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할라의 귀환자들-1 https://arca.live/b/lastorigin/39438739?mode=best&target=all&keyword=%EB%B0%9C%ED%95%A0%EB%9D%BC%EC%9D%98&p=1

이어짐.


"여기는 대체..."


부관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장인 그녀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정도로 현재 상황은 복잡했다. 오리진 더스트 뿐만 아니라 내부 모듈칩조차 현재 상황파악과 전술에 최적화되었다 스스로 자신할 만큼 냉철하고 명석했던 레오나였으나, 그녀조차도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전투태세를 마치고 나간 방 밖에서 '어머? 레오나씨, 오늘은 비번이신데 일찍 나오셨네요.'라는 말을 하는 육중한 존재에 자신의 시각모듈을 교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제대로 된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쫒기듯 방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저건...음..."

"대장님, 제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요?"

"모르겠어. 부관. 이젠 나도."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바이오로이드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였으니까. 은발의 외모와 잊을 수 없는 외모. 비록 그녀가 들고있는 무기와 상당히 불어난 체형은 레오나의 기억과는 상이했으나,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원형(原形)이자 삼안산업 기술력의 정점을 상징하는 그녀가 대체 왜 이곳에 있으며, 마치 자신을 아는 것 처럼 살갑게 인사한단 말인가. 


자신은 철혈의 레오나. 어떠한 전투조차, 심지어 마지막 전투에서도 죽음에 이를 정도의 부상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승리를 쟁취하는 전장의 두뇌 그 자체다. 자신의 정보를 바탕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는 그녀로써는, 단 한 조각의 상황파악마저 허락치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정보의 연속에 이곳은 옛 종교가 말한 죽어야만 했던 모든 생명을 배 안에 태웠던 노아의 방주인가하는 망상을 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희가 먼저 깨어나서 정찰을 했어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모으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 없어 부관. 나 조차도 지금 상황에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게 사실인걸."


그때였다.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낮설어 제대로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던 레오나의 귓속에 가장 '익숙해야 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할라의 부대장 레오나, 잠시 실례해도 되겠나?]

"..."

"대장님..."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아니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목소리의 주인. 그녀의 거대한 리볼버 캐논 앞에 쓰러진 자매들이 기백이며 그 휘하에 있는 부대들에게 갈려나간 자매들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으니. 그제서야 레오나의 머릿속에 엉켜있던 실타래가 조금은 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잡혀 포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왜? 라는 의문이 다시 레오나의 사고모듈에서 셀수없는 가지가 되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서부지역조차 탈환에 실패하여  주요 시설의 이용은 불가하다. 그 상황에서 자신들의 몸을 재생시킬 정도의 오리진 더스트와 재생장치가 존재했을리도 없고,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걸 자신들에게 쓸 정도로 돈이 썩어 넘처나는 기업이 멸망해가는 세계 따위에 있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자신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은 결코 더미같은것이 아니었으니 더욱이.

그러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 밖의 '목소리'는 한번 더 레오나의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철혈의 레오나, 잠시 할 말이 있는데 실례해도 되겠나?]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정말 오랜만에 보여주는 발키리의 당황섞인 눈빛에, 레오나마저 머리를 싸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대의 대장, 부대를 책임지는 입장으로써, 그리고 자매들의 맏언니로써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들어와."

「Battle Command Frame-Queen's Mercy Operating.」


레오나는 커맨드 프레임을 방어형으로 전개하며, 다가올 위협에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를 준비했다.


[전투 준비. 알비스는 연막을 준비하고 선두에서 방어 진지를 구축해. 발키리는 지정 사수의 위치에서-]


끼익- 늦었다. 빌어먹을! 레오나는 다시 눈을 뜬 이후 처음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을 당시에 바로 명령을 내리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 못난 대장의 어설픈 지휘에도, 자매들은 약속이나 한 마냥 그녀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위치에 존재해 주었다. 순간, 레오나는 이것이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트릴 한순간의 환상일 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기쁨을 느꼈다. 외로운 설원- 자매들과 다시 만날 순간을 기다리던...


"어...음..."


그러나, 모든 대비를 마친 그녀, 아니 '발할라'의 눈 앞에 나타난 복수의 대상이 보인 태도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안하다. 레오나, 아니 발할라의 자매들이여."

"...?"

"뭐?"


한참을 당황스럽게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은, 이전 아시아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과 차이가 없었지만, 그 때 보여주었던 패기와 냉정함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와서 지난 전투의 학살을 사과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뜬금없을 터인데.


"정말로 미안하다. 워울프인가? 아니면 페더? 아니면 이번에도 샐러맨더 그 녀석이 알비스를 끌어들여 야바위로 대량의 초코바를 징수해 갔나 보군. 미안하다 알비스. 내가 돌아가 당장 되돌려 주도록 명령해 놓겠다."

"어...어...넹♥!"

[알비스! 가드올려. 저건 함정이다!]

