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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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대개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을 열렬히 좋아함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저 혼자만의 문제라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통신을 끊고 사령관은 분주히 발을 움직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뒤틀림이 발생한 탓에, 대처 방법을 전혀 몰랐던 그는 목적지를 향해 폐가 찢길 듯 달리다가도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세이렌의 성격이 변한 이유를 사령관은 유추할 수 없었다. 대개 사람을 싫어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사령관은 모두가 자신을 이유 없이 싫어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자신에게 싫어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세상의 ‘오점’이라면, 도망간 어미는 인간을 닮은 괴물을 뱃속에 잉태한 것이며 아비는 더러운 피를 세상에 뿌린 셈이었다.

 

“욱…….”

 

바뀐 신체는 그를 오랫동안 달리게 해주었지만, 이 또한 잠시 빌린 육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속에서 욕지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간신히 목을 옥죄어 알싸한 고통만을 가슴팍에 품은 채 흐려진 시야를 소매로 벅벅 닦았다. 그를 좋아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하더라도, 그런 그라도 기다리고 있을 세이렌이 있는 곳과 뒤틀린 이야기를 바로잡을 곳으로 그는 내달렸다.

 

같은 시각 조금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선 워울프는 사색이 되어 뛰쳐나가는 사령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태양을 눈을 찡그리고 흘겨보았다. 계획, 생각과는 거리가 먼 자신과, 늘 걱정과 불안, 깊은 걱정을 안고 사는 사령관. 절대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없는 해와 달 같은 이들이 어쩌다 함께 있게 된 개기일식 날, 워울프는 사령관에게 내리 쬐는 따가운 빛을 가려주었다.

 

“나 원, 손이 많이 가는 남자네.”

 

그러나 사령관에게 여전히 고통스러운 햇빛을, 늑대는 인간의 형태로 사냥감을 쫓아 움직였다.

 

***

 

“커헉!”

 

세이렌에게 배를 걷어차인 트리아이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미 흠씬 두들겨 맞아 몸엔 흙먼지가 뒤덮여 있었고, 트리아이나는 필요한 일이었을지언정 모험심에 그녀의 심기를 거스른 것을 후회했다. 탐험은 엉망이었다. 아무리 탐험가가 늘 목숨의 위협을 받고 산다지만, 믿고 의지해야 할 동료끼리 싸움이 있어서는 안됐다. 사령관의 부탁은 가볍게 들렸으나,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부함장! 그만해요!”

“그, 그래. 네리가 봐도 이건 심해…….”

 

처음 보는 세이렌의 모습에 운디네와 네레이드도 제대로 말릴 생각도 못하고 발만 둥둥 구를 뿐이었다. 평소 함께 지내며 부대원들에게도 자신의 속내를 도통 드러내지 않던 세이렌이었기에, 둘은 서로에게 말려보라며 서로의 등을 떠밀 뿐이었다.

 

“우매한 년! 사령관님이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 감히 그 분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 험담을 해?! 그 멍청한 머릿속에 새겨 넣어! 사령관님은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우리를 백전무패의 승리로 이끌 분이야!”

 

이전까지 수줍어하던 의젓한 소녀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트리아이나는 있는 힘껏 등을 말고 땅에 넙죽 엎드린 채 발길질의 폭풍이 지나가기를 빌었다. 폭주 상태의 그녀를 막을 방법은 오직 사령관의 명령밖에 없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사령관을 원하는 것은 트리아이나였다.

 

“사령관님께선 그런 너 조차도 품고 가려하셨어! 통신할 때 널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결국 보다 못한 운디네와 네레이드가 각자의 품에 세이렌의 팔을 붙잡고 트리아이나와 거리를 벌렸다. 팔이 둘에게 매달린 채로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는 세이렌은 여전히 두려움에 바짝 엎드려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는 트리아이나에게 매서운 발길질 대신에 악에 찬 고함을 질러댔다.

 

포화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세이렌과 눈앞에서 죽어간 동료와 지휘관. 패배와 죽음이라는 쓰라린 기억이 뇌리 속에 꽂힌 그녀에게,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승리했다는 사령관의 업적은 그야말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런 사령관을 욕보인 트리아이나는 광신도 앞에서 신성모독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령관이 모두를 구원할 것이라는 그릇된 망상에서 시작된 신격화는, 말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살을 붙여 세이렌의 안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초월자의 인상을 남겼다.

 

“다들 동작 그만!”

 

다급한 사령관의 목소리가 호라이즌이 있는 해안가를 울렸다. 그제야 분을 삭인 세이렌이 사령관의 모습에 화색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대로 칭찬 받을 거란 기대와는 다르게 사령관은 세이렌의 옆을 지나쳐 트리아이나의 안위를 살폈다.

 

“…어?”

 

세이렌은 눈앞의 믿기질 않는 광경에 두 눈을 끔뻑거렸다. 다정한 그의 두 눈이 자신이 아닌 가증스러운 배교자에게 향하는 것도, 자신은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지나쳐선 쓰러진 배신자년을 사령관이 숨 막힐 듯 안아주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령관님… 어째서…?”

 

세이렌은 나지막이 사령관을 부르고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그의 뒤통수에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원근감으로 거리를 속인 눈 때문에 세이렌은 허공에서 팔을 휘저어야만 했다. 차갑게 등을 돌린 그의 모습에 세이렌은 하고 싶은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그 조그만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마치 그녀가 가진 사전에서 누군가 단어를 모두 지워버린 것 같았다.

 

“저, 잘했잖아요. 그년이 사령관님을 욕보였잖아요. 사령관님 대신에 제가-”

“세이렌. 이따가 얘기해.”

