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지난 시각. 모든 일과를 마친 대원들은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고있었다.

하지만 여기 아직 꿈나라에 떠나지않은 대원이 한명이 있었다.


AA캐노니어의 에밀리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비스트 헌터나 파니, 레이븐이 봤다면 기절초풍을 했겠지만, 지금 그녀들은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고있었다.

 

에밀리는 저번에 브라우니가 빌려주었던 멸망 전의 영화를 시청하고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주인공이 기타 하나만을 챙기고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었다.

 

“오....”

 

에밀리는 화면 속의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도 일을 척척해내고,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멋졌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남들보다 어리숙하고 맹한 탓에 언제나 남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

 

자신 또한 이 점을 잘 알고있었다.

실험 개체였던 에밀리는 비전투 쪽으로는 데이터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언젠간 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혼자서 무엇이든 척척해내고싶었다.

 

“좋아..결심했어..”

 

무언가 결심한 에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흑백 영화만이 아무도 없는 방을 비춰주고있었다.

 

“맞다... TV는 끄고..”

 

그녀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리모컨을 집어들고 TV를 껐다.

그리고 다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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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대장님..! 아스널 대장님..! 일어나보십시오!”

 

비스트 헌터의 다급한 목소리에 로열 아스널은 눈을 떴다.

 

“으으..무슨 일이지..? 한참 사령관과 좋았는데 말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에밀리가 없어요!”

 

“다른데 있는거 아냐..? 스틸라인이라던가...네오딤이라던가...”

 

“제가 다른덴 안 찾아봤겠습니까?! 지금 그곳에도 없으니깐 이러는거 아닙니까?!”

 

에밀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사령관의 귀에도 들어갔다.

 

“에밀리가 사라졌다고..?”

 

“네...지금 있을법한 곳을 전부 찾아가봤지만..아무도 에밀리를 본 적이 없답니다..”

 

사령관은 머리를 매만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주인님! 이것 좀 보세요..!”

 

그의 부관인 리리스가 무언가를 들고 사령관에게 다가왔다.

 

“뭐야..? 뭐라도 찾은거야..?”

 

“격납고에 이런게....”

 

리리스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쪽지를 사령관에게 넘겨주었다.

쪽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 여행 좀 다녀올게.’

 

사령관은 그 글씨체가 누구의 글씨체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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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가 여행을 떠났네~ 제녹스를 타고..”

 

제녹스 위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에밀리는 지금 심장이 두근댔다.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혼자서 밖을 나왔다. 그녀로서는 대단한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여행을 떠나는 동안 먹을 식량과 물,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기타도 챙겼다. 나중에 어딘가에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기타를 칠 생각에 에밀리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공허했다.

분명 영화 속 주인공처럼 쪽지를 남기고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화면으로만 봤을 땐 주인공이 멋져보이고, 즐거워보이고, 부러웠지만, 

막상 나와보니 멋지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아냐...아직 제대로된 장소를 못 찾아서 그래..”

 

에밀리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제녹스 위에서 풍경을 감상했다.

수많은 풀숲과 나무들 사이로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앗..나비다..”

 

그렇게 나비를 따라갔다. 나비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보며 그녀는 다시 노래를 흥얼거렸다.

 

“에밀리가 마을에 갔네..제녹스를 타고...”

 

노래를 불렀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재밌지도 심장이 두근대지도 않았다.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아..”

 

어느새 나비는 자신의 곁을 떠나 저 멀리 날아갔다.

자신이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정도로 높게 날아간 나비를 향해 그녀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가...어라?”

 

계속해서 나비를 따라다니느라 주변 풍경을 신경쓰지 못한 에밀리는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폐허가 되어버린 작은 마을 광장에 있었다.

 

“이런 마을이 있었나..?”

 

그녀는 제녹스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탓에 겨우살이들이나 거미줄이 건물을 감싸고있었다.

 

“우와...”

 

비록 작은 마을이었지만 왠만한 것들은 다 가지고있었다.

도서관, 오락실, 노래방 등 그 당시 인류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오락실이다...”

