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방어선의 전투에 새롭게 찾아든 지원군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발이 묶여 당장이라도 공격당할 위기의 스틸 라인 분대, 


날개에 피탄당해 추락의 위기에 놓인 블랙 하운드, 


포신이 녹아내려 발포조차 하지 못하는 비스트 헌터와 파니.


심각하게 소모된 아군을 후퇴시키고 전선을 유지시킬 임무를 맡은 배틀메이드와 애니웨어의 공격으로, 철충들의 진격이 눈에 띄게 늦춰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후후후...소첩은 주인의 뜻을 대리할 뿐. 어떤 것부터 베어야...주인께서 더 기뻐하실지. 후후후후...!"


"아아...주인님. 어딘가 다치시진 않을지...너무 걱정이에요...차라리 이 관 속에 넣어서, 같이 다닐 수만 있었더라면..."


"하아...정말, 못된 아이들이 많아보이네요...? 아주 따끔한 '벌'이 필요한것 같아서...보람이 느껴질것같아...후후후."


애니웨어의 바이오로이드 중, 가장 전투력이 강한 셋의 활약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의지라도 가진 듯 휘릭휘릭 식칼을 휘두르고 던져대며 철충의 급소부위를 찌르고 잘라내는 소완,


거대한 관짝으로부터 공급되는 탄알을 비처럼 뿌려대는 이터니티,


온 몸에서 흐르는 전류를 터트려 적 전열을 박살내는 알렉산드라.


어딘가 광적이고 뒤틀린 집착과 묘한 희열을 느끼는 세명의 눈동자에는


'오직 사령관을 위해서'라는 맹목적인 무언가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저...레프리콘 상뱀."


"...왜그래요?"


"그...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한데..."


광소를 터트리며 철충을 농락하는 세 바이오로이드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싸우며 방어선을 지켜온 스틸 라인의 두사람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나서는게 아니라...처음부터 저분들이 나섰으면 방어선을 지키는건 그걸로 끝나는 일 아님...까?"


이제 갓 상병을 단 브라우니의 물음에, 곧 병장 진급이 다가오는 레프리콘은 바이저를 올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밑에 애들이나 데리고 후퇴하죠."


"아...옐겠슴다.."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아아, 참으로 아쉽사옵니다. 쇠는 요리의 재료가 될수 없는것이, 참으로 아쉽사옵니다!"


"아아...주인님. 빨리 주인님께 돌아가야 해요. 돌아가서 지켜드리지 않으면..."


"하아...하아...하하하핫...! 아직 '참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이렇게나...!"


각자 따로따로 흩어져 사방을 상대해야만 함에도, 세명의 얼굴엔 동요와 공포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옅은 홍조와 희열만이 있었을 뿐.


***




출처 - https://www.pixiv.net/artworks/93126046


"一揮掃蕩(일휘소탕), 血染山河(혈염산하)."

(한합 휘둘러 소탕하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파박..!


"₩#₩_&):_₩..."


"...후."


찰나와도 같은 휘두름과 함께 조용히 고어를 읊는 금란의 호위 뒤로, 레오나는 전선의 상황을 점검했다.


"보고드립니다. 현재 애니웨어 시리즈와 배틀메이드의 지원으로 아군의 상당수가 무사히 후퇴를 진행중에 있습니다."


"사상자는?"


"경상 다섯에 중상 하나 외 사상자 없습니다."


"...다행이네."


자매들을 산개시키고 후방에서 커멘드 프레임을 최대출력으로 전개한 레오나는 자매들을 내려다보며 퇴각의 시기를 고려하고 있었다.


난민의 후송은 종료되었고, 발할라와 스틸 라인, 스카이 나이츠, 애니웨어를 제외한 아군은 퇴각을 마쳤다.


"...이제 우리 차례구나. 스틸 라인 쪽은 어때?"


"고참 몇을 뺀 나머지 분대는 모두 복귀했답니다. 저희가 후퇴를 시작하면 자기들도 빠져나가겠다더군요."


"...정말. 먼저 뒤로 빼라 그렇게 얘기해도 듣지를 않네, 마리 소장은."


543번 님프 중위의 보고를 듣던 레오나는 이마를 짚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열에 남은 건 저 세명 말고는 없는거지?"


"예."


"좋아 그럼. 우리도 슬슬 물러나자."


