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무슨 일이 있었죠?”

 복도 저편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걸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비서인듯한 바이오로이드가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키리시마 이치카는 그 바이오로이드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아마미야 카구라가 데리고 있는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아마미야가 그녀의 바이오로이드를 무어라 부르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조금 소란이 있었던 듯 하네요.”

 키리시마 이치카는 알면서 묻냐는 듯 대답했다. 이미 이곳에서 총을 쏘았던 경비원들이 보고를 마친 뒤겠지. 키리시마는 그새 들고나온 위스키를 한입 마시고는 벽에 기대섰다.

 “보안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아무래도 이런 행사는 처음이다보니 저희 직원들이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의원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마미야는 죄송하다는 듯, 몸을 굽혔지만 키리시마에게는 그것이 사과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이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협박에 가까웠다.

 “그런데 말이죠.”

 키리시마는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우려할 것도 당연했다. 덴세츠 사이언스의 비밀을 파헤치는 기자와 자신의 관계. 그것에 대해 캐묻겠지.

 “그 기자 말이에요. 보아하니 의원님과 아는 사이 같던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역시 아마미야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질문의 답 역시 이미 알고 질문한 것일까. 키리시마는 숨길 것이 없었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덴세츠 사이언스 정도 되는 기업이라면 잡지 몇장만 들춰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예전,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 기자에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름을 알게 되면서 관계가 틀어졌지만요.”

 덴세츠 사이언스가 벌인 일 때문이었다. 함께 일본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세토 토오노의 죽음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지게 되었다. 최소한 키리시마 이치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뭐, 동료가 적이 되는 건 정치계에서 흔한 일이죠.”

 아마미야는 구멍이 난 가벽으로 걸어가 바깥을 훑어보았다. 그 벽을 뚫은 누군가. 키리시마가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츠시타와 함께하고 있는 것을 얼핏 본 것 같았다. 그 여자아이에게 그런 힘이 있다니. 놀랄 일이었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마츠시타 쥰이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몰랐다. 키리시마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죠. 재계에서 적이란 단순히 맞은 편에 서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적이란 존재해서는 안되는 존재에요. 독점방지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저 아래 바닥으로 던져야할 존재죠.”

 그렇게 말한 아마미야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키리시마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바이오로이드는 아마미야에게 다가와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렇게 말이죠.”

 아마미야는 그 바이오로이드의 옷깃을 잡더니 그대로 난간밖으로 잡아당겼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바이오로이드는 순식간에 난간 너머의 어두운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떨어지면서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죠?”

 그녀는 바이오로이드를 죽였다. 아니, 키리시마 법에 의하면 바이오로이드를 파괴했다. 그것도 아무 것도 아닌양. 물가에 돌을 던져 튀기는 물을 보는 양 바이오로이드를 파괴했다. 키리시마는 아마미야가 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능한 바이오로이드같으니. 발을 헛딛어서 벽을 부수고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날 줄이야.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데 말이죠. 안그런가요, 키리시마 의원님?”

 난간 아래를 내려보던 아마미야는 키리시마를 향해 돌아보며 물었다. 키리시마는 갑자기 일어난 충격적인 일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키리시마는 그저 웃으며 바이오로이드가 떨어진 방향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재계는 말이에요. 동료란 게 없어요. 모두가 적이죠. 동료라 생각하는 존재는 아직 적이 되지 않은 적일 뿐이에요. 당신도, 이 자리에 있는 다른 VIP들 전부 제게 있어서는 잠재적인 적이에요. 당신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할 순 없어요. 저는 저들을 안심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만들 의무가 있어요.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야 해요. 그리고 실제로 그랬고요.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만 사고로 바이오로이드 한기가 파괴되었을 뿐이죠. 오늘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마미야는 손짓으로 경비원을 불렀다. 경비원은 그녀에게 달려왔고 아마미야는 경비원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빼들었다. 경비원은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았다. 아마미야의 명령과 행동이라면 뭐든 따른다는 듯.

 “그리고 무슨 일을 겪은 VIP도 없어야 하는 거죠.”

 담배를 문 아마미야는 마츠시타 쥰이 나온 방으로 총을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방에서 몇발의 작은 총성이 들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총소리였다. 조금 뒤 아마미야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경비원에게 권총을 던지며 말했다.

 “방에 있는 바이오로이드 2기는 폐기해주세요.”

 정말로 바이오로이드를 말한 것일까. 키리시마는 방 안을 굳이 살펴보지 않았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무것도 아닌양 VIP를 죽인 그녀였다. 키리시마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자신은 그저 아직 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있는 것 뿐이었다. 만일 자신이 위협이라 생각된다면 그녀 역시 죽게 될 것이었다.

 “아, 재떨이가 없네.”

 아마미야는 평소대로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이름없는 바이오로이드의 입에 담배를 버리려 했지만 그 바이오로이드는 벽에 난 구멍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혀를 차면서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 구멍 밖으로 날아가게 했다.

 “그럼 의원님,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기자 말입니다. 그 기자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보아하니 용케도 도망친 모양이더군요. 과연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허술하게 일을 맺을 순 없는 법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키리시마는 아마미야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알아내겠지.



