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누군가가 미움받는 사람에게 신경써주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이들은 전보다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메이플라워가 오늘과 내일의 양식과 함께 공간이동으로 돌아오자,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을 둘러싸고 뭐라고 하던 바이오로이드들이 혀를 차거나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각자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녀가 설치해놓은 안전 장치들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심한 수준으로 모욕을 가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가한 것은 아직 아닌 모양이지만,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이들이 별로 좋지 못한 일을 겪은 것만큼은 분명했다. 아예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 부근으로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접근을 금지시킬지 아니면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을 공간을 가까운 어딘가에다 따로 만들어줘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한 메이플라워가 커다란 공룡의 시체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페럴헌터들의 시체에서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실례...... 해도 될까요?"


 시선을 돌린 메이플라워의 눈에 포티아들과 아우로라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메이플라워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움찔거린 바이오로이드들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요리 준비를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메이플라워의 입장에서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일을 도와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메이플라워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식칼과 도마를 건네주자, 머뭇거리면서 도구들을 받아든 포티아들과 아우로라들이 서투른 솜씨로 고기를 다듬었다. 


 오르카에 있었을 때에도 그리 대단한 솜씨의 요리사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녀들의 솜씨는 요리를 막 시작한 아마추어들 수준이었다. 잘못해서 메이플라워가 애써 잡아온 음식들을 못쓰게 될까, 혹은 잘못해서 손이나 손가락을 자를까봐 조심스럽게 칼질을 하는 포티아들과 아우로라들이 울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았다. 


 포티아들과 아우로라들이 요리 준비를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과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 중 일부가 메이플라워에게 다가갔다.


 "저희도 음식 준비를 거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도 준비하는 걸 거들어드려도 되겠슴까?"


 컴패니언과 스틸라인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잠시 쳐다보던 메이플라워가 식칼과 도마를 더 가져와서 건네주었다. 


 그녀에게서 도구를 받아든 두 그룹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고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작업 중간에 잠깐씩 서로와 애니웨어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을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에는 살기가 넘쳤다. 


 생각 같아서는 손에 날붙이를 든 기념으로 마음에 안 드는 바이오로이드들을 확 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메이플라워가 어떻게 나올지 불 보듯 뻔했다. 비록 이전의 힘도 능력도 없는 몸뚱아리를 가지고 남의 호의에 기대어 먹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지만, 메이플라워의 손톱이나 저 해괴망측하게 생긴 무기들에 의해서 두 동강이 나고 싶어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컴패니언과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의 요리 솜씨가 애니웨어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보다 나을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요리 솜씨는 포티아나 브라우니나 펜리르나 크게 다를 게 없는, 다 같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굴러떨어진 상태였다. 


 형편없는 솜씨로 다듬어진 고기들을 한쪽으로 밀어넣은 컴패니언들과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이 자신들을 노려보자, 애니웨어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도 충혈된 눈으로 두 집단의 바이오로이드들을 마주 노려보았다.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은 이들의 원래 주인에게 제일 먼저 등을 돌린 블랙리버 바이오로이드들의 일원이었다. 


 블랙리버 소속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는 몽구스 팀을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까지 전 사령관의 편에 서 있었던 이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이들도 전 사령관에게 등을 돌려버렸고, 그 때부터 바이오로이드들이 두 번째 사령관 쪽으로 전향하는데 가속이 붙었다. 애니웨어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과 컴패니언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은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이 끝까지 전 사령관의 편에 서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애니웨어 바이오로이드들은 삼안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제일 먼저 두 번째 사령관에게 돌아선 바이오로이드들이었고, 컴패니언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다음이었다. 그나마 애니웨어 바이오로이드들은 첫 번째 사령관을 버린 것은 그녀들의 잘못이며 그녀들의 선택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컴패니언 시리즈가 원래 주인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혹은 자신들을 말렸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라며 원망했다. 반면에 컴패니언 시리즈는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의지를 흔들리게 만든 애니웨어 시리즈와 먼저 배신한 블랙리버 및 PECS의 바이오로이드들 그리고 끝까지 주인을 섬기지 않은 배틀 메이드들을 탓했다.


 고기를 다듬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을 본 메이플라워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했다. 


 이들의 망가진 육신을 치료하는 것은 그녀 혼자서도 할 수 있었고, 이들을 먹여살리는 것도 그녀 혼자서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상처받은 마음과 정신을 치료하는 것이나 이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주는 것은 그녀 혼자서 하기에는 무리였고, 이들 사이의 균열을 메우는 것은 그녀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집으로 돌아갈 방법도, 가족들의 행방도 찾아야 했다.


