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전편 청출어람 -2-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1

"그건 저쪽으로, 그리고 각 부대들의 배치도는..."


"용,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야? 그렇게 빡세게 할 필요는..."


"그럴 수 없소. 오늘은 그대가 공식적으로 취임하는 기념일 아니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더 확실하게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오."


안전이 확보된 아름다운 들판에서 진행될 행사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든 대원들의 자리 배치와 

소품들의 배치를 지시하던 용이 사령관의 말에 확고한 어조로 대답했다.


드디어 어린 소년이었던 사령관이 장성하여 성년이 된 생일 파티를 겸해 모두의 사령관으로 

정식 취임하는 날이었기에 용은 지금의 간소화 된 행사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하핫! 그건 옛날부터 변함이 없네."


"무, 무엇이 변함이 없다는거요?"


하지만 사령관은 당황하는 용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이며 웃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서서히 준비가 끝난 연단으로 걸어갔다. 


용은 그의 대답을 듣지 못해 아쉬움이 생겼지만, 그것을 떨쳐내고 걸어가기 시작한 사령관을

따라가며 빠른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2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러버러버~ 저 하늘너머 높이~"


딱딱할 수 있는 행사의 분위기를 풀어주려는 듯, 사령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마이크 테스트를 하자

연단 앞에 도열한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령관은 웃기 시작한 그녀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행복하다는 듯 함께 미소 지었다.


'그러는 그대도 늘 변함이 없구려.'


용은 그런 사령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들었다.


항상 작게 보이던 그는 어느덧 자신보다 키가 커졌고, 유약하게 보이던 얼굴은 여유가 잔뜩 묻어 나오는

듬직한 사내의 얼굴이 되었다. 모든 것들이 옛날 어렸던 그와는 달라졌지만 지금까지 그가 변하지 않은 단 하나.


'모두의 웃는 얼굴을 좋아하는 그 모습. 그것이 변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오.'


어느새 사령관은 이렇게 자라나 모두의 앞에서 당당히 연설을 하고 있다.


처음 용과 마주쳤던 작은 소년은 콘스탄챠의 뒤에 숨어서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체질이 허약한 탓일까, 간혹 잔병치레를 겪을 때면 모두들 뒤집혀 난리가 나고는 했었다.


언젠가 위험한 작전에 나선 대원들이 심하게 다쳐 돌아왔을 적에는 몇 날 며칠을 울며 방에

틀어박힌 뒤 식사도 하지 않아서 모두의 걱정을 사기도 했었다.


'정말, 이제 나라는 스승을 뛰어넘는 멋진 사내가 되었구려.'


용에게 그것이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청출어람(藍) 이라고 하던가. 과연 제자의 뛰어난 성취는 스승의 한없는 기쁨이었다.


"모두들, 그동안 고마웠어. 오늘의 나는 당신들이란 가족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거야."


어느덧 사령관의 연설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주요 지휘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때로는 엄마같이, 때로는 누나같이, 때로는 친구같이.


그리고 엄격한 스승이자,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이 되어준 그녀들에게 사령관은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용!"


"앗.. 소, 소관 말인가."


갑작스레 용을 부른 사령관. 용은 사령관의 호출에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모든 대원들의 시선이 사령관에게서 용으로 옮겨졌기에 당혹감이 몰려왔지만, 용은 내색하지

않고 사령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럼 용이 또 누가 있겠어. 그렇지 않아? 모두들."


사령관이 짓궂게 대원들을 바라보자 대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렇습니다.'를 외쳤다.

마치 사전에 계획이라도 한 모양인지, 그녀들의 일사분란한 모습은 심히 경이로웠다.


"그, 그대도 참 짓궂소. 어, 엄연한 공식 행사 중이오!"


표정의 변화가 드문 용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사령관은 연단에 고정되었던 마이크를 뽑아

손으로 잡은 뒤 다른 손으로 용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 행사의 주체는 '나' 잖아.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번에도 사령관의 말에 모든 대원들이 환호성과 호응을 보내며 웃었다. 그녀들의 호응에 힘입어

사령관은 용과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준비해둔 것 같은 말들을 시작했다.