 “마츠시타! 마츠시타!”

 대체 자신의 이름을 몇번이나 부르는 것인가. 그리고 자신은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마츠시타는 눈을 떴다. 그녀를 반긴 것은 붉은 빛에 물들어 있는 천장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다. 덴세츠 사이언스의 경비원들에게서 도망쳐 쓰레기 투입구로 도망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곳은 쓰레기장이겠지.

 토모가 부르는 것을 보니 최소한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죽은 것인가 의심할 틈도 없이 그녀의 코를 악취가 자극했다. 쓰레기통답게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마츠시타의 코를 찔렀다. 무슨 냄새인지 알 순 없지만 쓰레기통에 코를 박고 냄새를 구별할 일도 없는 마츠시타였다. 무슨 냄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결국은 쓰레기의 냄새였다.

 “그만불러. 일단 여기서 나가자. 나가는 길에 옷도 사고 목욕탕에서 씻기도 하고 말야.”

 마츠시타는 축축한 쓰레기장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손으로 짚고 일어나려는 순간 마츠시타의 손이 미끄러지며 마츠시타는 몸을 일으키다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뭐가 이렇게 축축한 거야. 마츠시타는 토모가 자신을 놀릴까 걱정했지만 토모는 마츠시타의 생각과는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뭘 먹고 버린 거야. 치킨 튀긴 기름이라도 버렸나...”

 “마츠시타.”

 토모의 목소리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보지 못할 것을 보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여긴 쓰레기장이 아니야.”

 토모의 말에 마츠시타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쓰레기장이 맞잖아. 그런 생각을 하던 마츠시타는 그대로 멈추어서고 말았다.

 쓰레기장. 이곳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쓰레기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츠시타와 같은 사람은 이곳을 쓰레기장이라 부를 수 없었다. 마츠시타는 조금전부터 자신이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츠시타의 코를 찌르는 악취는 쓰레기가 썩으며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생명체가 죽음을 다하고, 혹은 죽음에 가까워진 생명체에서 나는 핏냄새, 살이 썩는 냄새였다. 마츠시타의 몸을 적시고 있던 것은 콜라도, 튀기고 남은 기름이 아니었다. 피였다.

 이곳은 작동불능이 된 바이오로이드를 모아놓은 곳이었다. 여기저기에 바이오로이드의 시체와 살조각, 뼛조각, 그들이 입고 있었던 옷과 갑옷과 들고있었던 무기가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그들은 아무 경의나 존중도 없이 마치 쓰레기인양 마구 버려져 있었다.

 마츠시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누가 바이오로이드를 위해 장례를 치뤄주고 장례를 치루고 묻어주겠는가. 산 바이오로이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죽은 바이오로이드는 아무 가치도 없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는 그들이었다.

 마츠시타는 카메라를 들었다. 역겨운 장면이었다. 이 모습을 머릿속에 담고 싶지 않았다. 이런 현실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의무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 광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바이오로이드의 현실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자신들이 즐기는 욕망의 이면에 어떤 추악한 모습이 있는지 말해야 했다.

 역겨웠다.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이제는 위를 토해내야 할 것 같았다.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배를 부여잡은 마츠시타는 다른 손으로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고 이 나라가 바뀌길 바랬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과 희생은 무의미한 것이 될 테니.

 “토모, 말해줘.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현실의 몸은 재활용 쓰레기 트럭의 천장에 누워서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야. 이런 현실은 그저 내 악몽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말야.”

 “마츠시타...”

 현실이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현실은 부정당하지 않는 존재였다. 현실이 마츠시타를 부정하는 일은 있어도 마츠시타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현실은 마츠시타의 어깨와 무릎을 짓눌렀다. 어떻게 이런 현실이 있을 수 있느냐. 마츠시타의 말에 현실은 이렇게 답하곤 했다. 이게 현실인데 어쩔 거냐고.

 마츠시타는 무력하게, 힘없이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마츠시타?”

 “토모?”

 그들이 서있는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마츠시타와 토모는 자신들이 서있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방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컨베이어벨트 위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 컨베이너 벨트의 끝, 천장을 붉게 물들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곳에서 발하는 열기와 소음은 마츠시타의 얼굴로 날아왔다.

 “전부 다 태울 생각이야. 죽은 바이오로이드를 전부 다 태우고 있다고. 자칫하다간 우리마저 다 타버릴 거야!”

 마츠시타는 주위의 출구를 찾아보았다. 어두운 방에 빛이라고는 바이오로이드를 태우는 불빛밖에 없었다. 어두운 곳에서 벽에 무엇이 붙어있는지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둘이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두 사람과 바닥에서 불타오르는 화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위쪽에서 덜컹거리던 소리가 들리더니 시체 한구가 떨어졌다. 토모의 바로 앞이었다. 토모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고 그 시체를 본 토모는 한층 더 놀랬다.

 “마츠시타! 이 남자! 조금 전 그 남자야!”

