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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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을 만들고 나서 두 성별로 나누었다. 남성에게는 씨를, 여성은 씨를 받아 잉태할 수 있는 자궁을 주고 서로를 사랑하여 새 생명을 만들 것을 명했다.

 

그러나 인류는 서로의 성별을 불신하여 더는 사랑하지 않았고, 이윽고 생명 탄생의 의무를 져버렸다. 나아가 거만해진 인간들은 사랑 없이도 생명을 만드는 법을 깨우쳤다.

 

그렇게 탄생한 생명들은 인간과 완벽하게 흡사함에도 생명체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조롱을 담아 생명과 로봇의 합성어인 ‘바이오로이드’라고 불리었다.

 

제조실은 그런 곳이었다. 따뜻한 어미의 자궁이 아닌 차갑기 그지없는 배양조에서 사랑 없이도 생명이 태어나는 곳. 그럼에도 그곳에서 태어난 소녀는 자신의 처지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신을 위해 준비된 새빨간 수단을 새하얀 나신에 걸치고 비레타를 썼다.

 

소녀는 바닥에 잘 정리된 데이터 칩을 발견하고는 곧장 주워들었다. 막대한 데이터를 통해 미래 예지에 가까운 예측 능력을 가진 그녀를 위해 라비아타가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후후, 꽤 오래 걸리겠네요.”

 

소녀의 펼쳐든 책 위로 휘광이 흩날렸다. 배양조에서 나와 처음 맞는 소녀의 세계에 사령관의 행적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방금 태어난 소녀의 세계는 곧 사령관의 세계였다. 인간과 바이오로이드. 남성과 여성. 전혀 다른 두 생명이 분명 같은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어?”

 

데이터를 확인하던 아르망은 이질적인 정보를 탐지하고는 당혹스러움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르망은 한껏 차가워진 눈초리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난색을 표했다.

 

“후후, 인간은 인간이네요.”

 

***

 

오르카호에는 항상 불이 먼저 켜지고 가장 늦게 꺼지는 곳이 있었다. 놀랍게도 가사의 전반을 담당하는 배틀 메이드도, 함내의 인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식당도 아닌 사령관의 집무실이 그러했다.

 

악몽이란 마치 과거를 각색한 공포영화와도 같았다. 한참을 괴로워하다 깨어나고 나서 과거와는 다른 현재를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매 순간과 긴장감으로 점철된 영화는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그때의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무엇이 언제, 어디서 나올 줄 알고 있으니 공포에 무덤덤해지는 것이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이런 점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지’가 준다고 봐도 무방했다. 더군다나 이번 이벤트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묘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번번하게 꾸는 악몽 또한 그러해야 할진데, 도저히 사령관이 마주한 것은 도통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실이라는 악몽은 아무리 애를 써도 깨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령관은 전에 없던 행복을 느끼려는 순간에도, 불안감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했다.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칼과 총구가 자신에게로 향하던 그 순간은, 이미 본 과거라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한 것이 그에게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것이 사령관이 밤에 곧장 잠이 들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느새 악몽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상, 사령관은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몇 명의 마음이 이미 사령관에게 호의적으로 돌아서더라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에 늘 관계에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이유 없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을 꽤 많이 봐왔던 터라, 혹여나 책잡힐 일이 생길지도 몰라 사령관에게 호감을 내비치는 이들에게 애매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령관의 책상위엔 정갈하게 양식을 맞춰 작성된 서류와, 미치광이가 휘갈겨 놓은 듯한 자필로 된 예언서가 있다. 오롯이 작성자의 안위만을 위해 작성된 예언서는 개인의 욕망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건의서 옆에 자리해, 어쩔 도리가 없는 자기혐오감을 작성자에게 내비쳤다.

 

키르케의 사명이 테마파크를 지키고 손님을 안내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했다면, 사령관의 사명은 언제나 좋은 사령관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가짜가 진짜가 될 수 없듯이, 진짜와 구분하지 못할 가짜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둠이 한 수 접어주려는 듯 점점 그 색을 옅게 하자, 해가 수평선 너머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제야 시간을 확인한 사령관이 서둘러 눈을 붙이러 갔다.

 

누군가가 써낸 허구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매일 뜨는 저 당연한 해가 가짜라도, 사령관 자신은 이 세계를 진실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가짜들의 세계에서는 가짜가 곧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

 

“빔 오어 트릿!”

 

우다다 달려오는 보폭 짧은 발소리에 사령관은 늦둥이 막내 여동생을 대하듯이 실없이 웃어보였다. 바닐라가 든 바구니 안에서 사탕을 몇 개 꺼내 LRL에게 건네자, 게임 안에서는 분명 기뻐하며 드레스 주머니에 사탕을 쑤셔 넣었을 어린 아이는 사탕을 받고도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있어 보였다.

 

“해피 할로윈.”

“…저, 인간. 아니, 사령관. 괜찮으냐?”

“응?”

“아, 아무것도 아니다. 짐은 이만 물러가겠노라.”

 

풀죽은 LRL의 모습에 의아함을 가지던 사령관은 뒤이어 찾아온 알비스, 하치코, 그리고 더치걸 또한 같은 반응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애들이 왜 저러지.”

“정녕 몰라서 물으십니까?”

 

바닐라의 핀잔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자,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시체가 그녀가 손에 든 손거울 안에 비쳐있었다.

 

“오우, 이런.”

“기껏 할로윈 분장을 한 아이들이 놀라서 달아나겠습니다. 좀비가 따로 없군요.”

“끙.”

