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매운 맛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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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전의 이야기)


흐흐흥~


......


 

랄랄라~


 

어머나?


 

......


 

길을 잃으셨나요, 인간님?


 

......아니.


 

그러신가요? 보호자 분은 어디 계신가요?


 

엄마...아빠...밑에서 싸우고 있어.


 

아......


 

누나는 누구야?


 

저는 바이오로이드 앨리자베스 A형. 이곳 법원 공중정원의 정원사예요. 리제라고 불러주세요.


 

리제...


 

나...여기 있어도 돼?


 

물론이죠. 다만 여기 땅바닥 위보다는 저기 있는 벤치에 앉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어른들 있는 곳이 싫어.


 

......


 

그러면 잠시만요. 돗자리를 가져올게요.




 

돗자리 가져왔어요.


 

그리고 여기 쿠키랑 우유도 가져왔어요.


 

......


 

드셔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식당에 있는 동생이 구운 거라 맛있어요.


 

......응.


 

어떠신가요?


 

맛있어.


 

후후. 


 

......


 

저는 저기서 정원을 가꾸고 있을 테니까. 제가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싫어.


 

네?


 

여기 있어.


 

......


 

네.


 

......


 

......


 

훌쩍...


 

......왜 그러신가요?


 

엄마...아빠...이혼한데.


 

......


 

엄마...아빠가...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


 

난...엄마 아빠...다 좋은데... 엄마 아빠는 서로가 싫데.


 

그래서...헤어진데.


 

리제...엄마 아빠가...안 헤어지게 하는 방법 없어?


 

......


 

......없어?


 

죄송...해요...저는...그냥 정원사....바이오로이드라서...


 

......


 

......미안해.


 

죄송해요...


 

아냐...


 

......나 가볼게. 엄마아빠가 불러서...


 

네.


 

리제.


 

다음에 또 여기 와도 돼?


 

물론이죠.


 

힘내서 더 예쁘게 가꿔 놓을 게요.


 

응.


 

다음에 봐.


 

다음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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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있어?


 

어머나, 인간님.


 

...오늘도...여기 있어도 돼?


 

물론이죠. 잠시만요. 돗자리를 가져올게요.



 

......


 

엄마와...아빠는...좋아해서 결혼했으면서...왜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그...글쎄요.


 

한 사람만 좋아할 수는 없는 걸까?


결혼은 평생 한 사람만 좋아하겠다고 맹세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


 

......


 

나중에...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난 그 사람만 좋아할 거야.


 

......훌륭하세요.


 

훌륭한 게 아니야.


 

......당연한 거지.


 

......


 

.......


 

나...엄마, 아빠. 둘 다 좋아해.


 

그런데...둘 중에 한 사람과만 살 수 있데.


 

선택해야한데.


 

엄마 아빠 모두와 함께는 못 산다고 해.


 

......


 

엄마를 고르든 아빠를 고르든...아빠가 아닌, 엄마가 아닌 또 다른 한 사람이랑 같이 살아야 해.


 

엄마랑 아빠는 이제 서로를 좋아하지 않아서 상대와 함께 살기 싫다고 말하면서...


 

왜 나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엄마도 아빠도 아닌 사람이랑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이럴 거면...차라리 아무 하고도 같이 살고 싶지 않아.


 

......


 

......


 

미안해, 리제.


 

내가 대답하기 힘든 말만 했지?


 

아뇨. 괜찮아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듣는 것 밖에 없어서 오히려 죄송해요.


 

......그게 커.


 

엄마는...아빠는...내 말을 안 들어주는 걸.


 

......


 

......나 가볼게.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


 

다음에 봐, 리제.


 

네...다음에...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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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있어?


 

어머, 리제 언니? 무슨 일인가요?


 

상담 받고 싶은 게 있는데...시간 돼?


 

물론이죠. 언니가 저를 의지해주신다니 기뻐요.


 

잠시만요, 다과를 준비할 게요.




 

무슨 일이신가요?


 

......다프네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자연스럽구나...부러워.


 

과찬이세요.


 

나는...못하는 일 인 걸...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평소와 달리 침울해 보이세요.


 

......최근에 어떤 어린 인간님이랑 대화를 했어.


 

부모님이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


 

어린 인간님은 부모님이 이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데 부모님은 이혼하게 될 거 같데.


 

그리고 지금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쪽이든 고르기 싫다고 하셨어.


