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ORIGIN THE MULTIVERSE 작품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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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문 틈 사이로 보기만해도 방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 여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침입자는 갔고, 더 이상 어떤 위협도 도사리지 않는데.



"하..."



방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덩그러니 누워있다.


남자는 원통하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로 굳어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한 여자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흑...흑..."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댄다.


손에선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사랑하던 남편은 이제 사라졌고 오직 시체만이 남은 것이다.



"흐...으어...으아아아아!!!!!"



울음은 절규로 바뀌고, 절규는 곧 증오의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진다.



"앙헬...!!!"



여자는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그녀의 이복남매를 향해 소리친다.



"두고 봐...! 반드시 내 모든 걸 걸고 널 몰락시켜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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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인간 아닙니까?"


"나도 알아. 향후 개발할 바이오로이드에 필요한 유전자를 확보하기 위한 프로토타입이라 하더라."


"그냥 바이오로이드로 실험하면 되지 않습니까? 블랙 리버는 이미 그런 식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 여자는 사실상 블랙 리버 소속도 아니잖아. 이미 이거 말고도 테러부대를 하나 만들어 운용한다고 하던데."


"그래도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인간을 이용해서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별로 도움도 안될 것 같은데."


"그 바이오로이드 말인데,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상상 이상이라더라.


그래서 아예 빈민가나 고아원에서 애들 좀 납치해서 실험하는 거고."



연구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근데 그 여잔 왜 우리 삼안 산업에 공동개발을 요청한 겁니까? 그것도 블랙리버의 CEO의 이복동생이나 되는 사람이?"


"소문으로 의하면 그 여자 남편이 앙헬에 의해 살해당해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더군."


"그, 그게 진짭니까?!"


"그래, 어쩌면 아까 내가 말한 테러부대도 블랙리버를 작살내려고 창설한 걸 수도 있어."


"그럼 앙헬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우리 삼안 산업과 손을 잡은 걸까요?"



자신의 후배를 한심스레 바라보던 연구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바보야, 그 여자가 진심으로 그러겠냐? 그 여자가 인간불신이 얼마나 심한데?"


"아, 역시 그런가요?"


"그냥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먹으려는 거지, 뭔 손을 잡아?


애초에 이 건도 그 여자가 블랙리버의 기밀을 우리한테 제공해줘서 해주는 거야."


"그, 그렇군요. 그런데 굳이 뭔 저런 어린 애를 사냥개로 쓴답니까? 돈 아깝게시리..."


"아무튼 저거나 잘 주시해. 길만 잘 들이면 거래랑 별개로 우리에게 충직한 사냥개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


"에이, 차라리 암살용으로 개조한 블랙 리리스를 쓴다면 모를까..."


"요즘은 개나소나 다 바이오로이드를 쓰는지라 사내놈이라면 더 의심받을 여지가 적겠지.


비용을 고려해봐도 먹는 양이 바이오로이드보다 적은데 뭘."


"쳇, 그래봤자 바이오로이드보단..."


"저 놈이 사실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괴물이라고 누가 알겠냐?


현장에다 머리카락이나 지문같은 걸 남겨놔도 유전자랑 지문은 물론이고 혈액까지 자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놈이라고."



그 말을 들은 후배 연구원은 깜짝 놀랐다.



"그, 그럼 정말로 완벽범죄가 가능하다는 거네요?!"


"얼굴만 안 들키면. 야밤에 미션 하나 쥐어쥐면 딱이겠지."


"그럼 어떻게 훈련시키실 건가요?"



선배 연구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전에 덴세츠로부터 제안받은 프로젝트 하나 있지?"


"프라이튼 하우스(Frighten House) 프로젝트요? 그게 왜요?"


"그게 끔찍한 괴물처럼 디자인한 AGS가 참가자를 쫓아서 죽여버린다는 내용이거든.


폐기예정인 바이오로이드를 참가자로 넣어서 그것들 시점으로 진행하는 공포게임이라고 하더라."


"아, 그런 내용이었어요?"


"뭐, 나도 그쪽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은 거지만.


그래서 요점은, 그 AGS를 훈련상대로 쓰면 어떨까 하는거지.


붉은 아레나에서 활약하던 녀석들을 넣거나 하기도 해서 전투력 부분에 신경을 썼다고 하니까 말이야."


"그,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시려고요?"


"죽으면 뭐? 샘플이 될 고아들은 넘쳐서 문제인데."