 

에밀리는 부서져있는 ‘오락실’이라는 간판을 보자 그 앞에 멈춰섰다.

저번에 레이븐과 오르카호에 있는 오락실에서 하루종일 놀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전이...”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이 있는지 확인했다. 주머니 속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2개나 있었다. 이 정도면 하루종일 놀 수 있었다.

 

“헤헤..”

 

그녀는 웃으면서 오락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자신이 오르카에서 보았던 오락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그녀는 조금 당황했다.

 

모든 오락기의 불은 꺼져있었고, 화면은 박살이 나있었다. 그 틈으로 겨우살이들이 비집고 자라나고있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당연했다. 하지만 에밀리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재미없어...”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실망감을 잔뜩 머금은 채로 오락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미없어...”

 

그녀는 이제 여행이고 뭐고 그냥 돌아가고싶다는 생각 뿐 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낭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았다.

 

분명 오르카호를 떠났을 때만 하더라도 즐거운 일들로만 가득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은 에밀리는 자신이 들고온 짐들을 보았다.

 

물과 식량, 텐트 그리고 기타가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들고왔던 물건과 똑같은 물건이었다. 

 

“배고파...”

 

그녀는 가방에서 과자를 꺼냈다. 봉지를 뜯은 후 과자를 하니씩 입에 넣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맛이었지만, 맛있지가 않았다. 그냥 그저 그런 맛이었다.

 

“이런 맛이었나..?”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과자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맛은 똑같았다. 맛있지가 않았다. 멋있다고 생각했던 영화 속 주인공도 더 이상 멋있어보이지않았다.

 

“돌아가고싶어..”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매운 에밀리는 과자봉지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제녹스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뽈뽈거리며 오르카호로 돌아갈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녀가 떠난 자리엔 과자봉지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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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맞나...?”

 

에밀리는 아까 왔던 길을 되짚으며 오르카호로 돌아갈려했지만, 오르카호는 보이지않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올 뿐이었다.

 

“음....”

 

에밀리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로열 아스널이 자신에게 알려줬던 말이 생각났다.

 

“에밀리! 길을 잃었을 땐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거다! 알았나?!”

 

“알았어..대장..그렇게할게..!”

 

에밀리는 자신의 옆에 둥둥 떠다니는 아스널의 잔상을 향해 경례를 했다.

그렇게 아스널의 말대로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제녹스 위에 앉아 울창한 숲의 풍경을 감상했다.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입에 물고 나뭇가지 위를 자유자재 뛰어넘고, 새들이 날아다녔다.

 

“맞다...”

 

에밀리는 제녹스 위에 올려놓았던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저번 봄쯤에 사령관이 교복과 함께 주었던 기타였다. 비록 그녀는 기타를 쳐본 적은 없었지만, 에밀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겼다.

 

“으....”

 

기타를 꺼내든 에밀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해보았지만 어딘가 엉성해보였다.

결국, 그녀는 기타를 다시 케이스 안에 고이 모셨다.

 

“후아아암....”

 

밤늦게까지 TV를 시청했고, 아침 일찍 움직였던 탓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안 자기 위해 눈을 떠보았지만 눈은 저절로 감겼다.

 

포근한 햇살과 기분좋게 자신의 뺨을 간지럽히는 바람까지 졸음을 도와주고있었다.

결국 에밀리는 짐들을 대충 땅바닥에 내려놓고 제녹스 위에 드러누웠다.

 

“조금만..자는거야..조금만...”

 

그녀는 그렇게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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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05. 일어나라.”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X-05는 눈을 떴다.

하얀 방 안엔 자신 혼자 뿐이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창문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있었다.

 

“여긴...”

 

“X-05. 일어나라. 실험 시간이다.”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X-05는 일어났다.

왜소해도 너무 왜소한 그녀의 체구 때문에 옷은 늘 흐트러져있었다.

 

“이번 실험은 저번과 똑같다. 목표를 향해 제녹스를 쏘기만 하면 되는거다. 알았나?”

 

“응...”

 

“좋아, 실험 시작한다.”

 

누군가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그녀의 옆으로 무언가가 올라왔다.

