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ㅡ


끈적거리는, 어쩌면 울컥거리는 보랏빛 점액들이 천장에서 흐물텅거리며 움찔거렸다. 한 번에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고 벽을 타며 꿈지럭거리는 모습에 안드바리는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간신히 비명을 삼켰다.


오르카호의 전체가 그런 광경이었다. 꾸물꾸물거리며 먹을 것을 탐하는 듯한 끈끈한 점액들 사이로 팔이나 다리 조각들이 보였다. 간간히 보이는 흐리멍텅한 눈을 감지 못한 머리들도 소녀에게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끔찍함이었다. 안드바리는 이 상황을 악몽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는 분명 사령관의 따스한 손길 아래 잠을 청했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날에는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그 날 밤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소녀는 너무나도 생생한 광경에 자기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것 조차 의심스러워했다. 어둑어둑한 흑색들 사이로 자매들의 기약 없는 비명이 사정없이 울려 퍼졌다. 녹아내리는 벽과 뼛조각들이 점액질 덩어리를 툭하고 빠져나와 바닥에 버려지기도 했다. 치이익 거리며 녹아내리는, 철분이 섞인 연기가 오감을 자극했다.


도망쳐야해.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작은 체구의, 달랑 권총 하나를 든 안드바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이 자리를 뛰쳐나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뒤를 돌아 달려 나갔다. 흐리멍텅한 조명들이 깜빡거리는 복도를 숨이 차도록 달렸다. 서서히 자신을 잡으러 오는 점액 덩어리들과 빛을 갈구하듯 우악스럽게 달려오는 어둠. 그리고 앞에서 하나씩 꺼져가는 조명들.


악몽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래야만 했다. 이 지긋지긋하고 역겨운 점액질 덩어리들을 벗어나 사령관과 자매들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두려움에 떠는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감정이었기에.


“사령관님! 언니들! 제발!”


무서움을 참지 못한 소녀의 양 볼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감정을 모두 잡아먹었을 때, 볼에는 두 줄기 선이 그어졌다. 뒤에서 서로를 잡아먹으며 커져가는 점액 덩어리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위 아래로 흐물텅거릴때 마다 그것의 안에서는   고깃덩어리와 뼈들이 불규칙적으로 움찔거렸다.


이성적인 판단을 집어 삼키는 공포는 소녀와 점액질의 거리가 가까워짐으로 조금씩 커졌다.


10m. 안드바리는 발을 접질렀다.


5m. 안드바리는 욱신거리는 발목을 부여잡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3m. 안드바리는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점액질을 겨누었다. 총구는 흔들리고 있었다.


1m. 안드바리의 권총에서 불이 일었다. 정확히 여섯발이었다.


바로 앞. 안드바리는 점액질에 먹히기 전, 한 마디를 뱉어냈다.


“언니들!”


점액 덩어리가 끄물텅거렸다.


ㅡㅡ


안드바리가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땐,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정확히는 밝음이었다.


소녀는 지끈거리는 머리와 욱신거리는 발목의 통증에 고운 얼굴을 찌푸렸다. 검은 눈동자가 찡그림에 반 쯤 가려졌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적어도 방금 꾼 꿈이 악몽이었다는 사실과 현실에서는 살아있다는 것. 찝찝하게 뿜어져 나온 식은 땀이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점액 덩어리들과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기에.


그녀는 가벼운 한 숨을 쉬며 슥슥거리며 닦이는 식은 땀을 닦다가 소녀의 부드러운 피부에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풍김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가 달라붙었다가 떨어진 것 처럼 진한 향이었다. 그럼에도 안드바리는 샤워를 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외면하듯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언제나처럼 같은 방이었지만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소녀는 즉시 책상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작은 액자를 손에 집었다.


분명 그 안에는 발할라 자매들과 찍은 사진이 들어있어야 했다. 분명히. 그렇지만 그곳에는 공허함만 가득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 처럼 먼지가 가득 쌓인채로. 그러고 보면 방안의 구조도 이상했다. 원래 철로 되어있어야 할 벽은 새하얀 벽지가 울은 채 도배되어 있었다. 게다가 하나만 있어야 할 문은 두 개가 붙어 있는 모양새였으며, 햇빛이 비춰야할 창문은 정말 완전한 하얀색을 내 뱉고 있었다.


