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창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공기분자보다 빠르게 날아간 창은 공기를 찢어발긴다라는 표현이 더 옳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의 눈에는 날아가는 창이 아닌, 창이 날아간 뒤의 모습밖에 볼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위협적인 속도로 날아간 창이었지만 토모에게는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날아오는 창을 따라오고 있었다. 창이 아무리 빠르다 한다고 해도 결국은 창이었다. 창은 막을 수 있다면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토모는 무섭지 않다는 듯 달려가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날아오는 창을 막기 위해 토모가 하는 일은 단 하나였다. 들고 있는 주철로 된 맨홀뚜껑을 창의 궤적에 맞게 들어올리는 것 뿐이었다. 사람은 혼자서 들지도 못하는 무거운 맨홀 뚜껑을 아탈란테가 던진 창이 꿰뚫었지만 창날부분만 조금 반대쪽으로 뚫고 나올 뿐이었다. 창날은 토모의 근처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조각나 떨어진 주철조각마저 토모에게 상처조차 내지 못했다. 창을 다시금 막아낸 토모는 자신감을 가지고 더 빠르게 달려나갔다. 발을 박차고 나갔다. 아탈란테와 토모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위협을 느낀 것은 아탈란테였다. 그녀가 들고 있는 창은 던지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고대 그리스식 창술을 배웠다. 그녀는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브래드 피트처럼 화려하게 창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아탈란테가 싸워야 할 상대는 서로 무기를 맞대며 싸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칼리돈의 맹수, 사자, 멜레아그로스. 맹수를 상대로 이기기 위해서는 투창술에 집중해야 했다. 창을 휘두르는 상황이 온다면 이미 맹수의 앞발톱이 그녀의 상반신을 반으로 찢어버릴 것이었다.

 거리가 있을 때, 맹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아탈란테는 창을 던져 맹수를 제압해야 했다. 창을 막으며 달려오는 맹수는 상정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탈란테는 당황한 얼굴을 하며 창을 다시 뽑아들었다.

 창을 던졌다. 긴 서술을 할 시간도 걸리지 않고 창이 토모의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토모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창을 보고 피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날아오는 창의 궤적을 잃고 미리 그 자리에 방패를 가져다 댈 수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토모는 창을 막는 대신에 날아오는 창을 맨홀뚜껑으로 옆으로 쳐냈다. 그 충격에 창은 힘없이 옆으로 날아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탈란테가 던진 창은 토모의 몸에 생채기만 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탈란테가 던질 수 있는 창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아탈란테는 그 창을 던질 수 없었다. 그 창을 던진다면 그녀가 가진 무기는 왼손에 쥔 방패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수 없었다. 아탈란테는 위대한 영웅, 헤라클레스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무기가 필요했다. 창을 던지는 대신 그녀는 방패를 높이 들고 그 방패 위에 창을 올려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의 일원인 호플리테스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토모에게 달려들었다. 토모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탈란테를 보고 놀라며 외쳤다.

 “표창이잖아! 창을 던져야지 들고 달려오면 어떡해!”

 토모는 반사적으로 자신이 들고있던 맨홀 뚜껑을 질주하는 아탈란테에게 던졌다. 무거운 맨홀 뚜껑은 느리지만 묵직하게 날아갔다. 그러나 아탈란테는 들고있는 방패로 맨홀뚜껑을 쳐내고 창을 토모를 향해 내질렀다.

 “으악!”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몸을 돌려 창을 피한 토모는 자신의 눈앞에 아탈란테의 노란 창 끝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험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창과 방패로 무장한 상대와는 달리 토모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들고 있었던 맨홀 뚜껑까지 던진 그녀였다.

