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로대 30 존나 달려서 엔딩을 보고나니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똥글 투척함.

뇌피셜이 엄청 들어간 이야기지만 내가 이바닥에서 만화나 소설이나 게임이나 애니를 지금껏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좀 정리해서 말한다는 느낌으로 받아주셈. 글에 들어간 이미지는 대부분 나무위키에서 긁어옴. 글을 읽다보면 강제로 내 나이가 까발려질 것 같기는 한데 어쩔 수 없지.


3줄 요약에 대한 독자의 니즈를 반영하여 4줄 요약을 추가함.


1. 멀고 먼 옛날, 츤데레보다는 청순녀가 인기있었다. 근데 츤데레는 갭 모에와 다양한 리액션을 무기로 한 때 왕좌를 차지했었다.

2. 그러나 현재의 츤데레는 과거보다 많이 힘이 빠져있다. 그 이유는 츤데레가 하렘에서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3. 츤데레는 충분한 분량을 받고, 캐릭터가 복잡할수록 매력이 깊어진다. 그러나 하렘은 필연적으로 분량이 나눠지고, 캐릭터성이 겹치지 않도록 하나의 속성만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정 반대의 흐름이다.  

4. 츤데레가 승리하여야 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면 하렘이라도 커버가 가능하나, 야생에 던져놓고 승자 결정전을 벌이게 되면 츤데레는 지 혼자만 츤 빌드업 후 데레로 매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니 남들보다 진도도 느리고 인기도 끌기 힘들지.


일단 츤데레가 왜 예전보다 힘을 못 쓰는지를 알려면 예전에 츤데레가 왜 떴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어지간한 라붕이 기준으로도 먼 옛날. 아이샤 대장쯤 돼야 그냥 어렸을 때로 퉁칠만한 과거로 돌아가보면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속성은 청순녀 스타일이었음. 반례로 메종일각이 있기는 한데, 그걸 얘기하면 글의 일관성이 좀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내가 그걸 안 봐서 자세히 말하기 애매하므로 약간 유연하게 받아주셈.



여튼 이어서 말하자면, 예전에, 대충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에는 오! 나의 여신님의 베르단디라든지, 랑그릿사2의 메인 히로인 리아나 같은 모습으로 대표되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주인공과 마음이 통한 다음부터는 주인공을 뒤에서 받쳐주는' 형태의 캐릭터가 꽤 많이 나왔고, 인기도 높았단 말이지.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전형적인 힐러 이미지라고 할까.


사실 일본도 야마토 나데시코라는 이미지가 과거부터 전해져왔고, 우리나라도 현모양처, 내조 같은 단어가 공공연히 쓰일 정도였으니 순하면서 남자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히로인에 대한 이미지는 좋을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초창기의 메인 히로인들은 정석에 딱 맞는 청순계 히로인이 많았음. 100%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보다는 청순계의 파워가 훨씬 셌지.


어쨌든 여캐가 늘면 수익이 느니까 메인 히로인 하나만 있는 작품은 적었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메인 히로인을 처음부터 정해두고 서브 히로인들은 뭔 짓을 해도 이야기에서 절대로 메인 히로인을 이길 수가 없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었음. 그래서 이 시기에도 츤데레 캐릭들은 많았고 나름대로 인기는 있었어. 예시로 들었던 랑그릿사2의 쉐리라든가, 작품 내에서는 해피엔딩을 못 보더라도 팬들에게는 나름대로 어필했던 예시들은 충분히 있었지.


이 때 청순계 히로인과 츤데레계 히로인의 매력을 분류해보면 청순계는 의지할 수 있는 포근함, 순종적인 매력, 이야기가 비극이 될지언정 그 어떤 외적인 요소에도 굳건한 사랑. 정도로 볼 수 있고, 츤데레는 당당하고 자기주도적인 모습에서 오는 매력, 당당함 속에 숨어있는 여성적인 매력 (=갭 모에)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지.


이걸 다르게 해석해보면 청순계는 늘 비슷한 스타일이야. 어떤 경우라도 스탠스가 비슷하고 보여주는 매력이 유사한 형태지. 근데 그게 존나 세. 마치 '내 무기는 딱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핵폭탄이야.' 이런 느낌? 반대로 츤데레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수가 있어. '접근전은 샷건, 원거리에서는 저격소총, 적군이 숨어있는 곳에는 공중지원 등등' 같은 식인거지.


내 생각에는 이런 다양성이 츤데레를 밀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 이벤트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청순계 캐릭으로는 상상해내는데 한계가 있거든. 근데 츤데레는 비슷한 이벤트 수로 2배 분량은 뽑아낼 수가 있어. 인기도 나쁘지 않고, 이 정도면 꽤 좋은 선택 아니겠어?