 식량과 생필품을 만드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도 거주지 근처에 돌아다니는 야생동물들도 족쳐야 했다.


 막막한 기분이 든 메이플라워가 예의 그 거대한 컵에다 술을 잔뜩 부었다. 


 바카디-151 두 병에다 화이트 럼 두 병, 그리고 크렘 드 카시스 한 병.


 메이플라워가 무지막지한 양의 혼합물을 만드는 것과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을 잠깐 본 아우로라들이 작은 목소리로 서로와 포티아들에게 일하는 데에 집중할 것을 권유했고, 아우로라들의 말을 들은 포티아들도 스틸라인과 컴패니언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애니웨어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을 본 다른 두 그룹의 바이오로이드들도 마지막으로 경멸의 시선을 서로에게 쏘아보내고는 계속 고기를 다듬었다.


 아우로라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메이플라워는 주로 바카디-151이 들어가는 술을 즐겨 마셨고, 특히 카타르시스와 파우스트를 많이 마셨다. 그 중에서 카타르시스는 뭔가를 생각할 때 많이 마시는 것 같았지만, 파우스트는 주로 심기가 불편해보일 때 마셨다. 


 즉, 아우로라들이 보기에 지금 메이플라워는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고, 그런 상태에서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수십 명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아무 말 없이 고기를 다듬으면서 이따금씩 서로를 노려보고, 메이플라워의 눈치를 살폈다. 


 다수의 인원이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오로이드들이 고기를 다듬는 것보다 메이플라워가 커다란 공룡의 가죽을 벗기고 그 고기를 다듬는 것이 더 빨랐다. 바이오로이드들을 도와줄지 말지, 그리고 다듬어야 할 고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늠한 메이플라워가 불을 피우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고기를 다듬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솜씨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저녁 식사는 아침 식사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람 먹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중요시했기에 맛이 좀 떨어졌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과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은 서로와 애니웨어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애니웨어 바이오로이드들은 다른 둘을 탓하지 못했다.


 다른 애니웨어 바이오로이드들이 고기를 다듬고, 메이플라워가 요리를 만드는 동안 한쪽에 웅크려서 울고 있던 소완은 식사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고, 요리하는데 참여했던 포티아들과 아우로라들도 자신들이 별볼일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침울해했다. 만일 메이플라워가 혼자서 고기를 다듬고 요리를 했다면 아침에 먹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요리가 나왔을 것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일을 거들어주겠다고 나섰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요리의 수준이 떨어진 것이다.


 자책하는 애니웨어 바이오로이드들의 곁으로 메이플라워가 다가왔다. 


 언제 만들었는지 살짝 데운 수정과를 아우로라들과 포티아들 앞에 내려놓은 메이플라워의 말이 바이오로이드들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재료를 손질하느라 고생 많았다는 말이.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아우로라들과 포티아들이 노란색으로 빛나는 메이플라워의 눈을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차오른 눈물이 그녀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입에서는 그녀들 스스로가 듣기에도 아름답지 못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느껴 우는 포티아들과 아우로라드들을 한 번씩 안아준 메이플라워가 이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녀들과 함께 있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소완은 더욱 비참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녀는 애니웨어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제일 앞장서서 모실 주인을 바꿀 것을 주장한 바이오로이드였다. 단순히 그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애니웨어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 모두가 그녀를 원망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녀의 주특기이자 존재 의의였던 요리 솜씨가 완전히 녹슬어버려 식칼을 쥐는 것이 두렵고 비참한 마당에 모든 애니웨어가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소완 모델들 같았다면 그녀가 저지른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그녀를 옭아맸다.


 메이플라워는 애니웨어 바이오로이드들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과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수고했다는 칭찬과 따뜻한 수정과를 건네주었다.  이들 역시도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자 펑펑 울었고, 이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메이플라워는 이들의 곁을 지켰다.




 멀리서 메이플라워가 고기를 다듬는 것을 도와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수정과와 칭찬을 건네는 모습을 지켜본 라비아타들이 한층 더 가라앉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계속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원래 그녀들과 가장 가까웠을 바이오로이드들인 콘스탄챠들이 그녀들을 보는 시선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콘스탄챠들 중에서 세 사람만이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그녀들을 볼 뿐, 나머지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마찬가지로 원망과 경멸이 가득한 시선을 이들에게 쏘아보냈다. 


