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PECS 콘소시엄은 일곱 회사가 필요에 따라 맺은 동맹입니다. 인류가 망하지 않았다면, 과연 일곱 회사는 언제까지 콘소시엄 체제를 유지했을까요?"


 

 통신을 종료하고 나서 몇 시간 후.


 라비아타는 아르망과 에바, 유갈리안티-205와 함께 괌의 모래사장으로 공간전이했다. 


 처음 겪는 공간전이는 그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평범한 느낌이었다. 유갈리안티-205는 충격에 대비하라고 했지만 그녀들이 느끼기에는 그저 그녀들 주변의 풍경이 갑자기 바뀐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혹시라도 없어진 물건이나 몸에 이상은 없는지,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도착했는지 확인한 세 사람이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근처에 테이블을 세팅해놓고 그 위에다 뭔가를 잔뜩 차려놓은 괌 주민들과 두 레모네이드, 그리고 이들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위압감을 자랑하는 두 커다란 기계 거미가 보였다. 몸 곳곳에서 녹색의 빛을 뿜어내는 검은색의 거대한 기계 거미들의 모습이. 


 잠시 유갈리안티-205를 돌아보고, 타이거샤크 근처에 있을 유갈리안티-163의 외형을 떠올린 라비아타가 다시 테이블 근처에 버티고 선 두 유갈리안티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유갈리안티의 외형은 두 기계 거미들의 모습이고, 무언가 철충이나 괴물에게 감염되어 형태가 변형된 것이 163과 205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일단 머릿속에 담아둔 라비아타가 그녀들을 기다리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똑바로 걸어가고, 에바와 아르망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라비아타를 맞이하는 세레스티아와 주민 대표로 나온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에는 불안감과 경계심이 가득했고, 반대로 두 레모네이드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갈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비아타와 아르망은 아무 표정도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한 채로, 그리고 에바는 어디 무슨 말이 나오나 들어나 보겠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자리에 앉았다.


 "레모네이드와 함께 마시는 레모네이드라."


 "그거 저희가 치려던 드립인데요."


 "먼저 치지 그랬니?"


 테이블 위에 놓여진 레모네이드를 본 에바가 말장난을 하자 레모네이드 에타가 살짝 삐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투덜거렸고, 에바가 별로 듣기 좋지 않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잠시 입을 삐죽거린 레모네이드 에타가 표정을 다시 고치는 모습을 보면서 라비아타와 세레스티아는 저게 의도적인 행동인지 아니면 그녀 특유의 성격에서 나온 행동인지를 파악했다.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들이킨 레모네이드 에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이 섬에 관심이 무척 많은 모양이더군요."


 괌에 사는 그 어떤 바이오로이드들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고, 라비아타와 에바에게 있어서는 철천지 원수인 바이오로이드의 이름이 언급되자, 말을 꺼낸 이가 예상했던 반응들이 되돌아왔다. 


 레모네이드 오메가를 증오하는 두 바이오로이드들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고, 세레스티아를 비롯해서 괌 주민들의 대표 바이오로이드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타이런트를 일대일로 꺾을 수 있는 기계들이 둘이나 있는데다 옛 3대 기업의 연구시설들이 모여 있고, 거기에 제법 큰 바이오로이드 공동체도 있고, 지리적인 여건도, 환경도 좋죠. 오메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감마나 델타, 람다라도 군침을 흘릴 만해요."


 "......그리고 당신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군요."


 "부정은 않겠어요."


 아까 전보다 싸늘해진 목소리로 추궁하는 세레스티아에게 레모네이드 에타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제가 장담하는데 오메가가 이 섬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여러분이 저와 손을 잡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훨씬 나을 거에요."


 "......어째서죠?"

 

 괌의 주민 대표 중 하나가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레모네이드 에타가 곧바로 대답했다. 


 "오메가는 여러분의 안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오메가나 감마, 델타의 지배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라비아타 님도, 세레스티아 님도 아주 잘 알고 계실 거에요."


 "......다들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지요."


