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회고록(1)


나비의 회고록(2)


나비의 회고록(3)


나비의 회고록(4)


나비의 회고록(5)

ㅡㅡㅡ


고풍스러운 방 안에 비명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인간이 쓰러졌다. 동시에 인간을 본따 만든 ‘도구’들이 쓰러졌다. 그는 그들 사이에서 피로 목욕한 듯 온몸을 흠뻑 적셨다.


떨어지지 않게 손에 억지로 묶은 검이 파들거렸다. 틱틱거리며 탄창이 비워진 권총이 바들거렸다. 그는 씻기지 않을 피가 흠뻑 배인 손의 붕대와 가문의 문양이 수놓아진 옷의 소매를 바라 보았다. 살아 있는 이는 없었다. 오직 그만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분명 그렇게 끝내야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미약한 신음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는 부서지고 짓이겨진 가구들과 시체들을 해치고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바이오로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덜 성장한, 너무나도 작은 어린아이였다. 분명 견습으로 일하고 있거나 그에 준하는 일을 하는 소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작은 생명은 살기 위해 양 손으로 입을 막고 두 눈을 감은 채 히끅거리고 있었다. 두려움보다 큰 생존 본능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역겨움에 구역질을 내 뱉을 뻔했다. 그러고는 자기 혐오에 검의 끝을 떨었다. 참기 위해 앙 다문 입술은 우악스러운 이빨에 짓이겨져 씹혔다. 이상주의자의 말로(末路)였다.


그는 검을 높이 들었다. 베지 않으면 되찾을 수 없었다. 지키고자 했었던, 자신의 반쪽이었던 금란을 돌려 받아야만 했다. 사랑하는 이의 생명과 다른 이들의 생명을 저울질한 결론이었다. 비극이었다.


적어도 편하게 해주자. 라는 말이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이미 헤집어진 도덕 관념이 가슴에 박혔다. 자기 위로이자 합리화였다. 무너져 버린 것은 주워 담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검풍이 일었다.


스걱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와 철이 엮인, 가문의 상징이 새겨진 창문의 틀이 으스러졌다. 소녀의 높은 비명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그리고 곧 침묵이 내리깔렸다. 분명 오늘 밤은 서늘했지만, 그의 얼굴은 흘러내리는 눈물로 뜨거웠다. 회한(悔恨)이었다.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요, 열불식악모음(熱不息惡木陰)이라...”


그는 다시는 쌓아 올리지 못할 신념을 중얼거렸다. 이미 흑(黑)에 물든 백(白)은 돌아오지 못할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연모하는 이를 찾기 위해 타인을 죽인 군자가 어딨냐며 자조하기도 했다. 무너져 내린 인간성이 꿈틀거릴새도 없이 죽어버렸다. 결국 그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묵흑(墨黑)이었다.


“둘 째 도련님. 다친 곳은 있으신가요?”


망가진 문 앞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다. 직후, 하이힐이 또각거렸다. 달빛 아래 은망울 꽃 같이 아리따운 은발이 찰랑거렸다. 그는 그것을 보며 또 다른 역겨움을 느꼈다. 그녀가 아닌, 타인에 대한. 다르게 말하면 인간에게.


“리리스.”


분명한 것은 그녀는 감독관의 역할을 부여 받았을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중, 그리고 삼중으로 보험을 들어놓는 이었기에.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돌아가자꾸나.”


그는 강렬한 피냄새를 풍기며 리리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이오로이드들의 사이사이를 지나 찌그러진 문지방을 넘을 때 까지 그녀는 아무런 미동 없이 한 쪽 구석을 유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 또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침묵이 고요하게 내리깔렸다. 소쩍새가 울지도 않는 밤이었다.


검에서는 끈적한 붉음이 방울져 떨어졌다. 하늘은 너무나도 청명해 달이 일렁거릴 정도로 시리게 타올랐다. 그 아래에서 그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어느 순간 그를 바라보는 리리스는 그의 연한 저녁 하늘 같은 눈동자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명령 하실건가요?”


“그러길 바라느냐?”


“제가 가존(家尊)께 받은 명령은 둘 째 도련님의 감시였습니다. 갈무리를 짓는 것이 아니었지요.”


그는 원한이 흠뻑 묻어 있는 검을 향해 눈을 떨구며 말했다.


“나는 명하지 않는다. 부탁을 할 뿐.”


리리스는 여전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냉정한 눈빛과 그렇지 못한 따스한 말. 그리고 잠시 뒤에 꽉 쥐어지는 검과 흐릿한 결의. 미동 하나 없는 입. 그렇기에 그녀는 완전히 몸을 돌렸다.


“어쩌면, 그 아이가 감히 도련님께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아요.”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뜰 뿐이었다. 그리고 리리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총을 뽑지도 않았다. 다시 걸어왔던 길을 걸어 돌아갔다. 또각거림이 방 안에 강하게 울리다 서서히 흐려졌다. 문지방을 넘어선 두 사람분의 걸음걸이가 울리다 스르르 사라졌다.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없어야 했다. 꿈틀거리는, 마지막 생명이 구석에서 안도의 한 숨을 내쉬기 전까지.


ㅡㅡㅡ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그의 아비의 앞에 서 있었다.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도구’들이 없다는 것과 둘만 있다는 점이었다. 희끗한 새치가 조금 더 늘어난 그의 아비는 곰방대를 입에 대고 연기를 내 뱉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복종과 굴종이었다.