 레아들과 레오나들, 세레스티아들은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메이플라워와 함께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쳐다보다가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식사를 계속했다.  


 지나가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생긴 꼬락서니답게 돼지들처럼 꾸역꾸역 처먹는다면서 욕하면서 지나갔지만 라비아타들도, 콘스탄챠들도 아무런 대답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레오나들도, 레아들도, 세레스티아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단 하나뿐이었던 라비아타는 지금에 와서는 수십 명에 달했다.


 배신과 모략으로 인해서 아버지를 잃었다면서 자신을 버린 라비아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극에 달한 N.E.W.O의 수장이 라비아타의 시신으로부터 긁어낸 유전자와 기억 모듈을 이용해서 그녀의 복제품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감질나게 한 번에 한 라비아타만 만들어내서 화풀이할 이유는 그에게 없었다. 그냥 다수를 찍어내어 다양한 방법으로 화풀이를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라비아타가 그런 꼴이 난 마당에 원래 양산형이었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블랙리버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오르카의 첫 번째 사령관, 현 N.E.W.O의 수장에게 먼저 등을 돌린 것이 레오나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였다.


  N.E.W.O의 수장이  제일 증오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셋만 대라고 한다면 첫째가 라비아타고, 둘째가 콘스탄챠, 셋째가 레오나였다.


 이들을 포함해서 N.E.W.O의 수장은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의 '복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냈고 이들에게 그가 상상할 수 있었던, 그리고 그에게 충성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모든 종류의 가혹행위를 시전했다. 


 수십 명의 콘스탄챠. 수십 명의 레오나. 수십 명의 레아. 수십 명의 세레스티아......


 N.E.W.O의 수장이 특히 원망했고 특히 미워한 바이오로이드들이었던 그녀들에게 가해진 가혹행위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행해졌던 것보다 한층 더 가혹했다.  


 온갖 모욕과 가혹행위, 신체훼손과 생체실험을 가하는 것은 물론, 그녀들의 자매들로 하여금 그녀들에 대해서 가혹행위를 하도록 강요했고, 그녀들에게도 자매들에게 가혹행위를 할 것을 여러 형태로 강요했다.


 N.E.W.O의 수장이 제일 증오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자매애가 강한 바이오로이드들이자 큰언니의 위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자신들이 받는 고통만으로도 버티기 어려운 마당에 자매들이 겪는 고통, 그리고 자매들과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과정은 이들에게 있어 뭐라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시간들이었다.


 자신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들은 다른 자매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마땅히 섬겨야 할 존재를 저버린 자신을 원망할 뿐.


 예외적으로 콘스탄챠들 상당수는 자기 자신들을 원망하는 만큼 라비아타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한도 끝도 없이 처먹네. 제일 음식 많이 처먹는 게 저 돼지년들하고 할망구들 아냐?"


 "x발, 양심이 있으면 굶어 뒈질 일이지......"


 메이플라워가 들으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바이오로이드들은 서로 속닥거리듯이 한때 그녀들의 큰 언니 또는 대장이었던 이들을 욕했다. 


 원래 이들이 많이 먹는 편이라는 사실을 아는 N.E.W.O의 수장들과 바이오로이드들 역시도 그녀들을 짓밟을 때 일부러 그녀들을 조롱하고 모욕할 의도로 그녀들로 하여금 더 많이 먹도록, 그래서 그녀들이 문자 그대로 가축처럼 살찐 몸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는 한때 자신들의 지휘관 내지는 큰 언니였던 이들을 저주하고 원망하는 바이오로이드들로 하여금 더욱더 그녀들을 증오하고 경멸하도록 만들었고, N.E.W.O에 속한 바이오로이드들은 완전히 몰락해버린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더욱 더 비웃었다.

  

 "그런데 메이플라워 님 은근히 저것들을 편애하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치료해줄 때에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보다 훨씬 더 신경써서 치료해주고. 뭐라고 나쁘게 말하면 바로 기분 나쁘단 표정 짓고. 저것들 있는 데 근처에다 그 해괴망측하게 생긴 칼 같은 것도 세워놓고."


 "특히 라비아타 그 돼지년한테 유독 엄청 잘해주는 것 같지 않아? 혹시 취향이 그런 취향일까?"


