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출처 - https://www.pixiv.net/artworks/85627283


개인적으로 금란 하면 떠오르는 테마곡같다 느껴서 넣었음


그러니까 노래는 틀어도 그만 안틀어도 그만임




M2U - 天地開闢(천지개벽)


***


"그아아아아아!"


성난 거인의 울음소리가 금란을 향해 내리꽂히듯 울려퍼진다.


분노와 증오, 고통이 담긴 목소리는 입구멍이 없는 거인의 머리에서 쏟아지듯 튀어나왔지만,


금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고쳐잡는다.


흐르는 식은땀을 닦지 않아 툭 떨어진 땀 한 방울이 가슴팍을 적셨고,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민감한 오감이 미친듯이 날뛰며 눈앞에 깔린 아홉 거인을 향한 위험신호를 남발하고 있었다.


금란은 그저 가만히, 가만히 서서 다가오는 거인을 바라봤다.


휘둘러 내려치는 검격의 궤도, 검날을 따라 갈라지는 공기의 흐름, 자잘하게 삐걱거리는 관절의 소음,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적의의 찌릿함.


모든 것이 선명했고, 또 선명했다.


금란은 그저 호흡을 가지런히 맞추고, 느끼고 있었다.


몸을 타고 흐르는 힘.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감각을.


그리고, 갈피를 찾아가려 애썼다.


오직 그것 하나만을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거인의 검날이 머리통에 꽂히기 바로 직전,


"...格法(격법), 旋風格(선풍격)."


카앙-!


검을 들어 받아낸 거인의 일격이 금란의 환도에 부닥치는 순간, 부드럽게 손목을 틀어 매끄럽게 궤도를 틀어낸다.


쿠웅-!


매끄럽게 공격을 흘려보낸 직후, 탁 하며 찾아낸 고삐.


날뛰는 힘의 중간, 폭풍의 눈과 같은 지점.


지원군이 도착할 때 까지 몸을 망가트리지 않으며, 넘쳐흐르는 힘을 십분 발휘할수 있도록 하는 조절점.


"...후우우..!"


레오나를 향해 말했듯, 온 몸에 힘을 빼고 펄쩍 뛰쳐오르며 검을 휘두른다.


"...銳刀(예도), 初習(초습)."


"그어어어어어!"


"擊法,二擊!(격법2격)"


흐르는 힘의 크기를 직감한 금란의 빠르고 정확하며, 절도있고 강직한 검이 거인의 몸을 가른다.


파밧!


거인의 좌측 몸통을 향해 올려 날린 대각베기 직후, 빠르게 손목을 틀어 내려친 오른 대각베기.


"크어어어어어어!"


찰나와 같은 속도로 그어진 선을 따라 파여진 깊은 균열이 두껍고 단단한 거인의 피부를 가르고 깊게 숨겨진 속살을 갈라버렸다.


츄하아아악...


금란이 휘두른 두번의 연격으로 인해, 왼상박을 잃은 거인의 가슴팍엔 겹쳐서 새겨넣은 두개의 도흔이 새까만 피와 스파크를 쏟아내고 있었다.


내장기관과 기계의 회로가 뒤섞인 기괴하고 흉측한 무언가가 가슴을 통해 툭, 툭, 땅에 떨어졌고,


"그으아아아아아....!"


거인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낮게 퍼진다.


잔뜩 독이 올라 그르렁대는 짐승의 그것과 같은 신음소리.


위협과 살의를 담은 그 소리에,


"........"


금란은 아무런 반응도 내비쳐보이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식은 칼날처럼 무감정한 표정의 금란이 사뿐히 땅에 착지하고, 가볍게 환도를 털어낸다.


"...후..."


촥, 하며 튀겨낸 기름진 검은빛의 액체가 땅을 적시고, 시퍼런 칼날이 번뜩인다.


"그아아아아.....!!!"


오른손에 쥔 하얀 대검을 꽉 그러쥐고, 가슴팍에서 솓구치는 검은 피를 막아내며 흉측한 붉은 안광을 뿜어대는 거인을 뒤로 한 채,


나머지 여덟 거인이 금란을 노리며 뛰쳐들었다.


