! 그대들은 오늘이 그대들이 축일이라 생각하는가? 성벽에 오른 나의 병사 몇을 죽였다고 오늘도 승리를 맛볼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 싸움으로 그대의 기사가 몇이나 지옥에 떨어졌는가 알고 있나? 이제 아직 지옥에 가지 못한 기사가 몇이나 남았는지 아는가? 그대의 군사는 줄어들고 있네. 하지만 우리의 군사는 아직 많소. 이제라도 항복하는 것이 어떻소?”

 바이바르스는 자신의 앞의 요안나에게 외쳤다. 관객들은 야유를 하며 요안나에게 항복하지 말라고 외쳤다. 요안나는 기사이자 여왕이었다. 한 국가의 여왕이었다. 그녀는 이 전투에서 무릎을 꿇을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영광이란 목숨과는 비교도 안되었으니까.

 “항복이라 했소? 이제 내 칼에 죽을 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우리는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있소! 이 전장에 나아오기 전 우리는 모두 신께 기도를 올렸소! 곧 만나뵙겠다고 말이오! 그대의 군대는 많을지 모르오! 우리는 적소!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오! 그러나 그것은 그대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 아니오? 우리는 죽기전에 그대들의 군사 백명은 베고 죽을 것이오. 그러면 이 전투는 우리의 승리가 되지 않겠소?”

 “이교도여, 그럴 리가 있겠소? 어차피 그대와 그대의 기사들은 이 성채에서 죽게 될 것이다!”

 바이바르스가 달려나갔고 그에 맞춰 요안나가 달려나가 서로의 칼을 부딫힘으로 사람들의 가장 강렬한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그 광경을 보며 키리시마가 다시 위스키를 마시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VIP실에 들어왔다.

 “키리시마 이치카 중의원님, 이렇게 저희의 경기에 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뵙는 것은 처음이 되는군요.”

 흰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었다. 그녀가 입은 기모노에는 붉은색 꽃잎모양이 마치 피가 뿌려진 것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아마미야 카구라. 덴세츠 사이언스의 마케팅 총괄이사였다. 그녀는 마치 오늘 키리시마 이치카를 처음 본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아마미야 카구라 이사님.”

 키리시마는 테이블에 위스키잔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이렇게 저희가 만나도 되는 것인가요?”

 “이런 장소 아니면 어떻게 만나겠어요. 이런 대규모 바이오로이드 이벤트에 중의원님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저는 이 행사를 기획한 덴세츠 사이언스의 이사인데요. 이렇게 ‘우연히’ 의원님과 제가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아마미야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위스키가 놓인 미니바로 걸어가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제가 듣기로는 위스키 애호가라 하던데요. 죄송해요. 예산상 마련할 수 있는 위스키가 이정도라서 말이에요. 저도 좀 더 고급 위스키를 마련해드리고 싶었지만 아시잖아요? 이런 것 하나하나 돈을 쓰다보면 결국 예산을 넘어버리게 된단 말이에요. 아니면 의원님 방만 특별히 고급으로 뒀어야 하나도 싶네요.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죠. 그러면 건배나 할까요?”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한 위스키죠. 그보다 건배라면, 무엇을 위해 건배를 하는 거죠?”

 키리시마 이치카의 말에 아마미야 카구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정해진 그 말이죠. PAX JAPONICA. 좋은 말이죠,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