선배 연구원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배가 굳어버릴 정도로 소름끼치는 미소였다.



"그리고, 저 실험체 녀석이 우리한테 반항하지 않게끔 길을 잘 들여놔야하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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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커억...여...제...님..."


"흐음..."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이 작은 조명에 의해 희미하게 그곳에 벌어진 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진행되는 것 같군...


피델리스 세루스(fidélis servus : 충성스런 부하) 프로젝트로 이름지었다라...하하하!"



마리아 리오보로스.


앙헬 리오보로스의 이복동생이자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창시자인 그녀가,


몸 군데군데 묻어있는 핏자국엔 아랑곳하지 않고 웃어댔다.



"내가 너한테 너무나도 큰 기대를 한 게 아닌가 싶구나?


설마 이렇게 쉬운 일도 해내지 못했을 줄이야...


역시 저들과 거래를 해두길 잘했어."


"무...무슨..."



마리아가 보란듯이 내민 종이 너머엔 장화가 가시철조망으로 팔다리가 묶인 채, 온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바다 너머 멀리 있는 땅엔 삼안 산업이란 기업이 있어.


너에게 박살내라고 했던, 블랙 리버에 비견될 정도의 조직이지."


"아..."


"몇 달 전부터 네가 영 미덥지 못해서 그 치들에게 제안을 하나했어."


"제...안이...요?"


"그래, 하찮기 그지없는 널 이끌어줄 리더 바이오로이드의 제작을 의뢰했지.


뭐, 쉬운 작업은 아니라서 그들도 일단 인간타입 프로토타입부터 만든 다음, 유전자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말이야."


"으...?"


"봐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네가 나 이외에 따라야 될, 니 대장이 될 녀석의 원본이나 다름없으니까."



장화의 두 눈에 비친 것은...


바다처럼 푸른 머리칼을 가진 아이가 기괴한 모습을 한 괴물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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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대체 어떻게 네오딤의 기술을 빼돌렸나 했더니 이런 거였군?"


"삼안이 뭔가 새로 발견한 게 있다고 해서 확인하러 왔는데 뜻밖의 수확이 있었네요?"


"그러게, 그럼 마리아는 대가로 뭘 받은거지?"



철통같은 삼안 산업의 보안을 순식간에 뚫고 정보열람실을 뒤지고 있는 2인조.


그들은 바로 블랙리버로부터 잠입 임무를 받은 바이오로이드, 에이미 레이저와 스카디였다.



"어? 뭐야? 피델리스 세루스 프로젝트?"


"유전자 합성으로 만든 인간을 육성해서 훈련시킨 다음 유전자를 추출해 테러, 범죄, 암살용 바이오로이드 제작에 사용한다...


현재 육성하고 있는 프로토타입 개체는 자체적으로 유전자, 혈액, 지문을 변형할 수 있는 우수한 개체로, 추후 제작할 바이오로이드의 성능이 기대된다...!"


"......!!!!"


"세상에...마리아가 삼안하고 결탁해서 이런 계획을 짜고 있었다니..."


"마리아도 마리아지만...삼안이 이런 꿍꿍이가 있었다니, 아무래도 더 캐봐야 할 것 같아.


난 다른 곳을 확인하고 있을테니까 넌 여기서 또 다른 게 있는지 확인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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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 터벅, 멈칫.



"언니, 찾았어요...아니길 바랬지만...예상대로 피냄새네요..."



하치코가 서글픈 목소리를 내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네요...하긴, 침입한 이유라고 해봤자 여기서 뭘 빼내려고 하는 게 다겠지만요."


잘했어요, 하치코. 이 사실을 보안과쪽으로 알려주세요."


"알겠어요, 언니!"



블랙 리리스의 손이 하치코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저는 주인님의 구역에 멋대로 들어온 해충을 혼내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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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침입자?"



뜻밖의 보고를 받은 소장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네, 지금 즉시 찾아서 처리하겠..."


"아니야. 마침 잘됐군. 발견하는 대로 제압해.


그리고 거동이 살짝 불편하게 만든 다음 바로 시설 밖으로 나오고."


"네? 어째서 그런 지시를...?"


"어째서냐니."



소장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경우을 상정하고 만들어 둔 게 있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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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 괴한 침입. 직원분들은 신속히 대피소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제길,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잖아...! 스카디, 아직 멀었어요?!"


"찾았다, 해충..."



