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37576959


---------------------------------------------------------------------


게임 세계에 끌려온 사령관은 매일 밤 자신만을 위해 깨끗이 정리된 방의 침대에 누워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마치 ‘통속의 뇌’처럼 게임의 세계에 끌려왔다는 사실이 거짓이고, 현실의 자신은 시체처럼 누워 자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 이 세상에서 자신이 이룬 것들이 모두 거짓, 허상이고 다시 어둡고 침울한 세계에서 형편없고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으로 깨어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매일 밤 사령관을 괴롭혔다.

 

사령관이 살던 곳에서의 신은 실패를 윤허하지 않으셨다. 성공을 낚기 위해서는 실패라는 덫을 깔아야만 한다고 성공을 낚은 사람들이 불쌍한 물고기들을 현혹할 미끼를 던졌다. 사령관 같은 이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에 매료되어 고통스러운 미끼를 물고는 세상의 유수에 몸을 맡겼다.

 

미로 같은 삶에 갇혀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탈출구를 찾았다. 성공은 어느새 강박이 되어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신적인 구석으로 내몰았다. 정작 신은 탈출구를 만들어 두지 않으셨다. 그저 인간들이 살아있는 모든 시간을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을 유희로 삼았다.

 

욕심 많은 인간들이 신의 자리에서 그 광경을 즐기고파 마침내 부를 과시하여 쌓아올린 건축물이 하늘에 닿았을 때, 신은 아래로 철의 사자를 보내어 교만한 인간에게 신벌을 내리신 것이 분명했다. 사령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성공에 대한 강박, 그 강박이 문제였다.

 

“죄송해요. 사령관님.”

 

사령관의 눈앞에 연주황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고개를 숙였다. 늘 밝게 웃는 것이 매력적인 소녀의 얼굴에 보기 드문 그늘이 졌다. 사령관의 이미 알고 있듯이 백토는 자신이 세뇌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모모가 뽀끄루에게 세뇌된 상태라며 그녀를 힐난했다.

 

“죄송할 것까지야.”

 

사령관은 백토를 데려오는 데 실패한 모모에게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성공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사령관은 그녀를 위한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에 사령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실 모모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을뿐더러, 백토는 제조시의 발생한 결함으로 세뇌되었다고 하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망상장애로 보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

“…네.”

 

모모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자리를 떴다. 어째서인지 평소보다도 더 처진 모모의 어깨가 사령관은 신경 쓰였으나, ‘친구’라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모모의 성격상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백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망상장애에 대한 약물 치료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기대하긴 힘들고, 현재 사령관에게 주어진 것들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한 소녀의 처진 어깨와 얼굴에 가득한 그늘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사령관은 이때 그렇게 생각했다.

 

***

 

백토가 떠난 직후, 수색에는 성공했으나 그녀를 데리고 온다는 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인원들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다들 자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갔다. 트리아이나는 모모의 어깨를 다독이며 모험엔 수많은 실패와 역경이 존재한다며 그녀 나름의 위로를 하고 떠났으나, 모모는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도와줘서 고맙다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레아는 맏언니의 위치가 주는 숙명이라고 해야 할지, 수색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도 돌아갈 준비를 했다. 레아 자신이 모모의 입장이 된다면, 자신의 자매들이 모두 행방불명되어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는 것이 버티기 힘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린 아쿠아는 무서워 떨고 있을 것이고, 다프네는 내색은 하지 않아도 여린 아이이니 챙겨주어야 했다. 리제는 오히려 그녀와 마주칠 것들을 걱정해야 할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조금은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막상 자신의 뒤를 이은 자매들의 언니이자 듬직한 동생이기에 그녀를 방임했던 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 단상을 하며 레아가 마지막으로 모모에게 위로의 한 마디나 건넬 요량으로 그녀를 찾았을 때, 밝았던 그녀가 어느새 무너져 오르카호의 복도에서 주저앉아 흐느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항상 그녀의 밝고 명랑한 모습만 보아왔던 레아이기에, 혹시 다른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를 데리고 페어리의 정원으로 향했다.

 

“모모 씨, 백토 씨는 꼭 찾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주인님도 찾아주겠다고 하셨고요.”

“…레아 씨도 사령관님을 의지를 많이 하시는군요.”

“어머, 당연하죠! 단신으로 해결하신 일만 들어도 대단하신 분인 게 느껴지죠!”

“네에…….”

 

모모는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마셨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며 레아가 페어리의 자매에게 부탁한 홍차였다. 막상 그 자매는 손님에게 홍차보다 붉은 특유의 눈으로 무감정하게 노려보고 멀찍이서 모모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차의 맛은 문외한인 모모가 느끼기에도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지 않을까, 하고요.”

“모모 씨가 없는 세상이요? 에이, 말도 안돼요.”

“더는 마법소녀를 찾는 어린이는 없어요. 꿈과 희망 같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생존에 필요한 음식과 잠자리를 찾아야 하는 시대가 왔죠. 보호받으며 한창 꿈꿀 어린이들조차 그래야하는 시대가.”

 

오르카호의 아이들도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지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고독한 전쟁을 치룬 아이들이 영겁의 시간을 견디며 버텨올 때, 그들은 꿈과 희망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마침내 어린 가죽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세속적인 것을 탐낼 때, 외관과 상관없이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마법소녀’는 상징이에요. 저는 무너지거나 슬퍼하면 안돼요. 언제나 밝게 웃어야하고, 가끔 벅찰 정도로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하죠.”