위화감은 어느 순간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을 때. 안드바리는 무언가 크게 잘못 되어감을 느꼈다. 일종의 본능이었다. 어쩌면 외면일수도 있었다. 다시 악몽 안이라는 끔찍한 상황에 눈 돌리고 싶었기에.


제발.


안드바리는 그렇게 되뇌였다. 그럼에도 일말의 희망을 바라기도 했다. 지금 앞에 있는 문 중 하나를 열면 복도가 보일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있을 것이다. 점액 덩어리에 잡아먹힌 머리들이 아니라. 가벼운 심호흡이 있었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손이 문을 열었을 때, 적막함이 흘렀다.


기분 나쁜 적막함이었다. 방금과는 다른 뉘앙스의 고요함. 어둠에서 오는 공포가 아닌 백색에서 오는 불쾌감. 지나치게 울어버린, 환하다 못해 눈이 아픈 조명과 벽지가 복도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기이했다. 안드바리는 끝을 알 수 없는 복도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하나 없는 기묘함. 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랬을테니까.


“안드바리. 몸은 좀 어떻니.”


“다행입니다. 쓰러졌을 땐, 수복실에 대려가야 하나 걱정했었습니다.”


“거 봐.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분명 레오나와 발키리 그리고 사령관의 목소리였다. 강한 확신을 넘어 신뢰였다. 안드바리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가장 믿어 의심치 않던, 의지할 수 있는 세 명이었기에.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몸은...?”


그리고 그 순간, 몸이 얼어 붙는다는 느낌을 두 번째로 느끼는 안드바리였다. 입에서는 말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모습들이 눈 앞에 있었기에.


그것은 레오나와 발키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사령관도 아니었다. 분명히 그랬다. 어떤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얼굴이 꽃일 수가 있겠는가. 마치 얼굴 위에 줄기채 잘라 넣은 꽃을 박아 넣은 듯, 아름답게 피어 있는 역겨움이었다.


안드바리는 그것을 보고 이것 또한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겨야했다. 사랑해 마지 않는 레오나와 발키리, 그리고 사령관의 온 몸을 흝는, 단단하게 얽혀 있는 뿌리들과 줄기들.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형태였다.


소녀는 본능적으로 권총을 꽃들에게 겨누었다. 분명 여섯발이었다. 남은 총알은 세발이었다. 흔들거리는 총구는 혼란스럽게 과녁들을 향해 움직였다. 사이사이로 현실 부정이 보였다. 안드바리는 생각했다.


이건 꿈이야. 제발 꿈이어야 해.


아무리 악몽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겨누었지만 쏘지는 못했다. 만약 이것이 악몽이 아니라면? 그저 내 머리에 이상이 생겨 착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런 잡념들이 꽃의 뿌리 처럼 뇌를 좀 먹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올라오며 두통이 일었다. 부들거리는 손가락들이 천천히 방아쇠에 올려지기 시작했을 때, 사령관 말했다.


“안드바리. 나는 대원들에게 총구를 겨누라고 가르친 적이 없어.”


“정말... 사령관님에요?”


“뭐? 당연히 나는 사... 사... 누구?”


세 명분의 목이 90도로 껵였다. 뿌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이 떨어졌다. 하지만 피는 한 방을 조차 흐르지 않았다. 물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은 채, 뿌리와 줄기가 탐욕스럽게 목을 탐식하기 시작했다. 끈적거리는 애무를 하듯 서로 얽히고 엮였다. 그리고 피어나는 역겨운 꽃들. 안드바리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같은 향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랬어.


안드바리는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잇었다. 꿈을 깬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놀아난 것일 뿐. 악몽에서 허우적 거리는 이는 자신이었음을.


그녀는 파들거리는 손을 억지로 움직여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바싹 가져다 대었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깨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늘 따라 그들이 보고 싶었다.


“지쳤어.”


방아쇠가 조용히 당겨졌다.


ㅡㅡㅡ


의외로 창작물중에 공포물이 없는 게 특이해서 스펙트럼이랑 테크닉 연습 겸 공포물로 한 번 써봄


악몽 모티브는 내가 꾼 꿈 조금 각색해서 넣어봤는데 진짜 이때 식은땀 존나 났음


공포 영화 보고 자서 그랬나?


어쨌든 읽어줘서 고맙다


안드바리 애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