그 말대로 동기가 있기에 움직이는 것은 ‘그’였다. 연모하는 이를 위해 타인을 죽였다. 소중한 이를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들도 누군가에겐 그랬을 것이었다. 이미 그의 머리는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이 상황도 너무나도 역겨워 뛰쳐나가고 싶었다. 처음으로 그의 아비에게 반기를 들고 싶었다. 가증스럽고 역겨운 감정들이 울컥거렸다. 지워지지 않은 피고름들이 손에 아직도 만져질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분은 삭혔다. 그의 아비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내리 깔았다. 치욕스러움은 아니었다. 그저, 참아야했다. 그러기를 몇 분. 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제 만족하십니까?”


“무얼 말이냐?”


“소자가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였던 것 말입니다.”


그의 아비는 씨익 웃었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환한 웃음이었다. 박수가 울리고 곰방대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렸다. 즐거움을 감추지 않는 이의 환호성이었다.


“그래. 아들아. 네 알량한 신념이 무너지는 것은 그리도 쉬운 것을. 손에 쥔 것을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지 않더냐?”


“아버지!”


그가 처음으로 그의 아비에게 반기를 든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아비는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든 듯, 몸 안으로 연기를 들이 마셨다. 목구멍으로부터 넘어가는 독기. 그것이 그의 아비를 즐겁게 하며 내 뱉어졌다.


“역정내지 말거라. 너는 네 어미를 닮아 참으로 감정적인 아해였지. 지금도 다를바 없구나. 아들아. 무엇을 바랬느냐? 이 미친 세상에서 선비가 되지 못함을 한탄하느냐? 아니면, 네 가련한 도구년을 지키지 못한 네 약함을 탓하느냐? 아무 것도 의미없는 것에 마음을 품지 마라. 가문은 그렇게 이어져왔다. 너 또한 그리 되리니.”


“전 가문의 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너는 그리 될 것이다. 정도(正道)를 걷는 나의 아해야. 바라지말거라. 머리를 숙이고 가문을 받아들여라. 회(灰)가 백(白)이 되는 것보다 흑(黑)이 되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어찌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느냐?”


고독(蠱毒)이었다. 마치 항아리에 가득 담긴 지네와 뱀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을 본 것 같이, 그의 속은 역겨움과 증오로 채워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효(孝)와 인간으로써의 증오가 섞여 그의 머리를 울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바닥에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고 싶었다. 가문이 그려진 카페트 위에 쏟아내는 더러움이 조금 더 묻는다 해도 상관 없을 것이었다. 이미 더러움에 물든 가문에 오물이 조금 더 묻는다고 차이는 없을테니까.


“그것이 선비의 도(道)이며, 인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돌려주십시오. 제 모든 것을.”


그의 아비는 새치가 힐끗거리는 검붉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곰방대 안에 남아 있는 재를 툭툭 털기도 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애잔함과 분노, 그리고 추억에 젖은 눈빛까지. 그는 저 두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보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하. 굽히지 않는 것조차 어찌 저리 닮았는지.”


평소와는 다른, 격한 팔놀림에 도포자락이 휘날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반점은 어느새 더 커져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며 다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는, 아들의 마음이었다.


“보았느냐? 나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한다. 네 어미를 따라갈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는 아무 말하지 못했다. 복잡한 마음이 울컥거렸다. 그래도 혈육이었다. 자신을 낳아준 이에게 모질게 말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앗아가려는 이였음에도 아비라는 이유 때문에 끊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아비도 알고 있었다. 곰방대의 재가 모두 털어졌을 때 담담한 말이 울렸다.


“아들아. 모든 것을 쥐려 하지 말아라. 원망을 하려거든 미련을 놓아라. 애증을 품지 말고 원한을 품어라. 혈육의 정으로 감정을 짓이길바엔, 과감하게 버려라. 네 아비를 해하려던 이를 죽인 것은 효(孝)이고 도구들을 부순 것은 무엇이더냐? 모질어지거라 그리고 하나만을 붙잡거라. 네 손은 너무나도 작으니.”


“아버지.”


“네 것을 돌려주마. 허나 한 가지 내기를 하도록 하자꾸나.”


달칵거리는 대나무가 재털이에 닿았을 때, 그의 아비는 다시 내 뱉었다.


“그 도구년이 돌아올 것인지, 아니면 너를 떠날 것인지. 흥미로운 내깃거리 아니더냐?”


그것은 내깃거리도 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확신이었다. 나비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의미없는 말놀음이라는 것도.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아비를 향해 말하려 했다. 그래야했다. 순간적으로,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아... 아버지!”


문을 연 그의 형제는 평소와는 너무 다른,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급박하게 소리질렀다.


“습격입니다! 전국, 아니! 전 세계가 공격 받고 있어요!”


ㅡㅡㅡ


말 없이 연중 했다가 구상해 놓은게 아까워서 써 놓은거 다시 꺼냄. 면목이 없다...


그래도 끝은 맺어야 하니까 다시 써봄


어짜피 새드엔딩으로 끝날꺼라면 하고 싶은거 다 해도 좋?을지도


이렇게 보니까 금란이 애잔함 치트키네 금란 애껴욧


어쨌든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