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펙스유미 주제로 썼슴

* 9지역 스포 + 직관으로 좀 더 본거긴 한데 스토리랑 여전히 안맞는 구간들 좀 있을듯? 있으면 지적해줘,,,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였어도 이 꼴이 되지는 않았어.


그렇게 배신하고 나니까 속이 편해?


제발 죽어버려.


"..."


오르카호에서 잠에 들고 깨어난 뒤 내가 아침을 맞는 과정은 항상 똑같다. 우선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을 꾸고 일어나고, 창문을 보면 해가 뜨기는 커녕 깜깜하기 짝이 없는 깊은 새벽이다. 창문 너머를 잠깐 바라보며 과음의 여파로 밀려오는 숙취를 억지로 견뎌내고는, 다시 자봤자 악몽이나 다시 꿀 것이 뻔하니 주변 화장실로 조용히 들어간다. 그러고는 그 구석에 틀어박혀 쭈그려 앉아 그저 울 뿐이다. 그 조차도 누군가 들어 올 것이란 생각이 들어 맘 놓고 오랫동안 울지도 못한다. 잠깐 울고 나서도 제대로 만신창이가 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로 간단히 세수만 살짝 거치고는 다시 화장실에서 나와 방을 나간다.


방을 나간 내가 오르카호 안에서 하는 것은 별거 없다. 방랑벽인가 의심 될만큼 행선지도 정해두지 않고 정처 없이 여러 시설을 돌아다닐 뿐. 전시 상황이라 그런지 이 와중에도 깨어나 순찰을 도는 바이오로이드나 똑같이 너무 일찍 일어나 오르카호를 배회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가끔씩 만나 볼 수도 있다.


"앗."


"... 유미야?"


"ㄴ, 네, 사령관님..."


물론, 아주 가끔.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 사령관을 만나게 되는 상황도 존재한다.


"오늘도 그 꿈을 꾼거야?"


"..."


"... 대충 그렇구나. 알았어. 너무 무리하진 말고... 적당한 시간에 다시 들어가."


"감사합니다..."


처음에야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 시작하고 거기서 여러 상담도 오가곤 했지만, 상담 몇 번으로 해결되지 않을만큼 너무나도 마음이 피폐해져버린 지금은 사령관도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든 조심스러운지 간단한 안부 인사만 살짝 건네고는 조용히 자리를 뜨곤 한다. 사령관이 내 마음이 어떤지 당연히 모를 법도 하지만, 그 정도로 조심스러워 할 필요도 없는데. 이미 마음이 아프지만 그걸 생각하다보면 또 다시 가슴 한 구석이 저려오는 것 같다.


시설 유지를 위해 작동하는 몇몇 방들을 제외하면, 카페테리아라던지 삼안 물자를 보관하는 상점이라던지. 여러 편의 시설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있다. 가끔 그 근처에서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도 모를 술을 진탕 퍼먹고 뻗어있는 키르케나 알파 휘하의 다른 유미를 볼 수도 있지만 오늘은 제 시간에 자러간 듯하다.


"..."


상점 근처에 테이블과 의자가 몇개 있다. 그냥 우두커니 서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던 나는 잠깐 혼잡하게 뒤얽히는 감정과 잡념들을 애써 정리하고는, 아까부터 눈에 보이던 그 의자에 잠시 걸터앉았다. 막상 의자에 앉고나니, 아까 정리해 둔 여러 잡념들이 다시 머릿 속을 뒤집고 헤집어놓는다. 항상 이런식이지만.


배신자가 편히 지낼 곳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내오는 사이 막을 수 없었던 인류의 절멸, 그로 인해 고통 받았을 나 이외의 바이오로이드들. 그럼에도 속죄하고 싶었고, 그렇게 오메가 휘하에 있으면서도 펙스의 난민들을 조금씩 이끌어 탈출 시켰지만, 결국 그 조차도 내 미련한 실수 때문에 많은 난민들이 죽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결국 벗어났다.


처음 며칠은 이 지옥 같은 내 처지보다야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곳에 있던 결국 나는 배신자이며, 인류가 죽어가며 난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 가해자, 방관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죽어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오메가의 휘하를 벗어나고 오메가에게서 자유로워졌지만, 내가 저질렀던 일들에서 어떻게 벗어나고 자유로워질 수가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지금은 그 이전에 내가 이 곳으로 변절해 온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였는가도 의심하고 있다. 내가 하는 속죄들은 전부 좋지 못한 방향으로만 끝났고, 그 때마다 나는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무능력한데, 어디든 어딘가에 붙어서 살아 숨쉬는 것마저도 죄가 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며,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자 하지만 결국 괴로운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면 괴롭다는 생각을 품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에 또 다시 괴로움이 밀려왔고, 이렇게 모든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흘러가다보니 마치 무한동력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고통만 쌓여갔다.