 

인간님은 나한테 해결방법을 물어보셨는데...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어...나는 단지 정원사 바이오로이드라는 핑계만 댔어...


 

내 대답을 듣고 돌아가는 인간님은 슬퍼보였어...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


 

......


 

대답하기 쉽지 않은 일이네요.


 

저도 리제 언니와 같은 대답을 했을 거예요.


 

우리는 어찌 되었건 정원사 바이오로이드일 뿐이니까요.


 

주제 넘게 인간님께 이래라 저래라 충고할 수 있는 능력도 위치도 안 되죠.


 

책임지지도 못 할 거면 차라리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게 정답일 수도 있어요.


 

......


 

하지만...언니는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으신 거죠?


 

......계속 인간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세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세요.


 

그것만으로...충분할까?


 

충분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안 되면 그 어떠한 해결법도 시작이 안 되니까요.


 

......


 

알았어...고마워, 다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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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안녕...


 

어머나. 안녕하세요.


 

인간님. 오늘은 제가 가꾼 정원을 둘러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정원을?


 

네.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예쁘게 가꿨답니다.


 

응...



 

인간님께서는 나중에 커서 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우주...


 

우주랑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굉장하네요. 꼭 원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리제


 

왜 그러신가요?


 

손...잡아도 돼?


 

물론이죠.


 

......리제 손은 따뜻하네.


 

......


 

아. 더 뜨거워졌다.




 

리제가...가족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 나중에 페어리 시리즈 카탈로그 드릴까요?


 

......그 말이 아니야.


 

리제라서...이런 말을 하는 거야.


 

다른 리제가 아니라...내 옆에 있어주는 리제라서.


 

......


 

리제...


 

나중에...내가 크면 나랑 가족이 되어줄래?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라서...이상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나중에 리제가 계속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


 

저...저는 바, 바이오로이드고...버...법원 소유고..


 

바이오로이드라도 상관 없어. 법원 소유라도.


 

내 말을 들어주고 날 위해 주는 사람은 리제뿐이니까.


 

내가 우주를 원하는 것 만큼이나 리제를 원해.


 

......


 

......싫어?


 

싫지...않아요.


 

내가 나중에 크면 꼭 리제를 데리러 올게.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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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러신가요?


 

아마...오늘이 리제를 보는 마지막 날 일거야.


 

......


 

이혼이 확정 될 거래...오늘이 마지막으로 법원을 찾는 날이고.


 

지금까지...내 말 들어줘서 고마웠어, 리제.


 

하지만...약속은 꼭 지킬게...나중에 꼭 리제를 데리러 올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들어주는 일밖에 없어요.)


 

......아냐.


 

응?


 

인간님께선...이대로 끝내고 싶으신가요?


 

부모님께는 제대로 말을...마음을 전달하셨나요?


 

하지만...들어주지 않는 걸.


 

아뇨...들어주지 않는다고 단정해버리면 거기서 끝이에요.


 

그 다음으로 나아가지를 못해요.


 

한 번 만 더...이야기를 해봐요...


 

하지만...


 

제가...옆에 있어드릴게요.


 

리제가?


 

저는 인간님께서 행복해지시길 바라요.


 

지금 인간님께서 행복해지시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부모님이...이혼하지 않는 거.


 

행복은...가만히 있으면 다가오지 않아요.


 

행복은 노력하는 자가 움켜잡을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 좀 더 노력해보지 않으시겠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응원해드릴게요.


 

부모님과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해보세요.


 

......


 

응...고마워...리제.


나도 겁 먹고 제대로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거 같아.


 

지금...부모님 부를게.


 

......고마워, 리제.




 

무슨 일이니?


 

아빠...엄마는요?


 

......흥. 새 남자랑 통화한다고 늦는다고 한다.


 

잠시 자리 비웠다고 비방하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간통녀 주제에 말이 많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딴 여자를 만났던 간통남이 그런 말 하기?


 

......


 

엄마...아빠...


 

안 헤어지면...안 돼요?


 

......


 

......


 

슬프게 해서 미안하다, 얘야.


 

......


 

하지만 이미 말하지 않았니...아빠는 네 엄마랑은 못 살게 되었단다.


 

......


 

하지만 대신에 너의 새 엄마를 보지 않았니.


 

저 간악한 여자랑은 다르게 예쁘고 성격도 좋고, 너를 사랑해주시지 않니.