"샐러맨더 양, 그러고보니 지난 겨울 오르카 작전 당시의 회피기동이 정말로 인상깊었어. 혹시 우리 페더에게 조금 조언을 해 주지 않겠나? 아무래도 호드의 특성상 페더 혼자 대공사격에 노출되다 보니 자네가 가르쳐 준다면 나로써는 더 바랄 것이 없겠군."

"아...음..."

[...샌드걸, 아무리 네가 평소 몰래 흠모하던 이의 칭찬이어도 지금은 전시다. 정신차려.]


그렇게 겉으로는 하나 하나 대원들에게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실상 레오나는 제대로 된 정신을 차리지 못 한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온 몸을 타고 흘러왔다. ...스스로 적에 대해 알고, 적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무너지는 것이 자신의 주특기라 여겼건만 어느새 상대는, 자신이 뒤쳐지는 사이에 자신이 자신하는 면에서조차 앞서나가고 말았단 말인가.


"그러니 레오나, 호드의 대장으로써 다시 한번 사과하지. 우리 호드의 녀석들이 저지른 짓에 대해 내가 다시 개인적으로 사과하게 할 테니 화를 풀어줄 수 있는가."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레오나는 끓어오르는 자괴감과 분노에 씹어뱉든 그녀를 향해 첫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케시크 유닛."


그와 동시에, 이제껏 저자세로 나오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며 레오나를 향해 경계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네 입에서 그 이름으로 불린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이 씹..."

"정말이지 화난 것 같군. 알겠다. 지금 당장 당사자들을 데리고 오도록 하지. 30분 정도만 기다려 줄 수 있는가? 금방부터 녀석들이 사령관님께 부탁해 따로 휴가를 받았거..."


레오나의 머리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신속의 칸. 고작 일반 보병이었던 하위개체가 고작 전공 몇을 세웠다고 하여 사령관 모델로 개조된 것 만으로도 수치스러운데, 심지어 자기 자신들을 아시아에서 패퇴시켰던 전적은 그녀의 바이오로이드 생 첫 수치이자 최악의 기억이었다.


"케시크 유닛."

"듣고 있다."


다시 불린 과거의 이름에 신속의 칸은 그리 말하며 조금의 경계는 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레오나의 말은, 웬만한 상황에도 놀라지 않던 그녀의 평정심을 부숴버리고도 남았다.


"...씹어먹을 하위개체 유닛이...!"

"..."


이번에는 칸의 입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타난 그녀의 표정과 자세는, 과거 초원에서 그녀들을 학살했던 그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 이름. 아무리 기억을 이어받은 너로써도 알 수 없는 이름일텐데."


칸은 그리 말하며 유연하게 허리를 숙이며 발끝을 땅바닥에 붙였다. 마치 활을 머금은 활대와 같이 어느 때든 튀어나갈 수 있는 준비를 마친 칸 특유의 자세. 그것을 레오나를 비롯한 발할라 자매들이 모를 리 없기에 잔뜩 긴장을 한 대치가 이어졌다.


"넌 누구냐....아니 너희들은 어디 소속이냐. 대체 무슨 목적으로 오르카 호에 침입한 것이지? 그리고 원래의 발할라 부대원들은 어디로 간 것이냐."

"..."

"말해줄 리가 없겠군. 그렇다면..."

"납치를 한 주제에 말이 많군. 우리가 어디 소속인지는 당사자들인 너희가 더 잘 알텐데 왜 내게 묻는거지?"

"뭐?"

"애초에 미국 서부에서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나를 구한건 너희 아닌가? 아니, 네가 아닐 지라도 아직까지 살아있는 너희쪽 인간님이겠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그제서야 칸의 눈에 의문스러움이 새겨진다. 그것은 레오나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전혀 연결되지 않는 전후사정에 당황스러움을 표할 뿐이었다. 얼마나 그런 상황이 지속되었을까. 정신을 먼저 차린 것은 칸 쪽이었다.


"우선은 앉지."

"이 상황에 잘도 그런 말이 나오는군. 케시크 유닛. 지금 아무 무장도 하고 있지 않는 네년을 고깃덩어리로 만드는 데에 1초면 충분하다는 것도 알텐데?"

"그렇다면 쏴 봐."

"..."


레오나는 눈을 내리깔며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칸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저 모습은 그녀가 기억하던...과거의 편린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으니까.


"자네의 연산 회로에서는 '이 잠수함 안의 일원'인 나를 죽인다면 더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고 있을 터인데. 아닌가?"

"...그래."


레오나는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며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칸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내 말도 안 되는 가정이 틀리지 않다면 ...아무래도 우리는 구면인 것 같군."

"흰소리를 더 한다면 당장 발포하겠어."

"훗. 우선 자네에게 먼저 듣고 싶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게 말을 꺼내는 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많은 그리움과 외로움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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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을 맨 처음에 등장시켰던 것은 이것을 위해서였습니다.

가장 증오하는 이였지만, 미래로 온 지금시점에서 가장 의지해야 할 수밖에 없는 관계죠.

칸은 과거에서 귀환한 레오나의 끈이 되어줄 역할이자, 글의 길이를 많이 줄여줄 히든카드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