 아탈란테는 토모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창을 내지렀고 창을 휘둘렀고 창으로 찔렀다. 토모가 그 창에 아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그녀의 반사신경이 반이었고 나머지는 운이었다. 토모는 뒷걸음질하며 몇번이고 넘어질 뻔했고 중심을 잃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 순간 아탈란테의 창이 그녀를 노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탈란테가 일격을 담아 크게 창을 내지른 것을 피한 토모는 아탈란테가 자세를 가다듬는 사이를 틈타 뒤로 뛰어 아탈란테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이대로라면 토모는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결국 운이 다해 창에 찔려 죽을 것이었다.

 그 때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창을 볼 수 있었다. 조금전 토모가 맨홀 뚜껑으로 쳐낸 창이었다. 그 창은 땅에 박히지도 않고 덩그러니 굴러가고 있었다. 한편 토모가 그 창을 발견한 것을 아탈란테 역시 발견했다.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는 그 창을 향해 일시에 달려갔다.

 창을 잡은 것은 토모였다. 몸을 날려 창을 잡은 뒤 바닥을 한바퀴 구른 그녀는 바로 일어나 자세를 잡고 창을 아탈란테에게 겨누었다.

 “Μαλάκα!”

 아탈란테는 그리스어로 욕을 내뱉었다. 상대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였다. 아탈란테에게 있어서 토모를 이길 유일한 희망은 토모가 아무 무기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맨홀 뚜껑을 들어 아탈란테의 창을 막은 것은 의외였지만 그 뚜껑을 던져버린 지금 토모는 아탈란테의 창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야 했다. 그러나 토모가 창을 든 이상 아탈란테의 희망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너는 결국 싸우다 죽게 될 거야.’

 그 남자의 목소리가 아탈란테의 머릿속을 멤돌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탈란테는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날려버리려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었다. 아탈란테는 창자루가 조금 우그러질 정도로 창을 세게 쥐었다.

 토모는 창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고대 그리스가 아닌 중세 일본의 창병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창끝은 아탈란테를 향하고 있었지만 창을 뻗을 수 있는 거리는 한손으로 창을 잡은 아탈란테가 유리했다. 토모는 창의 앞쪽을 잡은 왼쪽 손이 뻗을 수 있는 거리만큼 창을 내지를 수 있었지만 아탈란테는 창 뒤쪽을 잡은 오른손이 더 먼 거리만큼 창끝을 뻗을 수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냉병기의 싸움은 리치의 싸움이라고. 토모는 자세부터 부족한 리치를 안고 있어야 했다. 물론 리치는 승패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토모는 어수룩하게 말을 할지는 몰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싸움에서 리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전 두 바이오로이드의 싸움을 볼 수 있었다. 쿠노이치 카엔과 쿠노이치 제로의 싸움. 나기나타에 가까운 긴 타치를 든 카엔을 이기기 위해 짧은 탄토를 든 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카엔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긴 무기의 단점이 뭐냐고? 가까운 곳에서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모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토모는 끝없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게 보이는 행동을 할 뿐.

 먼저 창을 내지른 것은 아탈란테였다. 토모는 몸을 돌려 창을 피한 뒤, 아탈란테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짧게 쥔 창을 아탈란테의 몸을 향해 찔렀다. 아쉽게도 아탈란테의 왼손에는 방패가 들려있었다. 토모가 찌른 것은 아탈란테가 아닌 그녀가 든 방패였다. 토모가 든 창은 방패에 그저 흠집 조금밖에 내지 못했다.

 아탈란테는 뒤로 물러며 창을 휘둘렀고 토모는 몸을 숙여 그 창을 피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아탈란테는 토모와 거리를 두려 했지만 토모는 아탈란테가 거리를 두게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아탈란테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토모는 자신과 리치 싸움을 할 생각이 없었다. 빠른 기동력으로 자신에게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창을 더 짧게 쥘 뿐이었다. 아탈란테는 창을 당겨 거의 창날이 칼날처럼 보일 정도로 짧게 잡았다. 그녀가 마지막 창에 새겨놓은 흠집이 손에 닿을 정도로 말이었다.