거기에 메인 히로인을 먹는 순간 '100% 얘는 주인공이랑 이어진다'는 암묵적인 룰은 츤데레의 매력에 날개를 더해줬어.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여캐는 츤츤거리다가 적당한 이벤트를 거쳐서 함락되면서 성취감과 갭 모에를 함께 보여주는 케이스도 있고, 여주인공이 먼저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솔직하지 못하게 츤츤거리는 건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귀여운 앙탈로 보이게 되는 등, 당시에는 청순계의 맛있지만 점점 그게 그거 같은 맛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매력을 줄 수 있었지.


츤데레가 이런 장점을 가져서 이야기를 보다 다채롭게 만들 수 있어서인지, 아니면 청순계 히로인이 너무 많이 나와서 질린 탓인지는 몰라도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정도부터 슬슬 츤데레 계열들이 메인 히로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어.


이 바닥에서 꽤나 유명한 러브히나의 나루세가와 나루가 이 과도기에서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캐릭터인데. 얘는 순수 츤데레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츤데레가 갖춰야 할 속성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 정확히는 외강내유형의 정석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츤데레의 이미지가 외강내유와 일체화되었다고 할까.


내가 아는 기준으로는 이쯤부터가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히로인이 기존의 조용한 히로인들보다 앞서나가게 되는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해. 동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아이즈의 요시즈키 이오리도 인기가 많기는 했는데, 얘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타입이기는 한데 캐릭터의 심리를 거의 안 보여주는 미스테리함이 작품의 매력이라 조금 예외 라인에 걸려있지.


다시 나루 얘기로 돌아와서, 당찬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폭력성이 섞인건지 요즘 츤데레의 병맛스러운 점으로 꼽히는 뭐만하면 손이 나가는 속성은 러브코미디로 뜬 애들 중에서는 얘가 제일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 슬레이어즈는 러브코미디로 분류하기에는 조금 아닌 것 같아서, 게다가 나루는 츤데레라고 하기는 좀 애매한데 애가 좀 결정장애라고 해야 할지 우유부단하다고 해야 할지 자기 스탠스를 정확히 못 정하면서 나오는 갭이 있다보니 츤데레의 장점을 일부 가져가는 캐릭터이기도 했어.


아무튼 러브 히나 뜨고 난 후로 수많은 츤데레들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 일단 스즈미야 하루히가 썅년인지 츤데레인지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기는 한데 유명한 애로는 이런 애들도 있고, 러브코미디라기에는 불쏘시개라는 이름이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마부라호 같은 소설도 나왔고, 풀 메탈 패닉의 치도리 카나메 같은 애들도 츤데레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지. 그 외에도 제로의 사역마, 하야테처럼, 토라도라 등등 하나하나 불러주기에는 너무 많다. 여튼 그 후로 츤데레 메인 히로인을 내세운 작품이 존나 많이 나왔음.


자, 그럼 밑밥을 좀 깔아둔 것 같으니 다시 본론을 시작해볼까? 근데 이렇게 잘 나가던 츤데레 히로인들이 왜 점점 힘을 못쓰냐? 일단 츤데레는 하렘물일수록 약해지는게 정석이기는 한데, 단순히 분량이 줄어서 츤데레의 매력을 어필하기 힘들어지는 것 외에도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함.


첫 번째는 점점 하렘물의 캐릭터를 늘리고, 각각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개성이 빛나는 캐릭터로 만들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 캐릭터가 가진 과거 설정이 부실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성격이 부딫히는 면이 없도록 한 쪽의 성격에 특화된 캐릭터들이 점점 늘어났다는 얘기야. 


먼 옛날로 갈수록 메인 히로인 캐릭터를 한 속성으로 분류하기 힘든 이유가, 괜찮아 보이는 건 다 때려박은 혼종이 많아서 그래. 근데 점점 하렘물 or 히로인 쟁탈전이 장기연재에 필수가 되면서 히로인이 여러 명일 필요가 있어졌고 그 결과 한 히로인이 가질 수 있는 속성의 수에 제동이 걸렸음. 그러다보니 딱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된 모습을 남기고 조금 덜 어울리는 속성은 다른 캐릭터한테 가버려서 매력이 획일화됨.


그리고 두 번째는 이제는 메인 히로인 (=승리)라는 공식이 깨졌단 말이지. 이게 굉장한 임팩트를 준 작품의 메인은 츤데레가 아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히려 제일 손해본 건 츤데레가 아니었을까 싶어.