콰직!



"에이미?!"



다급하게 돌아보자 누군가가 축 늘어진 에이미를 끌고오고 있었다.



타앙!



"큭...!"


"음?"



간신히 총알을 피한 스카디는 곧바로 블랙 리리스를 지나쳐,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뭐, 지시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되겠죠. 그럼 이건 저쪽에 두고 빨리 나가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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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정신없이 달리던 스카디는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었다.


강건한 신체를 지닌 그녀였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호흡을 흐트러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얼른 여기서 탈출해야..."



틱!틱!틱틱틱!!!!



갑자기 시설 내부의 불이 전부 꺼졌다.



"저, 정전? 아니, 이 타이밍에 그런 상황좋을 일이 일어날리가 없...!"



띠이이이익~!!!


철커덩!!!!



"...뭐, 뭐야?"



갑작스런 소등에 미처 놀라지도 못했는데,


저 멀리 어디선가 경고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스카디는 숨을 죽인채 조용히 이동했다.


언제 또 블랙 리리스에게 걸려 살해당할지 몰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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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살아남았단 말인가? 그 블랙 리리스와 마주치고도?



에이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통증때문에 조금 거동이 불편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대체 왜...?"



입에서 튀어나온 건 운이 좋았다는 게 아닌, 영문을 모르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삼안 산업 정도되는 기업이라면 블랙리버처럼 침입자는 무조건 없애버린다는 방침을 지니고 있을텐데...



스윽...



"?!!"



순간,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털가죽으로 뒤덮인 거대한 동물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듯한 소리같았다.



'설마 그 여자, 날 일부러 죽이지 않고...!'



에이미가 리리스의 의도를 알아챈 순간, 저 멀리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빛났다.


마치...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렌즈처럼...














"크오오오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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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나가는 길이 어디야? 이럴 줄 알았으면 에이미에게 미리 물어볼 걸..."



척...



나갈 길을 찾지 못해 투덜거리던 스카디의 발에 무언가가 밟혔다.



"응?"



뭔가 따뜻한 액체가 바닥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던 스카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액체에서 쇠비린내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도 온통 얼룩이 진 상태였다.



"아...아아아..."



스카디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공포를 느끼며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데굴데굴...



그 순간, 두 발 사이로 무언가가 굴러오더니 스카디의 앞쪽에 멈췄다.



"으아아아아아악!!!!!!!!!"



스카디는 그것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뒤쪽에서 굴러온 물체의 정체는 바로 에이미의 머리였던 것이다.



탁탁탁탁탁!!!!!!!



뒤를 돌아보자 커다란 뭔가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입에 뭔가를 문 채로...



"으아아아아아악!!!"



스카디는 곧바로 앞으로 뛰어갔다.


달려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져도, 곧바로 다시 일어나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다.



"쿠오오오오오!!!!"


"젠장! 저거 AGS였어?! 삼안 놈들은 왜 저딴 걸 만들어서 배치하고 있는거야?!!"



정신없이 달리던 스카디는 이네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재수없게도 달리던 곳이 막다른 길목이었던 것이다.



"어?!"



그때, 스카디의 눈에 왠 문이 들어왔다.


이미 소등이 된 연구시설과는 달리, 거기 있던 전자제어식 문은 전원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의심했을 스카디였지만, 지금 그녀에게 있어선 왜 그 문만 전원이 들어와 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카디는 곧바로 문에 해킹을 시도했다.



띠리릭!


철컥!



문이 열렸지만, 스카디는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안엔 뭐가 있지? 들어가면 어떻게 여길 빠져나갈지도 궁리해야 할텐데...'



탁탁탁탁탁!!!!!!!!!!



하지만 뒤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스카디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 위에 고정되어 있던, 'DANGER'이라는 경고문을 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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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군..."



스카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기 전에 문을 해킹해 시스템 체계를 바꿔,


다른 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자신이 들어가자마자 닫히게 해놨던 것이다.


실제로 쫓아오던 AGS는 문을 통과하지 못해 벽을 쿵쿵 두드리다가 돌아갔다.



"좋아, 이제 다시 나가도 되겠...?!"



스카디는 말을 하다가 이내 굳어버렸다.


문을 조작하는 패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어? 이상하네...왜 이쪽은 패널이 없지?"



어쩌면 이곳은 아까 그 AGS같은 걸 보관해두는 창고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가자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어...이 방은 환기구같은 거 없나?"