 

바닐라와 심심한 대화를 이어가다, 예정대로 뒤이어 찾아온 샬럿과 앨리스에게는 적당히 남은 사탕과 쿠키를 전부 쥐어주었다. 입맛을 다시는 둘은 아쉽게 되었다며 물러갔으나, 절대로 포기할 인물들이 아니었기에 사령관은 대비를 철저히 하기로 하였다.

 

이벤트에서는 사탕과 쿠키가 떨어진 사령관을 대신 몸으로 받겠다며 덮치려는 둘을 철충 경보음이 살려주었다. 그렇기에 사령관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인원수에 맞춰 준비해둔 탓에 둘의 기습을 피할 수 있었다.

 

“사령관님. 트릭 오어 트릿이에요.”

“…어?”

 

이벤트에 나올 인원들 수만큼 간식거리를 준비해 둔 사령관이 샬럿과 앨리스에게 사탕과 쿠키를 전부 줘버린 상황에, 뜻밖의 인원이 찾아왔다.

 

“세이렌? 그 옷은 대체…….”

“아 이거요? 오드리 씨께 부탁드렸는데 맞춰주셨어요.”

 

리오보로스 이벤트에는 테티스가 나오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테티스의 소악마 스킨의 옷을 입은 세이렌이 사령관을 찾아왔다. 노출도가 특히 높은 옷이라 사령관은 눈을 둘 데가 없어 애꿎은 바닐라의 빈 바구니만 쳐다보았다. 당연하게도 모두 나눠준 사탕 바구니는 텅 비어있었다.

 

“어, 사탕은 나중에 줘도 될까? 다 나눠준 것 같은데.”

“사탕이 없으면 장난을 치는 것이 유래라 하죠?”

 

세이렌은 마치 능구렁이가 담을 넘듯 사령관의 책상을 타고 넘어와 그에게 뇌쇄적인 눈빛을 보내왔다. 순수했던 그녀가 어떤 경위로 이렇게 타락했는지, 사령관은 알지 못한다. 알렉산드라에게 교육을 시켰더니, 그녀는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라 하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령관님, 사탕이 없으면 어른의 장난을 칠지도 몰라요?”

 

세이렌은 점점 의자에 앉은 사령관의 몸을 타고 올라와 가슴팍에 손을 얹고는, 애달픈 그녀의 숨소리가 사령관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당장 말려보라며 사령관은 바닐라를 쳐다보았으나, 바닐라는 인상을 가득 찡그린 채 표정과는 다르게 제지하지 않았다.

 

“으, 주인님이 여성을 그리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인지는 했지만 그런 성벽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야! 이것 좀 말려봐!”

“위신과 자존심을 챙기는 좋은 방법입니다만, 격렬히 저항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말리라고만 하다니 조금은 추합니다. 그냥 인정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령관님! 오늘이야 말로 사랑의 결실을 맺을 거예요!”

 

결국 세이렌은 이날 또 꿀밤을 맞았다. 세이렌의 눈이 헤까닥 돌아가서 더 때려달라는 것을, 마침 울린 철충의 습격 경보음에 서둘러 내보냈다. 경멸하는 바닐라의 시선을 피하기엔 이 시점에서 아마 많이 늦은 것 같았다.

 

“샬럿 양과 앨리스 언니에게는 주인님이 어린 체형과 과격한 플레이가 취향이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그럼 지레 포기하지 않을까요?”

“제발 부탁인데 아무 말도 하지 마.”

“쳇.”

 

사령관은 아무래도 이벤트와는 다른 의미로 오르카호에 이상한 할로윈이 펼쳐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

 

현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완벽하게 유추하는 존재를 인간들은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불렀다. 과학계에서는 과학적 논쟁을 위한 사고실험의 과정에서 가정된 ‘불가능’의 영역에 가까운 존재들을 악마라고 명하였는데, 오르카호에는 그런 존재가 정확히 둘 있었다.

 

“폐하께서는 저랑 비슷한 점이 많으시군요.”

 

사람은 닮은 부분이 있으면 호감을 느낀다. 은근히 호감을 가진 상대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되는 미러링 효과에서 그것이 증명되곤 한다. 더군다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라고도 할 수 있는 미래 예지 능력이, 최후의 인류가 가진 능력과 같다는 점에서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예지라는 축복은, 사실상 누군가가 내린 저주이기도 했다.

 

“늘 좋은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아르망이 한 번 예측한 것은 바뀌는 일이 없었다. 같은 덴세츠 사의 샬럿의 폭주를 막기 위해 태어난 자신은, 항상 오차 없이 그녀를 막아야 했기 때문에 연극용 바이오로이드 치고는 과한 연산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 말인즉슨, 그녀가 본 나쁜 미래는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본 사령관은 다른 이들과 달리 드물게도 자신과 ‘동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비단 그와 그녀의 능력의 유사성을 떠나서, 그 사람의 미래까지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요, 타인은 절대로 알 수 없죠. 미래를 아는 저주받은 자들의 고통을.”

 

아르망은 전부 이해한다는 듯 책을 덮고는 자신을 데리러 올 ‘아자젤’이라는 천사를 기다렸다. 자신과 사령관의 등장시기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아르망은, 의자에 앉아 기대된다는 듯 다리를 놀리며 귀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서 빨리 뵙고 싶어요. 폐하.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오직 찬란한 금발 머리를 가진 라플라스의 마녀만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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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최신화 갱신.

변소 깨느라 글이 안써진 것도 있지만

최근에 자꾸 무림고수 사령관 컨셉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혼자 실실대느라 온전히 집중이 힘들었음.

글도 안쓰다 보니까 가뜩이나 안 좋은 문장력이 점점 죽어감.

글에도 근육이 있다했는데 안쓰면 퇴화되는 것이 맞는 얘기인 듯.


+)

내가 페도는 아닌데 세이렌이랑 아르망은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