“모모 씨…….”

 

레아는 무심코 찻잔에 손을 얹고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떨리는 가녀린 몸에서 간신히 터져 나오는 감정을 달래려는 노력이 잡고 있는 손에서 전해져왔다. 결국 높게 쌓아올린 마음의 댐을 넘어서 흘러나온 눈물이 모모의 코끝을 타고 떨어져 마시다 만 홍차에 잔잔한 파동을 이루어냈다.

 

“반면에 사령관님은 어려운 일도 무표정으로 거뜬히 해내죠. 모두들 그분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요. 아이들은 마치 버텨온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듯이 사령관님께 응석을 부려요. 어쩌면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건 더 이상 ‘마법소녀’가 아니라 사령관님이 아닐까요? 그럼 저는 존재 이유가…저는 어떻게 해야…….”

“괜찮아요. 괜찮아…….”

“백토는 망상이라도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마법소녀로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요? 차라리 저도 세뇌에서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래서 잡지 못했어요. 차라리 망상 속에서도 행복하게 있으라고요.”

 

레아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웃는 얼굴로 속은 썩어 문드러진 소녀의 볼품없는 등을 쓸며 안아주는 것과, 확신할 수 없는 괜찮다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

 

“거기 서라 뽀끄루 대마왕!”

“아직 멀었다, 백토. 넌 아직 마에 맞설 자격이 없다. 다음에 만날 땐 더 강해져있길 기대하지.”

“이 녀석! 또 도망가는 거냐! 거기 서!”

 

보라색 바탕의 프릴 치마를 입고 토끼 머리띠를 착용한 소녀가 목표를 놓치고 울부짖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특수촬영물의 배우라고 하기엔 매우 육감적인 몸매와, 노리고 만든 것만 같은 옆으로 트인 치마 속 드러난 티 팬티의 끈은 비단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겉의 검은 머리와 속의 숨겨진 노란 머리가 인상적인 소녀는 분홍색으로 장식된 전기톱을 이리저리 휘둘러대며 길길이 날뛰었다. 소녀의 이름은 백토, 복원 과정에서 어딘가 잘못되어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실제로 마법소녀라고 생각하는 편집증 환자였다.

 

“뽀끄루!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 광기에 찬 소녀의 시야에서 사라지는데 성공한 뽀끄루는 풀숲에 숨어 위협적으로 울리는 전기톱의 소리를 간신히 귀를 틀어막고 벌벌 떨고 있었다. 백토와 마주하고 대화로 현재 처한 상황을 알리고 협력하려고 해도, 저렇게 완고해서야 뽀끄루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백토의 힘을 이용해 주변의 철충을 정리할 순 있었지만, 늘 당하는 역할이었던 뽀끄루는 모든 촬영이 끝나고 더 이상 촬영할 것이 없는 세상에서도 백토에겐 여전히 악역으로 남아, 철충보다 그녀의 전기톱에 죽지 않기를 더 걱정해야 했다.

 

철충의 눈을 피해 다니면서 쫓아오는 전기톱 살인마를 피해 잠자리를 찾아 불안한 잠을 청하고, 폐허의 공장에서 보존식품을 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차라리 죽는 것도 생각해 본 뽀끄루였으나, 한때 촬영을 같이했던 동료인 백토를 저 상태로 죽을 수 없었다.

 

자신은 백토의 손에 죽는다 해도, 백토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망상 속에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마왕 역할인 자기가 죽은 후, 목표를 달성한 이후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백토가 삶의 목적을 잊고 망가질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도망만 다닐 수는 없었다. 대화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설득할 방법도 없고,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뽀끄루는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 밤은 어디서 쪽잠을 자야할지 고민하던 찰나 뽀끄루의 어깨에 누군가 덥석 손을 올렸다.

 

“히이이익! 미안해요, 백토! 목숨만은! …에?”

“잠깐 나 좀 볼까?”

 

목숨을 갈구하는 뽀끄루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토끼 머리띠의 미친 전기톱 살인마가 아닌 백 년 전에 이미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인간 남성이었다.

 

“사령관. 나 졸린데 힘냈어. 나도 사랑해 줄 거야?”

“어, 음. 내가 누굴 사랑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워울프랑은 사랑하잖아.”

“네오딤! 너, 너 어떻게… 그날은 술 마시고 실수한 거야!”

“그럼 나도 마시고 실수할래.”

 

뽀끄루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령관이라고 불린 인간 남성 외에도 그 옆엔 공중에 떠다니며 쇳덩이를 조종하는 여성이 보였다. 붉은색과 청록색이 섞여 돌아가는 땋은 머리, 밑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짧은 흰 상의와 치마. 충격적인 복장이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심상치 않은 포스의 여성은 인간남성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저기…….”

“아, 미안. 네가 뽀끄루 맞지?”

“네, 맞긴 맞는 데요…….”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자, 모모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 모모가요?”

 

뽀끄루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생활을 몇 년,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던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뽀끄루를 스쳐지나갔다. 그간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만 같아, 종교는 없지만 뽀끄루는 마음속으로 익명의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흐잉…….”

 

마주치는 철충을 손쉽게 해치우는 네오딤의 보호를 받으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처럼 뽀끄루는 기쁜 마음으로 범고래의 뱃속에 지친 몸을 실었다.


--------------------------------------------------------------

자꾸 백토 대사 쓸때 해슴안해슴체 써짐

문제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