금란은 한번 짧게 후, 숨을 내쉬고는 검은 액체가 채 닦아지지도 않은 환도를 휘릭, 고쳐잡고 거인들을 향해 펄쩍 앞으로 뛰쳐들었다.


한번의 달음질로 빠르게 거리를 좁힌 금란은 어느새 찌르기를 위해 손목을 틀어 검을 바짝 몸에 붙이고 있었다.


"擧鼎(거정),中殺(중살)."


파악!


마치 하나의 투창처럼, 혹은 자객이 날린 투검처럼, 혹은 재빠르게 날아드는 쏜살처럼.


금란은 가장 앞장 서서 대검을 들어치는 사이클롭스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쳤다.


"...그오오..."


검을 번쩍 들어올린 탓에 생긴 틈 사이로, 마치 바람처럼 지나친 금란의 허리를 노린 가로베기는,


선두에 선 거인의 옆구리에 진득한 검은 피를 쏟아내게 만든다.


"...콜록."


금란은 조금 힘겹다는듯 식은땀을 흘리며 칼을 휙, 휘두른다.


검은 피가 땅을 적시고, 금란의 치맛자락 끄트머리를 검게 물든다.


하지만,


"....그어어어어어..."


얕다.


사이클롭스의 옆구리에 낸 도흔의 깊이가 그녀의 생각보다 얕다.


분명 깊게 베어버려 더욱 많은 피를 쏟아내게 만들 터였음에도,


금란이 휘두른 검격에 비해 너무나도 얕았다.


고작 해야 생채기 수준의 도흔.


사이클롭스는 피해를 적응하며 더욱 단단하게 버텨서서, 들어오는 공격 전부를 맞아가며 적을 소모시키는 타입의 철충.


"...콜록..."


그렇기에 장기전이 될수록 위험하고, 대비가 되지 않을 고위력의 일격을 가해 단번에 침묵시켜야 하는 철충이다.


"금란."


귀에 꽂은 무전기에서 레오나의 음성이 들려온다.


"당신이 활약해준 덕분에 포위를 빠져나갔어."


"...다행...콜록, 이군요."


"위협요소인 당신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나는 아무런 습격도 없어."


입을 가리고 내뱉은 기침이 끝나고 손을 바라보자, 장갑의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원군 도착까지 4분이야."


눈에 띄지 않는 언덕 위, 시에라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선 레오나가 탄창을 갈아끼며 말을 이었다.


"방금 보여준 전투데이터를 커멘드 프레임에 입력시켰어. 당신의 포텐셜을 알아냈으니, 그에 맞는 지휘를 내려줄게."


우웅....!


찰칵...철컥...


허공에 뜬 레오나의 퀸즈 머시가 스스로 변형되어 특정한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알고있겠지만, '적응'하기 시작했어. 이제부터 응전은 최소한으로 줄여야해."


지휘관으로써 휘하 병력의 역량에 맞추어 최적의 결과를 연산해내는 레오나의 두뇌가 전황을 분석했고,


"지금은 치고 빠지는게 되고있지만, 놈들에게 붙어서 한합, 두합 날릴수록 그러기 힘들어질거야."


"...그렇겠죠."


"그렇지. 그러니까,"


O.D 증폭기가 점점 신체를 갉아먹고있는 지금의 금란만을 위한 작전을 떠올렸다.


"지금은 일단 최소한의 반격과, 최대한의 회피를 중점으로 싸워야해."


위이이이잉-!


"커멘드 프레임은 지금부터 후퇴명령을 개시할게. 회피에 더욱 전념하도록."


퀸즈 머시가 밝게 빛나며 빛의 입자를 흩뿌린다.


"뭐 간단히 생각해. 당신은 저놈들이랑 술래잡기를 하는거야. 술래는 저놈들이고, 당신은 도망치는거지."


강철과 같은 눈동자가 빛나며 금란을 향하고,


"전방의 사이클롭스가 행동을 개시했어."


짙은 금색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꼈다.


"술래잡기 시작이야. 움직여!"


***


날도 추운데 라붕쿤들 조심해...


나는 너무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