 남자? 마츠시타는 토모의 앞에 떨어진 시체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조금전 토모가 기절시킨 남자였다. 그의 머리에는 총에 맞았는지 구멍이 뚫려있었다. 이게 무슨일이란 말인가. 이 사람은 VIP였다. 그런 사람을 죽여서 바이오로이드를 버리기 위한 소각장에 던지다니. 사람을 이토록 간단히 죽인다는 것을 마츠시타는 믿을 수 없었다.

 혹시 자신 때문인가. 마츠시타는 죄책감마저 들고 있었다. 토모가 남자를 주먹으로 때린 것은 신이 났지만 이렇게 죽을 줄은 알지 못했다. 만일 마츠시타가 아니었다면 이 남자는 위에서 바이오로이드를 괴롭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었다. 마츠시타의 속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화구의 열기는 마츠시타의 정신을 되돌려보내주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마츠시타는 일단 이곳에서 나서야 했다. 죽은 남자의 사진을 찍은 마츠시타는 다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출구를 찾은 것은 토모였고 그녀는 의외의 장소에서 찾아냈다.

 “출구야! 저 다리 너머에!”

 다리. 이곳에 다리라니. 마츠시타는 토모가 말한 방향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한쪽 벽을 채운 화구의 위, 도개교식 다리가 하나 접혀있었고 그 뒤에 나갈 수 있어보이는 문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문이 나있지 않았다. 걸어서 열 수 있는 벽이 있다면 아직 죽지 못한 바이오로이드가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갈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까.

 “토모, 넘어갈 수 있겠어?”

 “당연하지!”

 토모는 도움닫기를 하더니 가뿐히 뛰어 도개교 위에 올라갔다. 이제 마츠시타의 차례였다. 당연하게도 마츠시타는 그 거리를 뛸 자신이 없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은 뛰어서 넘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겠지. 마츠시타가 넘어가기 위해서는 토모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개교를 내린다면 마츠시타라 해도 넘어갈 수 있겠지.

 “토모! 다리 내릴 수 있겠어?”

 “잠시만 기다려봐!”

 토모가 패널을 조작하자 다리는 천천히 떨리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츠시타도 천천히 그 다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마츠시타의 발목을 붙잡았다.

 “꺄악!”

 마츠시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의 모든 털이 바짝 위로 오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차가운 손이 자신의 발목을 세게 쥔 것이었다. 마츠시타가 발을 흔들었지만 그 손은 자신의 발목을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 때문에 발을 제대로 흔들 수도 없었다.

 “도와... 주세요...”

 그 말 소리에 마츠시타는 흔들던 발을 멈추고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한 바이오로이드였다. 마츠시타는 그 바이오로이드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이름이나 있는 바이오로이드였을까. 입에서 피를 흘리는 그 바이오로이드의 하반신과 다른 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머리와 팔뿐인 그 바이오로이드는 마츠시타의 다리를 붙잡고 살려달라 말하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었다. 그 바이오로이드가 강한 힘으로 마츠시타의 다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바이오로이드를 뒤에 두고 토모에게 갈 수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저 바이오로이드를 구해줄 수도 없었다. 곧 죽을 것이었다. 그것은 의학지식이 없는 마츠시타라 해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앞으로 흘리게 될 것인가. 그정도 피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구할 수 있을지를. 이 바이오로이드를 구하고 자신도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마츠시타! 뭐해! 빨리 다리로 올라와!”

 토모가 외쳤다. 마츠시타가 고민하는 사이, 컨베이어 벨트는 움직이고 있었고 마츠시타는 화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리에 서있는것만으로도 살이 익을 것 같은 위협적인 열기였다. 불에 닿기도 전에 타버려 재가 될 것처럼 느껴졌다. 움직여야 했다. 바이오로이드의 팔을 뿌리쳐야 했다. 그러나 마츠시타는 그럴 수 없었다. 아니면 이 바이오로이드를 구해야 했다. 그러나 마츠시타는 그럴 수 없었다.

 선택에 기로에서 마츠시타는 선택할 수 없었다. 마츠시타는 바이오로이드를 보았다. 더 이상 말이 없는 바이오로이드의 눈에서는 생기가 돌지 않았다. 힘 없는 얼굴에서는 그저 눈물과 피만 흘러내릴 뿐이었다. 마츠시타는 다리를 움직였다. 바이오로이드는 더이상 마츠시타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다. 바이오로이드의 팔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츠시타!”

 토모가 불렀지만 마츠시타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누가 이들을 인간이 아니라 한단 말인가. 마츠시타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들은 이렇게 쓰레기같이 버려져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마츠시타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걸어갔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람들이 알게 해야 했다. 이곳과 같은 일은 더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이런 고통을 받는 바이오로이드가 더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마츠시타는 다리 위로 올라갔다. 마츠시타의 발 아래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화구로 떨어졌다. 수많은 목숨이 하찮은 파리떼마냥 버려지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눈물을 닦았다. 나약한 마츠시타로 있을 수 없었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 마츠시타는 강해져야 했다. 몸은 강하지 못해도 마음만은 강해야 했다. 그래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