X-05의 무기인 제녹스였다.

 

“제녹스를 집어라. X-05.”

 

남자의 말을 따라 X-05는 제녹스를 들어올렸다.

 

“잘했다. 이제 목표를 향해 제녹스를 쏘면 된다. 알았나?”

 

“응..”

 

남자는 다시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실험실 안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들어오고있었다.

 

타이런트 한 대가 엄청난 위용을 내뿜으며 실험실 안으로 들어왔다.

비록 무장을 전부 해제 당하고 탄소섬유 케이블로 칭칭 감겨져있었지만, 그의 크기만큼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X-05. 타이런트를 향해 제녹스를 발사해라.”

 

“응..타깃 확인.”

 

X-05는 제녹스를 들어올린 뒤 타이런트를 향해 겨누었다.

그녀가 방어쇠에 손을 올리자 제녹스에선 푸른빛이 모여들었다.

 

X-05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바닥이 흔들렸다.

타이런트는 그것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저항해보았지만 무장을 전부 빼앗긴 그는 탄소섬유 케이블을 끊을 수가 없었다.

 

“발사.”

 

남자의 말을 따라 X-05는 방어쇠를 당겼다.

작은 무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광선이 타이런트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타이런트는 물론이고 실험실의 벽까지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버린 X-05는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잘했다. X-05.”

 

“선배. X-05 로만 부르는건 너무 딱딱하지않아요?”

 

여자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물었다.

 

“이 녀석들한테 이름을 붙어줘서 뭐하게? 어차피 채택되지 않으면 폐기되는 애들인데..”

 

“그러니깐, 이름이 필요하다는거에요. 죽을 때 까지도 X-05면 좀 그렇잖아요?”

 

“하아...니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뭐라고 불러줄건데?”

 

“음... 에밀리?”

 

“이유는?”

 

“음.. 그냥 에밀리라고 불러주고싶었어요.”

 

“인간이 아닌 아이 한테 가장 인간다운 이름을 붙이다니..”

 

“뭐 어때요~ 선배. 그렇게 딱딱하니깐 여자친구가 없는거에요.”

 

“시발..거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오는데..”

 

“헤헤.. 아무튼. 각설하고.”

 

여자는 마이크를 붙잡고 실험실 안에 있는 X-05를 불렀다.

 

“X-05? 내 말 들려?”

 

여자의 말에 X-05는 여자가 있는 쪽을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니 이름은 X-05 에밀리야. 알았지? 알았다면 고개를 끄덕여봐.”

 

이제 에밀리라는 이름을 가진 X-05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에밀리. 오늘 실험 수고많았어. 이제 쉬어도 돼.”

 

여자의 말에 에밀리는 실험실 구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속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되뇌였다.

 

‘에밀리..에밀리..에밀리...’

 

점점 몰려오는 잠에도 에밀리는 자신의 이름을 되뇌였다.

 

저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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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에밀리? 에밀리..? 일어나.. 일어나...”

 

누군가의 목소리에 에밀리는 눈을 떴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우으...사령관...?”

 

“무사했구나..!”

 

에밀리를 본 사령관은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에밀리는 무거운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행은 어땠나? 에밀리. 재밌었나?”

 

로열 아스널이 자신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대장...?”

 

그녀의 뒤로 비스트 헌터와, 파니, 레이븐도 있었다.

에밀리는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재미없었어..”

 

에밀리의 말에 로열 아스널은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캐노니어의 대원들과 사령관은 흐뭇한 표정으로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에는 혼자가지말고 다 같이 가자. 알았지?”

 

사령관의 말에 에밀리는 눈이 반짝였다.

 

“응..다음에는 대장이랑 레이븐이란..파니랑..헌터랑 같이 가고싶어..

 

물론 사령관도 같이..”

 

“그래..”

 

에밀리는 제녹스를 타고 오르카호로 돌아갔다.

그리고 속마음으로 생각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재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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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을 잘못하는 바람에 에밀리의 티셔츠 색이 노란색이 되었습니다.

다 칠하고나서 잘못되었음을 느꼈다는게 참...



뵈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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