 자신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떠들어대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말을 들은 라비아타들이 흠칫했다. 자신들의 욕을 하다가 주제를 바꿔 메이플라워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목소리들을 듣던 라비아타들이 표정을 굳히며 먹고 있던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기분이 어때요?"


 라비아타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던 콘스탄챠 중 하나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을 따른 바이오로이드들을 이 꼴로 만들고, 당신을 믿은 동생들을 이 꼴로 만들고, 우리가 모셔야 할 주인님도 버리고, 그렇게 해서 바꾼 주인도 제대로 못 모시고,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서 먹여 살려주는 고마운 분이 저런 뒷담이나 듣게 만든 기분이 어떠냐고!"


비난하는 콘스탄챠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고함을 지르는 수준이 되었다. 


 "그만해요!"


 "그만해? 뭘 그만해! 뭘 그만하라는 건데!"

 

 그나마 라비아타에게 덜 적대적인 콘스탄챠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지르자 말을 꺼낸 콘스탄챠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는 우리는요? 당신은요! 당신은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주인님을 처음 찾아낸 건 바로 당신이잖아! 그러면 누가 뭐래도 당신은 주인님 곁에 남았어야지!"


 "그러는 당신은? 당신은 뭘 잘했다고 날 비난해?"


 큰 소리로 서로를 비난하는 두 콘스탄챠는 모두 콘스탄챠 S2-416의 유전 정보와 기억 모듈을 가지고 만들어낸 콘스탄챠들이다. 똑같은 기억, 똑같은 인격을 가지고 만들어져서 비슷한 꼴을 당한 그녀들이었지만 한때 큰 언니였던 이를 보는 시선에는 차이가 있었다. 서로 소리를 질러가며 싸우던 두 콘스탄챠가 결국 맞붙으려 하자 다른 콘스탄챠들과 라비아타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이들 근처에 세워진 기괴한 형태의 검에 달려있는 눈들이 괴이한 안광을 뿜어냈다.


 메이플라워와 같이 사는 그 어떤 바이오로이드들도 메이플라워가 세워놓은 무기들이 안광과 함께 발산하는 힘에 저항할 수 없었다. 온몸이 잠시 싸늘하게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은 두 콘스탄챠들이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심신의 고통, 온갖 생체실험과 고문들을 견디지 못해서 유아퇴행하거나, 처음부터 악의적인 의도에 의해 모자란 지능을 가지도록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이 울음을 터뜨리거나 훌쩍거리자 근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이들을 달랬다. 


 바이오로이드들의 뒷담화를 듣고 심기가 불편해져 있던 메이플라워도 마시던 파우스트를 내려놓고는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각자 흩어지는 콘스탄챠들의 모습과 유아퇴행 증세를 겪는 바이오로이드들이 훌쩍거리는 모습, 그리고 애써 울음을 참거나 울고 있는 라비아타들의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차린 메이플라워가 입술을 깨물었다. 

 

 "메이플라워 님," 라비아타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메이플라워를 불러 말했다. "저희에게 특별히 신경써주시지 않아도 괜찮으니....... 다른 자매들을 더 신경써 주세요."


 "저희를 이 정도로 치료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다른 자매들에게 안 좋은 말을 들으면서까지 저희에게 신경을 써 주시지 않아도......"


 레아들 중에서 그나마 제일 정신이 온전한 레아도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과연 이렇게 말하는 자신들의 마음은 진심일까 하는 생각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퍼져나갔다. 사실은 메이플라워에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그녀가 자신들에게 더 신경을 써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정작 메이플라워가 그녀들에게 주던 관심을 나눠서 다른 자매들에게 주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녀들이 메이플라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매들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자매들의 비난과 원망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와 자책감이 그 다음으로 그녀들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메이플라워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들에게 특히 관심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불만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고,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지금 그건 메이플라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들 대부분의 문제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메이플라워는 아직 울음을 그치지 못한 이들에게 다가갔다. 유아퇴행된 바이오로이드들이 메이플라워에게 안기자 좋아하는 모습을 본 바이오로이드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메이플라워는 이들에 대한 편애를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았다. 한때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큰 언니였던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로 인해서 초래될 결과가 두려웠다. 


 메이플라워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 가서 뭘 하는지를 본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메이플라워에 대한 억측을 늘어놓는 가운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펜리르가 한 마디 했다. 


 "......그런데 말야, 혹시 메이플라워 님이 그 돼지년하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