 그나마 PECS에서 온건파에 속하는 에타와 세타, 람다의 휘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 반해서 강경파이자 충성파인 세 레모네이드들의 영역에 사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세레스티아가 레모네이드들, 특히 오메가나 감마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지만 자기들 앞에서 오메가와 다른 자매들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에타와 세타도 썩 신뢰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라고 해서 딱히 신뢰가는 존재가 아님을 두 레모네이드도 잘 알고 있었다.


 "저희는 펙스 콘소시엄에서 두 축을 맡고 있어요. 비록 오메가나 감마, 델타에 비하면 세력이 작지만, 셋이라고 해서 저희와 저희가 이끄는 세력의 존재를 무시하진 못해요. 그런 저희가 여러분과 동맹을 맺었다면 오메가나 감마라 하더라도 여러분을 건드릴 수 없어요."


 아무리 서로를 잡아먹을 기회만 노리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다른 레모네이드의 세력을 대놓고 빼앗으려 든다면 이는 바로 현 PECS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 


 비록 약한 이를 제일 먼저 잡아먹는 것이 이치라고는 하나, 여섯 레모네이드들은 그런 짧은 생각으로 다른 자매를 공격했다가는 바로 공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일 적이 없다면 몰라도 철충이라는 적에 더해서 정체를 알 수도 없고, 제대로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괴물들까지 날뛰는 현 세상에서 무기를 서로에게 들이대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에타와 세타가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오메가나 감마, 델타도 이들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알파처럼 대놓고 PECS와 다른 자매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나간 게 아닌 이상은.


 물론 에타와 세타도 오메가를 달래기 위해서 괌에서 얻어낸 것들 일부를 오메가에게 선물로 줘야겠지만 그 정도는 둘에게 있어 큰 대가가 아니다. 


 괌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괌에 있는 3사의 연구 시설들에서 기술과 유전자 씨앗, 오리진 더스트를 가져갈 수 있다면, 그리고 라비아타가 지키고 있는 시젠을 그녀들의 손아귀에 넣음으로서 라비아타와 강력한 다섯 AGS를 그녀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물론 저희도 강요하지는 않겠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여러분께서 저희 둘과 손을 잡아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에요."


 세레스티아와 라비아타가 마음 속으로 퍽이나, 라고 중얼거렸고, 에바 역시도 마음 속으로 놀고 있다고 비아냥거렸다. 


 오메가가 괌을 노리고 있는 이상 눈 앞의 두 레모네이드와 손을 잡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라비아타가 무적의 용과 그녀 휘하의 호라이즌 함대를 깨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오메가뿐 아니라 무적의 용과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레모네이드 감마의 어그로까지 같이 끌게 될 것이다. 전력의 약화를 우려해서 오르카 저항군과의 충돌을 회피하는 감마지만, 무적의 용과 한판 붙을 수 있다면 전력이 박살이 나건 자기가 죽어나가건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적의 용을 깨워서 오르카 저항군에 합류시킬 생각인 라비아타는 무적의 용의 함대가 괌을 지키기 위해서 괌에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을 대표들과 시선을 주고받은 세레스티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메가와 맞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그렇다고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와 손을 잡자니 신뢰가 가지 않았다. 분명히 이들 둘의 휘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지만, 이들이 언제 어떻게 변덕을 부릴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들을 이용해 먹으려 들지 알 수 없었다.


 오르카 저항군과 손을 잡자니 그 수장이라는 인간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었고, 저항군의 힘으로 PECS와 맞설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라비아타와 손을 잡자니 라비아타가 거느린 세력이 너무 작기도 하거니와 시젠이라는 불안 요소가 너무 컸다. 타이런트를 박살낼 정도의 전투력에다 공간이동이라는 지구상 그 어떤 세력도 완성하지 못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초대형 AGS를 다섯이나 데리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오메가와 감마를 막기엔 불안했다.