레오나는 통신기의 채널을 변경하고 말을 이었다.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 폭스, 에코. 여기는 암사자. 모두 잘 버텨줬어. 이제부터 후열로 이동하면서 퇴각할 준비를 마치도록 해."


암사자의 등 뒤에 둥둥 떠다니며 붉은 빛을 쏟아내던 커멘드 프레임이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며 형태를 변환할 준비를 시작했다.


"커멘드 프레임은 무전 종료 후 방어진형으로 변경할거야. 각자 남은 탄 모조리 쏟아부어서 진격이 더디게 만들고, 물러서면서 저 세명에게 후퇴하라 말해두도록 해. 그리고..."


"레오나님!"


타닥..!


그때, 모든 명령을 내리고 무전을 끄려했던 레오나의 눈 앞에, 금란의 등이 보였다.


"조심하십시오!"


".....?!"


치잉-!


검을 빼들고 자세를 잡은 금란의 등 뒤에 선 레오나는 손에 든 권총을 앞으로 조준했다.


"뭐야?"


"...아홉기. 저희를 향해 다가옵니다."


동요하며 뜨여진 금색 눈동자에 비친 여섯 무리의 철충이 비춰지며, 금란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방울 흘러내린다.


"...설마, 여기서 보게될줄은 몰랐는데...!"


쿵. 쿵. 쿵.


천천히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레오나는 목도했다.


"....저건...!"


흉흉한 외눈의 안광을 흩뿌리며 걸어오는 거구의 실루엣을.


"발할라! 지금 즉시 전선 이탈해! 전방에...!"


금란의 표정처럼 굳어버린 레오나는 급하게 자매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으나,


"옵니다!"


무전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겠다는듯 '그것'이 뛰쳐들었다.


"...큭!"


***


"후~...이거야 원. 이제야 숨좀 돌리는군."


수통의 뚜껑을 열고 시원하게 물을 들이킨 아스널의 말에, 부관인 비스트 헌터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진걸 전부 쏟아부었는데도 부족할 지경이라니, 대체 얼마나 몰려드는 건지."


"음. 확실히, 아쉬움이 남기는 하는군. 저 빌어먹을것들을 하나라도 더 족쳐놓고 싶었는데 말이야."


"...에밀리가 듣고있습니다, 대장. 언행에 주의를.."


비스트 헌터가 멍하니 제녹스에 걸터앉아있는 에밀리를 흘기며 조용히 말하자,


"하! 오히려 더 들어서 배워야지! 그래야 기백이 생기고, 근성이 생기는 법이니까!"


아스널은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쳤다.


"저 씹어죽여도 시원찮을 벌레새끼들을 잡아족칠때 가장 필요한건 바로 욕이거든!"


"...하아."


"하하하. 어떤 때여도 여전하네, 우리 대장."


"뭐, 그게 아스널 대장이잖아."


곁에 서서 두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던 파니와 레이븐이 키득거리며 말하자,


"...좀 자중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비스트 헌터는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스널을 바라봤다.


"...대장. 제녹스가 괜찮냐고 물어보고있어."


"나는 물론 괜찮다! 고생은 너희가 다 했으니까 말이야! 하하하하하!"


"...응. 다행이야. 아까 대장, 표정이 어두워서 신경쓰였는데."


에밀리가 살풋 웃으며 말하자, 아스널이 다가와 에밀리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런 두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던 비스트 헌터와 파니, 레이븐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쓴웃음을 지어보인다.


캐노니어 전원의 탄약을 공급하고, 포신을 교체하고, 포격좌표 송신과 각종 지휘를 도맡아하면서도,


잠시 흐르는 땀을 닦아내곤 부대원 앞에 서서 아무렇지 않다는듯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죠. 오르카로."


비스트 헌터의 말에 세사람이 아스널을 향해 걸어갔을때,


"범고래가 전 대원에게! 긴급상황이다!"


현장에 머물러있던 모든 대원을 향해 사령관의 다급한 무전이 들려왔다.


"현재 시에라 지점에 '사이클롭스 TYPE - X' 아홉기가 출현했다! 복귀를 마친 대원은 재무장을 마치고 출격준비를 마치고, 복귀하지 못한 대원들은 신속히 후퇴해!"


다급한 무전이 끊겼고, 아스널은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시에라 지점을 바라본다.


"...사이클롭스가...아홉기?"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대원들은 시에라를 기점으로 산개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은?


"레오나...!"


차갑고 건조한 겨울바람이, 아스널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


아이에에에에에


주말근무? 주말근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