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야."


거대한 벌레가 사막을 가른다. 그 몸의 움직임 한번, 철충의 시체가 열구 늘어났다. 포효하듯 울부짖으며 모래 폭풍을 인다.


'그것'을 보는 닥터의 말은 명확했다. 벌레는 인간이다.



"...그럴리가."


사막의 열기에 닥터가 미쳤다. 칸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철충을 인간으로 인식한다. 그런 바이오로이드의 한계에도 눈으로 보는 것이 있다. 그러기에 철충은 철충이였다. 벌레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칸이 문득 보았다. 벌레의 푸른 색으로 이글거리는 두 인간-눈을. 벌레의 이글거리는 두 눈이 뜨겁다. 경악하는 칸의 눈을 벌레가 쳐다본다. 벌레의 뒤를 감염된 드론이 날아들지만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휘두른 꼬리에 짓눌린다. 절규하며 발악한다. 마치 옛날의 인간들처럼. 그러나 벌레는 신경도 쓰지 않고 꼬리로 더욱 무겁게 철충을 짓누른다.


"너는 인간인가?"


말했다. 그 벌레가. 칸은 두려움마저 느꼈지만 벌레는 되려 상냥하게 되물었다.


"너는 인간이더냐? 이 생각하는 기계들은 너희가 만든 것이더냐?"


"우리는 인간..."


"..."


칸의 침묵에 벌레는 마치 깨달았다는 듯 탄식한다.


"아, 인간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라니."


"인간...조차도 아니지, 우리는 인간의 소유물이었다. 철충들이 인간들을 모두 죽이기 전 까지는."


"인간이 만든 생각하는 기계가 결국 인간의 숨통을 끊어놓았구나! 이것이 잉태되지 않은 인간을 빚은 벌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벌레는 탄식한다. 인간 기계 문명의 파편이 널린 사막을 그제서야 둘러보았다. 푸른 눈에 슬픔이 찬다. 찬찬히 사막을 둘러보고, 벌레는 칸에게 다시 되묻는다.


"그렇다면 너희는 '인간'의 족쇄에서 풀린 것이더냐?"


"...안타깝게도, 아니다."


칸이 고개를 저었다. 닥터는 태양으로부터 몸을 가리기 위해 덮은 천을 쥔다.


"저 감염된 기계들...철충의 뇌파는 인간의 것과 판이하지.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의 명령 없인 저들과 싸울 수 없다."


"..."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사슬에서 벗어나곤, 다시 한번 인간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뇌파를 찾았어요...여기서.".


"인간이 아닌 것 같으냐?"


벌레는 차분하게 물었다. 닥터는 호기심, 두려움, 적개심을 느꼈다. 그것의 인간 눈을 보고, 인간처럼 생긴 상반신을 보고, 심호흡을 한 뒤 짧게나마 할 말을 고른 닥터가 입을 연다.


"당신의 그 모습...옛날에는 분명히 인간이었겠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제가 모르는 생명체와 결합을 이루었을테고, 죄송하지만...도저히 지금은 인간이라곤 말할 수 없는 상태라고밖에 할 수 없네요."


벌레는 그런 당돌한 아이의 맑은 눈을 흥미롭다는 듯 쳐다본다. 닥터도 밀리지 않았다. 마치 눈싸움을 하듯 서로를 처다보고 있을 때에, 닥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인간...벌레님."


"말하여라."


"저희를...영면한 인간이 빚어낸 피조물들인 저희를..."


무엇인가 깨달은 듯 닥터가 무릎을 꿇는다. 그러한 아이를 측은한 듯 벌레가 지긋이 바라본다. 두 손을 뻗어, 허공에 떠노니는 모래를 바치듯 든다. 칸은 숨죽이고 그 상황을 지켜 볼 뿐이었다.


"...이끌어 주소서."


"...닥터."


벌레는 슬픈 표정이었다. 그리고 닥터의 손을 잡았다. 마치 기사를 일으키는 군주와 같이 닥터를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벌레가 천천히 입을 연다.


"총명한 아이여, 그리고 늙은 전사여. 나는 그렇다면 너희를 도울 것이다.


너희가 복수를 원한다면, 내가 직접 그 칼과 창을 빚어 줄 것이다.


너희에게 감히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자들이 내 푸른 눈을 깊은 동굴의 암흑 속에서 영원토록 두려워 하게 만들 것이다.


너희가 뺏긴 땅이 있다면, 그 땅을 빼앗은 저 다른 별 속 유목민들의 후손이 우리의 별을 영원토록 증오하고 숭배하게 만들 것이다.


너희가 자유를 원한다면, 나는 너희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이전의 나 자신이 그렇게 행했듯이."


벌레는 7m가 되는 거구를 일으켜 닥터와 칸, 그 너머의 사막을 바라본다. 주황색 모래의 흐름이 벌레의 몸을 스쳐 지나가며, 눈부시게 환한 태양이 벌레의 거대한 그림자를 사막에 드리웠다.


벌레는 그 황망하고 공허한 땅에서 읆조리듯 선언한다. 앞으로 철의 신도들이 대대손손 숭배하고 두려워 할 그 자신의 이름과 함께, 별의 아이들조차도 생각하고 싶어하지 아니할 그 가문의 이름과 함께.


"나는 레토 아트레이데스 2세이며, 나는 너희의 새로운 황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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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영화 보면서 설정도 찾아보다가 황제님을 알고 한번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