스카디는 방 안에 있을지 모를 무언가와 마주치지 않길 빌면서 곧바로 주변을 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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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여긴 또 뭐하는 곳이지?"



들어온 방의 내부는 실험실도, 창고도 아닌, 마치 세트장같은 분위기였다.


그것도 마치 진짜 도시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여러 건물모형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여기엔 아까 그 AGS같은 건 없는 것 같은데...대체 삼안 녀석들은 뭘 하려고 이런 것들을 가져다 놓은거야?"



스카디는 구조물들을 둘러보던 중, 문득 한 구조물에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伝説の製品を利用なさいっ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Reality more than reality!

(덴세츠 제품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덴세츠가 왜 여기에...혹시 덴세츠도 한 패인건가?"



문득, 경악해하던 스카디의 눈에 뭔가 밟혔다.



"이건...왜 이렇게 훼손되어 있지?"



근처에 심하게 부서진 건물 모형과 왠 표지판이 놓여 있었다.


스카디는 조심스레 다가가 표지판을 읽었다.



'축하합니다! 귀하께선 무사히 첫 테러 훈련을 끝마치셨습니다!


이 구조물은 이곳에 기념으로 보관해둘테니 귀하께서도 이걸 보고 더욱 정진하시길 빌게요!


아, 그리고 비록 부서지긴 했지만 이건 엄연히 저희 삼안 산업의 재산이기 때문에 추가훼손은 금지입니다!


만약 그러셨다간 무~시무시한 벌칙이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뭐야, 이건..."



얼핏 보면 그냥 장난치는 듯한 문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시하지 못할 내용이 담겨있었다.



"잠깐, 테러 훈련? 분명, 아까 정보열람실에서...!"



콰직!!!!!!!!



"...어?"



별안간 목에서 엄청난 격통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강렬한 고통에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스카디는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순간,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



푸른 머리를 찰랑이는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스카디가, 그녀의 의식이 끊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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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식겁했네. 하마터면 프로젝트 세 개가 한꺼번에 날라가는 줄 알았다고."


"그래도 잘 해결했으니 다행이죠. 설마 침입자가 둘일 줄은 소장님도 예상 못하셨다네요."


"그래. 어쨌든 좋게 끝났으니 다행이지.


침입자가 왔는데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08-25와 PP-1013의 테스트를 진행하실 줄이야.


역시 소장님은 참 무서운 분이시라니까."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군."


"우, 우왁!!!! 소, 소장님?!!"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 소장이 인상을 찌뿌리고 있었다.



"축하인사나 전해주려 왔더니 사람얼굴 보고 기겁이나 하다니, 나 원 참..."


"ㅇ, 예? 축하인사요?"


"그래, 피델리스 세루스 프로젝트는 자네가 추진하고, 프라이튼 하우스 프로젝트와 연계하자는 것도 자네 제안이었다며?


그 두 프로젝트의 진행이 순조롭다는 것 같다고 상부에서 자네 진급을 논의 중이라는데?"


"네? 지, 진급이요?!"



뜻밖의 소식을 전달받은 연구원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래, 당장 진급은 무리여도 실적반영은 두둑하겠지."


"아, 네...감사합니다. 그런데 소장님은 기분이 안 좋아보이시는데요..."


"좋긴 무슨, 이번 일 때문에 여차하면 피델리스 세루스 프로젝트 실험체를 동결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더군."


"예, 예?! 동결이요?!"



소장은 답답하다는 듯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프로젝트를 동결시키는 게 아니라 만에 하나 사고가 터지면 실험체를 동결시킨 다음, 안전한 곳에 보관해두다가 괜찮다 싶으면 다시 해동시켜서 진행하는거지.


어차피 실험체가 튼튼한 놈이라 문제없다나?"


"아니, 그게 될 리가 없잖아요. 이게 저희끼리 하는 것도 아니고 의뢰받아서 하는건데."


"윗대가리들이 퍽이나 그런걸 신경쓰겠냐? 이 참에 그냥 우리끼리 슬쩍해버리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음...그래도 일단은 블랙 리버랑 대립하는 입장이니만큼 계속 같은 편으로 유지시키는게 좋을텐데요?"


"그래, 그것때문에 내가 반대했으니까. 니들, 애덤 존스란 이름 들어봤지?"



연구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삼안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애덤 존스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애덤 존스라면 저희 삼안 산업을 창업했다가 좌천당한 사람이잖아요?"