두 번째에서 이야기한 작품은 딸기 100%라는 만화야. 이건 내 가방끈에 한계가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이전까지의 러브 코미디나 애정을 그리는 작품들은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외적인 이유 때문에 비극적으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주인공이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하던 캐릭터보다 다른 캐릭터를 더 사랑해서 자기 의지로 다른 캐릭터와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음.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단 말이지. 당시에 적어도 그 만화 보던 독자들에게는 엄청난 임팩트와 함께 환호와 반발을 동시에 받았던 결정은 이 바닥에 큰 메시지를 던져줘. '아, 이제 제일 먼저 나왔다고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은 없구나.' 하는 식으로. 물론, 반발 역시 엄청났기 때문에 당시에 주도권이 확 변한 건 아냐. 하지만 지금 보면 엄청 변했지. 5등분의 신부라든지, 우리들은 공부를 못해 같은 거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메인 히로인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줄어든 건 맞다고 생각해.


여하튼 이걸 종합해보면 대충 이렇게 돼, 제일 먼저 러브 코미디에 나오는 캐릭들이 늘어나면서 츤데레한테 분량을 몰아줄 수가 없어. 츤데레라는 속성만으로 승부하려면 츤을 쌓고 데레가 터지면서 갭을 보여주거나, 먼저 데레로 들이대고 가끔 츤츤거리며 귀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근데 세월이 지나면서 메가데레라는게 새로 생겼네? 먼저 들이대는 역할은 얘가 다 받아가. 그러니 츤데레는 선택지가 없어. 남들 진도 나갈때 츤츤거리면서 튕기는 매력을 쌓아가야 돼. 거기에 폭력녀 속성이 어울리는 건 츤데레랑 얀데레밖에 없어서 개성 챙기겠다고 주인공을 패기도 해. 와...이 상황에서 인기를 어떻게 올리지?


이게 옛날식 러브코미디였다면 진도를 맞춰주려고 츤데레만 비중을 몰아주는 것도 가능했지. 메인 히로인은 그 정도 대우를 받아도 되니까. 근데 요새는 메인이 없어요 아조씨. 다들 복지 빵빵하게 받아서 분량 비슷하게 안 주면 분량 없는 쪽 팬덤은 싸그리 뒤지거든요? 즉, 츤데레는 자기 매력을 살리려면 쓸데없는 빌드업을 넣어야 하는데, 빌드업에 맞춰주겠다고 주인공이 츤데레랑만 자주 놀면 '저 호구새끼는 병신인가. 왜 지 좋다는 년들 버리고 싫다는 년한테만 붙어서 지랄이냐' 같은 소리 듣고 캐릭터가 아니라 작품이 인기 조질거임. 요새 사이다 패스는 유명하잖아?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츤데레가 옛날보다 힘을 못 쓰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츤데레가 제대로 힘을 쓰려면 두 가지 조건이 확립돼야 해. 캐릭터의 애정전선 빌드업을 쌓을 충분한 분량과 단순한 츤/데레의 갭으로 만족 못 하는 사람을 위한 복잡한 캐릭터 구성. 남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이래도 얘 안 빨거야? 이래도?' 같은 식으로 밀어줄수록 강해지는게 츤데레야. 뭐, 밀어주면 인기없는 애가 누가 있겠냐만은...아, 있네. 마부라호의 그 미친년...


잠시 탈선한 이야기의 방향을 다시 잡아보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한 유명한 캐릭터로 늑대와 향신료의 호로가 있지. 근데 일단 이건 하렘물이 아니잖아? 두 가지의 장점 모두 하렘물이 아니기 때문에 챙길 수 있었던 거고, 반대의 상황이 된다면 장점이 죽어버린다는 하나의 예시라고도 볼 수 있지. 그러니 하렘물에서는 츤데레가 영 힘을 못 쓰는게 당연하다는 말씀.


대충 츤데레에 대한 얘기는 다 끝냈고, 라오 얘기도 잠깐 짚고 넘어가면 메이 캐릭터가 초코에서 확 변한 이후로는 츤데레라고 하기도 애매해. 세인트 오르카에서처럼 마음은 먹었는데 틱틱거리면서 솔직하지 못한 마음이 어쩌구 하면 츤데레의 범주에 속한다고 봐주겠는데, 지금은 아예 마음을 못 먹고 있으니까. 


기존의 메이 팬덤이 초코 ~ 낙원까지의 메이를 좋게 못 보는 이유는 당당한 츤데레가 갑자기 소극적인 우유부단 캐릭이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단순히 아다를 떼고 못 떼고, 바보취급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캐릭터 분류 자체가 변했다고. 그러면 기존 매력이 남아있을리가 있나. 그나마 2부 1지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 같아서 앞으로 어찌될지 궁금하긴 함. 얼마 안 지나서 인기투표 스킨이랑 노래도 받을텐데, 스작 욕하면서도 메이 빨던 과거의 팬들도 만족할 수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