"내가 미숙했던 옛날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내 곁에서 함께 머물러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용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준 스승이었고, 항상 내 곁에서 많은 일들을 함께 보면서 내게 힘이 되었어."


언제나 품어온 사령관의 진심. 그가 바르지 못한 길로 빠질 적에는 엄격한 조언으로,

그가 힘들어 고개를 떨굴 적에는 곁에서 기댈 수 있는 듬직한 기둥으로,


용은 언제나 사령관의 곁에 머물러 왔다.


"용 누나."


"앗.. 그, 그대..여.."


용이 단 둘이 있을 적에만 부르도록 허락했던 호칭을 모두의 앞에서 당당히 부른 사령관.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내가 예전에 했던 약속 기억해? 예쁜 들판에서, 누나에게 가장 아름답고 큰 반지를 주겠다고 했었지."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연단 앞에 도열한 모든 병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용은 그저 입을 틀어 막고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


"오늘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해. 누나가 내게 그랬었지. '무릇 바로 된 사내라면, 자신이 입 밖으로

낸 것들은 꼭 지켜야 하는 법' 이라고."


"그, 그건.. 그저 어릴 적의.."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그에게 그런 가르침을 준 적이 있던가. 용은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기억에

말을 더듬었지만 사령관은 확고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분명히 누나가 내게 그랬어. 사내란 좋아한다고 공언한 여인에게 한 말이라면 꼭 지켜야 한다고."


사령관은 살며시 일어나며 용을 끌어안았다. 어느새 작은 소년에서 당당하고 넓은 품을 지닌 사내가 되어,

용을 끌어안아 품에 넣는 사령관. 그는 용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그녀의 입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나랑 결혼하자. 그동안 용 누나가 나를 지켜주었던 것처럼, 이제 내가 용 누나를 지켜줄게."



#3

"이야~ 사령관. 다시 봤어. 설마하니 그렇게 대담한 프로포즈를 해버릴 줄은.."


레오나의 말에 사령관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연설이 끝나고 진행 중인

파티에서 사령관은 지휘관들과 대화를 하며 다른 병력들을 챙기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간신히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왔을 적에는 이미 해가 서서히 기울어지고 아름다운 붉은

노을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머, 그렇게 바보 같은 표정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저기 '사령관의 여자' 가 찾아오고 있어."


레오나는 피식 웃으며 사령관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눈치 좋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어느새 사령관의 곁으로 용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서 와! 용, 이것저것 관리하느라 파티도 제대로 못 즐겼지?"


"아, 괘, 괜찮소... 니..다."


사령관의 질문에 얼굴을 잔뜩 붉히며 용이 대답하였다. 그녀의 대답은 점점 작아져 마지막 말들은

거의 사령관에게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령관은 그런 용의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다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으로 안았다.


"앗..!"


"저기 봐. 노을이 정말 예쁘지?"


당황하는 용을 태연히 무시하며 사령관이 노을을 가리켰다. 용은 그의 품에 안겨 처음에는 잔뜩

당황했지만, 이내 살며시 미소 지으며 사령관의 품에 머리를 기대어왔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서방님.."


어느새 용의 말투는 크게 변해있었다. 적당히 경어를 섞어 대하던 말투에서, 이제는 완벽히

애정이 묻어 나오는 말투로 변한 용을 바라보며 사령관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함께, 이렇게 지내자. 아름다운 노을도 함께 보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


사령관의 말에 용이 사령관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서방님.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 까지, 서방님의 곁에 있겠습니다."


마주 잡은 그들의 손에 아름다운 반지가 은은한 노을의 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반지에 장식된 다이아몬드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사랑을 맹세하며 주고받은 반지가

그들의 사랑을 증명해 주듯이.



청출어람 完