"... 흑..."


오르카호 인원들은 분명 내게 친절하다. 심지어는 오메가의 장난질 때문에 큰 피해를 봤을 세레스티아와 스노우 페더 마저도 마치 나는 잘못이 없다는 듯, 마치 나는 오메가 밑에 있었을 뿐이라는 듯이 대해준다. 왜? 왜 나한테 그렇게 친절할 필요가 있는걸까? 내가 저질렀던 것들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그저 덮어두는 것일까? 어느 쪽이던,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너희들이 제일 싫어하는 오메가의 부관이였는데.


"졸려, 싫어, 자고 싶지 않아..."


자고 싶지 않다. 자게 되면 또 다시 그 악몽을 마주해야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면 나 혼자 다시 울어야만 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술이라도 구해 마셔서 조금이라도 잠에 빠지지 않아보려 노력해봤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잠에 들어버리고, 또 다시 그 악순환이 반복 되고 있다. 마땅한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나는 그럼에도 더 강한 술로 조금이라도 덜 자기 위해 애쓸 뿐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잠을 더 늦게 자는 차이만 있을 뿐.


"으흑, 흑, 으아아..."


술로도 안되서, 머리도 쥐어뜯어보고 손을 깨물어보고, 하여튼 별 짓을 다해봤지만 마찬가지. 그러고 나서 하는 생각은 언제나 똑같다. 상황을 피하려는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그로 인한 무한의 악순환. 평소 같으면 오늘 아침에도 그랬듯 최대한 사람들이 없을 즈음에 숨죽여 울고, 그나마도 짧게 끝냈겠지만 오늘따라 유독 감정 조절이 어려웠다. 왜일까. 쌓인게 조금씩 새어나가는건지, 아니면 드디어 내가 미쳐가기라도 하는건지. 소리는 작지만 근처라면 분명히 들릴만큼 머리를 움켜쥐고 오열하고 있던게 몇 분이 지났던걸까, 그 와중에도 귀신 같이 타인의 인기척만큼은 알아차리던 나는 최대한 빨리 울음을 멈추고는 그 주위를 둘러봤다.


"... 어... 유미씨?"


"?! 유, 유미씨...?"


그리고나서 다시 정면을 봤을 때, 나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제 시간에 자러 간 줄 알았던 다른 유미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러간 줄 알았는데?


"뭔가, 방해라도 한건가요...?"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내가 좀 추한 꼴을 보였다고 둘러댈 뿐이다. 뭐 어떤가, 사실인걸.


"ㅇ,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게 그냥... 저도 오늘따라 잠이 안와서, 좀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뭔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길래..."


이런 젠장. 들었구나.


"ㅈ,ㅈ,ㅈ,ㅈ,자,자, 잘못 들으셨을거에요, 아마..."


"그걸 굳이 둘러댈 필요야 없을텐데..."


아, 죽고 싶어졌다.


"으음... 이미 어느정도는 이야기도 튼 사이인데, 그냥 고민이 있으신거면 제가 들어드릴 수는 있을걸요?"


"?! 아뇨, 진짜로 괜찮은..."


조금 갑작스러운 제안인걸. 내심 바랬지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야, 털어놓는다면 좀 긴 이야기이고 결국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괴로운 것을 이해해 줄 수 있을리도 만무하고.


"괜찮아요, 민폐 끼치는게 아니라니까요?"


"ㅈ, 정말로..."


"게다가, 저는 사실 이미 유미씨가 우는 것을 어쩌다 몇번 봐왔는걸요."


"..."


나름 다 자고 없을 때, 그럴때나 종종 울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목격해왔던건지.


"그냥... 속는 셈치고 한번만 털어봐요. 네?"


"... 그럼, 일단은 감사합니다... 우선 유미씨도 자리에 앉아보시는게..."


내가 미쳤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요청하는데 그걸 안받아들이기도 뭐하지 않은가. 그래도 최소한 자주 보면서도 입이 가볍다는 생각은 안들었으니까 뭐,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어찌됐건 얘기를 들어주겠다니 하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나는 다른 유미씨를 자리에 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