  이미 세레스티아와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상한 에타와 세타가 라비아타와 에바, 아르망을 쳐다보았다. 너희는 어쩔 거냐고 묻는 그 눈빛을 본 세 바이오로이드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무표정한 얼굴과 눈빛을 유지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세레스티아가 에타와 세타와 손을 잡는 것은 확정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들도 에타와 세타의 손을 잡아야 세레스티아와 무슨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되는 리스크가 크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그녀들도 이 불편한 동맹 관계에서 나름대로 이득을 챙길 수 있고, 에타와 세타가 어떤 식으로 나오느냐에 따라서는 시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두 레모네이드가 가진 자산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원하는 건 뭔가요?"


 "여러분의 섬에 있는 연구 시설들을 좀 둘러보고 싶어요. 그 이외에는....... 딱히 없네요."


 식량이라면 이미 레모네이드 에타의 영역에서 충분한 양이 생산되고 있어서 굳이 괌에서 가져갈 필요가 없고,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을 병사로 끌고 갈 생각 또한 없었다. 안 그래도 자신들에 대해서 반감도 불신도 상당한데 이것저것 요구할 생각도 딱히 없고, 이들에게 자신들이 딱히 괌에서 뭘 뜯어간다거나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다시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의 시선이 라비아타에게 향하자 세레스티아와 괌 대표들의 시선도 따라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각자 당신은 어떻게 할 거냐, 그리고 당신은 또 뭘 원하냐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받은 라비아타가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바로 대답을 들려주는 대신 우리에게 뭘 원하는지 한 번 말해보라는 듯한 라비아타의 시선을 받은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가 곁눈질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명백하다. 


 시젠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젠을 원하니 시젠 내놓으라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고, 그런 말을 대놓고 할 두 사람도 아니다.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레모네이드 에타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희는 라비아타 님과 라비아타 님의 자매님들, 그리고 시젠 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있어요. 저와 세타는 라비아타 님과 시젠 님과의 우호적인 관계와 밝은 미래를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용의가 있구요."


 물론 그것은 라비아타 일행이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와 최소한 손을 잡았을 때의 이야기다. 거기다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 단언하는 대신 그럴 용의가 있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말을 애매하게 하는 건 덤이다.


 "저희에게 신경을 써주셔서 고마워요, 레모네이드 양. 저희에게 신경써주시는 만큼 괌에 거주하시는 분들에게도 지원을 해주실 뜻이 있으신 것이겠지요?"


 "물론이지요."


 잠깐 에타와 세타의 눈빛에 이 년 봐라? 하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동맹을 맺은 이상 괌에 어느 정도 지원을 할 생각 자체는 있었지만 라비아타가 이렇게 못을 박아버린 이상 지원해줘야 할 규모가 그녀들이 계산했던 것보다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정작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이 여자는 또 무슨 꿍꿍이 수작이냐, 하는 표정들이었지만 라비아타도, 에바도, 아르망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한숨을 한 번 내쉰 라비아타가 현재 그녀들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녀들의 약점을 외부인에게 노출하는 행위나 다름 없기는 했지만,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의 불신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힘과 동시에 자신들이 괌의 연구시설들과 그 안의 자료들에 접촉해야 하는지 정당성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고, 지금 시젠과 타이거샤크가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공개함으로서 레모네이드들이 함부로 시젠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라비아타가 이야기를 끝내자, 이야기를 들은 주민 대표들이 다들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가 가진 단말기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녀들이 두려워했던 대로 시젠과 바이오로이드들이 접촉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러나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와 동맹을 맺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유갈리안티와 레이라미아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라도 라비아타 일행과도 연결 고리를 만들어둘 필요가 있어 보였다.


 괌 주민 대표들에 비하면 두 레모네이드들은 비교적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시젠이나 타이거샤크 일행이 자신들의 수중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고, 일이 좀 더 복잡하게 돌아갈 것 같았다.

 

 그렇기는 해도 이 자리에서 라비아타와 세레스티아가 결국 자신들의 손을 잡을 거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린 결정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정한 두 레모네이드가 빈 컵에 레모네이드를 따르면서 주민 대표들이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저희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여러분과 동맹 관계를 체결하고자 해요."


 "......저희 또한 여러분과 동맹 관계를 맺는데 동의해요."


 "여러분의 결정에 대해 감사드리는 바예요."