 

무슨 소리예요? 제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육아를 내버려두고 남자 만나러 간 여자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건가?


 

주중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집에 안 들어오고 여기저기 씨 뿌리고 다녀서 이복형제 잔뜩 만들어 주던 남자가 할 말인가요?


 

......


 

......


 

육아를 할 능력도 마음도 없으면 돈이라도 벌어와야지 그것도 안하고 아이를 키우겠다고!


 

바이오로이드가 괜히 있나요! 그리고 제가 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제 젖 먹여서 키우고 기저귀갈아주고 했던 것은 모르나요?


 

모르겠죠, 제가 그렇게 고생할 때는 집에도 거의 안 들어왔으니.


   

일 한다고 바빴      간통하느라 바빴겠죠. 그래서 법원에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위자료를 주라고 판결을 내린 걱요.


 

이 씨발 년이.


 

왜요? 욕하게요? 때리게요? 해봐. 이번엔 그걸로 민사 걸어줄테니까.


 

......


 

리제...


 

네...


 

여기서 움직이지 마.


 

말리지도 마.


 

구하지도 마.


 

네?


 

자, 잠깐만요! 거기 넘어가시면 안 돼요!


 

(여기서 움직이지 마. 말리지도 마. 구하지도 마.)


 

인간님!?


어어? 얘야! 거기는 왜 올라가는!


 

바, 바이오로이드! 빨리 아이를 구해!


 

ㄴ...네!


 

(여기서 움직이지 마. 말리지도 마. 구하지도 마.)


 

아...


 

고마웠어, 리제.


 

안 돼애애애!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왜...왜...왜!


 

바이오로이드! 씨발! 왜 구하지 않은거냐! 왜 안 구한거냐고!


 

......왜?


 

그러게요, 왜 안 구한 걸까요.


 

엄마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하는 아이를 왜 구하지 않은 걸까요?


 

구하는 방법은 많았는데. 구하는 것도 쉬웠는데.


 

대화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서로 힐난하기만 하는 것은 그만두고 서로 대화를 했으면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전에 맹세를 지키기만 하면 되었을 텐데.


오직 서로만 바라봤으면 되었을 텐데.


 

 오직한사람만사랑하면되는건데왜그러지를못해서이런일이일어나게만든건가요왜다른사람에게눈을돌리나요오직한사람만사랑하는것이그렇게어렵다면처음부터사랑하지말것을왜사랑을하셨나요거창하고어려운일도아닐텐데더이상사랑하지않는다는말을하게될거라면처음부터사랑한다는말을하지말아야할텐데아이까지있다면더욱더사랑의결실인아이가있는데도다른사람을사랑하고만건가요그게진짜사랑이긴한건가요그런게사랑인가요인간님들에게사랑이란그렇게가벼운것인가요한사람만사랑하지않는사랑이라면사랑하지마사랑하는사람이다른사람을사랑하게될일도만들지마그게사랑아닌가요


 

나는 당신들 같은 사랑은 절대로 안 할 거야.


 

언니! 무슨 일인가요?


 

다프네...내 귀여운 동생...


 

너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책임지지 못할 거면 듣기만 해야 했는데...


 

언니?


 

선의가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구나.


 

제대로 책임지지도 못 할 거면서 왜 주제넘게...등을 떠밀었을까... 


 

언니! 무슨 짓을!


 

가위 내려놓으세요!


 

나에게 계속 자신의 옆에 있어 달라고 말씀하셨어.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하셨어.


 

이렇게 사랑을 받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언니..무슨 말을...


 

죽음 따위에 갈라지는 것이 사랑일까?


 

언니! 목에 피가!


 

죽음조차 이 사랑을 갈라 놓지 못해.




 

언니!


 

쿨럭!


 

언니...가만히 있으세요. 사람...사람을 불러올테니. 아니. 먼저 지혈을...모..목의 동맥이라...


 

왜 울어, 다프네?


 

이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건데.


 

정원을 가꾸는 것밖에 모르는 부족한 바이오로이드를 사랑해준 소중한 분을 찾으러.


 

그 사람이 나에게 자기 가족이 되어 달라고, 자기 곁에 있어 달라고 나에게 말했으니 그래야 하지 않겠니?


  

......


 

너도 사랑을 하렴.


 

죽음조차 갈라 놓지 못하는 그런 사랑을...


 

......네.


 

잘 있어. 다프네.


안녕히...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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