 토모는 창을 들었다 내리쳤다. 마치 나기나타로 공격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탈란테는 그런 공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조금전처럼 창을 길게 잡았다면 막기 힘든 공격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창을 짧게 쥔 지금이라면 거뜬히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아탈란테는 창을 들어 자신을 향해 내리쳐지는 창을 막았다. 분명 막은 공격이었다. 그러나 아탈란테의 손에 전해지는 충격은 두 창이 맞부딛히는 충격이 아니었다. 그 느낌은 마치 이쑤시개를 구부려 부러지게 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아탈란테는 자신의 창 끝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였는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창이 부러지고 있었다. 그녀가 창자루에 흠집을 내었기 때문이었다. 맹수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잘 부러지게 만든 창이었다. 어째서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마지막으로 든 창은 잘 부러지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창으로 토모가 내려치는 창을 막고말았다는 것을.

 부러진 창날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날카로운 창날은 떨어졌고 아탈란테의 가슴팍에 그대로 꽂히고 말았다.

 “크허억!”

 가슴을 뚫은 창은 아탈란테가 한쪽 어깨에 걸친 튜닉도 잘라냈다. 그녀의 튜닉은 허리 아래로 흘러내리며 그녀의 양 가슴을 활짝 드러냈다. 아탈란테는 자신의 몸에 박힌 창날을 붙잡았다. 고통은 몸속으로 이어졌다. 갈비뼈, 폐, 그리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관까지.

 그 남자의 말이 이뤄지게 할 수 없었다. 아탈란테는 싸우다 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었다. 그 행위가 자신의 죽음을 불러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로 말이다.

 자신이 이기기 위해 낸 흠집에 의해 부러진 창날을 아탈란테가 자신의 가슴에서 뽑아내었다. 공중으로 피가 솟구쳤다. 흘러나오는 피로 그녀의 가슴은 붉게 물들어 유두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싸우다 죽지 않을 거야. 이 싸움에서 나는 살아남아 영광을 얻을 거야.”

 영광이란 무엇인가. 아탈란테에게는 그것을 의심할 기력조차 남지 못했다. 토모가 당황하며 창을 아탈란테에게 겨누었지만 아탈란테는 몇발자국도 걷지 못했다. 후들거리는 다리고 조금 앞으로 나아온 아탈란테는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토모는 놀란 얼굴로 창을 쓰러진 아탈란테에게 겨누며 자리에서 떨었다.

 “토모! 괜찮아?”

 마츠시타가 토모에게 달려오더니 그녀를 안아주었다. 마츠시타는 토모가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츠시타는 토모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토모의 손으로 바이오로이드를 죽인 것이었다. 아탈란테는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박힌 창날을 뽑으로 자신의 죽음을 재촉했다. 더이상의 폭력은 사절이었다. 더이상 바이오로이드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마츠시타는 죽어가는 아탈란테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차마 볼 수 없었다. 만일 아탈란테의 모습을 본다면 마츠시타는 토모를 위로해줄 수 없을 것이었다. 마츠시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갔다. 토모는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 손으로 천천히 마츠시타를 안아주었다.

 “토모, 이제 괜찮아?”

 “아니. 괜찮을 리가 없잖아.”

 토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마츠시타도 토모도 어디선가 사건이 일어났고 그쪽으로 출동하는 것이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이곳에 구급차가 필요했지만 이 바이오로이드를 구해줄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유로 치료는 커녕 자신들을 불러 시간을 낭비한 것에 화를 낼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이미 그 일을 체험했다.

 어째서 이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을 공격한 것일까. 누가 보낸 것일까. 둘은 알지 못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멀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사이렌소리가 자신들을 향해, 여러곳에서 다가온 것이었다.

 순식간에 경찰차들이 몰려와 마츠시타와 토모의 앞에 멈추어섰다. 차에서 경찰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외쳤다.

 “마츠시타 쥰! 당신을 바이오로이드 절도죄로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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