"그래, 그리고 블랙 리버가 기술 좀 빼돌리겠다고 납치해서 고문시키다 결국 죽여버렸고."


"예?! 그게 진짭니까?!!"



그 말을 들은 연구원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자기 회사를 창업한 사람에게 그런 말로가 있었을 줄이야...



"니들도 알다시피, 이번에도 침입해 온 놈들이 블랙리버 소속이었잖냐.


그래서 상부측도 이제 슬슬 블랙 리버랑 다시 얘기를 해볼 생각이랜다."



소장은 담뱃재를 재떨이 통에 탁탁 떨궜다.



"뭐, 그런 건 내 알바 아니지만."


"예엑?!!"



연구원들은 그럼 뭣 때문에 그렇게나 저기압이었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딴 건 상관없어...내가 짜증나는 건 그 빌어먹을 정비공 자식이라고."


"아...파이브 박사 얘기였나요..."


"그래. 윤리니 도덕이니 과학자로서의 책임감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란 프로젝트는 다 반대하고 다녔던 그 위선자 녀석이,


이번 사건 때문에 나한테도 시비거는 것도 모자라 그 애새끼 좀 보러온다고 했단 말이야.


정신병자 녀석. 자기가 버는 돈이, 윤리따윈 버려버린 회사가 벌어다주는데 그딴 헛소리나 하고 다니고."


"으음...꽤나 사이가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소장은 그 말을 듣고 투덜거렸다.



"흥, 블랙 리버가 자랑하던 그 '닥터 와이그먼'에 비견될 정도로 업적을 쌓았으니까 망정이지.


그것만 아니라면 진작에 쫓겨났을 놈이야. 언젠가 그놈이 좋아하다 못해 환장해하는 AGS마냥 신나게 혹사당했으면 좋겠어."


"하하..."



두 연구원 모두 선민사상을 지니고 있었긴 했지만, 그런 그들이 보기에도 소장은...조금 극단적으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저걸 봐라. 인간이긴 해도 유전자를 적당히 뭉쳐 만든 도구에게 정이나 주는 저 꼬라지라니...쯧쯧..."



소장이 혀를 차며 손가락으로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자 연구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곳엔 컴페니언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이 한 남자 주위에 모여 웃고 있었고, 남자는 미소를 지은 채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년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푸른 머리를 찰랑거리는 소년의 목엔 초커가 둘러져 있었고,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08-25'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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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쓰는 단편문학입니다.


어째 장편 쓰는 것보다 단편쓰는게 훨씬 더 힘드네요...



사실 이번 단편을 올리게 된 배경은 바로 LAST ORIGIN THE MULTIVERSE와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LAST ORIGIN THE MULTIVERSE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때


'응답하라 사령관 리메이크'와 '사령관은 귀신이 보여 리메이크'를 둘 다 지운 다음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해 올리려고 했지만 중간에 노선을 바꿔, '사령관은 귀신이 보여 리메이크'는 건드리지 않은 채로


'HUMATINY FROM THE PAST'를 새로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기존의 시나리오를 버리기엔 아까웠던지라 이번에 단편으로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OriginalVerse에 해당하는 단편문학(외전)들은 추후 진행될 본편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게끔 구상해두었으니


재미있게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 처음엔 그냥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진 실험체 인간이라는 설정만 생각해두고 있었기에,

   멸망전 인간들이 굳이 유전자 조합을 통한 인조인간을 만들 명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장화와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설정이 나오자 그대로 채용했고, 그 후에 파피 플레이타임이란 게임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덴세츠 관련 설정도 추가했습니다.


※ 이 작품을 여기 쓰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원작 내 사건이 일어난 순서와 년도를 확인해보니

   마리아가 앙헬에게 복수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과 삼안 산업이 철충을 발견했을 때 당시의 시간간격이 40~50년,

   길게 잡으면 대략 60년 정도 예상되더군요.

   아, 내가 실수했다, 원작과 달리 사건과 변화가 일어난 주기가 훨씬 빨랐다고 설정을 잡자고 생각했는데 멸망 전의 어느 기록보니까

  앙헬은 안보이는데 김지석으로 추측되는 인물은 보여서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김지석은 오리진 더스트 빨로 그렇다친다해도 마리아가 그 긴 시간동안 존버를 탈 것 같진 않기에 그냥 만사가 빨리

  일어났다는 설정으로 가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