 여전히 떨떠름해하는 기색을 숨기려 애쓰는 세레스티아와 주민 대표들, 무표정한 얼굴의 라비아타와 아르망, 에바, 미소를 짓고 있는 레모네이드 세타와 에타가 악수를 주고받았다.


 세 세력이 동맹을 맺는 것이 결정되었으니, 이제 그에 따라서 무엇을 주고 받을지, 얼마나 주고 받을지를 결정해야 할 차례였다.

  

 두 레모네이드들은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세 연구시설과 그 안에 있는 시설 및 기술에 대한 공개를 요구했고,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시젠과의 연락 및 교류, 그리고 유사시 유갈리안티들을 자신들에게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은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세 연구시설의 진입과 그 안에 있는 기술과 유전자 씨앗 또는 AGS의 설계도, 그리고 시설 또는 핵심 부품 일부를 가져가는 것을 허락해줄 것과 더불어 식량이나 생필품의 교역 및 섬의 시설의 사용권을 요청했고, 두 레모네이드들에게는 다른 레모네이드들의 세력이 타이거샤크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시젠에게 손을 뻗지 못하게 해 줄 것, 그리고 시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협력해줄 것을 요구했다.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두 레모네이드와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다른 레모네이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 및 견제와 더불어 자신들의 생활에 대해 간섭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여기에 더해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시젠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젠과 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접촉하지 않게 해줄 것과 더불어 레이라미아와 유갈리안티를 섬에 주둔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서로 상대가 어떤 요구를 해올 것인가,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요구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한 바도 있었고 서로에게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가져갈 생각도 최소한 아직은 없었기에 협상 자체는 큰 마찰이나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이 있었다.

 

 [삼안 산업의 연구시설에 언데드 내지는 유사-언데드 생명체가 다수 감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레이라미아-122의 관측에 따르면 처음 관측되었을 때보다 그 숫자가 더 늘어났습니다.] 


 "언데드면 언데드지, 유사-언데드 생명체는 또 뭐니?"


 에바의 질문에 유갈리안티-205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무감정한 기계가 늘어놓는 설명이다 보니 설명 그 자체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었지만 그 괴물을 감당해야 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유갈리안티-205가 하는 무미건조한 설명을 빠짐없이 들었다. 


 "죽은 시체를 기반으로 하거나, 그 사념이 물리적인 형태 내지는 생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한 것인가요......"


 지금까지 상대한 두 종류의 괴물에 대해서 떠올린 라비아타가 중얼거렸다. 


 사라지기 직전에 시젠과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아쿠아팰리스의 괴물. 


 그리고 끊임없이 증식하면서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협했던 수중기지의 괴물들.


 전부 유갈리안티-205가 설명한 언데드 및 유사-언데드 생명체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가요?"


 [저희도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저희가 이곳에 온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만 추측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구로 날아올 때 괴물들도 같이 날아왔거나, 혹은 그러한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같이 딸려 왔다는 소리일 수도 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그에 대해서는 천천히 조사해보도록 하지요. 일단은 삼안 산업의 연구시설을 점거하고 있는 그 괴물들을 어떻게 할지부터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계속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레모네이드 세타의 말에 그 자리에 모인 바이오로이드들의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방금 전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의 표정에서도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유갈리안티 님, 만일 괴물들과 정면으로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저희가 우세하다고 예상되지만, 승산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정면 대결은....... 힘들겠군요."


 저 유갈리안티들과 레이라미아가 승산을 확신할 수 없다고 할 정도면 정면 대결로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은 위험했다. 


 한참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이 라비아타에게로 모였다. 저항군의 지도자이자 최강의 바이오로이드인 당신이 그나마 전투에 대해서는 제일 노하우가 많지 않냐는 의미가 담긴 그 시선을 받은 라비아타가 레오나와 홍련의 의견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때, 레이라미아-122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은 유갈리안티-113이 이를 전달했다.


 [긴급 상황입니다. 시젠 아가씨가 삼안 산업 연구시설 내의 괴물들과 접촉하셨습니다.]


 유갈리안티-113의 말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바: 아하하하하 우리 꼬맹이가 또 트롤짓을 하네 아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