 

사령관은 세이렌의 말을 일축시키고는 트리아이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잠수복에는 무수히 많지만 작은 흙발자국이, 드러낸 맨살에는 쓸린 상처가, 바다색의 머리카락은 힘없이 헝클어져있었다.

 

“트리아이나, 괜찮아?”

“캡틴…….”

“어쩌다 이 꼴이 된 거야. 수복실로 갈래? 아니, 지금 가자.”

 

트리아이나를 일으켜 부축하려던 사령관은 명백한 거절의 손짓에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야기는 이미 틀어져버렸다. 이벤트, 게임 스토리의 속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트리아이나가 이렇게 다쳐서야 이야기의 진행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를 회복시킨 후, 비틀린 관계 또한 회복시키고 이야기를 진행하려했던 사령관은 트리아이나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쳤다.

 

“이대로 갈 순 없어. 회복이 먼저야.”

“…모험은 이렇게 끝나선 안 돼. 모험은 늘 즐거워야 한다고……. 세이렌을 너무 미워하진 마, 캡틴.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니까…….”

 

사령관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향해 뒤틀린 과정을 거쳐 결말만이 같은 형태로 이야기를 끝맺을 것인지, 모든 것을 무르고 관계를 회복시켜 완벽한 연기를 할 것인지.

 

세이렌의 경우는 마치 세뇌된 것 같이 광적으로 사령관을 따르고 있었다. 의젓한 모습 뒤에 숨겨진 그를 향한 맹신이 진실을 가리고 허상을 만들어냈다. 사실은 누구보다 여리고 소녀 같았음에도, 그녀가 가진 트라우마와 부재중인 지휘관 때문에 그녀에게 내려앉은 무게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녀의 마음의 짐을 사령관 자신이 덜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트리아이나. 난 잘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내린 결정은 대부분 오답이었으니까.”

“…쿨럭.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모든 게 꼬여버렸어. 완벽하게 준비했다 생각했는데, 계획이 틀어져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후후. 그건 캡틴 혼자 생각해봐야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모험이니까. 아마 이 모험의 끝에 캡틴이 원하는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해. 그렇다면 경험 없는 캡틴 대신에 내가 대장해도 되지?”

 

트리아이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고 활기차게 일어났다.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뉴 트리아이나’라며 새로 태어났다는 그녀의 말에 네레이드와 운디네도 어색한 웃음을 띠며 그녀와 사령관의 뒤를 따랐다. 세이렌만 빼고.

 

“저…, 사령관님.”

“…….”

“잘못, 잘못 했어요….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갈 곳을 잃은 손은 애처로이 그녀의 파란 스커트만을 움켜쥐었다. 아직 그녀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몰랐다. 단순히 기다리라는 명령을 어기고 트리아이나를 폭행한 것이 그녀의 잘못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사령관은 사령관대로 망가진 세이렌을 어떻게 돌려놓을지 고민했다. 그녀의 성격이 뒤바뀐 것은 필시 이야기에 영향을 끼쳤을 자신의 존재 자체일 확률이 높기에, 애매한 답변을 내놓을 바에 입을 다물고 트리아이나의 뒤만을 따랐다.

 

“사령관. 뭐라도 좀 해봐!”

 

운디네가 사령관과 세이렌 사이에서 분위기에 숨이 막힌다며 소곤소곤 말을 걸어왔으나, 사령관은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 또한 관계에 서툴렀고, 부함장 또한 관계에 서툴렀으니 일어난 일이었다. 운디네는 두 바보들 사이에서 맥이 빠질 것만 같았다. 따가운 햇볕에 이어 그녀는 이 어색한 공기를 마음 속 싫어하는 것 리스트에 추가했다.

 

“음! 보이십니까들? 이 불길한 동굴이!”

 

트리아이나는 의기양양하게 지도를 접고는 몸을 돌려 말했다. 자연이 빚어낸 동굴에, 인간이 빚어낸 욕심을 더해 금속제 철문이 굳건히 닫힌 상태로 탐사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앙헬의 금고…….”

“오! 미래를 보는 사령관! 정답이야!”

 

군사기업 ‘블랙리버’의 수장이었던 앙헬이 숨겨둔 금고. 사령관은 이미 본 정보대로 이 안에 무엇이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금화와, 무덤지기 AGS 두 기. 그 중 폭주한 한 기를 죽이고 나머지 한 기와 합류하게 된다. 이 동굴 입구에 서게 됨으로써, 이야기의 끝자락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다.

 

“그럼, 들어가 볼까!”

“잠깐 잠깐 잠깐. 이 인원들로는 부족해.”

“흐응? 캡틴, 또 미래를 본 거야? 모험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뻗는 것이 즐거운 거라구.”

“안전의 문제야. 적어도 워울프네가 오면 모를까…….”

“여, 나 찾았어?”

 

사령관의 귀에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르지도 않은 워울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여기 있다는 것은 페로와 샬럿, 나이트 앤젤, 발키리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침 잘 왔… 워울프, 나머지는?”

“무슨 소리야 나 혼자 왔는데?”

“비키니 해적단 어디 갔냐고!”

“뭐야 비키니 해적단이라니. 그런 걸 좋아하는 거야? 사령관은 안 그런 것 같아도 남자는 남자였네.”

 

사령관이 간과한 것은 비단 세이렌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메이를 달래러 간 나이트 앤젤, 행방이 묘연한 발키리, 리제와 소완과 시비가 붙지 않은 리리스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컴패니언의 페로, 그리고 곁에 아무도 없었던 샬럿까지. 모든 인과관계가 틀어져있었던 것을,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좆됐다.”

 

일이 잘못되었음을 통감하는 이때에도, 사령관의 속도 모르고 시간은 흘러 이벤트는 끝을 향해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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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희집 세이렌은 성격 죽이고 껄리는 복장으로 카페에서 일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